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코로나와 어린이

기사승인 2022.05.03  10:53:39

공유
default_news_ad1

- 정광호 케냐 선교사의 편지

정광호 선교사/ 현 케냐 주재, GMS 원로선교사

   
▲ 정광호 선교사 

 아프리카는 적도 하의 무덥고 지루한 건기철(10-3월)이 지나가고 생명의 계절인 우기철(4-9월)이 되었다. 케냐의 모든 학교가 부활절 방학(4월)을 마치고 새 학기를 시작했다. 케냐는 ‘세계 어머니의 날’(5월 둘째 일요일)을 기념하지만, 어린이의 날은 제정하지 않았다.
  

현재까지 관찰에 본 바에 의하면, 코로나 바이러스의 한 특성은 노령자들과 남성들의 감염과 사망률이 가장 높고 그 다음이 여성이며 대신 어린이들의 감염률이 가장 낮았다.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턱걸이 마스크를 쓰고 학교에 다니는 더운 열대지방의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이 이제는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학교에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영국 낭만주의 시인이었던 월리웜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의 짧은 시, <무지개>(1802)에 나오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다” 란 유명한 구절이 떠오른다.

‘무지개’
내가 하늘에 쳐진 무지개를 바라볼 때
내 심장이 뛰어오른다.
내 생명이 시작할 때,
내가 어른이 된 지금이나,
그래 내가 늙어 갈 때에,
또한 내가 죽을 때도!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이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은
나의 매일 매일이 자연의 경건함에
묶여지기를.

월리엄 워즈워스는 어린이들의 동심의 세계와 대자연의 경외심을 위의 짧은 시에서 조화시켰다. 순진한 어린 시절을 폭풍우가 지난 푸른 하늘에 둘러친 무지개에 비유하였는데 이는 희망, 기쁨, 평온함, 색깔의 여왕, 약속에 대한 비유이다. 이는 또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동할 줄 아는 순수한 그 마음을 어린이들의 순수한 마음에 비유한 것이다.

어린이들의 현재와 미래의 잠재력은 동심의 순수성, 감수성, 개방성 속에서 커져가며 어른으로 자라 간다. 그 어린싹 속에서 내일 어른의 모습이 형성되어 가고, 결국 어린이가 커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낳으면 새로운 지식과 기술로 저들의 아버지를 가르치고 부양한다는 말이다.
  

   
 

성경에서 무지개는 하늘에서 하나님 평화(창 9:13)와 하나님의 영광(겔 1:28)을 선포한다.

구약 성경에서 무지개(창 9:13)는 노아 홍수심판 후에 나타난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과의 평화와 구원의 상징이요 계약이다. 창세기 9:13의 히브리어 원문의 무지개는 ‘활’이란 단어이다. 활이 무지개처럼 구부러져 펼쳐있는 모양 때문에 성경의 많은 번역본들과 한글 성경에도 ‘무지개’로 번역하였다. ‘활’과 화살은 일반적으로 적을 쏘는 전쟁의 무기이다(삼상 20:20-23; 시 18:14).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후에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 ‘활’을 땅 위의 하늘에 걸어 놓으신 것이다(NIV Spirit of the Reformation Study Bible: Grand rapids: Zondervan, 2003, p. 26). 그러므로 ‘활’은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과의 평화와 번영의 협정(계약)이었다.

예루살렘의 제사장이었던 에스겔은 바벨론으로 유배되어(기원 593년) 유프라데스강의 한 줄기인 그발 강가에서 하나님의 선지자로 환상을 보고 소명을 받았다(겔 1:1-3:27). 그는 환상 속에서 폭풍우 구름 가운데 ‘네 생물’(그룹: 하나님의 보좌를 운반하는 천사들, 겔 1:5; 10:1)이 나타나고  하나님께서 천사들의 수레를 타시고 그의 위엄과 존귀함, 영광의 빛을 ‘활’(히브리어 원문, 무지개로 번역) 가운데서 비추시는 모습을 보았다. 에스겔이 본 무지개는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이었다(겔 1:28). 이 무지개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은 예루살렘성전을 떠나서(겔 10:128-19; 11:22-23) 이방 세계를 비추는 빛으로 비추게 된다. 그리고 다시 바벨론 유배가 끝날 때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겔 43:1-5).

고대의 농경사회에서 어린이는 가정의 영광이요, 노동력을 제공하는 힘이요, 또한 기도자들이었다. 가물 때, 어린이들이 비를 달라고 기도하면 신은 그들의 순수하고 정직함 때문에 그 기도를 들어 주셨다(Kittel, G. & Friedrich, G., (eds).,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tr.) by G. W. Bromiley,  Grand Rapids:  Eerdmans, Vol. V, 1964-1974, pp. 639-644). 성경에서도 어린이는 하나님의 선물이요 축복이라고 했다(시 127:3-5; 128:3-4). 그래서 자식이 없으면 저주를 받은 것과 같은 것이다(창 15:2; 삼상 1:2).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어린이를 낳지 못하면 신의 저주로써 인종몰살보다 더 못한 것”(John Mbiti, Africa Religion and Philosophy, Nairobi: Heinemann, 1969, p.110)으로 여긴다.

한편 아프리카에서는 ‘우분투’(Ubuntu) 사상(철학)이 있다. 나의 존재는 곧 우리의 존재 때문에 가능하다. 즉, 나의 존재는 ‘우리’의 사회적 공동체 속에 존재한다는 사상이다. 어린이 하나는 존재의 가치, 독특성과 차이를 가지면서 ‘우리 공동체’ 속에서 저들의 인격이 형성되고 성숙해 간다. 아프리카의 ‘우리’라는 대가족제도와 공동체 속에서는 부모를 잃은 고아가 있을 수 없다.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는 자연히 그의 일가 친족의 공동체에 예속되고 보살핌을 받으므로 고아로 전락될 수 없는 것이다. 개인주의가 아니라 형제로서 서로 의존적이며 연결되어 있는 ‘우분투’ 공동체 속에서 의식주 문제를 해결시켜 준다.
 

선교적인 측면에서 어떤 종교가 숫적으로 지속적 성장을 한다면 이는 두 가지 요인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첫째는 생물학적 성장이다. 즉 부모의 종교를 이어받는 어린이들의 신앙심이 성장하는 경우이다. 둘째는 어린이를 위한 종교교육, 즉, 기독교의 어린이 주교교육, 유대교의 가정과 회당교육, 회교의 사원의 코란교육 등에 의하여 성장한다. 유명한 예수교 선교회 선교사로서 ‘일본의 사도”라고 불리우는 프란시스 세비어(Francis Xavier, 1506-1552)는 그의 선교 전략 중에 어린이 교육선교를 강조하고 말하기를, “나에게 7살 미만의 어린이를 주라 그러면 그는 일생동안 가톨릭 신자로 남을 것이다”라고 어린이 신앙교육을 강조하여 성공적인 교육선교를 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이 어린이 교육을 강조하셨다.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축복하셨고(마 19:13-15; 막 10:13-16; 눅 18:15), 어린이들의 지혜를 인정하시고(눅 7:35), 어린이들에게  하늘의 아버지의 계시를 주신다(눅 10:21)고 하셨다. 어린이들의 찬미는 원수를 이겨내고(마 21:15-16; 시 8:2), 구원의 열망이 가득 차 있다(마 21:15; 시 118:25). 천국의 주인공들이며,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눅 18:16-17)고 하셨다. 어린이들의 의존성, 겸손, 신뢰, 수용성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는 어린이 노동, 전쟁과 내란으로부터 피난살이, 그리고 성폭행 등이 가득 찬 세상이다. 그러나 어린이들의 핍박만은 없어지기를 기원한다. 앞으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어린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 지금까지 코로나바이러스의 전염병에 어린이들의 감염률이 가장 낮다는 것은 다음 세대의 주인공들이 될 어린이들, 내일의 어른들을 보존하기 위한 하나님의 일반은총이 아닐 수 없음이 분명하다.

정광호 선교사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