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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무상을 깨닫는 기도의 서막

기사승인 2021.01.12  15:4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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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훈 교수의 기도 본문 해설(12)

김정훈 교수 / 영국 글라스고(Glasgow) 대학교 신약학 박사, 백석대학교 신약학 은퇴 교수, B and C Mission Center 현대표
 

   
▲ 김정훈 교수

모세의 기도(4): 하나님 고백, 인생 고백, 믿음의 간구(시 90:1-17)

시편 90편에 기록된 모세의 기도는 모세오경(Pentateuch) 속의 기도들처럼 구체적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과 직결된 것이라기보다 그가 광야 40년을 회고하며 깊은 묵상 가운데 드리는 개인적 기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시편이 모세의 글이냐 아니냐 하는 논쟁이 있으나 그의 저작권을 부정해야 할 만한 결정적 단서는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이 시편의 모세 저작권에 대한 구약 학자들의 지지가 여전히 광범위하고, 무엇보다도 모세의 출애굽 사역을 연상하게 하는 내용을 많이 포함하고 있으므로 별 유익이 없는 저작권 논쟁은 생략하고 기도 내용 자체에 집중해 보고자 한다.

본문에 나타난 모세의 기도는 외견상 종교적 독백 같은 느낌이 들어 얼핏 인간의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종교적 묵상이나 철학적 사색 같기도 하고, 내용이 다소 평이해 보여 처음에는 별 호소력 없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얼마나 많은 실제 사건들을 배경으로 광야에서 경험했던 고통과 환희, 슬픔과 기쁨, 좌절과 회복, 분노와 감사, 회한과 기대를 하나로 묶어 우려내고 있는지, 얼마나 인간의 절실한 필요들을 압축하여 탄원하고 있는지 감지할 수 있다.
 

1) 하나님 고백: 인간의 거처이시며 초시간적 영존자(1-2절)

이 시편의 처음 두 절은 기도의 서론부라고 할 수 있다. 모세는 여기서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 인간의 종교는 그가 찾는 신(神)이 누구냐에 따라 갈릴 수밖에 없다. 참 신() 하나님을 찾느냐, 아니면 거짓 신들을 찾느냐! 타락한 인간은 사탄이 거느리고 있는 사악한 영들과 잡귀들을 섬기기도 하고, 인간의 신화나 부패한 심성이 조작해낸 신들을 섬기기도 한다. 사탄(=마귀, 디아볼로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최우두머리 세력으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킨 영물(靈物)이며 지금도 여전히 세상의 불순종하는 자들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격적 실체다(엡 2;2). 사탄의 직속 부하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악한 영들은 바울서신에서 보통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엡 3:10),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엡 6:12)로 지칭되는데, 이것들은 사탄의 왕국의 핵심 세력들 곧 악한 천사적 존재들을 가리킨다(롬 8:38; 고전 15:24; 엡 1:21; 골 1:16; 2:10, 15도 볼 것). 이것들은 자기 위치를 지키지 않고 자기 처소를 떠난 악한 영의 세력들로 보인다(유다서 6). 잡귀들은 일반적으로 최하위급 악령들로서 주로 우상을 이용하여 인간의 건전한 종교성을 훼손하고(고전 10:20-21) 그의 정상적인 이성 활동을 교란시킨다(딤전 4:1). 복음서에 보면 잡귀들은 사람들을 병마에 시달리게도 하고, 괴이한 행동을 하게도 하고, 복음전파 활동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바울은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권면한다(엡 6:11, 13).

   
 

어떤 이는 신 의식(意識)을 갖는다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서인지 자신이 무종교라고 공표한다. 하지만 무종교란 신의 비존재를 증명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그저 신이 없다고 자의적으로 단정하고 그렇게 믿고 사는 것일 뿐이다. 물론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고 그 토대 위에서 그분을 섬기며 사는 것은 아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자연의 빛(소위 자연은총) 아래서(참조. 롬 1:19-20) 희미하나마 자신이 본래 하나님의 소생이라는 인식(認識)을 갖게 되고(참조. 행 17:28-29),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분을 영접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자연현상과 당신의 특별계시(성경), 당신이 세우신 종들의 말씀 사역, 주변인들의 권고, 다양한 환경, 세상의 사건들을 통해 부르심의 활동을 계속하신다.

모세는 본문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 후에 두 가지 고백 곧 그분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그분의 존재성에 대해 고백한다. 그는 하나님을 ”(아도나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삼위일체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아도나이”는 복수형으로 역시 복수형인 “여호와”(=야훼)를 대체한 호칭이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헛되이 부를 위험을 피하기 위해 문서에는 “여호와”라 쓰고 읽을 때는 “아도나이”라고 읽었다. 이것은 접미어의 의미를 살려 “나의 삼위 하나님”이라고 이해하면 적절할 것 같다. 이 호칭에는 “언약에 신실하신 엄위하신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담겨 있다.

하나님을 향한 모세의 두 가지 고백 중 첫 번째 것은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1)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진술로, 하나님은 인간의 “거처”(마온)가 되신다는 고백이다. 이것은 은유적 표현으로 하나님은 인간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 집과 같은 분이라는 뜻이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은 인간이 언제든지 들어가 여장을 풀고 몸과 영혼을 쉴 수 있는 안식처와 같은 분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출 6:7)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는 사람들이 율법의 짐, 죄의 짐, 제국의 짐에 눌려 고통하는 것을 보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라고 말씀하신다. 시편 91편을 지은 시인은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시 91:1-2)라고 고백한다. 하나님을 거처로 삼고 사는 자에게 영원한 위로와 용서, 격려, 치유가 있다.

두 번째로 모세는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2)라고 고백한다. 하나님은 영원 안에 존재하시는 분, 땅과 세계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자, 영원 무궁하신 분이라는 고백이다. 바울은 그의 목회서신에서 하나님은 소멸하지 않는 분, 눈으로 볼 수 없는 분, 유일하신 주권자, 영원하신 왕, 만왕의 왕, 만주의 주시라고 진술한다(딤전 1:17 & 6:15-16). 우리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존성과 초시간적 존재성에 대해 고백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살 수 있을 것이다.
 

2) 인생무상(人生無常)을 고백하며 그 원인에 대해 통찰함(3-10절)

(1) 인생무상(人生無常)에 대한 고백(3-6절)
모세는 이제 관심을 인간에게로 향한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3절). 이것은 인생의 무상함을 고백하는 내용이다. 모세는 하나님이 창세 때 타락한 인간에게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3:19)라고 하신 말씀에서부터 인간의 실존에 대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아무리 많은 부(富)를 태산처럼 모았어도, 제아무리 깊은 지식을 하늘까지 쌓았어도, 제아무리 단단한 요새를 셀 수 없이 구축했어도, 제아무리 화려한 인생을 신나게 누리며 살았어도, 제아무리 세상 권력을 휘두르며 살았어도, 제아무리 수많은 사람을 무릎 꿇리며 살았어도, 인간은 얼굴에 땀을 흘리다가 한 줌 흙으로 돌아간다. 이 엄연한 실존 앞에 인간은 태투(tattoo)처럼 새겨진 자신의 타락한 본성과 죄로 인한 필사성(必死性)을 인정하고 겸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겸손 없이는 하나님께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전도서 저자가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전 7:4)라고 교훈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출생하여 세상에 온 날이 있듯이, 죽음과 함께 티끌로 돌아갈 날이 있음을 알고 믿음으로 초연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 바울 사도는 세상의 형적은 다 지나가는 것이니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매매하는 자들은 가진 것이 없는 자 같이,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초연하게 살라고 당부한다(고전 7:30-31). 세상의 것을 자랑하는 자들, 남을 멸시하고 학대하는 자들... 자신이 곧 흙으로 돌아갈 자임을 깨닫고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

모세는 영원하신 하나님(2) 앞에 인간이 얼마나 단명한 존재인가를 진술한다: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4절). 인간에게 천 년은 기나긴 세월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두운 밤의 한 찰나 같은 것이다. 인간의 삶이 그만큼 짧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역설적으로 인간이 그토록 단명한 삶을 사는 동안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3:11)을 품고 사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인지, 영원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하나님 나라의 언약 안에 사는 것이 얼마나 풍성한 삶인지 암시한다.

하나님은 타락한 아담의 후예들을 “죽음”으로 홍수처럼 쓸어 가신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라고 아담에게 약속하신 대로 인생들을 죽음으로 모두 쓸어 가신다. 인간의 삶은 잠깐 동안의 수면(睡眠) 같이 짧고, 아침에 돋아나 잠시 꽃을 피우다가 시드는 식물과 같다(5-6절). 팔레스타인에는 이런 화초 식물이 있다고 한다(박윤선, 『성경주석 시편』 서울: 영음사, 1994, p.767). 특히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중대한 범죄 행위를 나타낼 때 준엄한 심판을 내리시는 것을 목격하였다. 모세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애굽을 떠나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는 바로에게 마지막에는 죽음의 재앙을 내리시는 것을 보았고, 홍해 한복판에서 추격해 오는 바로의 군대가 수장(水葬)되는 것을 보았고, 가데스 바네아에서 파견했던 12명의 정탐꾼 중에 가나안 땅을 악평하며 불신앙적 보고로 백성을 낙담시켰던 10명이 재앙으로 인해 죽는 것을 보았고, 자신(모세)의 왕적 권위를 무례하게 폄훼하는 고라 일당이 땅속에 매몰되어 즉사하는 것을 보았고, 고라 일당을 추종하던 250명의 지휘관들이 여호와의 불에 의해 죽는 것을 보았고, 이 죽음의 원인을 자기(모세)에게 돌리며 대적하는 자들이 염병에 걸려 14,700명이 죽는 것을 보았고, 출애굽 제2 세대가 브올 산에서 음란행위를 하며 바알을 숭배하다가 24,000명이 염병으로 죽는 것을 목격하였고, 가데스 바네아에서 10명의 불신앙적 보고를 듣고 부화뇌동하던 출애굽 제1 세대가 결국에는 하나님이 예고하신 대로 광야에서 다 죽어가는 것을 목격하였다.

(2) 인생무상의 원인에 대한 통찰(7-10절)
모세는 인생무상의 원인에 대한 통찰을 시도한다. 그는 인간의 육체의 생명이 그렇게 무상하게 사라져 가는 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 때문임을 발견한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7절). 하나님은 인간의 죄에 대해 분노하시는 분이시다. 이는 하나님이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나 그 사랑은 공의를 희생시키지 않는다. “사람이 회개하지 않으면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시 7:12-13).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계획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죄의 대가를 치르신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구약시대 말기에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제사장들에게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말 2:3)라고 경고를 보내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더럽히는 제사장들의 얼굴에 제물의 똥을 발라주고 싶어 하실 만큼 그들의 형식과 위선과 오만을 역겨워하신다.

모세가 통찰한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시되 죄를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는 인간의 모든 죄를 정면으로 마주하시는 분이시다. 그는 우리의 모든 죄악들을 당신 앞에 소환해 놓고 계신 분이시며, 우리가 은밀히 지은 죄들도 훤히 다 바라보고 계신 분이시다(8절). 우리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로 우리는 소멸되어 버린다. “소멸”은 멸절되어 존재가 사라져 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생명의 종결 곧 죽음을 뜻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하나님이 죄에 대해 분노를 분출시키실 때 인간은 바로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는 선언의 적용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모세는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9절)라고 고백하면서,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10절)라고 애절한 마음을 쏟아 놓는다. 모세는 인간이 모든 날들을 하나님의 분노를 촉발시키며 평생을 순식간에 허비해 버리는 어리석음에 한탄한다. 그는 인간이 보통 70년을 살고, 강건하면 80년을 살지만, 내세울 만한 자랑이란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풍자적으로 지적한다(10절). 그는 인간이 그렇게 짧은 인생을 날아가듯 살면서 거두는 것은 먹고 살기 위해 힘겹도록 일을 하며(참조. 3:17) 흘리는 수고의 땀과 온갖 모진 일들을 겪어가며 흘리는 슬픈 눈물뿐이라는 냉정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김정훈 교수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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