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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설교와 나쁜 설교(2)

기사승인 2021.01.27  15:4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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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진 교수의 성경적 설교 논단

김경진 교수/ Ph.D, 호주 알파크루시스 대학교 박사원장
 

   
▲ 김경진 교수

2. 복음서의 경우 본문을 서로 비교하고 분석한 후 그 차이를 설교해야 한다.

2.1. 마가복음 2.12, 누가복음 5. 26 : ‘오늘’

주님이 중풍병자를 모든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치유한 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매우 놀라워했다(막 2.12; 눅 5.26). 그런데 여기서 누가는 마가복음의 병행 구절에 ‘오늘’이라는 단어를 추가하였다. 신약성경에서 ‘오늘’(sh,meron)이라는 단어는 주님의 구원사역이 지금 작동 중이며, 동시에 그가 가져오신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이 현재 진행 중이라는 것을 가리키는 매우 의미 깊은 단어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 혹은 실현된 종말론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누가는 이 본문에서 ‘오늘’이라는 단어를 추가한 것은 바로 이러한 주님의 사역의 특징을 보여주기 위함인 것이다.

우리는 누가의 이러한 강조를 누가복음 4.21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주지하는 대로 누가복음 4.18-19은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주님의 취임설교이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到來)와 그에 대한 준비로서 회개를 강조하는 마가, 마태복음과는 달리, 누가는 이사야 61.1-2을 인용하면서 메시야 주님의 사역의 특징을 가난한 자, 눌린 자, 포로 된 자, 눈 먼 자를 위한 희년(Jubilee)의 복음을 선포하신 것으로 소개한다.1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4.21에서 ‘오늘’이란 단어를 사용하며, “오늘 이 글이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기록한 것이다. 모든 빚의 탕감과 질병으로부터의 치유 및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희년으로 주님 사역의 특징을 묘사하면서, 예수께서 그 희년이 오늘 성취되었다고 선포하신 것은, 역시 하나님 나라가 이미 이 땅에 임하여 작동 중임을 잘 드러내는 장면인 것이다.2

오늘에 대한 누가의 이러한 강조3는 마가복음과의 비교에서 드러난 결과이다. 따라서 설교자는 복음서를 설교할 때는 네 복음서를 서로 비교하여 그 차이를 철저하게 분석한 후 그 의미를 설교할 때, 비로소 하나님이 각 복음서를 다르게 기록하게 하신 본래의 하나님의 의도를 제대로 드러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2. 막 2.4, ‘지붕’; 눅 5.19, ‘기와’

본문 비교에서 드러나는 차이점 중 또 하나는 마가복음에서는 그냥 지붕이라고 표현한 것을 누가는 ‘기와’(ke,ramoj)4라는 매우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즉 그냥 지붕이 아니라 기와로 된 지붕을 가리킨 것이다. 이는 누가의 청중인 헬라사람들의 문화에 적합한 용어인 것이고, 이로써 우리는 누가의 대상인 수신인들이 유대인이 아니라 헬라인이라는 또 다른 증거를 확보하게 된다. 그리고 누가복음의 수신인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누가복음의 신학적 특징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단순히 단어 하나의 차이일 수 있지만, 본문 해석과 이와 관련된 설교 내용에 있어서 그 단어가 미치는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은 것이다.

복음서에는 병행 기사 혹은 병행 구절에서 이처럼 차이를 나타내 보이는 곳이 허다하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복음서 상의 이러한 차이는 중요하지도 않고, 따라서 큰 의미가 없다고 폄하하기도 한다. 만일 그 주장이 맞다면, 일점일획의 오류가 없는 하나님 말씀에 존재하는 그러한 차이가 그냥 우연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러한 차이를 복음서 기자들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셨을까? 축자영감설을 믿는 복음주의 진영에서 이처럼 복음서 상의 차이를 외면 혹은 회피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애당초 다르게 기록하게 하신 그 이유를 무시함으로써, 하나님의 기록 의도를 거스르는 불순종적 처사일 뿐이다.

복음서들 간의 이러한 차이 중 복음서 해석과 관련이 있는 몇 곳을 필자는 다른 논문에서 다루었으니 이를 참고하기를 바란다.5


주(註)

1. E. Schwiezer, The Good News according to Luke (Atlanta: John Knox, 1984), 88-89; B. J. Malina & R. L. Rohrbaugh, Social-Science Commentary on the Synoptic Gospels (Minneapolis: Fortress, 1992), 309.
2. Joel B. Green, The Theology of the Gospel of Luk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5), 78; J. A. Fitzmyer, The Gospel according to Luke (Anchor Bible; New York: Doubleday, 1981), 533.
3. 눅 2.11; 눅 23.43
4.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이곳에서 단 한번 사용되었다.
5. 김경진, 『공관복음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서울: 솔로몬, 2012), 145-172: “복음과 문화의 상관성”;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겉옷과 속옷’의 순서상 차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회칠한 무덤과 평토장한 무덤’의 차이”

김경진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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