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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 중에 부르짖는 기도(2)

기사승인 2021.11.16  16: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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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훈 교수의 기도 본문 해설

김정훈 교수 / 영국 글라스고(Glasgow) 대학교 신약학 박사, 백석대학교 신약학 은퇴 교수, B and C Mission Center 현대표
 

   
▲ 김정훈 교수

 다윗의 기도(시 86:1-17): 은총의 표적을 구하는 기도

(1) “나는 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2절 상).

다윗은 전인으로서의 자신을 보존해 주실 것을 간구한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왕조를 견고하게 하시고 자신의 후손에게 영원한 영광을 약속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 약속이 성취되려면 반드시 자신의 육과 영이 보존되어야 한다. 다윗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에 의해 육과 영의 보호를 받으면서 그분이 약속하신 궁극적 세계에 대한 소망을 품고 자신 몫을 감당하며 사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경건하오니”(비교. 시 4:3; 50:5)라는 말은 보존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경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다윗이 자신을 경건한 자라고 말할 때 그가 자신이 얼마나 철저히 회개하고 변화된 자인가를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믿는 자들로서 자신이 어느 정도의 경건을 유지하고 있는 자인지에 대한 인식과 자신이 얼마나 예수를 닮기를 열망하고 하나님의 온전하심에까지 이르기 위해 노력하는 자인지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한다.

(2) “내 주 하나님이여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2절 하).

   
 

원문에서 이 절은 “당신께 의지하는 당신의 종을 구원하소서 당신은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로 되어 있다. 1절에서 여호와라고 불렀던 하나님을 여기서는 “나의 하나님”(엘로하이)라고 부른다. 다윗은 하나님을 천지를 창조하신 삼위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는 성부 하나님이 창세 전부터 자기의 인생을 설계하시고, 지금 그분의 영이 자기 속에 들어와 자기와 동행하시며, 자기에게 궁극적 구원을 주실 성자 하나님의 권능이 현실 가운데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다. 이런 믿음이 있기에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신을 그분의 종으로 고백하면서 구원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물질과 권세는 인간의 필요일 뿐이지 인간이 의지하며 구원을 요청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여기서 구원은 매우 실제적인 개념으로 신약적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의를 받은 자의 영원한 생명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들의 위협으로부터 구출받는 것을 의미한다.

(3) “주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3절).

원문에서 “주여”라는 호칭은 복수형 아도나이로 되어 있다. 다윗은 바로 앞에서 사용한 복수형 엘로힘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 그가 하나님을 “주여”라고 부를 때 그는 하나님을 천지만물을 다스리시는 통치자로 인식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그는 만유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이 자기를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 자기가 살 수 있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만유 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의 삶은 황야 위에서 바람 따라 구르는 먼지에 불과하다. “내가 종일 부르짖나이다”는 다윗이 하나님과의 단절을 한순간도 허락하지 않기 위해 지구력 있게 간구하는 모습을 떠올려 준다. 믿는 자들은 특별한 시간을 정하고 기도하고, 예배 중에 기도할 뿐 아니라 무시로 성령 안에서 만유의 통치권자이신 하나님께 간구할 필요가 있다.

(4)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4절).

한글개역개정에는 이렇게 “주여”라는 호칭이 2회 반복되고 있으나 원문에는 앞엣것만 나온다. 이 절의 원문 전체를 직역해 보면, “당신의 종의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왜냐하면 주여 내가 당신께 내 영혼을 들어 올리기 때문입니다”이다. 여기서도 다윗은 “주”(아도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다윗은 자신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그분의 종으로 인식하고 그분께서 자기 영혼을 기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종의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분명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분의 원대한 뜻을 성취해 갈 수 없다. 종의 행복은 주인의 뜻을 성취해 가는 것에 달려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주인이고 하나님이 종인 것처럼 행세한다. 이런 사람일수록 겉으로는 대단히 하나님을 위하는 것처럼 가식적 행동을 취한다. 하지만 그것은 적그리스도적 행동일 뿐이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물과 만사가 하나님 앞에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종들로서 주인 되시는 그분의 뜻을 이해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야 한다(참조. 신 11:18; 30:6; 수 22:5; 대상 28:9).

“당신의 종의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는 하나님이 자신을 보존해 주시고, 악조건 속에서 구원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 그 결과로서 찾아올 영혼의 기쁨에 대한 기대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된 자에게 영혼의 기쁨이 없다면 그의 삶은 빈털터리에 불과하다. 육신의 건강과 유형무형의 모든 소유는 영혼에 기쁨이 있을 때 윤택하게 된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께 영혼의 기쁨을 청구할 수 있는 담력을 얻게 된 것은 자신의 영혼을 그분께 힘껏 끌어 올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도란 칼빈이 암시하는 대로 자기의 영혼을 지극히 높이 계신 하나님께 끌어 올리고 그분께 믿음의 고백과 참회의 고백을 드리며, 삶의 정황과 모든 필요를 낱낱이 아뢰고, 그분의 영광과 존귀와 권세를 찬양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타깝게도 이와 정반대로 우리의 영혼을 진흙탕에 내던지고 흑암 가운데 방황할 때가 많다.

5절의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는 4절에서 “당신의 종의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라고 간청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를 진술하는 내용이다. 4절에서 다윗은 이미 자신의 영혼을 주께로 끌어올리니 자신의 영혼을 기쁘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이제 그는 5절에서 자기 편의 이유가 아닌 하나님 편의 이유를 제시한다. 즉, 주 하나님은 사유의 은총을 베풀기를 즐거워하는 분이시며,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하심을 넉넉히 베푸시는 분이시니 자기의 영혼을 기쁘게 해 달라는 것이다. 아마도 다윗은 자신의 극악무도한 죄(간음죄와 살인죄)까지 용서해 주신 하나님을 떠올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환난을 당할 때마다 자신의 애절한 기도를 외면하지 않고 인자함을 보여주신 일들을 기억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쉼 없이 매섭게 소용돌이치는 세상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인자가 없이는 유의미하게 생존할 수 없다. 다윗은 이 절에서도 하나님을 아도나이라고 호칭한다. 그에게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충만한 것과 인생들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다윗은 6절에서 일찍이 1절에서 드렸던 기도를 소환하면서 7절에서 자기가 왜 2-4절에서 그토록 애절하게 간구했었는지 그 배경을 간략히 설명한다. “6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7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6-7절). 여기서 다윗은 1절에서처럼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호칭한다. 그리고 그는 이 단락을 인클루시오(incluso) 기법 곧 마지막 부분을 처음 부분과 거의 같은 언어로써 마무리하는 기법을 사용하여 끝을 맺는다. 6절 내용은 1절의 “여호와여... 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와 거의 일치한다. 7절의 “환난 날”은 다윗이 2-4절에서 드린 기도가 어떤 정황에서 나온 것인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다윗은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에도 크레타 섬(갑돌)에 거주하다가 이스라엘 민족보다도 훨씬 이른 시기에 남부 가나안 땅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던 블레셋 족속에 의해 수시로 괴롭힘을 당해야 했고, 고래로부터 오랜 세월에 걸쳐 가나안 땅의 맹주 역할을 했던 토족 세력들에 의해 저항을 받아야 했고, 추측건대 다윗의 왕위를 부정하고 사사건건 반기를 들었던 내부의 역도들에 의해 고통을 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는 원문에 “당신이 내게 응답해 주시기 때문이니이다”로 되어 있다. 즉, 다윗은 자기가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확신과 기대가 있었기에 환난 날에도 낙심하지 않고 기도하였다. 기도하는 자는 자신의 간구에 하나님이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해 주실 것을 확신해야 한다. 

김정훈 교수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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