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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손 대대로 복을 받는 기도(9)

기사승인 2021.05.06  16: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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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훈 교수의 기도 본문 해설(28)

김정훈 교수 / 영국 글라스고(Glasgow) 대학교 신약학 박사, 백석대학교 신약학 은퇴 교수, B and C Mission Center 현대표
 

   
김정훈 교수

다윗의 기도

3) 기도의 내용

다윗의 기도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너무도 위대하고 숭고하여 그 뜻을 확연히 이해할 수는 없었을지라도, 하나님이 자신과 자신의 집을 주권적으로 인도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고백과 이스라엘의 장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자신의 깨달음의 표명, 이스라엘 나라의 특별성에 대한 자신의 이해에 대한 진술,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의 성취에 대한 기원으로 구성되어 있다(삼하 7:18-29). 무엇보다도 다윗은 나단의 신탁을 듣고 자기가 하나님께 지어 드리고 싶어하는 성전과 자기의 왕조가 하나님이 출애굽 때부터 계획하신 제사장 나라 건설과 맞물려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전까지는 그렇게까지 긴 안목으로 자신의 현재와 자신의 후손에게 적용될 먼 미래의 일들에 대해 깊이 통찰할 수 없었다. 다윗은 단지 소박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집을 지어드리고 싶었을 뿐이지 “하나님의 집”(성전)이 그렇게 깊은 의미를 지닌 것인지 알지 못하였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통치 하에 있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성된 특별한 “나라”라는 것과 이 나라가 영원할 것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참조. 삼하 7:12-13, 16, 23-24). 본문 내용을 몇 단락으로 나누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1)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감사의 고백: 나와 내 집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18절)

   
 

다윗은 자신이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 되어 예루살렘을 “다윗 성”이라 명명하고, 이곳에 백향목 궁전을 짓고 평화를 누리게 된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가 아니었다면 그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언약궤가 안치된 장막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 앞에 앉아 이렇게 기도한다: “주 여호와여 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삼하 7:18). 다윗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화려한 궁전에 거하게 된 것은 자신에게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거나 자기 “집”(여기서는 “가문”이라는 뜻)이 다른 집보다 탁월한 무엇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다윗은 자기가 살아온 과정을 생각할 때 그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의한 것이었다.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고 판단하시는 하나님께서 노(老) 선지자 사무엘을 어린 소년에 불과한 자기(이새의 여덟 아들 중 말째)에게 보내셔서 기름 부음을 받게 하심으로(장남 우대 풍속에 비추어볼 때 상상하기 힘든 일) 이스라엘의 차기 왕으로 내정해 주신 일(삼상 16:13), 연소함에도 불구하고 악령에 시달리는 사울 왕의 수금 타는 궁중 악사 겸 경호관이 된 일(삼상 16:14-23), 이스라엘 백성을 공포에 떨게 했던 블레셋 장수 골리앗에게 물매 돌을 날려 쓰러뜨렸던 일(삼상 17:48-51),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삼상 18:7)이라는 백성들의 환호에 분노한 사울이 자기에게 창을 던져 벽에 꽂아 죽이려 할 때 위기에서 살려 주신 일(삼상 18:10-11), 사울이 블레셋과 접전하고 있는 전장(戰場)의 최전선에 내보내어 전사(戰死)시키려던 음모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신 일(삼상 18:17-29), 사울의 집요한 추격을 받으며 쫓겨 다니는 중에 엔게디 굴(삼상 24:1, 4)과 십 광야(삼상 26:2, 5-7)에서 사울을 처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가졌으나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왕을 결코 죽일 수 없다(삼상 24:6; 26:8)는 일관된 신앙적 원칙을 고수할 수 있도록 지켜주신 일, 잠시 피신해 있던 가드 왕 아기스 앞에서 미치광이 연기를 하고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해 주신 일(삼상 21:10-15),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유다의 한 성읍 헤브론으로 가서(삼하 2:1) 유다 사람들에 의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옹립되었던 일(삼하 2:4), 북부 지역 이스라엘의 실권자 아브넬과 이스보셋 왕(사울의 아들)이 살해된 후에 기름 부음을 받고 통합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되었던 일(삼하 5:3),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된 후에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그곳을 새 수도로 정한 후에 “다윗 성”이라 명명한 일(삼하 5:7, 9), 하나님의 전략을 따라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고 왕권을 강화할 수 있었던 일(삼하 5:17, 19, 23-25), 언약궤를 수소문하여 우여곡절 끝에 다윗 성 예루살렘으로 무사히 옮겨와 장막 안에 안치했던 일(삼하 6:1-2, 5, 10-19; 대상 15:1; 16:1)... 이 모든 일 배후에는 이스라엘의 주권자 하나님이 계셨다.

또한 다윗은 자기 가문이 이스라엘 다른 족속보다 뛰어나서 왕조의 가문이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사울이 왕의 권력을 이용하여 사무엘의 제사장직을 침범하고 번제를 드리는 월권행위를 했을 때 당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를 당신의 백성의 지도자로 내정하셨다(삼상 13:12-14).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후일에 다윗으로 드러났다. 사울은 제사장직에 대한 심각한 월권행위 이후에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포획한 살진 양들과 소들을 하나님께 대한 제사를 핑계로 따로 살려 두었다. 이는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진멸하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아무것도 남기지 말라는 하나님의 “헤렘” 명령(삼상 15:3)을 거역한 행위였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이 거주하던 지역을 통과하고자 할 때 그들이 허락하지 않았던 일을 기억하시고 징벌하고자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의 가나안 행군을 훼방하는 세력들을 최적의 순간에 반드시 심판하신다. 사울의 변명에 사무엘은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22-23)라고 책망하였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계기로 한 번 더 사울의 왕위 박탈을 결심하셨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사울의 왕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것을 분명히 하셨다(삼상 15:23, 28).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가서 그의 아들들 중에 당신이 점지하시는 자에게 기름을 부어 차기 왕으로 내정해 두라고 명령하셨다(삼상 16:1, 3). 사무엘은 베들레헴으로 가서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이새의 말째 아들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삼상 16:12-13). 이 일은 이새의 가문이 다른 족속들보다 특출나서가 아니라 구원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전적 주권에 의한 것이었다.

우리는 이새의 족보를 족장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면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이고, 야곱은 이삭의 둘째 아들이고, 이삭은 아브라함의 둘째 소생으로서 하나님의 약속으로 낳은 적장자(嫡長子)다. 다윗의 족보는 인간의 권위 질서나 상속법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미 언급한 대로, 결국 다윗은 유다 사람들의 지지로 가나안 남부지역의 왕으로 추대되었다가 나중에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합의로 기름 부음을 받고 가나안 전 지역을 통치하는 통합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되었다. 이 모든 과정을 생각할 때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의 결과였다.

(2) 하나님의 장래 계획에 대한 이해 표명과 그분을 향한 신앙고백(19-22절)

다윗은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통해 주신 계시의 말씀에 대해 단지 자기 개인이나 가문이 받은 복에 대한 감사의 고백으로 반응하면 될 정도의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있을 먼 장래의 일까지도 말씀하셨나이다 주 여호와여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다”(19절). 이 고백은 두 가지 중요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다윗은 나단이 받은 신탁에 자신의 왕조를 통해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영원한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그의 왕조를 세워 주시고 그의 나라를 영원히 보전해 주시며 견고하게 해 주시리라고 하신 약속(삼하 7:11하-16)은 다윗으로서는 분에 넘칠 뿐 아니라 상상할 수조차 없고 감당하기 어려운 축복의 말씀이었다. 다윗은 이 약속이 자기나 자기 이후 몇 대(代) 정도에 그칠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감지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집에 일어날 “먼 장래의 일까지” 말씀해 주셨다고 고백하고 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표본으로 하는 이스라엘 왕조 역사를 통해 당신의 영원한 뜻을 나타내시며 그 뜻을 성취해 가시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다윗은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세상 역사 속에서 어떻게 성취되고 그것이 최종 완성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게 될 것인지는 다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말씀이 단기간의 어떤 역사(歷史)에 관한 예언이 아니라는 것을 감지하였다. “먼 장래 일”은 결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것(마 1:1, 6, 20; 9:27; 12:23; 15:22; 20:30-31; 21:9, 15; 22:42)과 그가 “하나님의 성전”이신 것(마 26:61; 27:40; 요 2:21), “안식일의 주인”이신 것(마 12:8; 막 2:28; 눅 6:5), 교회의 머리이신 것(엡 1:22; 4:15; 5:23)으로 나타났다. 좀 더 확대 해석하자면, “먼 장래 일”은 “보좌에 앉으신 이”가 새 창조와 최종 성취를 선언하시며 주의 나라의 최종 완성을 약속하시는 것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었다(계 21:5-7).

둘째, 다윗은 자신의 왕조를 통해 하나님이 먼 장래에 이루고자 하시는 영원한 뜻이 인류를 위한 대헌장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주 여호와여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다.” 여기서 “이것”은 다윗의 집에 있을 먼 장래의 일까지 포함하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을 가리킨다. 따라서 다윗의 고백은 자신을 필두로 하는 이스라엘 왕조의 먼 미래의 사건까지 포함하는 하나님의 원대하신 계획이야말로 “사람의 법”(토라 하아담), 곧 인류가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할 삶의 대준칙이라는 말이다. 출애굽 사건의 관점에서 볼 때, 다윗 왕조의 출현은 제사장 나라 곧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역사적 실현 국면이며, 결국 메시야의 오심과 함께 성취될 하나님 나라의 예표적 사건이었다. 따라서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을 이해하고 그 뜻에 따라 사는 삶이야말로 인류의 대강령(大綱領)이 되어야 한다. “제사장 나라 – 하나님 나라” 개념은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고 처음 창조 때부터 피조세계에 대해 세우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을 묘사하는 가장 큰 개념이다. 이 개념을 저버린 인간의 삶은 하나님의 법칙에서 벗어난 허무하고 무의미한 삶이다. 인간의 소외는 그의 사회적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로부터 오는 것이다.

다윗은 자신의 왕조를 통해 제사장 나라를 실현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이와 관련하여 하나님이 인류에게 베풀어 주신 삶의 대원리를 생각할 때 다음과 같은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첫째, 하나님은 주의 종을 너무도 잘 아시오니 저는 주께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주 여호와는 주의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20절). 이 고백은 마치 욥이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욥 40:4)라고 고백한 것과 흡사하다. 욥의 이 고백은 하나님이 “트집 잡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을 탓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욥 40:2)라고 다그치신 말씀에 대한 반응이다. 오늘날 많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보다 뛰어난 통치자인 양, 그분보다 탁월한 학자인 양, 그분보다 우월한 능력자인 양 하나님을 트집 잡고 원망하는 것 같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을 책망하고 가르치려는 듯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뜯어고치려는 듯이 오만하게 행동하는 것 같다.

둘째, 하나님은 친히 언약하신 말씀을 근거로 당신의 뜻을 따라 이 모든 위대한 일들을 행하셨고 주의 종으로 깨닫게 하셨습니다.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21절). 다윗은 하나님이 아브라함 때부터 주신 언약과 출애굽 사건, 시내산 언약, 사사시대의 혼란, 왕정시대의 개막을 반추하면서 자신의 왕조가 하나님의 특별한 도우심 가운데 출범하게 된 것을 음미하는 가운데 이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언약(말씀)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분의 뜻을 따라 진행된 위대한 일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믿는 자의 신앙의 깊이는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일들에 대해 얼마만큼 깨닫고 확신하느냐에 달려 있다. 다윗은 역사 속에서 움직이신 하나님의 신실하신 손을 섬세하게 느끼며 이렇게 고백한다: “그런즉 주 여호와여 이러므로 주는 위대하시니 이는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신이 없음이니이다”(22절). 다윗은 언약의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분의 유일성(신 6:4도 볼 것)을 고백하고 있다.

김정훈 교수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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