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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역경이 빚은 위인, 정용각 교수와의 대담

기사승인 2021.01.18  13:2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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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 지도자들에게 한국교회의 길을 묻는다(17)

사회: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대담: 정용각 교수/ 이학박사, 부산외국어대학교 스포츠산업학부 교수, 부총장, 총장 대행, 한국스포츠심리학회 회장 등 역임

   
▲ 정용각 교수

최은수 교수: 교수님과 대담을 나누게 되어 기쁘고 감사합니다. 이미 대담을 나누셨던 이복수 교수님, 신재철 교수님, 황우여 장로님 등 다수의 제위께서 교수님의 신앙과 인품이 훌륭하시다는 덕담들을 직간접적으로 듣고 있습니다. 이렇게 직접 대담을 나누게 되어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면서, 교수님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모든 영광을 돌려드리기를 소원합니다. 교수님의 가족 배경과 본인의 신앙 배경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정용각 교수: 저는 원래 불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이 충북 음성인데 이곳은 대체로 불교 문화가 지배적이어서 대부분 불교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특히 우리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신자이셨거든요. 그러다 보니 절에 다니거나 종교를 불교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불교가 나의 삶에 맞는 것 같았고 더 편하고 익숙하였던 것 같습니다. 또한 장인이 백제 고고학자이면서 백제 역사의 중심이 불교정신하고 관계있다보니 처가에를 가도 불교문화가 익숙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교회를 다닌 것은 둘째 딸이었습니다. 우리 집 옆에 수영로교회가 있는데 초등학교부터 정말 열심히 다녔습니다. 고등학교 때도 금요철야 예배나 새벽예배를 다니는 등 믿음이 좋은 아이였죠. 그런 누나를 따라 늦둥이 아들도 초등학교 1학년부터 다니기 시작해서 지금 고3인데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 딸은 늘 엄마와 아빠가 교회를 나가게 기도한다면서 생일이나 어버이날 카드에 적어 놓고는 했었지요. 큰 딸도 고등학교부터 교회를 열심히는 아니어도 자주 다니곤 했습니다. 아내도 대학생 때는 청주의 교회에서 찬양대를 하는 등 열심히 다녔는데 저를 만나면서 안 다니게 되었었지요. 어쩌면 저를 제외하고는 가족 모두가 교회와 관계가 있는데 저만 교회하고 담을 쌓고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 교수 조찬기도모임

부산외국어대학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잠언 17절 말씀인 기독교 정신을 건학이념으로 설립된 대학입니다. 실제 교수 임용 최종면접 때 “임용을 시켜주면 교회를 다니겠다고” 약속을 하였는데 막상 들어오고 나니까 그 약속은 잊어버리고 25년 이상을 약속을 안 지키며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1년 우리 대학교에 처음 부총장제도를 만들었는데 제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초대 부총장으로 임명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부총장직을 수행하고 있는데 2012년 봄 당시 백홍기 총무처장(부전교회 장로님)님이 “그래도 부총장님은 건학이념 구현을 위해서도 대학교회는 한번 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013년 4월말쯤으로 기억하는데 대학교회에서 생전 처음으로 주일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해서 예배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왔는데 돌아올 때의 마음은 왠지 뿌듯하였습니다. 그러다 1주 2주 나가기 시작하다 보니 진정 하나님을 영접한 것은 아니지만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익숙해졌고 조금씩 기독교의 문화를 알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2013년 2학기부터는 아내도 같이 나가게 되었지요. 그러나 당시만 해도 완전 믿음이 생겼다기보다는 습관적으로 다녔던 것 같습니다.

   
▲ 학생과 함께한 기도모임 후

제가 결정적으로 하나님을 영접하게 된 것은 2014년 2월이었습니다. 우리 대학은 금정구 남산동에 새로운 캠퍼스를 조성하고 2014년 3월 개교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2월 캠퍼스 이전 이사를 하는 중에 2월 17일부터 경주마우나오션리조트에서 총학생회 주최 신입생 예비대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2월 18일이 캠퍼스 이전 교육부 실사가 있어서 실사 준비 때문에 학교에 남아서 모든 것을 점검하고 나니 밤 9시가 되었습니다. 신입생 예비대학 간 학생들이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216분경 학생팀장에게 전화를 하였더니 부총장님! 큰일 났습니다!”며 체육관이 무너져 학생 수백 명이 깔려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그 순간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는 것을 실감하였습니다. 30년만의 꿈인 캠퍼스 이전과 함께 학교가 망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덜덜 떨렸습니다. 급하게 총장님께 보고한 후 학교에 비상대책실을 만들라 하고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때 제가 붙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가면서 하나님! 제발 사망자만 나오지 않게 도와주세요라며 간절히 기도를 하며 가는데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2명의 사망자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학생이 2백여 명이 깔려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계속 하나님만 붙들고 사망자를 최소화해 달라고 기도를 하며 달려갔습니다. 현장에 도착하니 5명의 사망자가 나왔고 사고현장은 눈으로 길과 주변이 아수라장이었습니다.

   
▲ 교수 기도모임

최종적으로 우리 학생이 9명과 이벤트회사 직원 1명 등 10명이 사망하고 수 많은 학생들이 울산과 경주의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18일 새벽 2시경 현장에서 총장님과 보직교수가 대책회의를 하였는데 저는 기도를 하면서 왠지 침착해졌습니다. 그리고 총장님께 우선 유가족을 위로하여야 하니 “제가 사망자가 많은 영안실에 가서 책임을 지고 수습을 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린 뒤 21세기 좋은 병원으로 가서 유가족을 위로하고 사죄를 드렸습니다. 이틀 밤을 잠 한숨 못 자고 식사도 못 하면서 유가족은 물론 정치인들로부터 원망과 비난을 받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진솔하게 유가족과 협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적같이 사고 3일째인 219(수요일) 저녁 유가족과 원만하게 합의를 하고 221() 학교 체육관에서 합동 영결식을 거행하였지요.

영결식장에는 3000여 명의 유가족, 교직원, 학생, 각계 인사들이 가득하였는데 그날 기적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영결식장은 가득한 인파와 유가족의 울음소리 그리고 해군군악대의 밴드소리 등으로 어수선한데 한 유가족이 저를 찾아오셔서 저의 손을 잡더니 드릴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난 또 무슨 부탁이 있는가 하는 잠시 걱정의 생각을 했는데 제가 코오롱으로부터 받은 보상금 중에 2억 원을 장학금으로 내고 싶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당시는 생각지도 못한 갑작스러운 말씀이어서 그냥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만 드렸습니다. 그리고 또 한 유가족이 오시더니 천사장학금을 기부하겠다는 거예요. 영결식이 끝나고 다시 생각해 보니 마치 꿈을 꾼 것 같았습니다. 정말 장학금을 기부하겠다고 한 말씀이 맞는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4일 만에 사망자 영결식을 마무리하고 돌이켜 보니 이 모든 일들이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제가 사고수습대책실무본부장을 맡아 사고수습을 하였지만 빠른 시간 내에 수습을 하고 유가족으로부터 장학금까지 기부받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마우나 참사 추모비

이런 일이 있고 이틀 뒤 주일에 대학교회 예배를 가니 예배의 시간들이 새로워지고 목사님의 말씀이 은혜로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성경이 보이고 찬송가가 은혜롭게 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도 모르게 찬양을 하면서 감사가 넘쳐 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참사를 겪으면서 엄청난 고난을 겪었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2억 원의 장학금을 기부한 유가족이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유가족이 하나님 나라로 간 딸(아랍어과 신입생 고고혜륜)의 유품을 정리하다 일기장을 보니 우리 대학 아랍어과에 진학을 한 것은 대학 졸업 후 아랍지역에서 선교를 하기 위한 꿈을 가졌다는 생각에 부모님은 보상금 6억 원이 자신의 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2억 원은 우리 대학에 소망장학금으로 기부하고 4억 원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바누아투라는 작은 섬나라에 국립혜륜유치원을 지어서 기부하였습니다. 또 천사장학금을 기부한 고박주현학생도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이러한 기적 같은 일들을 겪으면서 우리가 유가족을 위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학이 위로를 받고 힘을 얻게 되었지요. 어쩌면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제가 더 하나님과 가깝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영접한 후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는 말씀처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주님을 믿기 전에 학생을 사랑하는 마음과 주님을 믿고 난 후의 학생을 보는 사랑의 마음이나 학교에서 일을 하는 마음도 달라졌으며 어떤 힘들거나 어려운 고난이 와도 항상 감사의 기도를 하면서 주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뒤 늦은 주님의 만남으로 불교와 유교적인 우리 집안이 이젠 기독교문화로 변하게 되었답니다. 불교에 믿음이 강하신 어머님께서 이젠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아직 믿음이 완전치 않으시지만) 하나님이 가장 높으신 분이시고 부처는 모두 그 밑에 있다고 하시며 설과 추석 그리고 제사까지 예배로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수백 년을 지켜왔던 유교적 관습이 이렇게 변화된 것은 저뿐만 아니라 우리 집안에 엄청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주님이 임재하지 않으시면 불가능했다고 봅니다.

   
▲ 부산외국어대학교 전경

최은수 교수: 교수님과 함께하신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놀라우신 분입니다. 참으로 영감이 넘치는 간증입니다. 교수님이 지도자로서 인생을 사시면서 가장 중점을 두시고 하신 작업은 무엇인지요?

정용각 교수: 저는 평생을 교육자이자 학자로 살아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1977년 3월 충남 당진 면천중학교에 체육교사로 교육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군대도 안 가고 나이가 만22세였을 겁니다. 대학에서 교사가 되기 위한 사범대학을 나왔지만 실제 교사로서의 철학은 깊게 고민하지 못했었지요. 그런데 막상 학교에 가서 학생을 가르치다 보니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나의 말에 웃고 울고 하는 학생들을 눈동자를 보면 마치 꽃을 피기 전의 꽃망울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학생들을 위해 어떻게 교육하여야 이 아이들이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고민의 내용으로 당시 지도교수님께 편지를 보낸 적이 있는데 교수님께서 너의 이런 고민을 늘 생각하며 학생을 가르친다면 훌륭한 선생님이 될 수 있다는 격려의 답장을 받고 지금까지 학생들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좋은 열매를 맺도록 하는 교육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나 못하는 학생이나 차별하지 않고 누구나 아름다운 꽃! 아름다운 열매를 맺도록 하는데 더 가치를 두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나님을 만나고 마태복음 7:17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가 맺고...”의 말씀을 보면서 나의 교육철학을 말씀하는 것 같아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교육관은 40여 년의 교육현장에서 늘 함께해 왔지요.

그런데 2014년 하나님을 영접한 후부터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좋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는 일반적 사랑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습니다. 지난 40여 년을 돌이켜 보았을 때 나의 교육으로 인해 모두 아름다운 꽃을 피운 것만이 아니라 때로는 꽃망울을 터뜨리지도 못한 학생도 있는 것 같고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한 학생들이 있었음을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좀 더 빨리 주님을 만났더라면 학생들을 위해 더 아름다운 사랑을 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예수님이 나를 불러주셔서 주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믿음과 소망을 준 것에도 감사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 2019년 총학생회장과 장연우학생 위로방문(출처 채널A)

마우나 참사의 사고수습실무대책본부장을 행정적(보직이 끝났기 때문에)으로 이젠 책임지지 않아도 됨에도 불구하고 2014년 참사 이후 지금까지 유가족은 물론 중상자(7년째 병상에 누워 있는 장연우 학생 등)들을 지원하고 사랑으로 돌보고 있는 것은 주님이 주신 소명이라 믿고 7년째 기쁘게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제가 정년퇴직을 하여도 끝까지 지켜야 할 소명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만나 변하게 된 저의 교육관은 우리 대학을 복음화 대학으로 만드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마지막 소명으로 받아드리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대학교회에서 선교회 회장직과 교목실장 직무대행을 수행하면서 학원복음화를 위해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좋은 열매를 맺게 하려면 학생을 교육하는 교직원의 믿음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2015년부터 교수 기도모임을 만들고 주 1회 모여서 성경말씀 나눔을 시작하여 지금은 학교와 학생을 사랑하는 학원복음화 기도모임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신임교직원이 임용되면 대학교회에서 환영예배를 통해 전도하고 있으며, 매월 1회 교수와 직원이 함께 하는 조찬기도 모임을 통해 학원 내의 복음의 향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직원 및 학생들과 함께 한 학기 2회의 연합예배를 통해 학원 복음화에 전심을 다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업과 학생지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가 학원복음화 사역에 열정을 같게 된 것은 대학교회 이복수 목사님과 정해린 장로님(현 성지학원이사장님)께서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에 감동하여 저에게 더 큰 사명이 생긴 것 같습니다.

또한 저는 학자로서 평생을 스포츠심리학을 연구하였습니다. 특히 스포츠 동기(sport motivation)에 관심을 갖고 30여 년을 연구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믿음을 갖게 되면서 기독교와 스포츠심리학의 관계를 학문적으로 규명하라는 하나님 말씀이 들렸습니다. 의외로 크리스천 국가대표선수가 많음을 알게 되어 2017년 안식년 동안에 크리스천 선수의 심리를 연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2018년 전국체육대회 학술대회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성경구절을 통한 크리스천 선수의 동기부여 전략’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였지요. 발표 후 의외로 많은 연구자들이 관심을 보여서 이 발표를 보완하여 2019년에는 한국스포츠심리학회지에 “스포츠에서 성경구절과 기도의 사용: 스포츠 심리상담 및 코칭을 위한 제안”이라는 주제로 우리나라 최초로 스포츠심리학 학술지에 게재하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어느 누구도 상상도 못할 일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저의 전공 안에서 용기를 가지고 학문적으로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인도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고 봅니다. 이제 2021년 2월 정년퇴직을 하지만 퇴직을 하더라도 크리스천 선수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면서 남은 인생을 스포츠 학문 속에서 복음을 전하여야 하겠다는 작은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 유가족과 합의 후 발표(2014. 2. 19: 출처 뉴스1)

최은수 교수: 교수님이 사역하신 분야의 추세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으며, 이런 흐름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나요?

정용각 교수: 전 우리 대학의 건학이념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잠언 1:7절의 말씀을 처음에는 크게 이해하지를 못하였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어쩌면 제가 교육현장에서 추구했던 부분과 일면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하나님을 믿게 되면서였습니다. 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지식을 바탕으로 바른 인간을 만드는 것인데 오늘날 올바른 인성을 갖춘 교육을 시키는 학교가 얼마나 될까요? 요즘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이 바른 삶보다는 경제적 가치에 더 중요성을 두기 때문에 좋은 삶의 목표도 경제적 성공에만 두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성 문제가 대두되고 기업에서조차도 인성이 좋은 사람을 채용한다고 하는데 좋은 인성을 어떻게 교육시키느냐는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저도 하나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도덕과 윤리적 가치 안에서 바른 삶을 연결시켜 학생을 교육시켜 왔지요. 물론 성공한 케이스도 있지만 진정으로 학생의 인성을 바르게 인도할 수 있는 길은 제한적이었다고 봅니다.

그러다가 제가 주님을 영접하고 우리대학의 건학이념 말씀 안에 교육의 본질인 올바른 인성을 육성시키는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를 존중하고 두려워하면서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된 것이지요.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을 다닌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내가 하는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죄와 악을 만들어 내는 삶을 살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삶을 만들어가는 교육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부산외대의 건학이념인데 그동안 전 구성원이 함께하는 공동체적 사명을 만들어가는 데는 부족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교육의 복음화를 통해 우리 학생들의 영성과 인성을 하나님이 원하는 자녀로 키우고 싶은 것이 소망입니다. 그 일환으로 앞에서 여러 사역활동을 말씀드렸는데 이젠 부산외대 전 구성원이 함께 하는 공동체적 건학이념 구현사역을 위한 교내 확산을 어떻게 시켜야할지 기도하면서 대학교회와 교직원신우회 그리고 기독학생회와 공동사업을 실시할 것입니다.

다만 코로나19 확산으로 대면 활동을 할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교수신우회는 방학 전까지 쉬지 않고 뜨거운 열정으로 기도모임을 하였습니다. 상황이 안 좋아서 대면이 어려울 땐 줌으로 만나 함께 하고 카톡에서 말씀을 나누고 하면서 말씀과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다른 사역도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방안들을 찾아서 학원 내의 선한 사역을 계속할 계획입니다.

   
▲ 고 고혜륜 학생 추모 그루터기 강의실 네이밍 행사

두 번째로 학문적 사역은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젠 크리스천 선수들이 주님 안에서 경쟁불안을 극복하고 경기에 몰입하는 행동과정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과학적 척도를 개발하기 위해 몰두하고 있습니다. 또한 크리스천 선수의 심층 인터뷰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선수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에 대해 질적 연구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이러한 연구의 토대가 부족하여 어렵겠지만 선교사들이 미지의 땅에서 선교를 하듯 저 또한 이제부터 여가와 스포츠 심리학 분야에 학문적 복음의 뿌리를 내리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비록 2021년 2월 정년 퇴임을 하지만 분명 하나님이 저를 불러주신 소명을 이제부터 전심으로 시작하여야겠다는 다짐을 하여 봅니다.

최은수 교수: 교수님의 관점에서 한국 교계에 던지고 싶은 화두는 무엇인가요?

정용각 교수: 제가 감히 한국 교계에 화두를 던진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영접한 후 지난 7년은 하나님만을 믿고 주님 말씀대로 살고자 하였기 때문에 교계를 바라보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2020년 코로나19와 한국정치 속에서 기독교가 사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 같아 많은 안타까움을 갖고 있습니다.

늘날 한국사회는 이념과 정치로 인해 공동체적 선의 가치와 인간성이 상실된 사회가 되었는데 한국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을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독교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회를 포용하고 용서하며 공동체적 선의 가치와 인간성 회복의 중심이 되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은수 교수: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한국교회 문제점은 무엇이고, 한국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정용각 교수: 제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 기독교를 바라보았던 시각은 기독교가 이기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믿음이 없는 대부분의 비크리스천들은 제가 믿기 전에 가졌던 시각이 대부분일 것 입니다. 그런데 믿음 안에 있는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시각을 잘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 안에서 보았을 때는 이해할 수 있지만 비크리스천이 보는 이 시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각 교회가 전도를 많이 하여 교인의 확장을 통해 교회를 부흥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의 현장에서 국가가 어렵고 사회가 어려울 때 교회가 앞장서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봉사하는 실천 행동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코로나19로 예배를 못하여 교회의 어려움을 호소하기보다 오히려 이러한 국가적 어려움이 있을 때 교회가 희생을 하더라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먼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돕고 배려하고 베푸는 사랑의 실천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정부나 언론이 교회발 코로나 프레임으로 기독교를 비판하여 아쉽지만 마태복음5: 39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편을 돌려대라라고 하였듯이 참고 인내하면서 이 고난을 통해 기독교의 정신이 한국사회의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은수 교수: 교수님이 은퇴 지도자로서 평생 과업으로 삼고 계신 일은 무엇인가요?

정용각 교수: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최근 정년을 앞두고 제가 살아온 길을 조용히 묵상하며 되돌아보니 모든 것이 주님이 인도하셨음을 절절히 느끼며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부산외대 교수가 되고, 학생처장, 교무처장, 부총장, 총장직무대행 등 학교에서의 역할과 한국스포츠심리학회 제12대 회장 등 많은 역사를 이루어 왔지만 어떤 직책도 저의 요구와 관계없는 역사를 이루어 왔습니다. 이젠 이러한 모든 저의 삶들이 모두 주님이 역사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301지금까지 지내 온 것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이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총장직무대행을 하고 있는 지난 6월에는 총장선거가 있었습니다. 많은 교수와 직원들이 가장 유리한데 출마하라고 권유하였지만 출마를 하지 않았습니다. 교내외 많은 분들이 ‘눈앞에 있는 것을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느냐’면서 대단하다고 합니다. 당시 코로나로 학생들이 비대면 수업에서 일부 대면으로 전환되고 학기말 시험으로 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와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코로나 방역책임자로 있는 총장직무대행이 총장출마를 하게 되면 총장직이 없는 2개월 정도 공백기가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2주간 기도를 하면서 나의 욕구와 명예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더 큰 책임감으로 다가와 출마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요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는 말씀으로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젠 저의 마음의 계획보다는 주님이 인도하는 길로 가야하겠다는 것이 저의 가장 큰 과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욥기 23: 10 “나의 가는 길은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라는 말씀같이 2014년 주님을 영접한 이후 저의 과업은 예수님을 닮아 실천하는 삶을 살고자 단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단련을 통해 주님을 더 가까이하면서 남은 생애는 부산외국어대학교 복음화를 위해 할 수 있다면 정금의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평생 연구하였던 스포츠 심리학과 기독교의 융합연구를 통해 학문적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사역도 계속할 생각입니다.

최은수 교수: 신앙의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또는 다음 세대에 주시고 싶은 명언 한마디는 무엇인가요?

정용각 교수: 주님 말씀 안에서 자유를 찾으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구속으로부터 벗어나서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자유는 크게 무엇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와 무엇을 위한(무엇에로의) 자유(freedom to)가 있는데 대부분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만 자유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죄로부터 자유도 중요하지만 주님을 위한 자유 즉 주님 말씀 안에서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주님 말씀 안에서 자유를 찾는 사람들은 학문이나 일 등 모든 하는 일에서 주님에게 하듯 한다면 진정한 자유와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 진정으로 믿고 주님 말씀 안에서 자유를 찾는 젊은이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최은수 교수: 교수님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높이며 찬양을 드릴 수밖에 없네요. 귀한 시간 내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리면서, 교수님의 비전과 바램 대로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하실 것으로 기대하며 축복합니다.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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