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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위한 간절한 기도의 서막

기사승인 2021.02.12  20: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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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훈 교수의 기도 본문 해설(16)

김정훈 교수 / 영국 글라스고(Glasgow) 대학교 신약학 박사, 백석대학교 신약학 은퇴 교수, B and C Mission Center 현대표

   
김정훈 교수

한나의 기도(1): 아들을 주소서(삼상 1:9-18)

1) 기도의 정황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신 목적은 명실공히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출 19:6) 하나님의 통치 아래 안식을 누리며 살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나라의 형태는 신정왕국(神政王國)이었다. 하나님은 장래에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세우고자 할 것을 예측하시면서 그 왕을 통해 그들을 다스리실 것을 계획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출애굽 시대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이 훗날 주위의 모든 민족들처럼 왕을 원할 것을 예측하고 계셨다(신 17:14).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하나님은 예측되는 그들의 왕 옹립 요구 자체를 거부하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오히려 왕을 세워야 할 경우, (1) 어떤 사람을 왕으로 세울 것인지, (2) 왕이 된 사람은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지, (3) 왕위에 오른 자의 영적인 삶은 어떠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당부의 말씀을 주셨다.

(1) 어떤 사람을 왕으로 세울 것인가? 하나님은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것을 당부하셨다. 첫째, 하나님 자신이 택하신 자를 왕으로 세우라. 둘째, 타국인 말고 이스라엘의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세우라(17:15). 하나님이 택하신 자를 왕으로 세우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통치가 어렵게 되고 제사장 나라의 건립은 요원해질 것이다. 이스라엘의 형제가 아닌 타국인이 왕이 된다면 권력의 칼을 가진 왕과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발생함으로써 그들이 제사장 나라가 되기는커녕 심각한 참상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2) 왕이 된 사람은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가? 첫째,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며 특히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애굽으로 가지 말라. 둘째,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 셋째, 은금을 많이 쌓지 말라(17:16-17).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철저히 보호해 오셨고 또 장래에도 그렇게 지켜주실 것이기에 병기와 말들을 많이 두는 것은 당신의 뜻이 아니었다. 왕이 군수무기를 많이 두게 되면 하나님보다 무기 권력을 더 의지하게 될 것은 뻔한 일이었다. 특히 하나님은 병마를 많이 얻고자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하셨다. 당시에 애굽은 다양한 병기들과 수많은 말들을 가진 나라였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러한 군수무기 구입을 위해 애굽으로 간다는 것은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다시 세속주의와 결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처사는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 분명하다. 다음으로, 왕이 아내를 많이 두고 색욕을 탐닉하게 되면 하나님을 잊어 버리고 따라서 백성을 돌아보는 일이 소홀해지고, 수많은 자식을 두게 되면 나라가 난세에 빠지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또 왕이 은금을 많이 축적하게 되면 하나님보다 물질 권력을 더 의지하게 되고 허황된 생각에 사로잡혀 백성을 돌보는 일에 무관심하게 될 것이다.

(3) 왕위에 오른 자가 영적인 삶을 어떻게 영위할 것인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인 이스라엘의 왕은 자신이 먼저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는 레위 제사장들이 보관하고 있는 율법서 등사본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여 그것을 평생 자기 곁에 두고 읽어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고 그 안에 기록된 모든 말과 규례를 지켜 행해야 한다(신 17:18-19). 왕이 하나님의 통치의 통로가 되기 위해서는 그가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읽어 그를 경외하기를 배우며 또한 그 가운데 기록된 모든 말과 규례를 지켜 행해야 한다. 하나님은 왕이 이렇게 경건을 실천할 때 교만해지지 않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음으로써 그와 그의 후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 당신이 택하신 왕을 세우고 그를 통한 당신의 통치 가운데 안식을 누리며 제사장 나라로서의 면모를 나타내며 살기를 원하셨다. 가나안의 안식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땅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적들로부터 보호를 받고, 불안과 걱정, 슬픔, 고통이 없이 평화를 누리며 사는 것이었다(참조. 신 12:10; 25:19; 수 1:13, 15; 21:44; 22:4; 사 14:3; 28:12). 가나안의 안식은 인간 왕을 통한 하나님의 통치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었다. 한편, 하나님이 광야에서 주신 언약서(율법)는 그분의 통치 조감도와 같은 것이었고, 광야에서부터 등장한 성막은 그분의 통치방식(곧 인간 지도자를 세워 그가 주도적으로 통치하도록 하되 특별한 경우 하나님이 직접 현현하여 그에게 지시하시는 방식)의 상징이었다. 사실 하나님은 광야에서부터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어떻게 제사장 나라로서 발돋움해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을 다 그려 주셨다.

우리는 여호수아가 남긴 최후의 말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쉬게(안식을 뜻함) 하신 지 오랜 후에 장로들과 그들의 수령들, 재판장들, 관리들을 불러 모으고 “나는 나이가 많아 늙었도다”라고 하면서 연설을 시작하였다(수 23:1-2). 그의 연설 내용은 가나안 입성 초기 7년간 이곳에서 벌였던 정복 전쟁의 성격에 대한 언급과 당부, 경고적 예언으로 구성돼 있다. 첫째,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친히 싸우셨기 때문이고, 그들은 이 사실을 다 보았[]”(23:3), 아직 미완성된 정복도 동일한 패턴으로 이루어질 것이다(23:3-5). 둘째,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23:6). 특히, 아직 미정복된 원주민들에게 들어가 섞여 살지도 말고,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도 말고, 그것들을 가리켜 맹세하지도 말고, 그것들을 섬겨 절하지도 말라(23:7). 스스로 조심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23:11). 셋째, 만일 그들과 가까이하여 혼인하고 서로 왕래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쫓아내지 않으시고 그들로 이스라엘의 올무, 옆구리에 채찍, 눈엣가시가 되게 할 것이며,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가나안 땅에서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다(23:13). 이렇게 말한 후에 여호수아는 “나는 오늘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수 23:14 상)라는 말로 한 번 더 자신의 죽음을 예고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모든 선한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고 하나도 어김없이 자신들에게 다 응한 것을 “마음과 뜻으로 [알고 있으니]”(수 23:14 하), 결코 하나님이 명하신 언약을 어기고 멸망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당부한다.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백성의 대표자들을 향해 연설한 장소는 세겜이다. 이곳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이 모레 상수리나무 숲에 잠시 장막을 쳤던 곳이기도 하고(창 22:6),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귀향하여 정착지로 삼았다가 그의 딸 디나가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성폭력을 당했던 뼈아픈 역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고(창 34:2), 요셉이 형들의 시기로 생매장당할 뻔하다가 간신히 살아나 애굽으로 팔려갔던 기구한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창 37:13, 26, 28). 이스라엘의 대표자들은 이런 역사를 구전을 통해 듣고 마음에 새기고 있었을 것이다.

여호수아의 연설은 좀 더 연장된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하신 말씀을 그들에게 증언한다.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옛적에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메소포타미아(갈대아 우르)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을 때 아브라함을 강 저쪽(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내어 가나안 땅 전역(全域)을 두루 다니게 하였고 그의 ‘씨’(후손)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다. 야곱과 그의 자손들이 애굽으로 내려가 살았으나 오랜 세월(400년) 후에 내가 모세와 아론을 보내어 애굽에 재앙을 내리고 수많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내어 홍해를 건너게 했다. 이 출애굽한 백성이 요단 동편에서 아모리 족속과 싸울 때 내가 그들을 멸절시켰다. 특히 모압 왕 발락이 주술사 발람을 앞세워 이스라엘에게 저주를 퍼부으려 할 때 내가 도리어 그들에게 축복하게 하여 발락의 손에서 건져냈다. 그들이 요단을 건넌 후 여리고에 이르러 그곳 주민들 곧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가나안 족속, 헷 족속, 기르가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과 싸울 때 내가 그들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그들이 요단 동편에서 아모리 족속의 두 왕(시혼, 옥)과 싸울 때도 내가 그들보다 앞서 ‘왕벌’(hornet. 말벌, 호박벌)을 보내 그들의 군사들을 쫓아냈다. 그들의 칼이나 활의 힘이 아니었다. 내가 그들이 수고하여 일구지 않은 가나안 땅과 그들이 건설하지 않은 도시들을 그들에게 주었다. 그래서 그들이 자기가 심지 않은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고 있다”(수 24:2-13. 나의 요약). 이스라엘의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첫째, 역사의 설계자요 주관자는 하나님이시고, 둘째, 이스라엘은 갖가지 역사의 현장에 직면하고 있고, 셋째, 이스라엘이 역사의 현장에서 고뇌할 때 그들을 승리로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보여준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수 24:14)라고 당부하고 결단을 촉구하였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여호수아의 확고한 입장표명에 백성들이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수 24:16)라고 대답하면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수 24:18 하)라고 고백하였다.

여호수아는 백성의 태도를 지켜보면서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그들이 만약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고 그들을 죽이실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이에 백성은 다시 한번 “아니니이다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수 24:21)라고 다짐하였다. 이에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리라 하였으니 스스로 증인이 되었느니라”라고 하였고, 백성은 “우리가 증인이 되었나이다”라고 하였다(수 24:22). 이처럼 맹세는 스스로 증인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여호수아는 백성이 못내 신뢰가 가지 않아서였는지 또다시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워 버리고 너희의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수 24:23)라고 당부하였으며, 이에 백성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의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수 24:24)라고 응답하였다.

이와 같이 여호수아는 백성으로부터 재삼, 재사 다짐을 받은 후에 언약을 갱신하였다: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였더라”(수 24:25). 여호수아는 그날 하나님이 주신 말씀들과 자기와 백성 간에 오간 말들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취하여 여호와의 성소 곁의 상수리나무 아래에 세웠다(수 24:26).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그 돌이 그날 일의 증거가 되고, 그 돌이 하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을 들었으므로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부인하면 그 돌이 그들에 대해 증언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수 24:27).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도 이처럼 새 언약(31:31-34)의 체결 사건인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계속 되새기며 살아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2:15; 4:24)의 옷을 입었다면 매일 새 사람의 삶을 살기 위해 힘써야 한다. 여호수아는 백성을 위해 언약을 갱신한 후에 그들을 각기 자기 유산(분배받은 땅)으로 돌아가도록 하였고, 자신은 110세를 일기로 세상 사역을 마감하였다(수 24:29).

자, 그럼 여호수아가 떠난 이후 이스라엘 백성 삶은 어떠하였나? 여호수아의 마지막 사역인 언약 갱신에 참여한 대표자들은 대부분 제3세대의 장년층이었다. 여호수아의 사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소위 사사시대(약 300-400년 정도. 계산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350년 정도라고 보면 무방할 것이다)라 불리는 혼돈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자신들이 맹세한 바를 따라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삿 1:1) 아직 남은 정복 전쟁에 충실한 듯이 보였다(삿 1:1-36). 그러나 그들의 정복전쟁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들은 본토인들을 다 쫓아내지 못하고 그들로 자기들 가운데 거주하도록 허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삿 1:19, 20, 21, 28, 29, 30, 31, 32, 33). 하나님은 천사의 모습으로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와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를 애굽으로부터 불러내어 너희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한 땅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나는 너희에게 ‘내가 너희와 맺은 내 언약을 영원히 깨뜨리지 않을 것이니, 너희는 토착민들과 언약을 맺지 말고 그들의 제단들을 헐어 버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너희는 내 말을 순종하지 않았다.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는가? 나는 그들을 쫓아내지 않으면 그들이 너희의 옆구리에 가시가 되고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삿 2:1-3. 나의 버전). 여호와의 사자의 책망에 이스라엘 백성이 통곡하였으므로 그곳 이름을 보김(우는 자들)이라 하였고,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다(삿 2:4-5).

하지만 제3세대의 젊은이들과 청소년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고, 그가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다(삿 2:10). 역사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세대는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 버렸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하나님 눈앞에서 악을 행하였고, 자기 조상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신 하나님을 버리고 그들 주위의 다른 신들 곧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다(삿 2:11-13). 이는 하나님의 언약의 핵심을 파손하는 행위였다. 이스라엘의 배교행위는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에 충분하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약탈자들의 손에 넘겨 주셨고 또한 그들의 대적자들의 손에 팔아넘기셨으며,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재앙을 내리셨다(삿 2:14-15). 이에 이스라엘은 이런 상황이 이전에 하나님이 경고하시며 맹세하신 대로 된 것 같아서 극심한 괴로움을 겪어야 했다.

하나님은 이런 상황을 보시고 사사들을 세워 약탈자들의 손에서 그들을 구출해 주셨다(삿 2:16)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않고 다른 신들에게 자기 자신을 팔고(영적 음행) 그것들에게 절을 하였으며,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다(삿 2:17). 하나님은 당신을 팽개쳐 버린 이 세대를 위해 사사들을 세우시고 그들이 사는 날 동안에는 이스라엘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해 주셨다. 하지만 사사가 죽은 후에는 이스라엘이 또 다시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였다(삿 2:19). 그들은 이러한 행위를 계속하였고 완고한 길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그들의 조상과 맺은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때,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 둔 이방 민족들을 쫓아내지 않은 채 그대로 남겨 둘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이스라엘이 자기 조상들처럼 당신의 도(道)를 지켜 행하는지 아니하는지 시험하심으로 이방 민족들을 이스라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함이었다(삿 2:22). 하나님은 선한 의지(意志)로써 당신의 백성의 구원과 안식을 위해 시험하시는 분이시다(삿 3:1, 4). 하나님이 이방 민족들을 남겨놓으신 것은 이스라엘 신세대가 가나안 땅에서의 안락한 삶을 당연시 여길 뿐 어떤 전쟁을 거쳐 거기까지 이른 것인지 알지 못하므로 그들로 전쟁의 고통을 가르쳐 그들이 현재 경험하고 있는 안식의 의미를 깨우쳐 주시기 위함이었다(삿 3:1, 2). 신세대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도 없고, 자기 민족이 지닌 특별한 가치와 역사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채, 남겨진 이방 족속들 곧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그들의 딸들을 맞아 아내로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고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다(삿 3:5-6). 이쯤 되면 이 세대는 하나님을 잃어버린 세대, 하나님의 언약을 망각한 세대, 거룩한 나라는커녕 세속주의에 매몰된 타락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다른 말로 자신들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을 어둠의 바닷속으로 내던져 버린 어리석은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후에 진행된 이스라엘의 삶은 비극의 연속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살아남은 이방 민족들에 의해 끊임없이 괴로움을 당해야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소망의 빛이 꺼진 듯한 그들의 암담한 현실 가운데 처해 있을 때마다 구원의 손길을 뻗으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절체절명의 위기 가운데 있을 때마다 사사를 보내어 그들을 구출해 주셨다. 처음 사사 옷니엘이 등장하기 전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겼다(삿 3:7). 이에 하나님은 당신을 잊어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는 이스라엘을 이방 권력자의 손에 팔아넘기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형성부터 지금까지 지나온 과거를 생각할 때 그들이 이방 신을 섬기도록 방치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은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넘기셨고, 이스라엘은 8년 동안 그를 섬기며 고통을 쓴맛을 보아야 했다. 그들은 고통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이것은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알면서도 이방 신들을 섬겼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에 한 구원자 곧 갈렙의 조카 옷니엘을 사사로 세워 리사다임을 물리치게 하셨다. 그 결과 그 땅에 평화가 찾아왔다(삿 3:8-11).

이와 같이 처음 사사 옷니엘을 비롯하여 마지막 사사 사무엘에 이르기까지(16명의 사사) 350년간의 사사시대 역사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우상숭배 응징 부르짖음 하나님이 세우신 사사에 의한 구원 평화 우상숭배의 싸이클을 반복하였다. 어떤 사람은 사사시대의 이러한 악순환을 “나선형적 하향 구조”라고 묘사한다. 사사시대에 이러한 과정이 되풀이되는 동안 이스라엘의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갔다. 이시대에 이스라엘의 상황을 살펴보면, 이방 민족과의 전투에서 길르앗이 거둔 승전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도록 참전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는 에브라임의 불만으로 인해 길르앗과 에브라임 지파 간에 처절한 골육상쟁을 벌이기도 하였고(삿 12:1-7), 악행을 저지른 베냐민 지파에 대한 응징을 명분으로 베냐민 지파와 나머지 11 지파 연합군 간에 대대적인 내전(內戰)을 벌이기도 하였으며(삿 20:12-46), 사사 삼손은 나실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힘의 비밀을 블레셋 여인 들릴라에게 누설함으로써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혀가 눈알을 뽑히고 놋줄로 결박당한 채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기도 하였고(나중에는 복수를 하고 자기도 죽음), 에브라임 산간 지대에 거주하는 미가라는 사람은 자기 어머니와 합세하여 집에 은 신상을 만들어 놓고(에봇, 드라빔도 제작함) 유다 베들레헴 출신의 레위 청년 하나를 제사장으로 세워 우상숭배하며 여호와의 복을 구하기도 하였다(삿 17:1-13). 또한 사사시대 마지막 1/3 기간에는 이스라엘이 이방 민족들(모압, 블레셋, 미디안, 아말렉, 암몬 등)의 침략으로 인해 심히 시달림을 당해야 했다. 특히 비셈쪽 계열의 호전적 해양민족인 블레셋(이들의 원거주지는 크레타 섬)은 사사 입돈이 죽은 후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혔다. 이들의 공격은 왕정시대로까지 이어졌으며, 사무엘의 활동 초기에는 이스라엘 군사 4,000명이 아벡(에벤에셀) 전투에서 죽임을 당하는 참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삼상 4:1-2).

그럼 왜 하나님은 가나안에 들어간 당신의 백성이 최단 기간에 그 땅을 완전 정복하고 천하를 호령하며 살게 하시지 않고 오랜 세월 혼돈의 사사시대를 통과하게 하셨는가? 하나님의 뜻은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은금으로 성을 쌓고 패권을 휘두르며 사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뜻은 그들이 가나안의 신들에 취하여 배교와 음행을 일상화하며 사는 것이 아니었다. 이 사실을 깨닫기까하나님의 뜻은 당신이 택하신 왕의 통치 아래 그들이 당신의 언약을 지키며 당신을 섬기는 가운데 당신의 보호, 공급, 인도 가운데 거룩한 제사장 나라(19:6)를 실현하며 사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들은 약 350년간의 연단을 받아야만 했다. 그들은 하나님이 없이는 그리고 하나님의 뜻의 성취를 위해 그가 택하신 헌신된 통치자가 없이는 언약 백성으로서 그가 설계하신 제사장 나라를 이룰 수도 없고 참된 안식을 누릴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랜 세월의 반복 학습을 필요로 하였다. 이러한 역사 해석의 정당성은 사사기 부록(삿 17:1-21:25) 처음 부분의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17:6)와 맨 끝의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라는 쌍괄식 대귀(對句)에 의해 증명될 수 있다. 이 두 진술은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행태가 어떠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이스라엘은 그들 위에 왕을 세워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진정한 이스라엘의 왕은 역사 속에서 검증된(?) 하나님이 되셔야만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이 직접 나타나 무작위적 방식으로 통치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또 하나님은 때마다의 상황에 따른 긴급대처 방식으로 권력자를 세워 통치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통치하시되, 당신의 뜻에 합한 인간 왕을 세워 당신의 통치를 대행케 하고자 하신다. 하나님은 한 번도 당신이 이스라엘의 왕이기를 포기하신 적이 없다(참조. 삼상 8:7). 사람들은 이러한 통치방식을 보통 신정정치(theocracy)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신정정치의 핵심은 하늘 위에 계신 하나님이 통치의 정점에 계신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신정정치를 표방하는 나라들을 미개하게 보고, 그러한 정치체제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 이유는 그런 나라들의 권력자들이 보통 자신의 통치권이 신으로부터 이양(移讓)된 것처럼 행동할 뿐 아니라, 자신의 모든 행위 곧 폭력과 독재까지도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그 어떤 경우에도 부패한 인간에게 당신의 통치권을 이양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지금 하나님은 승귀의 그리스도께 당신의 통치권을 맡기시고 그로 만유를 통치하게 하신다. 세상 나라들이 지향해야 할 최상의 통치이상(統治理想)은 권세자가 자기 위에 참신 하나님이 하늘에 계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언약(복음으로 성취된 율법)을 따라 자기 백성에게 선정(善政)을 베푸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언약적 진리를 알기 위해 힘써야 하고, 하나님이 자신의 통치 행위에 직접 혹은 간접으로 간섭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결론적으로 사사시대의 사사들은 진정한 신정정치를 구현할 이스라엘의 왕으로 대치되어야 필요가 있었다. 하나님은 이 필요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고, 이 일의 성취를 위해 은밀한 준비를 진행하고 계셨다. 하나님은 제사장 나라를 실현할 왕을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당신의 마음에 합한 후보자를 찾고 당신의 권위로써 왕을 옹립할 킹 메이커(king maker)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시 정황상 사사급의 인물일 뿐 아니라, 백성의 존경받는 지도자급 인물이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당신과 긴밀히 소통할 수 있는 제사장급, 선지자급 인물이어야 한다고 판단하셨다.

김정훈 교수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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