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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여성 조명자 국가를 가다(6)

기사승인 2021.10.12  12: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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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은수 교수의 코카서스 조지아 역사 현장 탐방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 최은수

* 세계 최초의 여성 조명자 국가인 코카서스 조지아에서 한국인 최초의 선교사로서 헌신하다 10월 3일 코로나로 소천하신 고 정정옥 선교사님의 헌신과 희생을 기억합니다. 유가족, 조지아의 동역자들과 성도들, 우즈베키스탄 굴리스탄 교회를 통해 배출한 수많은 제자들, 그리고 선교 동역자들 제위에게 주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필자가 고 정정옥 선교사님과 생애 마지막으로 했던 6월 4일자 ‘교회와 신앙’의 ‘코카서스 조지아 한국문화센터의 정정옥 대표와의 대담’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고 정정옥 선교사님! 영광스러운 천국에서 뵙겠습니다.


수난으로 얼룩진 동서양의 교차로

   
▲ 세계  최초의  여성  조명자인  니노가  조지아로  가져간  포도나무  십자가

코카서스 지역은 실크로드의 종착지역이자 유럽의 관문으로서 역할을 해 왔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는 수많은 장점과 함께 역사의 질곡을 헤쳐나가야 하는 어려움을 안고 있었다. 니노에 의해 세계 최초의 여성 조명자 국가로서의 위상을 제고해 오던 조지아도 실크로드의 패권을 다투던 세계 열강들의 도전들을 피해갈 수 없었다. 필자는 지난 글을 통하여 ‘눈-물로 다듬어진 조약돌 하나’라는 표현으로 아랍계 이슬람의 흥기를 통한 수난을 다루었다.

세계 최초의 여성 조명자 국가답게 조지아는 물리적으로 정복을 당할지언정 수많은 생명들의 피를 산하에 적시면서까지 저항하였고, 아랍계 이슬람의 통치 하에서도 확고한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아랍계인 아보의 개종과 거룩한 순교를 생생하게 목도하였다.
 

이슬람 가문의 이삭과 야곱

   
▲ 아랍계  이슬람  신자였다가  조지아  기독교의  영향으로  개종하여  순교자가  된  아보의  모습. 메테히  교회와  메테히  순교자의  다리  한켠에  세워진  기념  채플

순교자 아보와 거의 동일한 시기에 이슬람 가문에서 성장한 이삭(Isaac)과 요셉(Joseph) 형제도 개종 후 기독교 신앙을 담대하게 견지하다가 목이 잘리는 참수형을 당하며 순교자의 반열에 올랐다. 특이하게도 이들은 완전히 이슬람 가문에서 철저하게 이슬람식 전통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하지만 이들을 낳고 키운 어머니가 조지아 출신의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모친은 비밀리에 두 형제에게 투철한 기독교 신앙을 갖도록 선한 영향력을 행하였다.

즉 외형적으로는 무슬림처럼 성장했지만 그들의 내면은 기독교 신앙으로 채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유사한 경우들이 교회사의 흐름 속에서 있어 왔다. 일례로 게르만 계열의 고트족들에게 포로로 잡혀 갔던 비잔틴 제국의 기독교인 여성들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어 야만족인 고트족들이 게르만 계열을 통틀어 최초로 알파벳을 가지게 되었고 고트어로 된 성경을 소유하였다.

또 다른 예로 북유럽의 바이킹들이 전리품으로 챙겼던 기독교인 여성들과 기독교 유물들로 인하여 그들이 복음화되는 역사를 경험하였다. 여성 조명자 니노를 위시하여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기독교 신앙을 전파했던 여성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포로가 되어 강제로 야만족들과 살아야 했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식들을 기독교 신앙으로 양육하면서 신앙의 생명력을 이어갔다. 조지아의 이삭과 요셉을 기독교 신앙으로 양육했던 무명의 어머니처럼 말이다.
 

눈-물로 다듬어진 두번째 조약돌: 몽골제국의 확장과 100,000만의 순교자들

   
▲ 메테히  순교자의  다리  밑과  므츠바리  강  옆에  위치한  순교자  아보의  기념  채플

아랍계 이슬람의 흥기와 확장을 강인한 신앙으로 극복한 이후, 조지아는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하였다.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와 더불어 조지아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각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룩하였다. 이 당시 아르메니아의 애니(Ani)는 코카서스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로 번창하였고 1,001개의 교회들로 장관을 연출하였다. 조지아도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둔 종교적, 문화적 성과들을 창출하였다. 첫 밀레니엄을 전후로 조지아가 누렸던 평화와 안정은 몽골 제국의 확장으로 큰 도전에 직면하였다.

몽골 제국의 흥기와 확장에 대하여 조지아의 왕실은 몽골의 실체조차 파악하지 못하였다. 당시의 기록을 볼 것 같으면, 조지아는 몽골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고 비잔틴 제국에 보낸 서신에는 몽골이 이슬람 세력들을 정복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기독교인들일 것이라고 언급하였을 정도다. 당시 조지아만 몽골의 실체에 대하여 알지 못했던 것이 아니었다. 조지아를 비롯한 거의 대다수의 나라들이 몽골의 갑작스런 등장에 당황하면서 그들의 철저한 파괴행위로 인하여 엄청난 공포에 휩싸였다.

   
▲ 이슬람  가문에서  성장한  이삭과  요셉  형제가  조지아  기독교인  모친의  영향으로  개종한  후 순교자가  되었다

징기스칸으로 불렸던 테무진이 중국 북방을 통일시키고 빠른 속도로 확장했던 원인들은 무엇이었을까? 가장 권위있는 원인 중에 하나가 ‘모른다’이다. 아랍계 이슬람의 확장 원인들 중에서도 이와 동일한 원인이 있다고 이전 글에서 언급했었다. 일반적으로 몽골 초원에서 인구의 급격한 증가를 한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그래서 당시의 기록들이나 후대의 자료들에서도 몽골의 등장을 신비롭게 묘사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이런 신비스러운 몽골의 등장은 여러 가지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당시 이슬람 역사가들은 몽골의 확장과 이슬람권에 대한 정복을 알라신의 진노와 심판으로 묘사하였다. 몽골의 갑작스럽고 신비로운 등장과 정복으로 이슬람권은 태동이후 사상 최초로 술탄, 즉 최고의 무슬림 통치자가 없는 공백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당시 비잔틴 제국과 조지아 등 기독교권은 오랫동안 적대관계를 유지해 오던 이슬람 세력들을 순식간에 몰락시킨 몽골에 대하여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 몽골제국의  확장. 페르시아(Persia) 지역이  호라즘  제국이었다. 페르시아와  러시아  사이에 위치했던  조지아는  열강들의  도전  앞에서도  비교적  선방하며  세계  최초의  여성  조명자 국가답게  생명력을  이어갔다.


몽골의 확장으로 야기된 100,000명의 순교자들

조지아 교회 역사상 처참하지만 영광스러운 순간 중 하나가 되었던 십만 순교자 사건은 몽골이 직접적으로 자행했던 살육은 아니었지만 몽골의 확장으로 말미암아 크게 위축됐던 호라즘 제국에 의해 벌어진 일이었다. 몽골의 확장으로 호라즘 제국의 무하마드 2세가 패전을 거듭한 끝에 도주 중 사망하였고, 그의 뒤를 이어 술탄이 된 잘랄 알 딘이 한시적으로 몽골을 격퇴하고 무너져 가던 제국을 재건하려고 노심초사하였다. 하지만 술탄 잘랄 알 딘이 연이은 몽골의 도전으로 위기에 직면하였고 그 불똥이 조지아로 번졌다.

   
▲ 메테히  교회와  트빌리시  구시가를  연결하는  메테히  다리가  바로  100,000여명의  순교자들이 영광스러운  최후를  맞이했던  곳이다.

몽골의 확장으로 입지가 좁아진 술탄 잘랄 알 딘은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를 공격하였다. 용맹하기로 유명한 조지아를 공략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 때 트빌리시 내에 거주하던 일단의 무슬림들이 배반하여 성문을 개방하면서 잘란 알 딘의 군인들에 의해 각종 약탈과 만행들이 벌어졌다. 그들은 조지아 기독교의 상징이었던 시오니 카세드럴(Sioni Cathedral)을 파괴하면서 교회당 돔을 떼어내서 술탄의 권좌를 만드는데 사용하였다. 그들은 교회당 내에 있던 예수 그리스도의 아이콘들을 떼어내서 므츠바리 강 위에 놓인 다리로 옮긴 다음 조지아인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고 이슬람으로 개종한다는 의미로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

   
▲ 순교자의  다리인  메테히  브릿지에서  바라본  메테히  교회와  바흐탕  왕의  기마상.

시오니 카세드럴의 돌로 술탄의 권좌를 만든 일이나 기독교적인 아이콘들을 밟도록 한 일들은 모두 조지아 기독교와 그 정체성에 대한 최대의 모욕과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 술탄의 군사들은 조지아인들이 기독교의 상징들을 모욕하고 이슬람으로 개종하면 살려주었고, 거부하면 목을 베어 강물에 던졌다. 결과적으로 약 100,000만명 정도의 조지아 기독교인들이 참수를 당함으로 다리 주변과 그 밑으로 흐르는 강물을 피로 물들였다. 세계 최초의 여성자 조명자 국가인 조지아는 자신들의 생명과도 같은 기독교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고 죽음으로서 복음의 능력을 증거하였던 것이다.

메테히 교회 주변은 순교자 아보의 기념 채플과 더불어 순교자들의 다리까지 조지아 기독교의 영광과 수난을 압축하여 담고 있다. 메테히 교회 앞에 세워진 말을 탄 바흐탕 왕의 호기어린 기상이 보여주듯이, 면면히 흐르는 므츠바리 강처럼, 조지아 교회사의 흐름 속에서 조지아 기독교인들은 멈추지 않고 당당하게 전진하는 생명력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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