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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명순 전도사의 삶을 조명한 서종표 목사와의 대담

기사승인 2021.09.15  12: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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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대담: 서종표 목사/ 순교자 문준경전도사 기념관 초대 관장 역임, 군산중동교회 담임, 전킨기념사업회 추진위원장, 추명순기념사업회 이사장

 

   
▲ 서종표 목사

최은수 교수: 먼저 귀한 시간 내어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고군산 전도의 어머니 추명순 전도사 전기를 발간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요?

서종표 목사: 이 땅에 모든 사람들은 더 갖고 싶어하는 소유욕과 더 높아지고 싶어하는 명예욕과 더 편안하고 싶어하는 안락욕과 더 즐기고 싶어하는 쾌락욕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보와 같은 삶을 사는 분이 있었어요. 바로 추명순 전도가 같은 분입니다. 이런 분을 저는“거룩한 바보라 칭하고 싶습니다. 추명순 전도사는 섬에서 24년간 남자도 아니고 여자의 몸으로, 목사도 아닌 전도사 몸으로 우상과 미신이 많은 섬에서 오직 십자가의 복음의 능력으로 고군산 섬마다 전도해서 8개 교회를 세우신 분입니다. 그리고 성자와 같은 삶을 사시고 산 순교의 삶을 사신 분입니다. 그래서 이분을 알리고 그의 구령의 열정을 본받고 또 본받게 하고 싶어서 전기를 발간하였습니다.

   
▲ 추명순 전도사

최은수 교수: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에 필적할만한 분으로 간주되는 추명순 전도사의 성장 배경은 어떠했는지요?

서종표 목사: 추명순은 1908년 3월 충남 보령군 웅천면 서정리의 엄격한 유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여자 아이들은 서당이나 학교에 보내지 않는 대대로 내려오는 유교 집안의 가풍에 따라 그녀는 어머니를 도우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권유로 열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서천 조씨 집안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남자들은 하고 싶은 대로 무엇이든지 다하고, 여자들은 말소리 하나라도 크게 내면 혼나던 집안이었지요. 활달한 성격의 추명순은 그런 시집살이를 참아내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남편은 첫아들을 낳자마자 읍내로 나다니며 바람을 피웠고, 남편에게 바람을 피우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면 여자가 무슨 간섭이냐며 오히려 호통을 치고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나중에는 아예 읍내 여관에 딴 집 살림을 차리고 집에 오지도 않았습니다.

추명순은 남편 하나 믿고 고된 시집살이를 견뎠지만 스무 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남편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첩과 딴 집 살림을 하던 남편은 하루는 그녀를 산으로 끌고 가 죽이려고 하였어요. 산에 구덩이를 파고 그녀의 목만 내놓고 땅에 묻은 뒤에 그녀의 남편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예수 귀신을 믿겠느냐? 여기서 죽겠느냐? 양자택일해라.” 추명순은 죽으면 죽으리라고 결심한 후 “당신도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고개를 흔들면서 “정말 지독한 년이다.”라고 말하고,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그냥 혼자 내려가 버렸습니다. 목만 내놓은 상태에서 땅에 묻혀 나오지 못하면 결국 죽게 되는데 그녀는 하나님께 살려달라는 기도보다 차라리 여기서 죽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는데 얼마 후에 흙덩이가 갑자기 갈라지면서 그녀는 살아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하였던 것입니다.

   
▲ 말도등대 앞에서

최은수 교수: 추명순 전도사의 사역 철학과 원칙에 대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서종표 목사: 추전도사님은 스펙이 좋은 분이 아니었어요. 남보다 인물이 뛰어나거나 가문이 훌륭한 분도 아니에요. 그런데 그의 3가지 감사는 ①예수님 믿어 구원받는 것 ② 복음을 전하는 전도사가 된 것 ③ 섬마다 나로 하여금 교회가 세워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에게는 마음에 불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믿으면 천국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분을 보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싶어서 불붙은 마음으로 기도하고 가서 오직 십자가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을 예수 믿고 구원받도록 전도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기도했고, 담대히 예수님 십자가 복음의 능력을 의지하여 만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자랑했습니다.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많은 기적과 간증 거리가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무녀도에서 한번은 귀신 들린 아이가 있었는데 전도사님을 청하여 기도해 달라고 할 때 전도사님이 기도할 때 그 자리에서 귀신이 나가고 아이의 정신이 온전해져서 그 마을에 예수 믿는 사람이 생기고 무녀도교회가 세워졌습니다.

   
▲ 교인들과 함께

최은수 교수: 추명순 전도사의 주요 사역은 무엇이었나요?

서종표 목사: 주요 사역은 전도였지요. 섬마다 기도의 장소가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선유도에 망주봉과 선유봉, 대장도에 대장봉, 무녀도에 무녀봉, 관리도에 깃대봉, 말도에 기도굴 등이지용. 군산에서 배를 타고 끝 섬인 말도 가려면 보통 배가 당일에 닿지 못하고 파도 때문에 선유도나 장자도까지만 가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섬마다 기도의 봉우리가 있어서 밤새도록 이슬을 맞으면서 그 섬 주민 영혼들을 위해서 금식하면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군산중동교회 김용은 목사님을 통해서 섬에 구호품이 오면 집집마다 사랑으로 나누어주면서 사랑으로 섬겼습니다. 혹시 구호품 빼돌렸다고 오해 받을까 봐 본인은 쌀되 남기지 않고 집집마다 다 나눠줬다고 합니다. 즉 전도와 기도와 사랑의 섬김의 사역이었습니다.

그녀는 섬 사역을 시작하며 세 가지 계획을 세웠는데 ① 복음을 전해서 영혼들을 구원하고, ② 구제사업을 하고, ③ 미신을 타파하는 것이었습니다. 군산중동교회 김용은 목사가 O.M.S선교부를 통해서 구호 양식과 의복을 보내줘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나눠준다고 하니 섬사람들이 모두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완고한 섬 주민들이 구호 양식으로 인해 마음이 조금씩 열리게 되었고, 구제 사역이 큰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추명순 전도사는 성도들이 구호 물품으로 받은 것을 조금 나누어 주면 그것으로 식사를 했고, 먹을 것이 없으면 굶었습니다. 나중에는 굶을 바에야 금식을 하라는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를 이상하게 바라보던 섬 지역 주민들의 마음이 바뀌게 되고, 전도사역에도 협력하며 추명순 전도사를 돕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 교회 아낙네들과 함께

최은수 교수: 유명한 에피소드 하나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서종표 목사: 특히 우상 타파에 앞장섰습니다. 그래서 말도에 영신당이라는 제사 모시는 신당이 있었는데 믿음으로 그 신당을 부숴버렸습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황량한 복음의 불모지이며 관습과 미신으로 찌든 섬, 말도는 귀신의 역사가 심했습니다. 외부와 단절되어 있어 폐쇄적인 섬은 예외였지만, 일반적으로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임시로 지은 움집에서 아이를 해산하게 했습니다. 용왕이 싫어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임산부가 아이를 해산할 때가 되면 집에서 아이를 낳지 않았는데, 용왕이 피를 싫어하기 때문에 집에서 피를 보면 용왕이 노여워해서 풍랑이 일고 고기도 못 잡고 사람도 죽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추운 겨울에도 산등성이에 있는 움집에서 아이를 낳느라 죽을 고생을 하고, 아이를 해산하다가 너무 추워 산모나 아이가 죽는 경우도 많았다고 해요.

   
▲ 종탑 앞에서

또한 육지에서 보신탕을 먹고 섬에 들어오면 즉사하든지 장애인이 되는 귀신의 역사가 비일비재하여 섬사람들은 미신과 우상 앞에 떨며 수 백 년 동안 미신에 사로잡힌 삶을 살았습니다. 추명순 전도사는 이러한 섬 주민들을 긍휼히 여기며 우상과 미신 문화를 없애기 위해 금식과 철야 기도를 했고, 복음 전파에 힘썼습니다.

추명순 전도사는 “용왕도 없고, 산신도 없다. 오직 신은 하나님 한 분 뿐이다”고 말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점차 섬 주민들에게 창조주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라는 신앙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면서 미신과 우상문화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태양, 바다, 산 등의 이 모든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새해에나 출어할 때 풍어를 비는 굿이나 고사를 지내지 않고, 목회자를 모시고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미신 문화를 기독교 문화로 바꿨지요.

최은수 교수: 이 책의 출간 후에 어떤 반응이 있었나요?

서종표 목사: 전라남도 신안 섬들에 적색 순교자 문준경(1891~1950) 전도사님이 계셨다면, 전라북도 고군산 섬들에는 백색 순교자 추명순 전도사님이 계셨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특별히 성결교회는 초창기부터 순교자의 피로써 주님의 증인 됨을 몸소 보여준 공동체였습니다. 붉은 피를 흘리며 죽음에 이른 자를 ‘적색’ 순교자라 한다면, 주님을 증거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전히 기도와 말씀으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한 자들은 ‘백색’ 순교자로 부를 수 있습니다. 추 전도사님의 순교적 신앙의 길이 바로 그것이지요.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의 계명을 따르느라 세상에서 손해 보고, 욕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주님의 뜻을 일상의 생활 현장에서 이루어드리는 성도를 ‘녹색’ 순교자라 불러도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와 유사하게 이미 가톨릭에서는 순교의 세 차원을 색깔로 개념화 하여 순교 영성을 신앙생활 속에 구현하려는 시도들을 하고 있습니다.

성결교단에서만 아니고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한결같이 어떻게 이런 분을 알고 자료를 수집해서 책을 출판하게 되었냐고 너무 감사하다고 합니다. 특히 성결교단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여전도사님을 이제라고 알게 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모두의 반응입니다. 특히 이 책은 목회자는 물론이고 평신도들의 필독서라고 많은 분들이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도 추명순 전도사를 기념하는 기념관을 세우게 되어 현재 건물을 매입하고 리모델링 중이며 추진 중입니다.

   
▲ 추명순 전도사의 말년 사진

최은수 교수: 제가 알기로는 현재 전킨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기념관 설립을 진행하고 있고, 군산 전체를 아우르는 관광 인프라 구축에 교회와 정부가 긴밀히 협력하고 있음을 들었습니다. 앞으로 군산 지역 성지순례 계획은 무엇인지요?

서종표 목사: 군산은 먹거리와 볼거리가 많은 곳이에요. 특히 일제 강점기 때 적산가옥을 비롯하여 일제 잔재가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영성이 탁월하고 의미 있는 기독교 성지가 군산이기도 합니다. 특히 호남 최초 전킨선교사와 드루선교사가 오셔서 교회, 병원, 학교를 세웠고 호남 최초 세례자가 생겼습니다. 그뿐 아니라 고군산 섬 지역에는 추명순 전도사가 세운 8개 교회가 지금도 있습니다. 그래서 전킨선교사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그분이 세운 학교, 교회 등과 연계하고 고군산 지역 섬까지 기독교 순례 코스를 만들어 많은 기독교인들이 방문하여 순례하므로 도전받고 은혜받게 할 예정이고 기독교 해설사를 양성하여 찾아오는 많은 분들에게 잘 안내하도록 교육도 할 예정입니다.

최은수 교수: 제가 몇 년 전에 군산을 방문했을 때만 하더라도 미 남장로교 파송 선교사들이 세운 5개의 스테이션 가운데 군산과 목포가 기독교 역사 복원 사업이 더 필요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전킨기념사업회의 원대한 청사진과 탁월한 여성 사역자인 추명순 전도사의 사역까지 아우르는 계획을 볼 때, 향후 군산 지역 성지순례에 대한 기대감을 드높이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군산 지역에 볼거리 등 관광 인프라가 구축되어 단순히 거쳐 가는 지역이 아니라 하루 이상을 머물다 가는 곳으로 인식이 바뀌게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대담에 응해 주신 목사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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