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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손 대대로 복을 받는 기도(1)

기사승인 2021.03.10  15:2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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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훈 교수의 기도 본문 해설(20)

김정훈 교수 / 영국 글라스고(Glasgow) 대학교 신약학 박사, 백석대학교 신약학 은퇴 교수, B and C Mission Center 현대표
 

   
김정훈 교수

다윗의 기도(1): 종의 집이 주 앞에 견고하게 하소서(삼하 7:18-29)

1) 기도의 정황

본문은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으로 즉위한 후, 멋진 궁전을 짓고 왕궁에 거하게 된 뒤에 나단 선지자의 신탁을 듣고 감격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내용이다. 이 기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기도의 역사적 정황을 살필 필요가 있다. 사사시대의 혼란기에 하나님은 불임으로 인해 수모와 고통 가운데 있던 한나를 통해 사무엘을 출산하게 하셨고, 사무엘은 어린 시절부터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드려져 엘리 제사장의 지도 아래 영적 훈련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어린 사무엘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잘 감지하지 못하여 엘리 제사장에게 뛰어가곤 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돌보심 가운데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성장해 갔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엘리는 부패하고 무능한 제사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역할하고 있는 기간에 사무엘이 출생하고 그 밑에서 사무엘이 자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인간적 조건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어떤 악한 환경을 조성하고, 해괴한 일을 행한다 할지라도 심판과 용서를 병행하시며 당신의 원대한 뜻을 실현해 가신다. 하나님은 언약과 언약의 신실한 이행을 통해 당신의 영원한 계획을 성취시켜 나가신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숙명론적 틀 안에 가두어 놓고 당신의 뜻을 관철해 나가시는 것이 아니라 한나와 같이 당신의 계획을 이해하고 진실된 믿음과 열린 영안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궁극적 완성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통해 성취시켜 나가신다. 물론 한나가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와 장차 전개될 미래에 대해 완벽한 지식을 다 갖추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한나가 조상의 역사를 회고하며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고 미래적으로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를 전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에 하나님은 당신의 영을 더욱 부으셔서 더 큰 확신 가운데 신약시대에 그리스도(메시야)의 오시는 지점에까지 예언적 음파를 보낼 수 있는 찬송시를 그 입에 넣어 주셨을 것이다.

엘리 제사장이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40년간 다스려온 시점(삼상 4:18)이 되었을 때 그는 98세가 된 극노인이었다. 그는 눈이 잘 보이지 않았고, 비둔하여 몸도 뻣뻣하고 기운이 없어 여호와의 전 문 곁의 의자(참조. 삼상 1:9; 4:18)에 앉아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아벡 전투(삼상 4:1-11)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 시점에 이르기 오래 전부터 두 아들(홉니와 비느하스)을 “여호와의 제사장”(삼상 1:3)으로 세우고 자기를 돕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 두 아들은 불량한 자들이었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삼상 2:12). 이것은 히브리어 성경 원문을 의역한 것으로, 원문을 직역해 보면 “엘리의 아들들은 ‘벨리알의 아들들’(베네 벨리알)이었다. 그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다”이다. 한나가 자기가 술에 취한 것으로 오해한 엘리에게 자기를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말라(삼상 1:16)고 한 적이 있다. 이때 “악한 여자”는 문자적으로 “벨리알의 딸”(아트 벨리알)이다. “벨리알”은 “무익한, 무가치한, 사악한, 불량한”이란 뜻인데, 바울서신에서는 이 단어가 “사탄”이란 의미로 사용된다(고후 6:15).

사실 엘리의 두 아들은 불량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들은 백성이 제물로 드린 삶은 고기를 갈고리를 이용하여 훔치기도 하고, 삶기도 전에 제사장 핑계를 대며 생고기를 억지로 빼앗기도 하였다(삼상 2:13-16). 이는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는 행위였다(삼상 2:17). 그들의 악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에게 성폭행을 가하기도 하였다(삼상 2:22). 엘리는 자기 아들들 때문에 백성의 원성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엘리는 아들들에게,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삼상 2:25)라며 책망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악행을 계속하였다. 이에 대해 삼무엘상 저자는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삼상 2:25)라고 진술한다. 이 말은 하나님이 함정을 파서 그들이 숙명적으로 죽도록 만드셨다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은 그들이 스스로 악행을 하다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인데, 하나님은 그들을 내버려 두심으로 심판하실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결국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인지 미리 아셨을 것이다.

실로의 회막이 부패의 온상이 되어가고 있을 때 사무엘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은총을 받는 자로 점점 성장해 갔다. 이는 아브라함 때부터 주신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다른 말로, 하나님 나라와 그의 백성)의 약속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시기를(참조. 23:21; 17:14-15)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엘리 제사장 가문의 부패가 극에 달했을 때, 하나님은 익명의 한 선지자(“하나님의 사람.” 삼상 2:27; 참조. 9:6-10; 10:5, 10)를 엘리에게 보내어 그와 그의 아들들이 당신께 드려진 제물과 예물을 짓밟으며 그가 당신보다 아들들을 더 중히 여겼으므로 그의 가문을 멸절시킬 것을 예고하셨다(삼상 2:29-31). 이 예고는 두 아들이 한 날에 동시 사망함으로써 표징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삼상 2:34). 하나님은 거의 동일한 내용의 말씀을 여호와의 전 안에서 누워 잠을 자던 사무엘에게 재차 확인시켜 주셨고, 사무엘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엘리에게 숨김없이 전달하였다(삼상 3:3, 18).

한편 사무엘은 점점 장성하여 갔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심으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삼상 3:19). 이는 그의 모든 말이 중하고 신실하여 백성의 신뢰를 얻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항상 하나님의 뜻을 찾았고, 하나님은 그에게 당신의 말씀을 넣어 주셨으므로 백성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온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사무엘을 선지자로 세우신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삼상 3:20). 사무엘은 가나안 땅 남단의 브엘세바(사해 남서쪽)에서 북단의 단(갈릴리 호수 훨씬 북쪽)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오가며 통치하였다(삼상 3:20). 그는 매년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를 순회하며 이스라엘 전 지역을 다스렸고, 때로 자기 집이 있는 라마로 돌아가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다(삼상 7:16-17). 그는 라마에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기 위한 제단도 마련해 놓았다(삼상 7:17). 여호와 하나님은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셔서 공적 인정을 받은 선지자 사무엘에게 당신의 말씀으로 당신을 나타내셨다(삼상 3:21). 이는 사무엘이 어린 시절 엘리 앞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 그분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던 것(삼상 3:1)과 대조된다. 이제 백성에게 신뢰를 확보한 사무엘의 말은 이스라엘 전역으로 전파되었다(삼상 4:1).

사무엘이 이스라엘 전역을 통치하기 시작하였을 때 엘리와 그의 아들들은 여전히 생존해 있었다. 이때 염해 서쪽 지중해 연안에 본거지를 둔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공해 왔다. 이스라엘 군대는 에벤에셀에 진을 쳤고 블레셋 군대는 아벡에 진을 쳤다. 양 진영이 대오를 벌이고 전투를 벌였는데 이스라엘 군사가 패하고 4,000명 가량이 전사하였다. 이에 이스라엘 장로들이 실로에서 언약궤를 가져다가 메고 나가면 그것이 이스라엘을 승리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미신적 발상이었다. 언약궤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기 때문인데, 그들에게는 언약을 주신 하나님은 없고 마술상자 같은 언약궤만 있었다. 백성은 사람을 보내어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왔고 홉니와 비느하스는 언약궤 곁을 지켰다(삼상 4:5).

여호와의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영에 들어올 때 군사들은 땅이 울릴 정도로 함성을 질렀고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신이 들어왔다고 하며 잠시 두려워하였으나, 그들이 더욱 전의(戰意)를 불태우며 이스라엘과 접전함으로 이스라엘은 군사 30,000명이 살육당하고 크게 패하였다. 더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법궤마저 탈취를 당하였다. 이때 법궤 옆을 지키던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다. 이는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였다(삼상 2:3-4). 이 패전 소식과 함께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다는 충격적 보고와 두 아들이 죽었다는 비보를 들은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 곁의 의자에 앉아 있다가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사망하였다(참조. 삼상 4:17-18).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간 블레셋은 아스돗으로 이 궤를 가져다가 그들이 섬기는 신인 다곤 신전에 두었는데 다곤 신상이 다 부서져서 궤 앞에서 내동댕이쳐져 있었고, 아스돗에 재앙이 일어나 사람들이 독종을 앓게 되었다. 블레셋 사람들이 독종으로 인해 견딜 수가 없어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냈다. 그러나 그곳 사람들이 자신들을 죽이려는 것이냐며 강한 항의를 하였다. 실제로 에그론 성읍 사람들도 하나님의 손이 엄하게 치심으로 수많은 사람이 독종으로 인해 사망하였다. 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의 권능의 징표였다. 결국 블레셋 사람들은 여호와의 궤를 돌려보내기로 결정하고 소 두 마리가 끄는 새 수레에 실어 벧세메스로 돌려 보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보다가 여호와의 손이 치심으로 “칠십 명”이 죽임을 당하였다(삼상 6;19). 이 역시 언약궤가 상징하는 대로 엄위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현장에서 보여주시는 사건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궤도 중요하지만 궤가 가리키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가 권능을 행하신 다는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삼상 7:20)라고 하며 궤를 기럇여아림으로 보냈다. 그들의 말은 궤를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고백이었다. 그들은 궤를 구원의 마술 상자처럼 여겼던 이스라엘 장로들(삼상 4:3)의 차원을 넘어서서 그 궤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보았던 것이다. 또한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라는 고백은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사무엘을 여호와의 전에 바친 후 감격의 찬가를 부르며 행한 하나님 고백(“거룩하신 이.” 삼상 2:2)과 동일한 고백이다. 벧세메스 사람들의 고백은 이스라엘이 꽤 정상궤도로 돌아오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준다. 기럇여아림으로 옮겨진 언약궤는 20년 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었고 이스라엘 온 족속은 여호와를 사모하였다(삼상 7:2).

사무엘은 선지자요, 사사요, 제사장(삼상 3:20; 4:18; 7:17; 참조. 13:8-9, 12-13)으로서 크게 세 가지 활동에 주력하였다(삼상 7:3-9). 그의 활동은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며 살 것인지에 대해 여러 가지 중요한 암시를 준다. (1) 사무엘은 백성의 영성 회복을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이 일을 위해 그는 두 가지 사역 곧 회개운동과 기도운동에 집중하였다. 첫째, 그는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호소하였다.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고 오직 그분만을 섬기라고 호소하였다. 이는 언약 제1계명을 상기하고 지키라는 호소였다. 오늘날 우리의 믿음 생활에서도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앞에 다른 신을 두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가이다. 사무엘의 호소는 이스라엘은 백성이 참신 하나님을 떠나 수많은 토속신과 당시 가나안 땅에서 이름난 신들을 섬겼다는 것을 보여준다. 믿는 자들이 하나님만 섬긴다고 하면서도 의식 또는 무의식 중에 다른 신을 섬길 때가 많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이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내실 것이라고 설득하였다. 사무엘은 하나님을 바로 섬길 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평화를 주시는 분이심을 확신하였다. 사무엘의 호소에 이스라엘 백성은 바알들(가나안 최고 남신)과 아스다롯(가나안 최고 여신)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겼다. 둘째, 사무엘은 백성을 미스바로 모이게 하고 기도운동을 전개하였다. 미스바는 사무엘이 백성을 다스리는 중심 도시였다. 사무엘은 그들의 안전한 삶을 위해 그들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약속하였다. 이에 그들은 금식기도를 하며,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회개 기도를 올렸다.

김정훈 교수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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