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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무상을 깨닫는 기도의 피날레

기사승인 2021.01.19  15: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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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훈 교수의 기도 본문 해설(13)

김정훈 교수 / 영국 글라스고(Glasgow) 대학교 신약학 박사, 백석대학교 신약학 은퇴 교수, B and C Mission Center 현대표
 

   
▲ 김정훈 교수

모세의 기도(4): 하나님 고백, 인생 고백, 믿음의 간구(시 90:1-17)

3) 인생무상과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절감하며 드리는 기도(11-17절)

(1)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11-12절)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11-12절).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지혜의 마음을 주시라는 간절한 기도다. 모세는 앞에서 이미 부각시킨 두 핵심 개념 곧 하나님의 분노와 인간의 단명이라고 하는 두 개념을 염두에 두고 기도한다. 모세는 하나님이 인간의 죄에 대해 노여워하고, 인간은 수고와 슬픔으로 가득한 가운데 짧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음을 관찰하고 있다. 모세는 인간이 하나님의 분노(심판)와 인간의 단명을 제대로 알 때 지혜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따라서 모세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노하심이 어떠한지 알게 해 주시고, 인간의 수한(壽限)이 얼마나 짧은지 깨달을 수 있게 가르쳐 주실 것을 간구한다. 모세는 인간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아는 것과 자신의 단명함을 깨닫는 것이 지혜로운 마음을 얻는 길이라고 판단하였다. 지혜의 마음은 인간에게 정도(正道)를 가르쳐 주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알게 해 주고, 또한 사는 날 수의 짧음을 가르쳐 주어 시간 바로 쓰는 법을 알려 준다.

하나님의 분노는 죄를 밥 먹듯이 범하는 자에게 수치요 파멸이지만 악행을 멈춘 자에게는 생명과 평안이다. 자기의 수한도 생각하지 않고 세속 원리를 따라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의 삶은 허무와 무상(無常)뿐이다. 그러나 주어진 세월의 단명함을 알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6:33) 사는 사람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참조. 5:1-2, 10-11).
 

(2)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13절)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13절). 이것은 하나님이 마음을 돌이키셔서 다시 당신의 백성들 곁으로 돌아와 그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라는 기도다. 모세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원망과 불평, 억지, 불신으로 일관하고, 때로는 우상숭배, 음란행위, 음모로 거역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분노하시고 징벌하시는 것을 보았다. 모세는 하나님이 금송아지 우상숭배 행위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배도 행위를 보고 그들과 동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시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 매달려 중보기도를 드릴 때 마음을 돌이키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였다. 비루한 인생길을 걸어가는 우리를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주시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향방(向方) 없이 부는 사막의 모래바람에 불과하다. 모세는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하며 반역하는 이스라엘에게서 떠나시는 하나님을 보았다. 어떤 때는 하나님이 너무 오랫동안 떠나계신 것 같아 “돌아와 주세요. 언제까지 멀리 계실 것입니까?”하고 애원해야 했다. 오죽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떠나신 것 같이 느꼈으면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달라고까지 하였겠는가?(출 33:18).

이 간청에 하나님은 모세를 “그 반석” 틈에 두고 그의 손으로 덮으시고는 그의 곁을 지나시며 등만 보여주신 일이 있다(출 33:21-22). 하나님은 당신을 알면서도 당신을 영화롭게도 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하지 않고 허망한 생각에 빠져 어리석은 마음으로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이라고 하고 세속을 좇아 계속 악행하는 자는 내버려 두신다(참조. 롬 1:24, 28). 이것은 하나님이 떠나신 것과 같은 상태다. 믿는 자에게 이런 상태는 최악의 상황이다. 지속하다가는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다. 속히 하나님의 분노를 알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께 돌아와 주시라고 간구해야 한다. 나의 돌이킴 곧 나의 회개는 하나님의 돌아오심을 가져오고, 돌아와 불쌍히 여기심을 유발한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돌아오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새롭게 해 주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기억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죄 중에 있을지라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어 죽으신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돌아오심을 간구해야 한다.
 

(3) 평생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14-15절)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14-15절). 이것은 평생토록 즐겁고 기쁜 인생을 살게 해 주시라는 기도다. 이것은 모세가 자기 자신을 위해 드리는 기도라기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다음 세대를 위해 드리는 기도다. “인자”(헤세드)는 하나님의 은혜, 사랑, 자비를 뜻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이 그의 사랑 안에 거할 때 참 만족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날마다 그의 사랑 가운데 사는 것이 최상의 삶인 것을 깨닫고 하루를 여는 아침마다 그의 사랑으로 만족하는 삶, 그의 사랑으로 꽉 채워진 기쁨의 삶을 살게 해 주시라고 간구한다.

모세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지나온 광야생활을 돌이켜 볼 때, 기쁨보다 백성의 반역과 하나님의 분노 앞에 지도자로서 마음의 고통과 불안, 긴장, 노여움, 황망함, 막막함, 피곤함, 두려움이 컸다. 그래도 그는 고뇌의 날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최고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의 은혜와 사랑 안에 거할 때 만족과 기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지난 괴로웠던 날들의 수대로, 지난날 하나님의 진노를 사 모질게 훈육을 받았던 광야생활의 연수대로 기쁨을 달라고 간구한다. “연수대로”란 딱 40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출애굽 제2 세대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정복하고 그들과 후손이 그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모든 날 동안을 가리킨다. 모세의 표현이 매우 인간적이기는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이 그를 기쁘시게 하는 한 하나님은 그들에게 기쁨으로 보상해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도서 기록자는 말한다: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전 9:7). 이는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그의 인자하심을 누리며 사는 삶을 권면하는 내용이다. 바울도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는 자가 그와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삶을 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삶을 살 것을 권면한다(5:1-2).
 

(4) 주께서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고, 우리가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16-17절)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16-17절). 우리는 이 본문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과 “우리의 손이 행한 일” 두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모세는 출애굽 제2 세대가 광야 40년 동안에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의 의미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여정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로 큰 민족을 이루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대하게 하시겠다고 하신 언약(창 12:2)의 성취과정이며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군대로 훈육하시는 과정이었다(신 8:2).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 권능, 다스리심이 무엇이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 진군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는 과정이었다. 또한 그것은 구름기둥과 불기둥, 만나와 메추라기, 반석의 샘물을 경험하는 과정이었다. 또한 그것은 이스라엘의 반역행위에 대해 불같이 진노하시다가도 모세의 중보기도에 마음을 누그러뜨리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과정이었다. 모세는 이러한 사실들이 너무도 소중하여 후손들에게도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주시라고 간구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평행적으로 반복하는 개념으로 “하나님 자신” 또는 “하나님의 실체”를 의미한다(참조. 출 33:18, 23).

둘째,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행한 일들이 견고하게 되어 계속 뻗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17절).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 40년을 회고해 보면 모세와 순간순간 그와 뜻을 같이한 그의 측근들 외에 그들을 칭찬할 만한 일이 별로 없다. 하지만 하나님이 당신의 의지로 히브리 민족을 부르시고 모세를 세워 그들을 애굽에서 탈출시키실 때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 가운데 따라나섰고, 온갖 불평과 원망을 쏟아 놓으면서도 시내산에서 언약의 말씀을 받았을 때는 그대로 이행하겠다고 약속하였고, 하나님이 성막 건립을 지시하셨을 때는 온갖 재능을 발휘하여 성막을 세웠고, 모세의 수명을 비스가산에서 멈추게 하시고 여호수아를 후계자를 세우실 때는 이의 없이 받아들였던 백성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여 때로 돌이킬 수 없는 반역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따라와 준 이스라엘 백성이 행한 일들을 통째로 모두 다 허사(虛事)라고 치부할 수 없었다. 이들이 모압 평지까지 당도하여 요단강 도하(渡河)를 준비하고 있는 일이 모두가 허사라고 한다면, 지금까지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이적을 베푸시고 크고 두려운 광야 40년 동안 변함없이 먹이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신 하나님의 행사도 다 허사다.

모세가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라는 말을 두 차례 반복하며 기도하는 것은, 출애굽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한 국가로 정식 출범을 한 것과 언약서를 받고 언약체결을 한 것,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판을 받은 것, 그래서 법을 가진 정식 국가로서 면모를 갖추게 된 것, 성막 건립을 한 것, 광야 노정 중에 가나안을 향해 가는 군대로서의 모습을 갖춘 것,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과 용감하게 싸워 대승한 것... 이 모든 사건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들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견고하게 되어 그 토대 위에서 후손들이 창대하게 해 주시라고 간구하는 것을 뜻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끝없는 반역과 배도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사건들이 허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와 징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속마음은 끝없는 사랑과 용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참조. 민 23:21).

참고로, 앞에서 언급한 “히브리 민족”에 대해 간략히 언급해 두고 싶다. “히브리인”의 시조는 아브라함의 7대조 “에벨”로 사료된다(창 10:21; 11:14-26). 왜냐하면 “에벨”과 “히브리”는 어근이 같기 때문이다. 에벨이나 히브리라는 말은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온 자들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히브리 민족의 시조는 아브라함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창세기 기사는 아브라함을 “히브리 사람 아브람”이라고 호칭하고 있고(창 14:13), 히브리 사람들이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예고는 아브라함 언약(창 12:2) 안에 최초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참고. 야곱의 아들 “요셉”에 대해서도 수차례 “히브리 사람/종/청년”이라는 호칭이 붙여지고 있다(창 39:14, 17; 41:12). 여기서 “히브리”는 유프라테스 강 유역과 관련된 용어라기보다 가나안 땅에 속한 헤브론의 세겜 땅과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요셉이 헤브론을 “히브리 땅”(창 40:15)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야곱은 12 아들들과 자기 할아버지인 “히브리 사람 아브람”이 헷 족속에게서 은 400세겔을 지불하고 매입한(창 23:2-18) 헤브론에 거주하면서(창 37:1) 그 지역을 편리하게 “히브리 족속들이 사는 땅”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그분의 행사(行事)에 가담하여 그분의 뜻을 실현해 나가는 것보다 더 큰 은총은 없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또한 성령이 주시는 통찰을 통해 하나님의 원대하신 뜻을 깨닫고 그것을 이루어 나가는 일에 힘을 써야 한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호소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호 6:3).

김정훈 교수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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