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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시작, “만물의 아르케는 무엇인가?”

기사승인 2022.04.22  14:3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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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철학 올레길과 둘레길 2

<교회와신앙> 이신성 기자】  만물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물고기는 물 속에 어떻게 있게 된 것일까? 식물은 흙에서 어떻게 자라는 걸까? 새는 하늘을 어떻게 날아다닐까? 만약 이런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대답을 할까? 물론 크리스천은 성경을 근거로 ‘하나님의 창조’라고 답할 것이다. 이런 태도를 성경적 믿음(faith)이라고 하고 그 믿음과 관련된 내용을 학문적으로 체계화시킨 것이 신학(theology)이다.
 

   
▲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바티칸 박물관 홈페이지 갈무리. 맨앞 왼쪽에 있는 이들이 아낙시만드로스, 피타고라스,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레이토스이다. 

◎ 신화적 사고 VS 철학적 사고

성경적 믿음과 신학이 없었던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어떻게 답했을까? 고대 그리스는 신화(mythos)로 모든 것들을 설명하던 세상이었다. 신화는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신들과 관련시켰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 하늘의 신 우라노스, 정의의 여신 디케, 전쟁의 신 아레스, 망각의 여신 레테를 내세워 자연 현상을 설명했다.

이런 신화적 사고 방식에 빠져 있던 그리스 사람들과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철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세상을 신화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다. 아니 그런 신화적 설명을 의심하고 오히려 거부했다. 그리고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서 자연 현상을 면밀하게 관찰했다. 관찰한 것을 분석하고 깊이 생각했다. 철학적 사고의 시작이다.

문제는 철학자들이 살펴본 자연 현상에는 변화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겨울 내내 얼어 있던 흙에서 싹이 나오고,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하게 죽어있던 나무에서 잎이 나온다. 심지어 아무것도 없던 물에서 개구리가 나온다. 이런 변화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결국 그 현상 너머에 있는 원인을 찾는 근원적인 질문을 했다. “그런 일 가능하게 하는 <아르케>는 무엇일까?” 헬라어 <아르케>(arche)는 ‘원리’(原理), ‘원소’(元素)이다. ‘시초’(始初) 혹은 ‘기원’(起源)을 의미한다. 최초의 철학자들은 철학이 세상의 원리 혹은 만물을 구성하는 원재료를 찾으려 했다. “만물은 어디서 왔을까?” “만물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라는 질문은 기원과 원재료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잘 표현한다. 이런 질문을 간략하게 만들어 보면 “만물의 아르케는 무엇인가?”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여러 가지 답을 내놨다. ‘물’, ‘불’ ‘공기’ ‘수’(數), ‘원자’(原子) 등이다.

그리스는 서양철학의 요람(搖籃)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스에서 서양철학이 시작됐다는 의미다.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는 그리스 본토만을 지칭하지 않고 그리스 주변까지도 포함한다. 이번에 살펴보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그리스 본토가 아닌 그리스 주변부에 살았다. 그들이 주로 살던 도시는 밀레토스, 사모스, 에페수스, 엘레아 등이다. 이러한 도시가 고대 서양철학의 올레길과 둘레길 첫 번째 코스이다.
 

◎ 서양철학의 출발지, 밀레토스

   
▲ 밀레토스. 위키백과 밀레토스 갈무리

서양철학의 출발지는 밀레토스(Miletus)였다. 한글성경에서는 밀레도라고 번역된(행 20:15, 17, 딤후 4:20) 밀레토스는 이오니아 반도에 위치한 항구 도시 이름이다. 현재 터키 서쪽 지역에 위치해 있다. 그리스와 터키 사이에 있는 에게해(Aegean Sea)를 바라보고 있어서 지정학적으로 서쪽 그리스(유럽)와 동쪽 터키(소아시아)의 교역지가 됐다. 해상무역의 발달한 항구 도시였기에 이곳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왕래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왕래로 인해서 이집트의 기하학이나 바벨로니아의 천문학과 같은 ‘최첨단 기술과 학문’이 소개되는 장이기도 했다. 이와 함께 해상 무역을 통한 ‘물질적 풍요’ 속에서 ‘정신적 여유’를 갖게 됐다. 또한 그리스 본토에서 지리적으로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 신화’ 전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런 점들이 밀레토스에서 서양 최초의 철학이 시작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밀레토스 출신 철학자로는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가 유명하다. 스승과 제자였던 그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밀레토스 학파’라고 부른다. 다만 오늘날에는 밀레토스가 이오니아 반도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이오니아 학파’라고도 부른다. 밀레토스(이오니아) 철학자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자연 만물을 관찰하고 아르케를 탐구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을 ‘자연철학자’라고 부르곤 한다. 하지만 만물의 아르케를 탐구했다는 점에서 ‘형이상학자’라고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만물의 아르케는 물이다!” - 탈레스

탈레스(Thales)는 자연 만물을 관찰하고 경험한 것들을 반성하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과정을 거쳐 ‘물’을 만물의 ‘원리’ 혹은 ‘원소’로 제시했다. 그가 볼 때 물이 모든 만물의 변화와 생명력의 원리였다. 이런 탈레스의 주장은 낯설지 않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생명체를 가진 것들을 보면 모두 물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식물만 하더라도 뿌리 채 뽑히거나 줄기가 잘린 후 수분이 증발했을 때 시들어 죽게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농업 사회에서는 비가 중요하게 취급됐는데, 비가 와야 땅에서 식물이 잘 자라기 때문이다.

“만물의 아르케는 아페이론이다!” - 아낙시만드로스

헬라어 <아페이론>(apeiron)은 ‘규정할 수 없는 것’, 혹은 ‘한계 지을 수 없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 용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가 탈레스의 제자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탈레스는 만물의 아르케가 ‘물’이라고 했지만 ‘물’이라는 물질은 그 모습이 일정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영상의 온도에서는 액체로 존재하지만, 영하로 온도가 떨어지면 얼음인 고체로 변하고, 아주 높은 온도에서는 수증기인 기체가 되어버린다. 아마도 탈레스의 제자인 아낙시만드로스는 물의 이런 성질을 염두하여 자연 만물의 아르케가 어떤 형태로 규정되거나 한계를 지니면 안된다는 뜻에서 <아페이론>을 주장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아페이론>은 너무 추상적인 개념이었다.

   
▲ 추천 도서들 

“만물의 아르케는 공기이다!” - 아낙시메네스

아낙시메네스(Anaximenes)가 왜 스승의 <아페이론>을 버리고 다시 ‘공기’를 제시했는지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아낙시만드로스의 말처럼 만물의 아르케가 <아페이론>이라고 한다면, 그런 한계도 없고 규정되지 않는 존재를 유한한 인간은 말할 수도 없고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이런 난점을 해결하고자 아낙시메네스는 당시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보다 구체적인 용어로 답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는 공기가 짙어지면 바람이 되고, 바람이 더 짙어지면 구름이 되고, 구름이 짙어지면 비를 내리게 된다고 언급했다. 아낙시메네스는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로 느낄 수 있는 ‘공기’를 제시함으로써 <아페이론>의 추상적인 면을 보완했다고 평가된다.
 

◎ 새로운 철학의 발생지: 사모스, 에페소스, 엘레아

“만물의 아르케는 수(數)이다!” - 피타고라스

피타고라스(Pythagoras)는 사모스 섬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연 만물, 세상이 수(數)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1은 점, 2는 직선, 3은 면, 4는 공간을 뜻한다. 비록 피타고라스가 수학(數學)으로 인간의 영혼을 정화할 수 있으며 구원받을 수 있게 할 수 있다고 종교적인 주장도 했지만, 그렇다고 ‘만물의 아르케가 수(數)’라는 그의 말을 그냥 무시할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을 수치화하는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컴퓨터만 하더라도 0과 1이라는 2가지 숫자로만 이루어진 이진수를 바탕으로 구동되고 있다. 이런 점을 염두한다면 피타고라스의 주장은 여전히 주목할만한 가치를 담고 있다.

“만물의 아르케는 불이다!” - 헤라클레이토스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는 에페소스 출신이다. 신약성경에서 바울이 두란노 서원을 설립했던 에베소다(행 19장)! 그에게 중요한 것은 ‘변화’였다. 낮은 밤으로 변하고, 겨울은 여름으로 변하고, 전쟁은 어느 새 평화를 맞이하고, 평화는 언젠가 전쟁으로 변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런 대립되는 것들의 갈등으로 세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러한 갈등과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불’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불’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항상 움직이고 있었고 주변 사물을 불태우며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우리 몸에 뭔가 이상이 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은 ‘열’이다. 체온이 갑자기 올라 불 덩어리가 된다. 그렇게 불덩어리 같던 몸에서 열이 사라지고 차갑게 식어버리면 사람들은 죽었다고 이해한다. 이런 점에서 헤라클레이토스 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은 생명은 열, 불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고대인들에게 태양은 불이었고, 태양은 이 세상에 빛과 열을 전달해 주며 땅에서 식물이 자라게 한다. 이런 점에서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 헤라클레이토스(다음백과 갈무리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 파르메니데스

엘레아 출신인 파르메니데스(Parmenides)는 헤라클레이토스와는 정반대의 주장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의 ‘변화’를 중요시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사물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르메니데스는 ‘변화란 없다’, ‘변화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만약 그런 변화를 염두한다면 “있는 것을 없다고 한다”거나 “없는 것을 있다”고 할 수 있어 ‘우리의 삶이 혼란으로 가득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눈에 보이는 변화하는 현상은 허상(虛像)이라고까지 말했는데, 그가 생각하는 진짜 존재하는 것은 그렇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고정되고 불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의 오감을 통해 살펴보면 자연 만물은 변한다. 하지만 파르메니데스는 그런 감각으로 파악하는 변화를 믿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머리 속에 있는 ‘정삼각형’과 같은 변하지 않는 관념을 믿었다. 파르메니데스는 이 ‘관념’이 우리 눈에 다양하고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넘어서 ‘본질’을 보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파르메니데스의 제자로는 제논이 있었는데, 이들을 ‘엘레아 학파’라고 부른다.
 

◎ 결합과 분리의 철학: 원자론의 탄생

   
▲ 페르메니데스(다음백과 갈무리

“만물의 아르케는 하나가 아니라 넷이다!” - 엠페도클레스

엠페도클레스(Empedokles)는 아크라가스(오늘날의 시칠리아 섬 남쪽 아그리젠토) 출신이다. 그는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가 한편으로는 옳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류가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단 한 가지의 아르케만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볼 때 자연 만물은 단 하나의 아르케로는 생성되고 유지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네 가지 아르케, 즉 ‘흙’과 ‘공기’, ‘불’, ‘물’을 제시했다. 어찌보면 이전 철학자들이 제시한 것들을 종합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위대성은 이 네 가지가 어떻게 결합하고 분리되는지 설명했다는 데 있다. 그에 따르면 자연 만물에는 서로 다른 두 힘이 작용하는데, 사물을 결합시키는 ‘사랑’과 분리시키는 ‘미움’이다. 여기서 네 가지 아르케는 물질적으로 보고, 작용하는 두 힘은 추상적인 개념으로 설명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전의 철학자들이 모두 아르케를 한 가지로 말했다는 점에서 ‘일원론’이라면, 네 개를 주장한 엠페도클레스는 ‘다원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철학을 보고 뤽 베송 감독의 <제5원소>(1997년)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만물의 아르케는 원자(原子)다!” - 데모크리토스

데모크리토스(Demokritos)는 에게해 북부 연안의 압데라 출신이다. 그는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을 두 가지 점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했다고 보여진다. 하나는, 없는 것이 있는 것이 될 수 없다는 주장에 근거해서 ‘항상 있으며 영원한 것을 전제’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자연에서 관찰할 수 있듯 만물은 변화하지만, 사실 만물은 ‘변하지 않고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것으로 구성’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변하지 않고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것’을 그는 원자(原子, atom)이라고 불렀다. 헬라어 <아톰>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물질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한계점이 있다고 봤으며 모든 원자가 다 같지 않고 모양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또한 모양도 다르고 다양한 원자들이 모여서 서로 다른 물체를 구성한다고 설명했다. 요슈타인 가아더는 이러한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플라스틱 벽돌(브릭, brick)을 쌓아올려 다양한 모양을 만들 수 있는 ‘레고’로 설명했다(<소피의 세계1>(현암사, 1995년). 데모크리토스는 엠페도클레스와 달리 오로지 물질적인 원자만을 주장해서 ‘유물론자’라고 불리곤 한다.
 

◎ 변화하는 현상 VS 불변하는 본질, 크리스천은?

헤라클레이토스가 감각으로 파악한 변화에 집중하여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면, 파르메니데스는 변하지 않는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은 오늘날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변화를 파악하고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혁신을 강조하는 분위기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현상을 분석하고 대비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주장이다.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는 변화하는 현상들에 현혹되지 말고 변하지 않는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어떻게 변화에 대처하고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는 ‘현상’과 ‘본질’을 보는 시각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다.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 고민하고 적응하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본질을 붙들고 고정된 무엇인가를 유지하려고 할 것인가? 두 가지 중에서 한 가지만 선택할 필요는 없다. 한편으로는 변화를 인식하고 신속하게 대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본질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크리스천의 숙제 아닌 숙제가 아닐까?

 

참고서적

요한네스 힐쉬베르거, <서양 철학사>(상·하권, 강성위 역), 이문출판사, 1994
군나르 시르베크 외, <서양철학사>(합본, 윤형식 역), 이학사, 2016
크레이그 바르톨로뮤 외, <그리스도인을 위한 서양철학 이야기>(신국원 역), IVP, 2019
디오게네스 알렌, <신학을 이해하기 위한 철학>(정재현 역), 대한기독교서회, 2003
브라이언 매기,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철학의 역사>(박은미 역), 시공사, 2007
레세크 코와코프스키, <위대한 질문>(석기용 역), 열린책들, 2015
안상헌, <미치게 친절한 철학>, 행성B, 2020
요슈타인 가아더, <소피의 세계1>(장영은 역), 현암사, 1995
클라우스 헬트, <지중해 철학기행>(이강서 역), 효형출판, 2007
모리스 엥겔, <철학, 어떻게 할 것인가>(이종철·나종석 역), 문예출판사, 1994
Frederic Copleston, <A History of Philosophy>(vols. 1-9), Newman, 1975

이신성 기자 shinsunglee7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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