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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건축을 위한 유언적 기도(2)

기사승인 2022.05.03  10:3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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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훈 교수의 기도 본문 해설

김정훈 교수 / 영국 글라스고(Glasgow) 대학교 신약학 박사, 백석대학교 신약학 은퇴 교수, B and C Mission Center 현대표
 

   
▲ 김정훈 교수

 다윗의 기도(6): 성전 건축을 위한 유언적 기도(대상 29:10-19)

 3) 기도의 내용

(1) 하나님께 대한 경배와 고백과 찬양(대상 29:10-13)

다윗은 먼저 하나님을 송축함으로 기도의 문을 열었다: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이르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을 받으시옵소서”(대상 29:10). “송축하다”(바라크)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복을 받으소서”라는 뜻인데, 인간편에서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복되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또는 “복되신 하나님께 무릎 꿇고 경배합니다”라는 뜻이다. 기도자는 다윗처럼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를 향해 존숭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다윗이 하나님께 경배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역사의 하나님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을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라고 부른다. “이스라엘”은 야곱의 다른 이름이다. 야곱의 열두 아들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한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친히 백성의 인도자가 되신 사실을 기억하며 지금도 여전히 그분이 인도하고 계신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또한 다윗이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언약의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다윗에게 하나님은 자기 조상들에게 복의 언약을 주신 분이고 한치도 차질없이 그 언약을 성취하시는 분이시다. 다윗은 이러한 확신이 있었기에 하나님께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을 받으시옵소서”라고 경배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시작도 알 수 없고 끝도 알 수 없는 무한대의 시간을 통틀어 영원히 찬양받으시기를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바른 인식과 자세는 그분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다음으로 다윗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고백한다(대상 29:11-2). 그가 앞에서 시간적 개념을 가지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였다면, 여기서는 공간적 개념으로 그분의 위상에 대해 언급한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 29:11-12). 다윗에게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대하심, 권능, 영광, 승리, 위엄(존귀)의 소유자로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진 분이시다. 다윗은 하나님을 우주적 주권자로 인식한 후에 그분을 “만물의 머리”라고 고백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우주적 주되심(the universal lordship)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하나님이 우주적 통치권자시라는 선언이다. 이러한 사상은 부활, 승천하시고 높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우주적 주권자가 되신 사실을 강조하는 바울 신학에도 반영되어 있다(참조. 엡 1:22).

마지막으로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린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대상 29:13). 다윗은 솔로몬이 성전을 잘 추진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며 하나님의 영화로우신 이름을 찬양한다. 그는 건축에 필요한 막대한 돌들과 각종 철재들, 기물 제작에 필요한 모든 금속들과 목재들, 내부 및 외부 장식에 필요한 금과 은을 충분히 준비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영화로운 이름을 높이 찬양하였다. 또한 그는 자신과 자신의 백성이 즐거운 마음으로 금은보화를 바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격하였다. 다윗에게 백성의 마음을 모을 수 있었던 것과 각자가 가진 소유를 기쁨으로 바칠 수 있었던 것은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위대한 지도자라 할지라도 가치 있는 일에 백성의 공감을 얻는 것, 그들로 행동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지만 다윗은 이 모든 일이 실현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분을 찬양하였다.

(2) 성전 건축을 위한 봉헌에 대한 감사의 고백과 기쁨의 표출(대상 29:14-17)

다윗은 여전히 자신과 백성이 성전 건축을 위해 마음껏 헌물을 바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숭고한 가치를 느끼며 자신의 내면에 용솟음치는 기쁨을 표출하였다. 이는 결코 공치사나 생색내기가 아니라 자기가 그토록 사모하던 일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진정한 기쁨의 표현이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대상 29:14상). 다윗으로서는 자기와 자기 백성이 그토록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수 있었던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다윗은 인간이 자기 소유에 대해 얼마나 집착하는 존재인지, 얼마나 탐욕스러운 존재인지(남의 양 1마리마저 빼앗아 자기 양 99마리에 채워 100마리로 만들고자 할 만큼의) 잘 알고 있었다.

다윗은 자신이 이토록 타락한 본성을 넘어서서 주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자기와 자기 백성이 혼신을 다해 봉헌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기와 자기 백성 안에 어떤 강력한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는 성전의 언약적 의미(다윗 왕조가 영원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과 그 선취적[先取的] 상징으로서의 성전)를 깨닫고 온 힘을 다해 성전 건축 준비를 무사히 마쳤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큰 기쁨을 맛보았다. 그의 기쁨은 자기가 성전 건축을 위한 소요 비용의 큰 몫을 담당했다고 하는 인간적 뿌듯함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다.

다윗은 자기와 자기 백성이 성전 건축을 위해 마음에 품었던 신앙적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밝힌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하). 그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의 출처가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의 전을 짓기 위해 자기의 소유를 바치는 것이 지극히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그가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겨우 물질의 입출 문제로 보지 않고 그분의 위대한 사역(당신의 나라를 성취해 가시는)에 일치된 삶을 사느냐의 문제로 여겼다는 것을 암시한다.

사실 지구가 모래알의 결합체라고 가정할 때 그 모래알의 수(數)보다도 훨씬 더 많은 항성들과 행성들로 이루어진 천체 곧 하늘들과 하늘들 위의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물질 문제는 지극히 작은 문제에 불과하였다. 다윗은 물질을 초월한 하나님과의 영적 결합과 그에 따른 행위를 최우선적 가치로 여겼다. 하나님의 원대한 뜻을 깨달은 다윗으로서는 자신의 모든 소유의 출처이신 하나님께 성전 건축(하나님 나라 실현의 가시적 상징)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봉헌하는 것이 심히 즐거운 일이었고, 이에 따르는 물질적 유출에 대해서는 그분의 충만하심으로 보다 더 크게 채워주시리라고 확신해야 할 따름이었다.

다윗은 이스라엘 민족의 지상에서의 삶을 이렇게 자평한다: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대상 29:15). 다윗은 자기 조상들이 잠시 세상에 존재하다가 생을 마감한 것처럼 자기들도 세상을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주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고 고백한다(비교. 히 11:13; 벧전 1:1, 17; 2:11). 그는 땅에서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낯선 나라를 잠시 다녀가는 나그네의 삶으로, 또는 잠시 거류하다가 떠나는 이주자의 삶으로 인식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이 영원한 것처럼 착각하고 살 때가 많고, 거기에 영원한 나라를 건축할 수 있는 것처럼 살아 가지만, 그것은 허무를 경영하는 일일 뿐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 인간은 지나가는 구름과 같아서 어떤 의미에서 아무 희망이 없다.

하지만 “주 앞에서”라는 어구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부인한다고 해서 부인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의 삶 앞에 그림자보다도 더 큰 키로 거기에 우뚝 서셔서 사랑스러운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신다. 우리가 비록 큰 긴장과 압박감 가운데 세상에서 살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우편 그들이 되셔서 우리의 삶을 지켜보신다. 그러기에 우리가 세상에 있는 동안 하나님 앞에서 어떤 동작을 하며 살아가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그분의 뜻에 합치한 삶은 우리에게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 큰 보상으로 주어질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믿는 자들이 더 이상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엡 2:19)이라고 하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버려진 자와 같이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그의 나라의 백성으로서 살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다시 성전 건축 준비와 관련하여 이렇게 진술한다: “16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17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대상 29:16-17). 지금 다윗의 의식(意識)을 지배하는 것은 성전 건축을 위해 아낌없이 바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감사와 경이감뿐이다. 다윗으로서는 성전 건축을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봉헌할 수 있었던 것이 너무도 놀랍고 그 꿈이 이루어질 것에 대한 기대감으로 즐겁기만 하다. 이 두 절의 내용은 앞 14절에서 한 말에 대한 보충적 진술이다.

나는 이 두 절에서 네 가지 요점을 발견한다. 첫째, 다윗이 성전 건축을 위해 온갖 물건을 준비한 목적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다. 곧 지어질 솔로몬 성전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에 대한 존숭을 상징하는 처소였다. 구약시대에 그곳은 실제로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나타나고, 그의 권능과 존귀, 권능, 위엄, 사죄의 은총이 나타나며, 그의 계시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이었다.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선포되고 그분이 영광을 받으시는 처소가 되어야 한다.

둘째, 다윗은 성전 건축을 위해 자기와 자기 백성이 바친 모든 물건의 원소유주가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한다. 그는 그 모든 물건이 다 주께로부터 왔으므로 다 주의 것이라고 진술한다. 이것은 그것들이 모두 주의 손에서 온 것이기에 자신들의 봉헌 행위가 대단할 것이 없다는 고백이다. 다윗이 자신과 백성이 바친 모든 물건의 출처를 언급하기 위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라고 표현한 것은 사람이 손에서 손으로 물건을 전달하듯이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묘사하기 위한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관계를 구체적 스킨십이 발생하는 관계로 묘사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셋째, 다윗은 모든 물건을 정직함즐거움으로 바쳤다고 고백한다. 다윗에게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감찰하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다윗이 정직한 마음으로 봉헌한 사실을 알고 계신다. 다윗 또한 하나님이 자신의 정직한 마음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나님께 드려진 헌물이 정직한 마음의 샘에서 나온 것이 아닐 때 하나님은 그것을 가증히 여기신다. 하나님은 위선과 과시의 헌물을 역겨워하고 배척하신다(참조. 사 1:11-14). 다윗은 정직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헌신의 마음으로 즐거이 모든 물건을 봉헌하였다. 다윗의 봉헌의 즐거움은 정직한 마음에 근원을 두고 있다.

넷째, 다윗은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니 자기가 심히 기쁘다고 고백한다. 성전 건축 준비는 다윗 자신만의 준비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백성의 헌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였다. 다윗이 성전 건축의 의미에 대해 백성을 향해 연설할 때 다행히도 그들은 적극적으로 호응하였다. 그들은 자원하는 심령으로 각자가 가진 귀한 물품을 주께 드렸고, 다윗은 이 모습을 보며 기뻐하였다. 먼 훗날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그들이 작정한 구제헌금 약속을 속히 이행할 것을 독려하고자 마게도냐 성도들의 모금 활동에 대해 칭찬할 때(고후 8;1-5) 그가 사용한 언어들을 보면, 그가 다윗 시대의 이 인상 깊은 봉헌 행위를 염두에 두었던 것인지 아닌지 상정해 볼 수 있다.

(3) 백성들과 솔로몬을 위한 간구(대상 29:18-19)

다윗은 먼저 백성들을 위해 간구한다: “우리 조상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주의 백성의 심중에 영원히 두어 생각하게 하시고 그 마음을 준비하여 주께로 돌아오게 하시오며”(대상 29:18). 다윗의 간구의 대상은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이시다. 다윗이 염두에 두고 있는 조상들은 아브라함을 필두로 한 세 족장이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민족사에 있어서 하나님의 복의 언약을 받은 가장 대표적 인물이며, 이삭은 그 언약을 계승한 인물이며, 이스라엘(야곱)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들은 역사 속의 실제 인물들로서 다윗은 자기의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산 자들의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고 있다. 다윗이 이렇게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 민족이라는 것을 스스로 마음에 새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다윗이 백성들을 위해 간구하는 내용은 두 가지다.

첫째, 다윗은 “이것을 주의 백성의 심중에 영원히 두어 생각하게” 해 주시라고 간구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인데, 나는 이 지시대명사가 앞의 어떤 한 명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포괄적 의미의 어떤 한 중요한 개념을 가리킨다고 본다. 다윗에게 이것은 백성이 영원히 간직해야 할 중요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다윗의 기도의 심층적 의미를 생각해 볼 때 “성전을 통해 이루어가시는 ‘여호와의 나라’(대상 28:5)의 영원한 언약”을 의미한다고 본다. 다윗은 백성이 이 언약을 심중에 영원히 간직하기를 소원하였다. “심중에”라고 짧게 번역된 원어는 직역하면 “마음의 생각의 의도에”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위대한 언약이 백성의 영혼 구석구석에 영원히 스며들기를 소원하였다.

둘째, 다윗은 “그 마음을 준비하여 주께로 돌아오게” 해 주시라고 간구한다. 이 내용에 해당하는 원문을 직역해 보면, “그들의 마음을 당신에게로 향하게[고정되게] 하소서”이다. 다윗은 향후 백성의 마음이 누구를 향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바라볼 것이냐 다른 어떤 것/존재를 바라볼 것이냐 하는 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였다. 다윗은 백성의 마음이 흔들림 없이 하나님께 고정되기를 소원하였다. 이스라엘 민족사에 있어서 그들이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다른 것을 바라볼 때 그들은 우상숭배와 마술과 주술에 빠졌다. 믿는 자들이 항상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을 그분께 고정시키고 사는 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다음으로 다윗은 장차 성전을 건축할 솔로몬을 위해 간구한다: “또 내 아들 솔로몬에게 정성된 마음을 주사 주의 계명과 권면과 율례를 지켜 이 모든 일을 행하게 하시고 내가 위하여 준비한 것으로 성전을 건축하게 하옵소서”(대상 29:19). 다윗은 아들 솔로몬이 자기가 준비한 모든 것을 사용하여 성전 건축 공사를 차질 없이 진행하기를 간구한다. 다윗은 이 일을 위해 첫째로 솔로몬에게 먼저 “정성된 마음”을 주시기를 간구한다. 하나님의 성전은 정성된 마음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오늘날의 교회 목양도 지도자의 정성된 마음 없이는 제대로 될 수가 없다. “정성된 마음”은 “온전한 마음”(레바브 샬렘. a perfect heart)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다윗은 인간의 모든 행위는 마음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솔로몬이 온전한 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전을 건축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둘째로 다윗은 솔로몬이 온전한 마음에서 출발하여 “주의 계명과 권면과 율례를 지켜” 성전 건축의 모든 일을 행할 수 있기를 간구한다. 다윗은 온전한 마음으로 “주의 계명과 권면과 율례”를 지키는 자라야 주의 언약을 바로 이해하고 성전 건축의 일을 바르게 행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였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 곧 그의 통치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준수하는 자라야 성전 건축의 일을 바르게 행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다윗에게 하나님의 법은 당신과 당신의 백성 간의 관계 설정의 기준이며 동시에 당신의 백성들 간의 질서 확립의 기준이었다. 다윗에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모호하고 질서가 파괴된 하나님의 나라(성전으로 상징화되는)란 상정 불가능한 개념이었다.

셋째로 다윗은 솔로몬이 자기가 미리 준비한 모든 자재들과 물품들을 사용하여 성전 건축의 일을 잘 행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한다: “내가 위하여 준비한 것으로 성전을 건축하게 하옵소서”(대상 29:19하). 다윗의 이 간구는 매우 평범하지만 승계의 중요성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만일 솔로몬이 부왕 다윗의 뜻을 무시하거나 그가 준비한 모든 물건을 하찮게 여기거나 등한시한다면, 나단의 신탁을 통해 하나님의 원대한 뜻을 깨달은 다윗과 그의 왕위를 잇는 솔로몬과의 연계성은 파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날 교회 현장에서도 앞 세대가 받은 사명을 뒷 세대가 전승받아 일관성 있게 수행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상과 같이 기도한 후에 다윗은 온 회중을 향해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독려하였다(대상 29:20). 다윗의 선포에 온 백성이 하나님을 송축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다윗에게 절을 하였고, 그 이튿날에는 그들이 풍성한 제물로 하나님께 번제와 전제를 드리고 모두 크게 기뻐하며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셨다(대상 29:20-22). 그들은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어 하나님 앞에서 다윗을 잇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고 사독에게도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제사장으로 삼았다(대상 29:22).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왕의 위엄을 주셨고 그를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으로 우뚝 세워 주셨다. 

김정훈 교수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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