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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설교와 나쁜 설교(1)

기사승인 2021.01.19  15: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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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진 교수의 성경적 설교 논단

김경진 교수/ Ph.D, 호주 알파크루시스 대학교 박사원장
 

   
▲ 김경진 교수

자신이 설교자로서 설교를 전하고 또 설교를 들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과연 좋은 설교란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한 웅변술이 아님은 분명하다. 정작 설교 내용은 초라하게 빈약한데 그것을 만회하려는 듯이 고함만 지른다고 좋은 설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설교란 무엇보다도 전달하는 내용이 우선적이다. 그렇다면 전파하는 설교의 내용을 바로 작성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반드시 준수해야 할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는 이 원칙들이 준수될 때 그것은 좋은 설교이고, 반면에 그 원칙들이 무너질 때 자연적으로 그것은 나쁜 설교가 될 수밖에 없다. 잘못된 성경 해석을 통한 성공적인 설교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 목적이 선하다면, 거기에 도달하는 방법 또한 선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 나는 신약학자로서 또한 설교자로서 좋은 설교를 위하여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적 원칙들을 소개함으로써 설교자들의 사역을 돕고자 한다.


1. 주어진 본문의 일부를 임의로 선택하지 말라.

1.1. 마가복음 2.8; ‘중심’

마가복음 2.1-12은 한 사건을 구성하고 있는데, 설교자는 주어진 본문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애초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찾아서 그것을 설교하려고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본문 중 자기 눈에 들어오는, 혹은 자기 입맛에 맞는 한, 두 단어만을 선택하여, 전체 본문의 의미와는 무관하게 설교한다면, 그것을 본문을 왜곡하는 것이다.

애초에 저자가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했을 때의 의도와 의미를 찾아 그것을 밝혀 설교하는 것이 설교자의 의무이지,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한, 두 단어를 뽑아 갖고 설교하는 것은 애초에 그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성령 하나님의 의도가 거스르는 죄악이다.

   
 

어느 설교자는 위의 본문 중 8절에서 중심(中心)이란 단어를 선택하고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중심을 바로 세워라”는 취지의 설교를 했다. 그런데 8절에서 중심으로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는 evn pneu/mati, 영어로는 in spirit, 즉 문자적으로 ‘영(靈) 안에서, 영으로’ 이고, 의역하면 ‘(마음) 속으로’라는 뜻이다. 주님이 중풍병자의 죄 사함을 선포하자, 인간으로서 죄사함을 선포하는 데 놀란 서기관들이 수군거리자 그것을 영으로, 즉 마음 속으로 주님이 깨달았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런 본래의 의미와는 무관하게 중심이란 한글 번역만을 의지한 채 중심으로 바로 세우라고 설교하는 것은 철저하게 본문의 의미를 왜곡한 것이다.

이렇듯 본문을 왜곡하는 사례를 보면, 그런 설교자는 대개가 헬라어나 히브리어 원문은 커녕 영어 번역도 보지 않고, 단지 한글 번역만을 갖고 설교하는 함으로써 본문의 의미를 부지불식간에 왜곡하는 경우가 매우 허다하다. 이러한 처사는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 아니다.
 

1.2. 사도행전 28. 2, 4;‘토인(土人)’ (한글 개역)

이와 관련하여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개역 한글 성경에서 사도행전 28장 2, 4절을 보면, ‘토인(土人)’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나온다. 멜리데 섬의 원주민들을 개역에서는 ‘토인’으로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어떤 설교자는 이 단어를 역시 한글 번역만을 보고는 아프리카 흑인(黑人)으로 판단하여, 이를 원시인, 야만인, 식인종등으로 간주하여 설교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멜리데 섬 주민들은 넓은 의미에서 셈족 계통의 사람들로서 유대인에 가까운 사람들이었다.1 당연히 얼굴이 검은 흑인은 아니었다.

물론 여기에 사용된 헬라어 바르바로스(ba,rbaroj)가 후대에 영어의 barbarian의 어원(語源)이 되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후대의 일이고, 1세기 당시에 그 단어는 의성어(擬聲語)로서, 헬라어를 사용하지 않는 비 헬라인(non-Greeks)들을 가리키는 용어였던 것이다. 이에 대한 좋은 예가 로마서 1장 14절이다. 거기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빚진 자”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 ‘야만인’이란 단어를 NIV 등 영어 번역본에서는 non-Greeks라고 번역하고 있다. 즉 헬라인이 아닌 사람을 가리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여기서 바르바로스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자신이 헬라인과 비헬라인 모두에게 다 복음에 있어서 빚진 자임을 밝히는 것이다. 결코 우리말 번역처럼 문자적으로 야만인을 가리키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우리 말 번역만을 갖고 이 단어를 ‘토인’으로 해석하면서, 식인종과도 같은 야만인으로 설교한다면, 이는 이 단어의 의미를 지극히 왜곡한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2
 

1.3. 마가복음 1.16-20; ‘찢어진 그물(?)’

이 본문은 주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취임설교를 하신 후 첫 번째 공적 사역으로서 네 명의 어부 제자들을 부르신 사건이다. 이 기사의 취지는, 주님께서 어부로서 맡은 바 어부로서의 일에 충성하는 이들을 불러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영적인 일을 맡기신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어떤 설교자는 이러한 본문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19절에서 그물을 깁는데라는 표현에 착안하여, 깁는다는 것은 그물이 찢어진 상태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판단하여, 설교 제목을 찢어진 그물이라고 잡아 설교하였다. 그리고는 대지를 3개로 나누어, 첫째 가정의 그물이 찢어졌다, 둘째 사회의 그물이 찢어졌다, 셋째 국가의 그물이 찢어졌다고 말하며, 오늘 우리는 주님의 제자들처럼 이러한 찢어진 그물을 제대로 기워서 고쳐야 한다는 취지의 설교하였다.

설교 내용 자체만을 놓고 보면 매우 그럴 듯하다. 그러나 이런 취지로 설교하려면 거기에 맞는 본문을 택해야하지, 단지 그물이란 한 단어를 임의로 선택하여 이런 식으로 설교하는 것은 본래 하나님이 본문을 기록하게 하셨던 그 의도를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인 것이다. 이토록 본문의 의도를 무시한 설교가 실제 목회 현장에서 아무리 큰 성공적인 반응을 얻었다한들 하나님은 과연 기뻐하실까?


주(註)

1. 로버트 헐버, 『이해를 위한 신약성서 연구』 (김영봉 역; 서울: 컨콜디아, 1991), 63.
2. 개역개정에서는 다행히 ‘원주민’이라고 번역하였다.

김경진 교수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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