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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원칙 은혜의 사람, 강종환 장로와의 대담

기사승인 2021.01.25  14:5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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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 지도자들에게 한국교회의 길을 묻는다(18)

사회: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대담: 강종환 장로/ 법원 공무원으로 평생 봉직하다 퇴임, 가음정교회 장로, 가음정교회 100년사 집필(2010년), 경남(법통)노회 100년사 집필(2016년)

   
▲ 강종환 장로

최은수 교수: 뿌리 깊은 신앙을 배경으로 삶의 현장에서, 공교회에서, 그리고 가족교회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달려갈 길을 열심히 경주하고 계신 장로님과 대담하게 되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장로님은 그 옛날 어려운 시대를 사시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법원 공무원으로 평생을 봉직하시며 고위 공직에 오른 입지전적인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울러 교회의 분쟁과 다툼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신앙의 본질을 지켜 오셨지요. 지나온 과거의 삶을 돌이켜 보면 당시에는 안갯속을 지나는 것 같이 희미하게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본질이 선명하게 보이는 법이지요. 제가 좋아하는 사자성어가 '사필귀정'인데, 장로님의 삶을 보니 잘못된 것을 올바르게 정립하는 삶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오랜 공직생활을 통해 하나님께서 장로님을 역사 정립에 쓰시려고 법과 원칙으로 연단과 훈련을 시키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장로님의 신앙 배경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강종환 장로: 저의 집안은 지금의 진주시 정촌면이 고향입니다. 저는 4남1녀의 막내로서 마산에서 태어났지만 형님 3분과 누님은 모두 고향인 진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저희 가정에 복음이 들어오게 된 것에는 아주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진솔하게 말씀드리면 증조할머니의 성정이 보통이 아니었고 아무도 그 성정을 감당하지 못해 할머니가 힘든 시집살이를 하셨다고 합니다. 증조할머니가 할머니를 얼마나 힘들게 하셨는지 어머니가 시집을 오시자마자 할머니는 설마 손주며느리에게 그러지는 않으실 것이라 보고 할아버지와 가족들과 의논한 후 얼마간의 계획 가출을 하셨습니다.

그 기간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할머니가 머무시던 친척집에서 더 머물지 못하고 나오셔서 남의 집 처마 밑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새벽이 되었는데 당시 교회의 새벽기도 종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이 차임벨 소리로 들렸는데 눈물을 흘리시고 그 소리를 찾아 간 곳이 옥봉리교회(현 진주교회)였습니다. 그때 옥봉리교회는 김익두 목사님을 모시고 사경회를 하는 중이었는데 할머니가 말씀에 큰 감동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며칠 후 사경회를 마치고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 가음정교회 낮예배 기도모습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오자 증조할머니의 노여움 때문에 집안이 발칵 뒤집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온 가족들이 가슴을 졸이고 있는데 할머니는 교회에서 받은 쪽복음서를 들고 증조할머니 방으로 들어가셔서 쪽복음서를 펴서 짚어가며 증조할머니의 잘못을 말씀하시고 설복을 하셨답니다. 그때만 해도 어른들의 관념이 책에 있는 말씀은 옳다는 관념을 가지고 계실 때라 그런지 할머니가 쪽복음을 짚어가며 하시는 말씀에 증조할머니가 굴복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다음 주일날 고부간에 함께 교회로 가시게 되었고 그 길로 온 가족이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집안 친척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집 앞 텃밭에 교회(현 관봉교회)를 세우고 온 가족이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일로 우리 집을 힘들게 하는 집안 어른들이 두어 분 계셨다고 합니다. 이들이 해방 후 좌익에 몸을 담았고 6.25 전쟁 때 북한군이 점령하자 본색을 드러내어 자신들의 활동에 걸림이 되는 할머니와 아버지를 인민재판이란 이름으로 처형하려 했습니다. 그 직전에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이 퇴각하면서 간발의 차이로 두 분의 목숨을 구하셨습니다. 할아버지께 아들은 아버지 한 분이셨는데 그 일로 충격을 받으신 할아버지는 당시 점령되지 않았던 마산으로 이거를 결정하시고 온 가족이 마산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산에는 문창교회와 제2문창교회(마산교회) 뿐이었으므로 당연히 문창교회로 출석하시면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위로 저는 모태 신앙인들의 표현을 빌리면 문창교회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때 경남노회는 총회파와 법통파로 나뉘어졌고 문창교회는 이른바 총회파와 법통파가 교회당을 놓고 법정소송과 함께 물리적 충돌이 있을 때입니다. 1919년 화강암으로 지은 본당과 주기철 목사님이 담임목사로 계실 때 목조로 지은 신관을 한 달씩 번갈아 예배를 드렸는데, 예배를 마친 후 교회마당에는 총회파 젊은 집사들이 송상석 목사님을 둘러싸고는 어깨로 밀치는 등 폭행이 매주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송 목사님을 따르는 법통파 교인들 중에도 젊은 분들이 없지 않았지만 아무도 이를 말리거나 막지 않았습니다. 아마 물리적 충돌이 있을까 봐 목사님이 일체 대응하지 말 것을 말씀하신 것 같고 사모님도 이를 보지 않으려고 일찍 사택으로 가시고 교회 마당에는 오로지 송 목사님 혼자서 감당하셨습니다. 저는 매주 이러한 모습을 두려운 마음으로 보았습니다. 우리나라 장로교의 가장 치열한 분열의 현장을 지켜 본 것입니다.

그 후 교회는 법통파는 제일문창교회로, 총회파는 문창교회로 나누어졌습니다. 저는 저희 가정은 처음부터 법통파를 지지하였고 송 목사님을 따라 제일문창교회로 옮겼습니다. 저는 태어나고 어린 시절은 문창교회에서, 좀 성장한 청소년기는 제일문창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모습만 기억나는 송상석 목사님의 영향 하에 자랐습니다. 1980년 결혼하면서 근무지인 부산과 통영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1984년 가을 근무지가 마산으로 되면서 다시 제일문창교회로 돌아왔고 1996년 장립집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4형제가 모두 같은 교회를 출석하는 것이 무척이나 부담이 되어 저는 1998년 가음정교회로 이명을 하였고 2001년 가을 가음정교회의 장로로 세움을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 앞 줄 왼쪽에 김종문 목사 이재술 장로 허창수 목사
뒷줄 왼쪽 강종환 장로 성인수 목사 양재한 장로로 고신교단의 지도자 목사와 장로들

제 아내는 경남 함안군 출생입니다. 처가의 장인 장모님 역시 신앙의 가정에서 출생하시고 평생 믿음의 길에서 한걸음도 벗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장인(김상원 장로)께서는 구혜교회의 장로님이셨고 장모님은 제가 결혼 한 후 곧 권사님이 되셨습니다. 장인께서는 젊은 시절 한상동 목사님과 함께 신사참배를 피해 일본으로 함께 피신을 하시기도 하셨고 무슨 사연인지 일본인들에게 붙잡혀 끓는 물을 다리에 끼얹은 고문을 당하여 그 상처를 평생 가지고 계셨습니다. 제 아내는 음악에 재능이 있어 결혼 전에는 구혜교회 학생찬양대 지휘를 하였고 그 후 제일문창교회의 오후 예배 찬양대를 지휘하였으며 또 가음정교회에서도 임마누엘 찬양대를 조직하여 10년간 지휘를 하였으며 2006년 권사로 임직하여 지금까지 섬기고 있습니다.

최은수 교수: 인생을 사시면서 가장 중점을 두시고 하신 작업은 무엇인지요?

강종환 장로: 20세인 1974년 법원의 일반직 9급 공무원으로 출발하여 2006년 부이사관으로 명예 퇴임하였습니다. 상고를 졸업한 저의 어린 나이에 시작한 공직생활은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에서도 부족하고 서툰 점이 많았습니다. 어느 순간 학벌은 없어도 지성과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의식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크게 사용하지도 않았으면서 법률주석서도 상당수 구입하여 개인적으로 소장하기도 하였습니다.

5공화국과 6공화국을 거치면서 치열한 민주화 투쟁이 있었고 그때 한국교회가 친정부와 반정부 두 가지 모습을 보이면서 저는 한국교회를 이해하고자 한국교회사 단행본 몇 권을 읽어 보기도 하였습니다만 답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때부터 기독교적 입장으로 한국사회를 진단한 여러 가지 책들을 읽었는데 지나고 보니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에 관한 책들도 있었고 대부분 진보적인 신학의 입장에서 쓰여진 책들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분야의 책들을 대하였습니다. 얼마 전 다른 글을 쓰기 위하여 로버트 그린(Robert W. Green)의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라는 책을 잠시 살폈는데 과거 읽으면서 연필로 줄을 그은 부분이 있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그 책들을 어찌 읽으려고 했을까 하는 무모한 용기를 돌아보았습니다. 신혼 때에도 아내를 챙기기보다 책을 많이 읽었는데 집사람이 말을 안 했어도 굉장히 불만이 많았을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많습니다.

그러나 법원의 공직생활에서 얻은 귀중한 교훈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증거가 없으면 결론을 쉽게 믿어서도 안 되고 책임을 묻는 데에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 잡았고, 그렇게 읽은 책들은 내용을 기억할 수 없어도 부족하지만 사안을 깊이 볼 수 있는 안목과 기초 지식을 갖게 하였습니다.

2001년 가음정교회의 장로가 되자마자 1906년 설립된 가음정교회의 설립 100주년이 수년 후에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100주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교회사를 새로 쓰자는 결정을 하였고 당회는 제게 그 일을 맡으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그 일을 전문가에게 맡기고 제가 행정적으로만 처리했다면 이후의 흐름이 달라졌을 것입니다만 저는 당시 그 일을 제게 직접 집필하라는 것으로 알아들었습니다. 제가 가음정교회에 이명해 온 것은 불과 4년 정도이고 그 이전의 가음정교회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정말 막막하기만 하였지만 90년사를 읽고 다른 개체 교회사의 내용을 참고하여 기본 구도를 잡고 확보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이용하여 원고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컴퓨터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기록하고 또 수정하고 보충하고 그렇게 수년 동안 매달렸습니다.

   
▲ 왼쪽부터 딸 강민정 집사  아내 김미연 권사 강종환 장로 자부 박신영 집사 아들 강봉규 집사

가음정교회는 설립 이후 경남노회에 소속하였고 분열과정에서는 법통파 노회에 속하였으며 고신총회가 고소와 반고소로 나누어질 때 반고소의 입장을 지켰습니다. 당회록의 기록이 체계적으로 정확히 기록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중간중간 중요한 단서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단서들이 때로는 노회의 역사, 때로는 총회의 역사와 관련이 있을 경우에는 그 부분도 아낌없이 기록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크게는 한국교회, 좀 작게는 고신총회와 경남노회의 역사 상당부분이 [가음정교회 100년사]에 녹아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발견한 것이 경남노회가 고소와 반고소로 나누어지고 이어서 고신총회가 나누어지는 그 중심에 저의 출신 교회인 제일문창교회의 송상석 목사님이 계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 자료들을 이리저리 섭렵하면서 송 목사님의 저서 [법정소송과 종교재판]을 살피니 송 목사님에 대한 결론은 제가 알고 있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증거와는 차이가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특히 송 목사님에게 책임을 지운 사문서위조 사건은 그 사건이 문제가 아니라 그에 앞서 있었던 여러 사건과 함께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한 의심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도 송 목사님의 사문서위조 건의 사실관계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저는 언젠가 누군가 이에 대하여 조사하고 되짚어 볼 수 있도록 간략한 기록이라도 남겨야 하겠다는 의무감이 생겨 가음정교회사의 한 페이지(228쪽)에 그 흐름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그 기록이 결국 저에게 남긴 기록이 되었습니다.

최은수 교수: 장로님이 시작하신 교회사 기술이 다음 단계로 발전해 간 과정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강종환 장로: 2010년 7월 [가음정교회 100년사]를 완성하여 발간하였습니다. 이 책을 관심있게 읽으신 허창수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와 경남노회에 기독교문화연구위원회가 조직되어 있는데 함께 하자는 말씀이었습니다. 허 목사님은 고려신학대학원장을 지내신 허순길 박사님의 조카분입니다. 그리고 2016년이 경남노회 조직 100주년이 되는데 [경남노회 100년사] 발간해야 하니 이를 맡아 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일이 힘들다고 생각하였지만 이미 [가음정교회 100년사]를 집필한 경험이 있고 이상하게 해야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아내와 이 일을 의논하니 당신은 서재에서 놀고 나는 혼자 놀고 익숙해져 있으니 관계없다고 하면서 핀잔 아닌 핀잔을 받았습니다.

   
▲ 가음정교회 준공감사예배

다시 서재로 들어갔고 집에서는 원고를 쓰고 사무실에서는 틈틈이 경남노회와 관련된 사건, 자료들을 검색하여 목록을 만들고 주일 교회에서는 출력을 하여 관련있는 자료들은 제본을 하여 자료집을 만들었습니다. 원고는 일단 확인되는 대로 쓰고 수정하고 보충하는 방식으로 원고를 작성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경남노회의 노회록이 41회기부터 98회기까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촬요도 상당 부분이 없었습니다. 그 기간에 경남노회가 관련된 총회의 중요 사건이 많이 있었는데 그에 관한 1차 사료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이에 관하여는 이미 발표된 글과 송 목사님이 남겨두신 [법정소송과 종교재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숨겨지고 감추어진 역사를 끄집어 내었습니다. 송상석 목사님에 대해 사문서위조 사건은 그 앞에 있었던 일련의 여러 불미스러운 사건의 결말이라는 의심을 가졌습니다. 고려신학교를 세울 때 만주의 봉천에서 귀국하지 못한 박형룡 박사 가족을 목숨을 걸고 모셔온 , 경남노회에 대한 총회 전권위원회의 잘못에 대해 장문의 진정서를 통하여 잘못을 지적한 분, 총로회를 발족할 때 선언문을 기초하여 고려파의 입장을 대내외에 밝히신 분, 승동측과 분리될 때 고려신학교의 재산을 지키도록 한 분을 자신들의 전횡에 막아섰다는 보이지 않는 이유로 고신의 역사에서 제거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후 송상석 목사님에 대해 3가지 프레임이 조용히 전파되었습니다. 첫째 고등계 형사를 지낸 친일파이다, 둘째 총회파와 15년간 교회당 소송을 하였으나 소송에 패소하고 결국 빈손으로 쫓겨났다, 셋째 고려학원 이사회를 장악하기 위하여 이사회록을 위조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송 목사님에 관하여 고신총회에서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최근에 한 저자는 송상석 목사님에 대한 법정고소가 비성경적인 것임을 지적하였고 총회의 재판절차도 불법임을 논증한 [불의한 자 앞에서 소송하느냐]를 발간하였으며, 사문서위조 사건의 전후 송 목사님과 함께 계셨던 류윤욱 목사님은 당시의 사실관계에 관하여 [역사는 잠들지 않는다]라는 책을 통하여 일련의 과정이 잘못이라는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의 연구에 힘입어 저를 비롯한 [경남(법통)노회 100년사]의 집필진은 그동안 숨겨진 반고소 경남노회의 역사, 더 나아가 고신의 역사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경남(법통)노회 100년사]와 이번에 발간된 송 목사님의 생애에 관한 책을 통하여 그 3가지 프레임 모두 허위임을 밝혔습니다. 이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교회사가들의 좀 더 깊은 연구가 있었으면 합니다.

   
▲ 법통 포럼 논문발표회 마치고

최은수 교수: 한국 교계에 던지고 싶은 화두는 무엇인가요?

강종환 장로: 우리는 신앙생활이라는 용어를 늘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말처럼 신앙과 생활은 나눌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은 생활로서 나타내어 증명되어야 하고 우리 삶의 모습은 곧 신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쉬운 원리 같지만 결코 이를 지킬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연약한 존재이고 현실이란 울타리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이란 울타리는 결코 우리를 쉽게 넘어서지 못하게 합니다. 개혁주의 교회는 말씀 앞에서 계속 개혁되어야만 합니다. 신앙을 기초로 한 우리 모두의 삶도 날마다 개혁될 수 있도록 교회의 지도자와 성도들이 힘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교회를 흔들고 있는 것은 인권을 빙자한 동성애 문제와 낙태죄의 완화 문제는 한국교회가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이를 미리 대처하지 못하였다는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최근의 코비드19로 인한 비대면 예배에 대한 저항 역시 동전의 양면과 같은 부분이 있습니다만 어쩔 수 없이 한쪽 면만 바라보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까운 부분이 있습니다. 교회와 교회의 지도자들은 주변 사회의 움직임에 민감해야 하고 이러한 문제들이 교회에 또 성도들의 신앙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 것인지 면밀히 살피고 냉철하게 대응을 했으면 합니다.

최은수 교수: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한국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강종환 장로: 앞으로 한국교회는 인구의 구성으로, 또 이번 코비드19의 영향 하에서 보인 교회의 모습으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특히 농어촌 지역의 인구감소와 교회가 비어가는 것을 예사로 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농어촌 지역의 미자립교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가고 이를 도시의 큰 교회가 협력하여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현재의 흐름으로는 농어촌교회의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거의 비어져 있는 교회에 목회자를 파송할 수도, 사역할 목회자도 없는 상태입니다. 장로교만이라도 공통분모를 만들어 연합하고 함께 대처하지 않으면 결국 모두가 회복하기 어려운 수렁에 빠질 것입니다. 10년 뒤 그 교회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선교지도 마찬가지입니다. 편중된 선교사의 분포, 선교사 지원에 관한 비합리성, 선교사가 선교사역 외에 치우치는 모습 등에 대해 분석과 장, 단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 하나는 대형교회의 문제입니다. 기본적으로 대형교회는 분립되어야 합니다. 몇 년마다 터지는 세습의 문제, 비업무용 부동산의 취득을 통한 재산의 축척, 눈에 보이지 않는 회계부정 등 이 모든 것이 결국 교회가 주변 사회에 교회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갔습니다. 서울의 알려진 대형교회들은 각 교회가 10개를 나누어도 결코 적지 않은 교회가 됩니다. 상가 한 칸을 얻어 교회를 개척하는 비합리적인 개척이 아니라 기존의 큰 교회가 교회를 분립하는 개척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담임목사님들의 리더십입니다. 지금 일부 교회의 목사님은 하나님의 말씀 선포를 교묘하게 자신의 인간적인 카리스마를 세우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또 성도들의 삶을 깨우치고 결과보다 믿음이 삶의 과정이 되도록 가르쳐야 함에도 결과의 기복적인 부분을 많이 강조하는 듯한 느낌도 받습니다. 이제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존중을 잃고 교회의 지도자가 비난의 대상이 된 이때 교회의 지도자도 성도들도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고 행하도록 치열한 노력이 필요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최은수 교수: 은퇴 지도자로서 평생의 과업으로 삼고 하시고 계신 일은 무엇인가요?

강종환 장로: 앞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공직생활에서 얻은 귀중한 경험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증거가 없으면 결론을 쉽게 믿어서도 안 되고 책임을 묻는 데에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의식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저를 교회사를 공부하도록 인도하신 섭리에 따라 교회사를 좀 더 공부하면서 교회와 주변 사회와의 관계에 관련하여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찾아 연구하고 글로써 제시하여 교회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최은수 교수: 신앙의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또는 다음 세대에 주시고 싶은 명언 한마디는 무엇인가요?

강종환 장로: 교회의 지도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믿음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필요한 것이 지성과 지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의 확신이 없는 지성과 지식은 인본주의자와 다름이 없을 것이고 반대로 지성과 지식이 없이 신앙의 확신만으로 판단하고 실천하고자 하면 자칫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개인적인 차원이라도 문제가 되지만 주변 사회와 관련이 있는 문제가 된다면 교회의 지도자들은 생각의 폭과 깊이를 달리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지성과 지식을 갖춘 지도자가 되기 위하여 늘 공부하고 노력하고 주변 사회의 움직임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최근 고신총회에서 성도들을 대상으로 교리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였는데 참 좋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최은수 교수: 장로님께서 반지성주의를 경계하시고, 아울러 열광주의를 지양하면서 균형잡힌 목회자와 성도의 자세까지 훌륭한 되새김질을 해 주셨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되시기 때문에 교회의 역사를 왜곡하거나 날조하거나 거짓으로 그럴듯하게 치장한들 진리를 거스를 수는 없지요. 장로님의 삶처럼, 법과 원칙, 그리고 주의 은혜로 점철된 제대로 된 역사가 학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정립되어 가는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귀한 시간 내주신 장로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섬기시는 교회, 평생의 반려자 되시는 부인 김미연 권사님, 자손들 위에 하늘의 복과 은혜가 충만하기를 소원합니다.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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