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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잠언인가?”

기사승인 2021.09.14  15:4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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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동섭 교수의 잠언의 영성 2

방동섭 교수/ 미국 리폼드 신학대학원 선교학 박사, 백석대학교 선교학 교수 역임, 글로벌 비전교회 담임
 

   
▲ 방동섭 교수

 지혜의 말씀(the word of wisdom)

성경 66권은 각기 하나님께서 주신 목적이 있다. 잠언도 마찬가지이다. 1장에는 하나님께서 잠언을 주신 목적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잠언을 주셨을까? 잠언을 기록한 목적에 대해 솔로몬은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라고 기록했다(1:2). 여기서 잠언의 중요한 목적 세 가지를 볼 수 있다. 잠언을 읽으면 무엇보다 ‘하나님의 지혜’(wisdom)를 얻게 된다. 성경에서 ‘지혜’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한 책이 잠언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지혜가 있는 자’ 되기를 원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사악하고 시대가 혼탁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지혜가 필요하게 되었다. 사도 바울도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하였다(엡 5:15-16).

그렇다면 ‘지혜’는 무엇을 뜻하는가? ‘지혜’는 요령이 많은 사람이나 꽤가 많고 처세술이 탁월한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지혜’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과 인생을 보는 능력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학교 교육이나 세상 교육을 통해서는 사람들이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어도 진정한 지혜를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잠언에 나오는 말씀을 잘 이해하면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지혜’를 깨우치게 된다. 잠언은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준다”고 하였다(1:4).

요즈음 ‘웰빙’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진정한 ‘웰빙’은 단지 좋은 음식 잘 먹고 건강하게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얻은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일도 지혜가 있는 사람이 하면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고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을 살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얼마 전 호주에서는 4살짜리 소년이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자 소방서에 전화를 걸어 심장마비로 쓰러진 어머니를 살린 일이 있습니다. 비록 어리지만 지혜가 있었기 때문에 소방서에 전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긴급한 상황에서 어머니를 살려낼 수 있었다. 이것이 지혜의 능력이다.
 

훈련의 말씀(the word of discipline)

   
 

하나님이 잠언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은 인생의 훈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훈련(discipline)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실 것”을 약속하셨다(시 32:8).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어디로 갈지’ 갈 길을 보여주실 뿐 아니라, ‘그 길을 잘 가고 있는지’ 주시하시며, 더 나아가 가야 할 길로 잘 갈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시는 분이시다. 잠언에는 인생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을 잘 걸을 수 있도록 ‘인생 훈련’에 꼭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잠언이 제시하는 ‘인생 훈련’의 목표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디에 있든지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1:3). 이렇게 된다면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위풍당당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될 것이다.

요즈음 우리 사는 세상에는 부모나 교사로부터 제대로 인생 훈련을 받지 않고 자라는 아이들이 독버섯처럼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위 ‘막 되먹은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사고를 치고 문제를 만들고 있어도 대안이 없을 정도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 안에 ‘훈련이 안 된 교인’들이 늘어가면서 교회가 무질서하고 시끄러울 때가 많다. 날개가 있다고 어린 독수리가 바로 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어미 독수리는 아직 날개가 채 성장하지 못한 새끼 독수리를 데리고 높은 곳에 올라가 떨어뜨리는 혹독한 훈련을 반복해서 시키고 있다. 그런 훈련을 통해 어린 독수리는 창공을 마음껏 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기가 자주 넘어지더라도 걷는 훈련을 해야만 마침내 자신의 두 다리로 혼자 걸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훈련을 잘 받아야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잠언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훈련시키는 말씀들로 가득하며, 그 말씀을 잘 이해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땅히 가야 하는 길을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명철의 말씀(the word of insight)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명철'(insight)을 얻으면 다른 것이 좀 부족하고 모자라도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 ‘명철’은 눈이 열리는 것이다. 하나를 깨우치면 또 다른 하나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열려지는 것을 뜻한다. 하나를 배웠는데 둘을 깨우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명철’이 있으면 똑 같은 인생을 남보다 두 배의 가치로 사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잠언의 말씀을 잘 이해하면 인생이나 사물에 대해 단지 껍데기가 아니라 속 깊이 들여다보는 통찰력을 얻게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볼 때 그의 겉모습을 먼저 보게 될 때가 많다. 성경은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본다”고 하였습니다“(삼상 16:7). 우리가 사람을 보는 관점과 하나님이 사람을 보는 관점이 이처럼 다른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명철’을 얻기 전에는 우리도 사람을 볼 때 그의 껍데기를 먼저 보게 되지만, 명철을 얻으면 사람의 중심을 보는 눈이 열린다. 또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 볼 때도 그 모든 것은 핵심을 보는 눈이 열린다. 나를 둘러 싼 이 세상의 모든 문제도 그 현상이 아니라 그 핵심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얻게 된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명철’을 얻으면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실지’ 잘 깨우치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이 세상에서 살던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께 직접 보고를 드릴 때가 반드시 있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고 하였다(롬 14:12). 명철이 있는 사람은 ‘그때 어떤 보고를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실지’ 그 시간이 오기 전에 이미 깨우친 사람으로 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잠언을 읽으면 명철(insight)을 얻게 된다. 사람이 명철이 있어야 인생을 진정으로 성공하는 길로 가게 된다. 잠언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인생을 보다 아름답게 의미 있게 살아가는 새로운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잠언을 공부하는 목적이다.
 

지식정보사회

우리는 지금 앨빈 토플러가 말한 대로 세 번째 물결인 ‘정보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지식과 정보가 돈이 되고 권력으로 군림하는 사회가 되었다. 옛날에는 주먹이 세거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강자이었지만 이제는 정보가 있는 사람이 최고의 강자가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21세기의 강자가 되기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새벽부터 일어나 학원에 가서 언어를 배우거나 컴퓨터를 배우고 있다. 그들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직장에 출근하기 전 새벽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잠언은 강자가 되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21세기 지식 정보사회에서 진정한 강자가 되려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소유하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인데 미련한 자는 그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고 하였다(1:7). 새로운 지식을 배운다고 인간의 근본적인 어리석음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창조의 하나님을 모르면 무모한 인생이 될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채, 수시로 변하는 하나님 없는 지식과 정보에 인생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그러나 ‘여호와를 아는 지식’에 무지한 사람은 영원한 어리석음에 머물게 될 것이다.
 

지식의 근본

잠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하였다(1:7). ‘지식의 근본’이라는 말은 ‘지식의 시작’ 혹은 ‘지식의 뿌리’라는 뜻한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를 경외함이 이 세상 그 어떤 지식보다 우선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아무리 이 세상에서 공부를 많이 하고 많은 지식을 습득했다고 해도 하나님을 아직 알지 못했다면 그는 지식 세계의 초보에도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지식 습득은 단지 지식의 언저리를 배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의 핵심 근처에도 못가고 빗겨간 것이라 할 수 있다. 학교 교육이나 기타 세상 교육을 통해 얻는 지식의 수명은 매우 짧다. 내가 특정한 분야의 지식을 배워 겨우 눈을 뜨는 동안 새로운 지식의 축적이 이루어져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곧 용도 폐기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기에 성경은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 몸을 피곤케 한다”고 하였다(전 12:12).

언젠가 필자가 밤늦게 연구를 마치고 잠을 자려고 하는데 대학에 다니는 큰딸이 새벽 3시까지 잠을 자지 않고 공부하고 있었다. 그렇게 공부하는 딸이 한편 대견하기도 했지만 “만일 내 딸이 하나님을 모르고 저렇게 공부만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저렇게 애를 쓰고 공부하여 얻은 지식이 시간이 지나면 용도 폐기되고 또 다른 지식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을 생각했다. 공부하는 것은 끝이 없고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지식을 배우는데 한평생을 보내었지만 결국 자신이 공부하는 전공 분야의 지식도 다 알지 못하고 인생을 마치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영원을 잇대는 지식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영원하다. 한 번 이 지식에 눈을 뜨면 영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영원을 잇대는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믿는 부모가 해야 될 가장 중요한 사명은 무엇보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부모들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신 6:6). 부모의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은 자녀들에게 깊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들을 자녀들을 위한 말씀의 교사로 세우셨다. 그래서 부모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행할 때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강론해야” 한다(신 6:6.7).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에 눈을 뜰 수 있도록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이 진정한 강자가 되는 길이다.

잠언은 자녀들에게 만일 부모를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마음에 간직하게 되었다면 그 말씀을 “일평생 잊지 말라”고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고 명하신 것이다(1:8). 잠언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목의 금사슬이라”고 했다(1:9). 이 세상에 우리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가장 멋지게 만들어줄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 때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아름다운 참 지식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방동섭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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