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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제너레이션 기도의 서막

기사승인 2020.12.23  15:3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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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훈 교수의 기도 본문 해설(10)

김정훈 교수 / 영국 글라스고(Glasgow) 대학교 신약학 박사, 백석대학교 신약학 은퇴 교수, B and C Mission Center 현대표
 

   
▲ 김정훈 교수

모세의 기도(3): 후계자를 위한 기도(민 27:12-23)

1) 기도의 정황

모세와 아론이 시내 광야에서 계수(計數)했던 출애굽 제1세대 중에 광야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민 26:63-65).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 중 불신앙적 보고를 한 10명의 말을 듣고 원망을 쏟아 놓으며 다른 2명(신앙적 보고를 한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할 때, 하나님은 영광 중에 나타나셔서 회막에서 그 백성에게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된 자” 곧 그 두 사람 외에 당신을 원망한 자들 전부가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시체가 될 것이라고 예고하셨었다(14:26-35).

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한 제 1세대가 아니라 광야에서 태어난 제 2세대 중심이라는 것을 뜻한다. 20세 이상으로 계수되었던 팔팔한 제 1세대 군인들(민 1:2-3)과 이들을 지휘했던 12지파의 우두머리들(민 1:4-16), 고기 타령과 함께 애굽의 생선·오이·참외·부추·파·마늘이 생각난다고 하며 만나가 물린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던 어리석은 백성들(민 11:4-6), 모세와 함께 짐을 나눠 지었던 70명의 장로와 지도자(민 11:16-17),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세를 원망하며 조직적으로 애굽 복귀운동을 벌였던 반역 세력(민 14:4), 모세를 거스렸던 고라와 다단과 온과 이들을 추종했던 250명의 지휘관들(민 16:1-2) 전부 다 광야에서 엎드러져 죽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홍해 도하(渡河) 후 기쁨을 가누지 못하고 소고(小鼓)를 잡고 춤추며 하나님을 찬양했던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출 15:19-21)은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하는 것을 보고 아론과 함께 그를 비방하였다가 나병에 걸려 진영 밖에서 7일간의 구류처벌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민 12:1, 10, 15), 그녀 역시 출애굽 후 제 40년 1월에 가데스에서 죽었다(민 20:1). 모세의 출애굽 거사에 처음부터 함께했던 그의 형이며 대변인(출 4:12-15) 겸 이스라엘 백성의 제사장(출 28:3)인 아론은 모세가 40 주야를 시내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백성의 위협을 이기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고 우상숭배에 앞장섰던 일이 있는데, 그 역시 호르산에 올라 옷을 벗어 아들 엘르아살에게 제사장직을 물려주고 죽음을 맞이하였다(민 20:25-29). 우리는 한 세대가 가면 또 한 세대가 오는 역사의 준엄한 현실 앞에서 겸손히 두 손을 모아야 하며, 우리가 살다 간 자리에 어떤 자국이 남을 것인지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세렛 골짜기를 지나(민 21:12) 여러 지역을 거쳐 모압 들에 있는 골짜기에 이르러 광야가 내려다보이는 비스가산 꼭대기에 올랐을 때(민 21:20) 모세는 아모리왕 시혼에게 사신을 보내 그의 영토를 지나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시혼은 거절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부득이 시혼과 전투를 벌이고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 점령한 후, 아모리인의 성읍 헤스본과 그 모든 촌락에 거주하였다(민 21:24-25).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북쪽 바산 길로 밀고 올라갔다(민 21:33). 이에 바산 왕 옥이 공격해 왔다. 모세는 하나님이 시혼에게 행한 것처럼 옥을 이기게 해 줄 것이니 두려워 말라고 하시는 말씀에 용기를 얻고 그와 싸워 완승하고 그의 땅을 점령하였다(21:34-35).

이스라엘 백성은 또 길을 떠나 모압평지에 진을 쳤다. 모압 왕 발락이 선지자 발람을 현혹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도록 유인하였으나 도리어 그는 이스라엘을 축복하였다(민 22-24장). 이 일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싯딤(사해 북단 요단강 동편)으로 가서 머물면서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며 이들의 초청으로 이들이 섬기는 제사에 참여하여 이들의 신들에게 절하였다. 새로운 세대의 음행과 잡신숭배는 시내산 아래서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하던 제 1세대를 거의 빼닮은 모습이다. 이 일로 인해 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염병이 퍼져 24,000명이 죽었다(민 25:1-9). 하나님은 가나안 땅 공략을 목전에 둔 시점에 준엄한 심판으로 당신의 거룩하신 위엄을 나타내셨다.

하나님은 여리고 맞은편 요단강 가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조상의 가문을 따라 20세 이상으로 전쟁에 나갈 수 있는 모든 자들 계수하라고 명령하셨다(민 26:1-4). 계수된 자들은 광야에서 태어난 신세대를 청장년 남자들을 가리킨다. 전에 시내 광야에서 계수된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는 한 사람도 이 계수에 들지 못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광야에서 다 죽었기 때문이다(민 26:63-65).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제 2세대 이스라엘 백성 역시 원망과 불평을 밥 먹듯이 쏟아 놓고 너무도 쉽게 당신을 거역하는, 제 1세대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실망스러운 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다시 군사적 대오를 갖추기를 원하셨다. 어쩌면 이스라엘 백성이 아브라함 때부터 그와 그의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 인근에 도달해 있으니 하나님으로서는 이들이 어떤 상태에 있건 참으로 감격스러우셨을 것이다. 하나님이 판단하시기에 적어도 이 시점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한번 군인 정신으로 무장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또 그들은 곧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될 텐데 지파별로 분쟁 없이 질서를 따라 땅을 분배받으려면 군사적 대오를 갖출 필요가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는지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 기도의 계기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유랑생활 마지막 지점에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바림산으로 올라가서 당신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시고, 모세가 그 땅을 본 후에는 아론처럼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민 27:12; 신 32:48-50). 아바림산은 여리고 맞은 편 모압 땅에 있는 큰 산으로 이 산의 한 봉우리는 느보산이었다(신 32:49). 모세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을 그 맞은편에서 바라만 볼 수 있을 뿐 거기로 들어가지 못하고 자기 형처럼 느보산에서 죽을 것이라고 하시는 말씀에 뼈가 녹는 것 같았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 온 길인데... 그가 회고하는 대로 지난 40년 세월 동안 발생했던 수 많은 사건들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홍해 도하 사건, 홍해 건너편에서의 전 민족의 구원 찬양, 구름기둥과 불기둥, 만나와 메추라기, 시내산 언약과 두 돌판, 백성의 금송아지 숭배, 백성의 끝없는 원망과 반역, 가데스 바네에서 12 정탐군 중 10명의 보고를 듣고 저항하는 백성 앞에 무릎 꿇고 애원했던 일과 물이 없다고 아우성치는 그들 앞에 분노하며 반석을 쳐서 물이 솟아나게 했던 일,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과의 힘겨운 전투, 모압 여인들과의 음행 사건으로 인해 백성이 감염병에 걸려 24,000명이 사망한 “바알브올” 사건 등. 이 모든 과정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인간적으로 모세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청천벽력 같은 말씀이었다. 그 땅을 보여줄 수는 있으나 들어갈 수는 없다고 하시니 모세로서는 애간장이 녹는 일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모세를 느보산에서 멈추도록 결정하신 것은 그분의 지혜가 산출해 낸 판단이었지 결코 그에 대한 징벌적 행위는 아니었다. 그의 삶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내려질 것이었다. 그가 역사 속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 나라에서 탈락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가운데 장차 오실 메시야의 예표적 인물로서 활약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요 제사장이요(레 8:28-36; 시 99:6; 렘 15:1) 선지자(신 18:15, 18, 34:10; 행 7:37)로서 하나님이 아브라함 때부터 맹세로 주신 언약을 철저히 믿고 그분의 명령을 따라 백성 가운데서 충성을 다하였으므로(참조. 히 3:5) 그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나님은 아마도 모세가 가나안 땅에까지 들어가 지금까지 해 온 일을 계속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새로운 세대에게도 맞지 않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새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새로운 세대에게는 여호수아와 같은 새로운 지도자가 들어서야 한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다. 이전 세대는 이후 세대를 생각해야 하고, 종전 지도자는 차후 지도자를 위해 길을 내주어야 한다. 이전 세대, 종전 지도자가 기득권을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 한다면 소모적 갈등을 일으키고 분란과 사악한 쟁투를 조장할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일찍부터 여호수아를 점찍어 놓으시고 모세 곁에서 다양한 지도자 훈련을 받도록 배려하셨던 것이다. 아무리 수십 년 공들여 쌓아 올린 공동체라 할지라도 탐심을 품은 어리석고 교만한 후계자가 들어서면 그것을 일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

사실 모세는 비스가 산기슭에 당도했을 때(신 3:17) 지난 40년 세월의 고통을 다 날려버릴 수 있을 만큼 가슴이 벅찼을 것이다. 요단강만 건너면 가나안 땅 진입이 가능한 위치였기 때문이다. 그는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 너무도 기대되어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24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25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신 3:24-25). 이 간구는 격식을 갖춰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권능을 고백하고, 지난 40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수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신 일들을 회고하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풍요를 체험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청원이다. 모세는 아브라함 때부터 주기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곧 들어간다고 생각하며 감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의 간구에 너무도 냉담하게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신 3:26)고 잘라 말씀하시고, 여호수아가 백성을 거느리고 건너가 그 땅을 기업으로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신 3:28).

하나님은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산에서 생을 마감해야 하는 이유를 말씀하셨다: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때에 너희내 명령을 거역하고 그 물 가에서 내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민 27:14). 모세는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므리바 사건이 얼마나 아쉬운지 민수기에서 두 번, 신명기에서 두 번, 도합 네 번이나 기록하고 있다(민 20:12-13; 27:14; 신 3:26; 32:51).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물이 없어 아우성일 때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그들의 목전에서 “반석에게 명령하여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라”고 말씀하셨고(민 20:8), 모세는 하나님이 명령을 따라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쳐서 물이 솟아나게 하여 그들과 짐승에게 마시게 한 일이 있다(민 20:9-11).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이때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민 20:12)라고 말씀하셨다.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서 해갈은 하였지만 어떤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너희”는 모세와 아론을 가리키므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히 모세 자신에게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하였다]”(민 20:12)는 것이다. 즉, 모세에게 “믿음”이 없었고 그 결과 백성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모세가 믿음이 없었다는 것이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이것이 무슨 말인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지팡이를 잡고서는 백성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라고 큰 소리쳤다. 이것은 “반석에게 명령하여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라”(민 20:8)고 하신 말씀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모세는 하나님의 권위로써 바위를 명하여 물이 솟아나게 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지팡이 하나면 다 되는 것처럼, 자기에게 초자연적 능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행세했다. “그[므리바] 물 가에서”(민 27:14; 신 32:51)라는 말은 물이 솟아난 뒤에도 모세가 계속 이런 행동을 보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모세의 이런 행동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훼손하는 “범죄” 행위였다(신 32:51).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권능을 자기의 권능인 것처럼 왜곡시키는 행동은 일종의 사기(詐欺)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하나님에게는 “반석”이 단지 당신의 거룩하신 능력을 나타낼 매개물이 아니라 장차 당신이 보내실 메시야(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상징석(象徵石)이었기 때문에 모세가 큰 소리를 치며 반석을 칠 때 하나님의 눈에는 불신앙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즉석에서 예고하셨다(민 20:12).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모세가 요단강 동편 아바림 산 능선의 느보산(=비스가산으로 추정. 민 21:20; 신 3:27; 34:1) 정상에서 가나안 땅을 조망하는 행복한 시점에 하나님이 므리바 사건을 다시 언급하시며 “너는 여기까지야, 너는 가나안 땅에는 들어갈 수 없어”라고 말씀하실 때 심히 고통스러웠지만, 그는 어떤 항의나 원망도 하지 않고 깔끔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는 하나님께 더 이상 애원하거나 이의(異意)를 제기하거나 변명하거나 토를 달지 않고 군더더기 없이 하나님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그는 큰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이 죽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의 지도자요 제사장이요 선지자로서 백성을 위해 축복 기도를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신세대를 위해 각 지파별로 축복하였다(신 33장). 또한 그는 자기가 느보산에서 모든 사역을 종결해야 한다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갈 지도자를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는 지도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의 운명은 새로 들어설 지도자에게 달려 있었다. 목적지를 눈 앞에 두고 있는데 지도자의 부재로 정복전쟁에서 실패한다면 지난 40년간의 행군은 허사가 되고, 250만명이나 되는 백성은 유리 방황하게 될 것이 분명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할 때 모세는 후계자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정훈 교수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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