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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적 교회론’이란 무엇인가?(13)

기사승인 2020.12.22  11: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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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동섭 교수의 선교 논단

방동섭 교수/ 미국 리폼드 신학대학원 선교학 박사, 백석대학교 선교학 교수 역임, 글로벌 비전교회 담임
 

   
▲ 방동섭 교수

제6장 포스트모던 시대와 선교적 교회

뉴 에이지 무브먼트와 선교
현대 교회가 이 같은 뉴에이지 무브먼트의 맹렬하고도 혁신적인 종교적 경향을 맞이하여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선교적으로 접근해야 하는가는 기독교의 미래를 생각할 때 매우 큰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기독교의 근본 진리에 역행하고 반기를 들며,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를 모더니즘에 길들어진 낡은 종교로 치부하는 현 세대의 좌경화된 종교적 경향에 대해 교회가 어떻게 선교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인가는 매우 심각한 물음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물음은 지나간 2000년 동안 수 많은 굴곡과 시련을 통과해온 교회 공동체가 과연 21세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쇠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인가의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나간 한 세기 동안 모더니즘과 함께 대부흥과 번영의 길을 구가해온 교회 공동체가 뉴 에이지 무브먼트의 시대에는 “어떻게 선교적 과제를 수행할 것인가?”는 교회의 미래가 달려있는 매우 중요한 공동체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역사를 살펴보면 교회는 언제나 한 시대의 문화적 조류에 직면해왔으며 세상과 끝없는 긴장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 시대의 문화적 경향을 외면하거나 무시해버리면 교회는 현실 문제로부터 도피하게 되어 적절치 못한 대응으로 그 사회를 주도해 가는 기회를 놓치게 되고, 그 반면에 그 시대의 문화를 비판과정이나 여과 없이 수용해 버릴 때는 교회의 순결을 잃어버리고 혼합주의 방향으로 나갈 수 있게 된다.

오늘날의 교회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추구하는 종교적 현상인 뉴 에이지 무브먼트를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심각한 위기를 직면할 수도 있고 좋은 선교의 기회로 맞이할 수 있는 양면적 상황에 놓여있다. 교회 공동체는 어떤 시대라도 복음을 전해야 하는 선교적 사명을 가지고 있다. 교회가 이성만능의 모더니즘 시대에도 살아남아 복음을 전달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종교적 혼란 시대의 사람들을 향해서도 역시 효과적으로 선교해야 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 시대의 문화의 한복판에서도 기독교인의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하며, 점차 포스트모더니즘의 사고 행태로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복음을 전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프란시스 쉐퍼(Francis Shaffer)는 현대인을 향한 교회의 선교적 책임에 대해 의미 있는 말을 하였다: ‘ 어느 시대이든지 기독교인은 그들의 시대에 걸 맞는 의미 있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해야 될 책임이 있다. 이것은 그들이 직면했던 변화 하는 존재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독교 신앙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 시대의 사고행태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모더니즘과 복음주의 기독교
신앙이나 초월적 계시 개념은 모두 휴지통에 넣어 버리고 과학적 이성만능 사상만이 철저하게 지배하던 시기에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아이러니칼하게 가장 아름다운 선교의 꽃을 전 세계에 피웠던 것이다. 뉴 에이지 무브먼트와 선교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볼 문제는 모더니즘과 복음주의적 기독교의 관계이다. 이것은 현재의 복음주의적 기독교를 조명하고 동시에 미래를 내다보는 시야를 제공하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복음주의 기독교는 한마디로 모더니즘 시대의 종교였다고 할 수 있다. 리전트(Regent)대학의 그렌츠(Stanley Grenz) 교수는 “복음주의는 모더니티와 밀접한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모더니즘이 시작되던 16세기에 개신교의 뼈대가 되는 중요한 신학적 사상은 이미 시작되었고, 이러한 신학적 사상과 함께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역사 속에 탄생하게 되었다. 주지하는 대로 바로 이때 개혁주의 사상과 경건주의 운동은 유럽 대륙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오늘날 전 세계 프로테스탄의 기본적 신학 사상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신앙이나 초월적 계시 개념은 모두 휴지통에 넣어 버리고 과학적 이성만능 사상만이 구미 양 대륙을 철저하게 지배하던 19세기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에 복음주의적 교회는 아이러니칼하게도 가장 아름다운 선교의 꽃을 전 세계에 피웠던 것이다. 케넷 라투어렛(Kenneth Latourette)은 이 시기를 선교에 있어서 “위대한 세기” (the Great century)로 부른다. 그 이유는 몇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1) 바로 이 시기에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가장 많은 선교사를 선교지에 파송했으며, (2) 가장 많은 선교 단체가 설립되어 세계 선교에 활발하게 참여하였으며, (3) 가장 넓은 지역에 걸쳐 선교가 진행되었으며, (4) 가장 다양한 선교 방법이 시도되었고, 또한 많은 기독교 문서들이 출판되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시기에는 서구 교회에서 파송된 복음주의적 선교사들이 오대양 육대주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 시기에 유럽에서 시작된 모더니즘은 전 세계 구석구석에 보급되었다. 과학의 발전, 근대주의적 교육, 선진 의료 시설 등은 근대문화를 보급하는데 중요한 도구들이 되었다. 기독교는 이러한 근대 문화의 혜택과 함께 그 신앙을 전 세계에 전하는 데 도움을 얻게 되었다. 특히 선교지의 근대적 교육 시설과 의료시설의 설립은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 진입구(entry point)가 되었다. 19세기 선교사들은 사람들이 기독교화(Christianized) 되기 전에 먼저 문명화(civilized)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또한 복음주의자들은 기독교를 모더니즘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호소력 있게 소개하기 위해 모더니즘이 추구하는 이성에 근거한 논리적 접근이나 학문적 원리들을 적용하여 기독교를 변증하고 소개하는 일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은 근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구조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학문을 개정하고 호소하므로 기독교를 당면한 과제에 관련되도록(relevant) 하였다.

근대 사상가들로서 복음주의자들은 과학적 방법, 실재에 대한 경험적인 접근, 일반적 사실주의 등 모더니즘을 그들의 도구로 사용하였다. 특히 이러한 도구들은 20세기에 들어와 중요시되었는데 복음주의적 지성인들은 모더니즘의 세계관인 세속주의 도전에 대한 관심의 표현으로 복음을 이해하고 설명하는데 이러한 도구들을 사용하였다. 20세기의 복음주의자들은 이성을 자랑하고 과학을 신성시하는 근대 문화에 대하여 기독교 신앙의 신임성을 입증하려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리하여 복음주의자들의 복음 제시는 신 존재의 증명, 성경의 신임성, 예수 부활의 역 사성의 입증을 위한 증거제시를 위해 합리주의적 변증학을 동반해 왔다.

방동섭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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