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이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기사승인 2020.12.28  14:58:12

공유
default_news_ad1

- 장기자 세상읽기 23/ 현진권 <술 권하는 사회> 외 2편

<교회와신앙> 장운철 기자】  현진건 씨(1900-1943)는 일제강점기(1910-1945) 때 활동했던 소설가다. 3.1운동이 있었던 1919년 다음 해인 1920년 단편소설 ‘희생화’로 문단에 이름을 알렸다. 3.1만세 운동 이후 탄압과 투옥은 더욱 심했다. 소위 ‘고통스러운 사회’, ‘출구 없는 사회’로 백성은 탄식과 눈물 그리고 분노의 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이때 문학은 어떠했을까? 또한 일반 백성들이 당해야만 했던 억울함, 분노, 절망 등의 내용얼 당시 문학은 어떻게 그렸을까? 그러한 표현은 가능하기나 했을까?

현진건 씨의 소설 3편을 통해 위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접근해보자. 그것을 가지고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점검해보자.
 

<술 권하는 사회>

   
 

1921년 발표된 작품이다. 내용은 이렇다.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가 있다. 남편은 똑똑하다. 그는 결혼한 이후 곧바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고 만다. 그때부터 아내는 독수공방이다. 삯바느질로 입에 풀칠을 하며 하루하루를 견딘다.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린다. 남편이 ‘부자 되는 방망이’를 만들어 올 것이라 기대한다. 그것이 어려운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이다. 7-8년 만에 남편이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다. 아내는 뛸 듯이 기뻤다. 이제 모든 고생은 끝인 셈이다.

남편은 독서와 글쓰기로 날들을 보냈다. 아내는 그것이 ‘부자 되는 방망이’ 만드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남편은 한숨을 깊이 내뱉기 시작했다. 무엇이 잘 안 되는 모양이다. 그때부터 밤늦게 술에 취해 돌아오는 일이 잦았다. 갈수록 심했다. 자정을 넘기기도 다반사다.

참다못한 아내가 한 번 물어봐야겠다고 결심한다.

아내: 누가 술을 권하노?
남편: 누가? 이 사회가...

아내는 ‘사회’라는 말이 어느 술집 이름인 줄로 알았다. 계속해서 남편의 한탄이 이어졌다.

남편: 민족과 사회를 위해 모임을 가지려고 하면, 명예와 지위 권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고 있다. 조선 사람으로 성립된 사회가 한탄스럽다.

그리고 남편의 한 마디로 소설은 마쳐진다.

“이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오늘 우리 사회도 술 권하는 일이 많다. 취업을 했으면 좋아서 술을 권하고, 안 되었으면 짜증난다고 술 권한다. 사업이 잘 되면 즐겁다고 술을 권하고, 뜻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답답하다고 술을 또한 권한다. 날씨가 좋으면 좋다고 술을 권하고, 날이 꾸물거리면 그렇다고 역시 술을 권한다. 친구를 만나면 만났기 때문이라며 술잔을 부딪치고 친구가 없으면 쓸쓸하다며 또 술잔을 채운다. 약 100년 전, 현진건 씨 당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국가 사회의 답답함으로 주로 술을 권했고 지금은 자신의 삶이 갑갑해서 술을 권한다는 정도일 뿐. 그때나 지금이나 이런 일 저런 일로 술 권하는 일은 차고 넘친다.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만약, 내가 예수님을 몰랐다면 술 권하는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술 먹지 않고 버틸 수가 있었을까?’

술을 극복할 수 있는 철학은 있었을까?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 그 마음을 환하게 표현할 삶의 기준이 있었을까? 반대로 슬프고 괴로울 때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인생의 중심을 가졌을까?

비록 술을 권하고 또 술을 먹지 않으면 안 될 것과 같은 상황 속에서도 술에 취해 흥얼대지 않고 올곧게 살아간 사람들도 있다. 적지 않다. 물론 100년 전에도 말이다. 우리는 훌륭한 독립운동가들 알고 있다.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기 위해 목숨까지도 내놓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선배들이다. 청산리 전투의 김좌진 장군, 3.1 운동의 대표자 유관순 열사(예전 우리는 ‘누나’라고 부르기도 했다), 독립운동가 33인, 그리고 이름도 빛도 없이 활동했던 많은 이들이 있다. 이들은 술 권하는 사회 속에 갇혀 있지만 않았다. 싸워 이길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현실이지만, 일어나 달려갔다. 이들 중 상당수는 기독교인이다. 기독교 정신이 술 권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를 일으키게 한다는 말이다.

오늘 우리네 사회 속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간다는 게 결코 쉽지 않다. 많은 이들이 ‘개독교’라며 비하하곤 한다. 얼마 전 뉴스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도됐다. 수억 원의 세금 탈세자 집에 세금징수팀이 급습했다. 그러자 지방에 내려가 집에 없다던 집주인이 안방에서 나왔다. 강제 징수를 위해 집을 뒤졌다. 그러자 현금 뭉치와 패물들이 나왔다. 중요한 것은 그 뉴스에서 그들이 매월 100만원씩 십일조를 낸 봉투를 발견했다며 보도했다는 점이다. 재산이 없다며 한 푼도 세금을 내지 않은 이들이 교회에는 십일조를 100만원 씩 냈다는 어이없다는 식으로 알린 것이다. 정말 창피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곧게, 정직하게, 거룩하게 살아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술이라도 취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보이는 세상 속에서도 멋지게 살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말이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을 받으라”(엡5:18)

위 성경구절은 종종 술을 먹고자 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인용되기도 한다. ‘술 취하지 말라고 했지, 먹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다’는 논리로 말이다. 그렇게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했단 말인가. 그럼 뒤에 나온 ‘성령충만으로 살라’는 말씀에는 왜 반응을 보이지 않는가?

위 성경구절은 술에 대한 관심을 두고자 한 게 아니다. 술의 제조 방법, 먹는 방법, 먹는 양 등에 무관심하다. 엡 5:15절부터 읽어보면 ‘미련하게 사는 것’, ‘어리석게 사는 것’, ‘세월을 허송하며 사는 것’과 ‘술 취함’을 연결시키고 있다. 그렇게 살지 말고 오직 ‘성령충만’으로 살라는 말이다. 그 안에 참된 기쁨과 평안이 있기 때문이다. 흥얼거림을 극복하고 일어설 수 있는 힘과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술 권하는 사회, 술을 먹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과 같은 사회 한복판에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살고 있다. 이때 이렇게 외쳐보자.

성령충만으로 살겠습니다.”

 

   
 

 <B사감과 러브레터>

1925년 작품이다. 사랑이야기다. 내용을 살펴보자.
여학교 기숙사가 배경이다. 이곳에 B사감이 있다. 40세가 가까운, 아직 미혼인 그다. 그는 ‘연애=마귀짓’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따라서 기숙사에 배달되어 온 편지를 철저히 검열한다. 모두 뜯어서 직접 읽어본다. 연애 편지가 발견되면 해당 여학생을 부른다. 누구냐?, 언제 만났느냐? 만나서 무엇을 했느냐? 등의 사생활에 깊이 관여한다. 해당 여학생을 죄인 취급하며, 연애를 중단하지 않으면 퇴학시키겠다는 협박도 한다. B사감은 그 여학생을 위해 기도를 하기도 한다. 사탄으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말이다. 기숙사에 가족이 찾아와도 남자면 들어올 수가 없다. 철저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일어났다. 새벽 1시경만 되면 누군가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우연히 잠에서 깬 여학생1은 처음에는 별소리 아닌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소리는 매일 반복되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그 소리는 남자와 여자의 대화처럼 들렸다. 자신들의 기숙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학생1은 친구 2와 3을 깨워 그 소리를 추적하기로 했다. 조심조심 그 소리를 따라 복도 끝까지 기어갔다. 그런데 그 소리의 발생지는 바로 B사감의 방이었다. 무슨 일일까? 살짝 문을 열어보았다. B사감은 혼자 탁자에 앉아 있었다. 주변에 여러 장의 편지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기숙사 여학생들에게 온 편지들이었다. B사감은 혼자서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를 번갈아 내며 감정을 한껏 올려 편지를 혼자 읽고 있었다.

“오, 태훈씨!”
“오, 경숙씨. 그대에게 바친 나의 타는 듯한 마음을 이제야 알겠습니까?”
“그만 놓아요. 키스가 너무 길지 않나요. 행여 남들이 보면...”

여학생 1,2,3은 깜짝 놀랬다. 믿기지 않았다. 숨죽이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에그머니, 저게 왠일이야”
“미쳤나 봐, 밤중에 혼자 일어나서 왜 저러고 있는 거야!”
“에고.. 불쌍해”
흑흑...

여학생3의 눈물 소리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일제 강점기 때 이런 위트와 사랑이야기를 썼다는 것이 먼저 놀라웠다. 사랑이라는 주제는 어떤 상황, 형편에서도 영원히 인간 삶의 중심인 듯하다.

성경은 사랑의 책이다.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랑을 남자와 여자의 진한 사랑으로 그려낸 성경이 있다. 어떤 것일까? 맞다. 아가서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교회)의 사랑을 너무도 진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재미있는 말이 있다.
잘난 남자와 잘난 여자가 연애를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흔히 ‘잘 어울린다’고 한다. 그럼, 못난 남자와 잘난 여자가 연애하면 어떤가? ‘남자가 능력 있나 봐’라고 한다. 반대로 잘난 남자와 못난 여자가 연애하면 ‘여자가 돈이 많나 봐’라고 한다. 마지막 못난 남자와 못난 여자가 연애하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을 보이는가? ‘둘이 정말 사랑하나 봐’라고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는 아내(남편)를 정말 사랑하는가? 그러면...

인간은 죄인이다. 정말 못난 여자(남자)이다. 그 인간을 사랑한다며 하나님은 독생자를 십자가에 대신 죽게 하셨다. 인간 편에서 보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못난 행동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정말로 사랑하신 것이다.

우리는 예배를 드린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거듭 확인한다. 그리고 감사의 고백을 하며 찬양을 한다. 동일한 내용을 되새기고 동일한 고백을 하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난다. 사랑의 하나님 말이다. 이것이 신앙이다.

술 권하는 사회, 술 먹을 수밖에 없어 보이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고백을 할 수 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운수 좋은 날>(1924)

   
 

김첨지는 인력거를 끌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고 있다.
그날따라 아내는 일을 하루 쉬라고 권했다. 아내의 몸이 많이 아프기 때문이다. 일찍 들어오겠다며 김첨지는 나갔다. 그날따라 운이 좋아 손님이 많았다. 비싼 손님도 여럿 탔다. 집 근처를 지나가기도 했다. 그때 하루 쉬라고 했던 아내의 목소리가 기억났다. 힐끗 집을 쳐다보았다. 그날따라 3살배기 아들 개똥이 울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날따라 손님 내려주면 그 자리에서 곧바로 손님을 또 태우는 일도 연속이었다. 일찍 들어가려고 했지만 결국 늦은 밤 시간이 되었다. 그날따라 친한 친구를 만나 술을 먹게 되었다. 김첨지가 오랜만에 한 턱을 냈다. 그래도 지갑이 두둑했다. 아내를 위해 설렁탕을 포장했다. 오랜만에 포식을 시켜줄 요량이다.

아내는 이불을 덮고 누워있었다. 김첨지는 자신이 귀가했다는 뜻으로 발로 아내를 툭~ 찼다. 반응이 없다. 한 번 더 찼다. 마찬가지다.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이년아, 왜 대답이 없니..”
아내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설렁탕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한, 왜 먹지를 못하니...”
아빠의 울음섞인 소리에 엄마 품에서 울다 지쳐 쓰러진 개똥이가 다시 깨어 울었다.
‘괴상하게 운수가 좋더니먼...’

김첨지의 독백으로 소설은 끝난다.

오늘 우리도 ‘운수 좋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한다. ‘금수저’라는 말도 그 중 하나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권력을 업고 사는 사람을 말한다. 하는 일마다 일이 잘 된다는 사람도 주변에서 간혹 만난다. 또한 ‘운수 좋은 날’도 있다. 그날따라 일이 잘 풀린다고 하는 날이다.

질문 하나 던져보겠다.
‘운수 좋은 날, 재수 좋은 날, 우연히 잘 되는 날’이라는 개념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반대로 ‘운수 없는 날, 재수에 옴 붙은 날, 뭘 해도 안 되는 날’ 등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런 날이 있음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물론 무엇인가 축하 받는 자리에서 ‘제가 잘 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라며 ‘운이 좋았다’는 말을 흔히 사용하기도 한다. 이는 겸손의 표현이다.

마태복음 10:28-31절을 한 번 살펴보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10:28-31)

위 본문은 하나님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아래와 같다.

- 참새 2마리 팔리는 것도 주관하시는 하나님
- 머리털까지도 세시는 하나님
- 몸과 영혼 모두를 지옥 또는 천국에 보낼 수 있는 주관자 하나님

무슨 뜻인가. 참새 2마리가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아주 작은 일이다. 무가치할만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머리털의 숫자를 누가 셀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매우 세밀한 일도 아신다는 말이다. 또한 몸과 영혼 모두를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시다. 다시 말해 세상의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죽음에 이르는 매우 큰 일까지 우리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뜻이다.

따라서 세상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어떠한 힘의 작용없이 단순히 운수가 좋고, 재수가 좋아서 생기는 일은 없다. 반대로 마찬가지다. 운수가 없고, 재수에 옴붙어서 발생하는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속한 일들이다.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이 그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붙잡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교만에 빠지지 않게 한다. 우연처럼 보이는 기쁨의 일 역시 하나님의 세밀한 손길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절망에서 허우적거릴 필요도 없게 한다. 인생 실패했다고 술독에 빠진 것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손길이 임하고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운수 좋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참으로 운수 좋은 날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는 날이다.

술 권하는 사회, 술 없이는 버틸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회 속을 뚫고 전진하는 정말로 운수 좋은 사람은 이렇게 고백할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장운철 기자 kofkings@hanmail.net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