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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주의 기독교의 위험성①

기사승인 2021.11.05  14: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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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동섭 교수의 잠언의 영성 6

방동섭 교수/ 미국 리폼드 신학대학원 선교학 박사, 백석대학교 선교학 교수 역임, 글로벌 비전교회 담임
 

   
▲ 방동섭 교수

지혜는 하나님의 선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은 ‘지혜’이다. 잠언은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주신다”고 하였다(잠 2:6).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돈을 벌거나, 출세하거나, 일시적으로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지식을 구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이 세상 모든 교육이 다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심지어 교회 강단에서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세속적인 명예나 물질 획득의 수단, 세상에서 성공하는 길을 보여주는 수단처럼 전하면서 기독교를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 같은 실용주의 사고가 위험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주시는 본래의 의도를 왜곡시켜 기독교를 세속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세상에서 잘 나가고 출세하기 위해 기독교를 믿는 것으로 방향을 잘 못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지혜’나 ‘지식’은 이 세상의 명예나 물질 획득의 수단이 아니다. 잠언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지식의 목적에 대해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도록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잠 2:5). 하나님께서 그의 존재를 우리가 알 수 있도록 거룩한 지혜를 주셨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행의 길을 떠나 일생 동안 종교적인 수양을 했어도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소위 속세를 떠나 오래 동안 종교적 수양이나 고행을 하면서 구도자의 길을 걷게 되면 마침내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통념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속세를 떠나 조용한 곳으로 가서 아무리 종교 수양을 한다고 해도 그들을 거기서 또 다른 속세를 만날 뿐이다. 시끄러운 세상이 싫어 조용하고 외로운 곳에 갔지만 거기에도 죄로 오염된 또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런 방법으로는 하나님을 아는 길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 그런 방법으로는 영원히 그 길을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그를 알고 섬기게 되었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사람들이 남은 인생을 사는 것은 뭔가 다른 사람보다 더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미 성공한 사람으로 보람 된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친구라도 신뢰의 대상은 아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하나님은 어떤 분이기에 인간이 그를 알게 되면 가장 큰 축복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잠언은 하나님에 대해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신다”고 하였다(잠 2:7).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실 것”이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이 위태한 일을 만날 때 확실하게 보호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신 것이다. 이 세상에 그 누구도 나의 방패가 될 수 없다.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남을 지키기 전에 먼저 자신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내가 당신을 도와줄 것이라”고 말하는 친구가 곁에 있어도 끝까지 신뢰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 될 것이다.

가장 가까운 친구의 치명적인 배반으로 인생이 위기를 당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된 경우는 수없이 많다. 이 세상에 존재하였던 수많은 왕이나 권력자들이 죽게 된 원인은 많은 경우 가장 신뢰하였던 측근의 배신과 모함에 의한 것일 때가 많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말하는 부부간에도 서로의 숨겨진 목적을 위해 배반하고 가차 없이 죽이는 무서운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영원한 신뢰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 우리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에게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에 대해 “변함이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다”고 하였다(약 1:17). 만일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패가 되신다면 그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보호하시는 하나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물질적이거나 현세적인 차원에서만 이해하려고 한다. 그래서 심지어 기독교인들도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 넉넉하게 살게 될 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잠언은 그보다 더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공평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신다”는 것이다(잠 2:8). 이 세상 그 어떤 왕이나 권력이나 제도 혹은 사회의 근간이 되는 법조차도 정직하고 공평하고 정의롭게 인생을 살려고 하는 사람들의 가는 길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다. 세상 나라에서는 오히려 사람들이 정의롭고 바른 길을 가려고 하면 할수록 더 큰 고통을 받게 되고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는 일이 많은 것이 이 세상의 현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정직한 자를 보호하기 위해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신다”고 하였다(잠 2:7). 이것은 정직한 자가 악한 세상을 이길 수 있도록 말씀을 통해 언제나 지혜를 공급해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우리는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불공평해도 우리의 미래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 정직하게 공평하게 사는 자를 지켜주시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바르게 살려고 하면 그가 가는 길을 끝까지 지켜주시고 보호하시는 분이시다. 이것을 확신하고 의로운 길로 가는 자가 진정으로 복을 받은 자이다.

방동섭 교수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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