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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전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기사승인 2022.05.10  13: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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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철학 올레길과 둘레길3

<교회와신앙> 이신성 기자】  철학은 만물의 ‘아르케’를 묻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됐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인간의 바깥 세상, 자연 만물을 관찰하며 원리를 발견하고 설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철학적 탐구가 시작된 지 150년도 지나지 않아 철학은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 전환을 이룬 사람은 소크라테스였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의 흐름을 만물의 아르케에 대한 관심에서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바꿨다. 그는 철학의 질문을 인간의 영혼을 연구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의 제자 플라톤은 이런 스승의 철학을 계승하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철학을 발전시켰다.

   
▲ 그리스와 페르시아 전쟁 때의 아테네. 다음 백과.

서양철학은 그리스 본토가 아닌 주변부에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그리스 본토, 특별히 아테네에서 새로운 철학이 꽃 피우기 시작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등장해 활동했기 때문이다. 이때를 고대 그리스 철학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철학의 황금기가 전쟁 없는 평화의 시기에 도래한 것은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는 도시국가(폴리스, polis)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페르시아가 그리스 주변 도시국가들을 점령하면서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기원전 492-448년)이 시작됐다. 그리스 연합군이 페르시아를 물리친 이후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아테네와 스파르타 두 도시국가가 전쟁했다(펠로폰네소스 전쟁, 기원전 431-404년).

결국 스파르타가 아테네에 승리했지만 스파르타의 아테네 지배는 오래가지 못했다. 오히려 전쟁의 패배자였던 아테네가 유명하며 지금까지도 그리스의 수도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아테네의 유명세는 아테네에서 활동한 철학자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때문이기도 하다. 아테네는 성경에서는 아덴으로 번역되어 있으며, 사도행전 17장에서 사도 바울이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 쟁론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 아테네가 고대 서양철학의 올레길과 둘레길 두 번째 코스이다.
  

◎ 소피스트, 실용적 지식 판매

고대 아테네에 지식을 가르침으로써 돈을 받는 직업군이 생겨났다. 그 당시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물품이 주된 상품이었다는 점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지식을 가르치며 돈을 받는 이들의 행위는 오늘날 창조 경제(creative economy)라고 일컫는 경제활동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렇게 놀라운 경제활동을 했던 사람들이 바로 소피스트(sophist)이다. 하지만 이런 소피스트들의 행태를 비판하던 사람도 있었다. 크세노폰은 소피스트를 ‘돈을 위해 지식을 파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심지어 그들이 교묘하게 말하는 것을 두고 ‘궤변론자’(詭辯論者)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소피스트의 헬라어 어원은 ‘영리한’, ‘능숙한’을 의미했고 여기서 소피스트는 ‘현자’(賢者) 혹은 ‘현인’(賢人)이라는 뜻이 유래됐다. 물론 그 당시 그리스 사람들은 소피스트를 ‘직업적 교사’라고 이해했다. 자신이 가진 실용 지식을 가르치며 수업료 명목으로 돈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소피스트를 오늘날의 ‘개인 교습소 선생’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소피스트들은 어떻게 살 것인지, 공동체에서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과 관련된 지식을 가르쳤는데, 주로 ‘수사학’과 ‘웅변술’이었다. 소피스트들은 이렇게 인간의 삶과 관련된 실용지식을 가르침으로써 자연 만물에 대한 관심보다는 인간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 프로타고라스, “만물의 척도는 인간이다”

이전의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즉 자연철학자들은 만물의 <아르케>에 대해서 탐구했다. 그런데 소피스트였던 프로타고라스는 만물의 기준으로 인간을 내세웠다. 이 말은 이 세상 만물의 가치를 부여하거나 결정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뜻으로,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드러내고 있다. 비록 만물의 척도가 인간이라고 했지만, 모든 인간이 동일한 경험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고, 판단이 다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각 도시국가와 이웃 나라들과의 교역으로 인해서 사람마다 문화와 관습이 다양하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프로타고라스는 ‘모든 사람의 생각이 옳다’고 여겼다.

이런 점에서 ‘만물의 척도는 인간이다’는 말은, ‘인간 각자 판단이 가능하며 그 판단은 옳다’는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다. 여기서 결국 ‘여러 조건의 차이 때문에 가치 판단이나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상대주의’가 등장한다. 상대주의가 전제된 사회에서는 의견이 충돌하기 쉬웠고, 그런 상황에서는 누구 말이 설득력이 있느냐가 중요했다. 소피스트들은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소피스트들은 한편으로는 고대 그리스 사회에 상대주의적 태도를 확산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상대주의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지식을 가르치며 돈을 받고 생활했다. 소피스트들이 활개치는 상황에서 상대주의적 태도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는 사람이 등장한다.
  

◎ 소크라테스(Socrates), “나는 무지(無智)를 깨우치게 하는 등에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델포이(델피)의 신탁이 인간의 운명을 알려준다고 믿었다. 델포이의 신탁을 주관하는 예언 신은 바로 아폴론이었다. 따라서 델포이에는 아폴론을 위한 신전이 있었는데, 그 신전에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어떠한 인간도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는 말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인간의 운명을 다룬 것이 바로 비극이다. 대표적인 비극이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이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 사람들은 아폴론의 지혜를 의지했다. 다만 델포이의 신탁은 여사제 피티아를 통해 전달됐는데, 이해하기 어렵거나 여러 의미를 내포한 말이었기 때문에 결국 사제들이 신탁을 듣기 원하는 청원자에게 해석해주곤 했다.

이런 가운데 “아테네에서 가장 뛰어난 현자는 소크라테스다”라는 델포이의 신탁이 소크라테스의 친구 카이레폰(Chaerephon)을 통해 전해졌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소크라테스는 자기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는 사실조차도 모른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뭔가를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에게 여러 가지 질문들을 던지며 그가 ‘안다고 착각했을 뿐 사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점을 인정하게 만들곤 했다. 이런 행동은 그의 부모 직업과도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소크라테스의 아버지는 석공(혹은 벽돌공)이었고, 어머니는 산파였다. 그는 사람들이 품고 있는 무지가 드러나도록 돕고(산파), 사람들의 무지가 도드라지도록 하는(석공/벽돌공)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특별히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흔히 ‘산파술’이라고 부르곤 한다.

아테네 사람들의 무지를 깨우치는 것을 사명으로 알았던 소크라테스의 행보는 당시 지도층을 불편하게 했다. 아테네 당국은 신을 모독하고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죄목으로 소크라테스를 고소했다. 재판을 통해 소크라테스의 기행(奇行)이 멈출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오히려 재판관과 배심원들 앞에서 자신은 “아테네 시민들의 무지를 일깨우는 등에(짐승의 등에 붙어 피를 빨어 먹어 짐승을 자지 못하게 하는 벌레) 역할을 하기에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소크라테스에겐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그의 친구들이 탈옥을 간청했지만, 소크라테스는 “내가 만약 도주를 하면 지금까지 가르친 것을 부정하는 셈이다”라고 답하며 거부했다. 이렇게 삶을 마친 소크라테스에게는 뛰어난 제자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플라톤이다.

   
▲ 자크 루이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 그림(pixabay) 

  

◎ 플라톤(Platon), 이데아(idea)로 이전 철학들 종합

우리는 지난 번에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와 본질을 봐야 한다는 파르메니데스, 만물의 아르케가 수(數)라고 했던 피타고라스, 원자라고 했던 데모크리토스를 살펴봤다. 플라톤은 자기 이전에 있던 사람들의 철학을 종합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파르메니데스는 진리는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황에 따라 진리가 이러저러한 모습으로 바뀐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헤라클레이토스가 언급한 변화하는 현상은 진리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변화한다. 이런 현실 생활 속의 변화와 진리의 불변성에 주목한 플라톤은 감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변화하는 세계인 ‘현상계’(現象界)와 불변하는 참된 세계인 ‘이데아계’(idea界)를 구분했다.

이러한 구분은 만물의 아르케로 원자를 제시했던 데모크리토스의 유물론에 대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물질만으로는 이 세상의 만물이 만들어질 수 없고, 오히려 물질이 그러한 모습으로 존재하도록 만들고 정의(定義, definition)할 수 있는 ‘초월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플라톤의 생각은 결국 사람이나 나라나 문화와 상관없이 불변하는 수(數)와 같은 관념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러한 관념이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의 존재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 플라톤의 주장이다.

플라톤이 이러한 주장을 하게 된 과정을 추측해 보자. 사람마다 키와 몸무게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키가 크고 몸무게가 무겁다. 어떤 사람은 키가 작고 몸무게가 가볍다. 이 두 사람만 있었을 때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데, 그 사이에 중간 정도의 사람이 끼어들면 문제가 된다.

   
▲ 가운데 있는 사람은 왼쪽의 사람보다는 작지만 오른쪽의 사람보다는 크다.(pixabay)

왜냐하면 처음에 언급한 키가 크고 몸무게가 무거운 사람과 비교하면 그 사람은 키가 작고 몸무게가 가벼운 사람이다. 하지만 나중에 언급한 키가 작고 몸무게가 가벼운 사람과 비교하면 이 사람은 키가 크고 몸무게가 무거운 사람이 된다. 어떻게 한 사람이 키가 작고 몸무게가 가볍다는 평가를 받다가 정반대로 키가 크고 몸무게가 무겁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까? 보통 사람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안 되는 이 일이 플라톤에게는 무척이나 심각한 문제였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식에 혼란이 생기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크고 작고, 무겁고 가벼운 것은 하나의 물질에 절대로 함께 적용할 수 없는 개념이다. 크면 큰 것이고 작으면 작은 것이다. 무거우면 무거운 것이고 가벼우면 가벼운 것이다. 그런데 한 사람에게 이렇게 상반되는 개념이 함께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플라톤은 깜짝 놀랐다. 이 외에 다른 상반되는 개념 역시 한 사람에게 적용되어 혼동을 줄 수 있다. 뚱뚱한/마른, 피부색이 밝은/어두운 등의 상반되는 개념 역시 한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 가능하다. 플라톤은 이러한 혼동을 일으키는 문제를 근원적으로 밝히고 해결하려고 시도했다.

플라톤은 그 사람이 키가 크거나 작거나, 뚱뚱하거나 마른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개념 자체가 그 사람 밖에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개념이 그 사람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의 이성이 그런 개념을 파악하고 인식하기 때문에 그렇게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플라톤의 설명처럼, 어떤 개념이 이 세상 밖에 초월적으로 존재하고 이 세상의 것들에게 그 초월적인 개념이 적용되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그리 크게 혼란에 빠질 이유가 없다. 이럴 때는 이것이 적용되고, 저럴 때는 저것이 적용된다고 합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이 초월적인 개념을 <이데아>라고 주장했다.

   
▲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사진, 바티칸 홈페이지 갈무리. 그림 한 가운데에서 하늘로 손가락 하나를 올리고 있는 사람이 플라톤이다.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는 플라톤의 모습은 자크 루이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 속 소크라테스의 모습과 비슷하다. 

플라톤은 자신의 <이데아>를 설명하면서 몇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이데아는 이 세상에 있는 감각적인 사물들의 복제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동차의 이데아는 이 세상에 있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자동차의 모양이나 디자인을 복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데아로부터 이 세상의 개별물이나 디자인이 나온다는 점에서 이데아가 ‘원본’이라는 뜻이다. 둘째, 이데아는 개별 사물들의 존재를 설정한다. 감각적인 사물이 존재하는 것은 그것들이 이데아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이데아는 감각적 세계로부터 독립해서 초월적으로 존재한다. 이데아는 감각적인 현상계에 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넷째, 이데아는 이성에 의해 포착되고 파악될 수 있다. 감각적 세계로부터 초월해 있기에 오직 이성만이 이데아를 인식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섯째, 감각적 세계는 이데아의 그림자이다. 플라톤은 이런 면을 유명한 ‘동굴의 비유’를 통해 설명했다.

  

◎ 이데아와 인간의 영혼

그런데 플라톤의 설명은 이해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플라톤이 설명하는 이데아는 감각으로는 확인할 수 없고 오직 정신만이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정신은 어떻게 이데아를 파악할 수 있을까?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 때문이라고 답했다.

헬라어 <프쉬케>는 ‘생명의 호흡’, ‘숨결’, ‘생명력’을 의미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프쉬케>, 즉 영혼은 살아 있는 모든 것에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파타고라스 학파와 오르페우스교에서는 영혼을 ‘육체 안에 갇힌 타락한 신’으로 이해했다. 이러한 영혼은 육체에서 벗어나 원래의 자리(이데아계)로 돌아가야 했다. 플라톤은 이러한 종교적이면서도 신화적인 영혼 개념을 보다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영혼이 서로 구별되는 세 가지 면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성, 명예로운 욕망과 불명예로운 욕망으로 구별했다. 이러한 영혼의 세 가지 면은 각각 그 역할에 맞는 탁월함(헬라어 <아레테>)을 발휘해야 한다. 이성은 지혜, 명예로운 욕망은 용기, 불명예로운 욕망은 절제가 각각의 탁월함이라고 제시했다. 플라톤은 지혜는 이성적 정신과 통치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며, 용기는 명예를 추구하는 영혼과 군인들에게 필요한 덕목이며, 절제는 욕망을 조절하는 덕으로써 생산자들에게 필요한 덕목이라고 규정했다. 플라톤에게 있어 ‘정의’(正義)는 영혼의 각 부분들과 국가를 이루는 각 부분들이 다른 부분들과 상충되지 않도록 고유한 기능을 행사하는 것 의미한다.

플라톤은 이러한 영혼의 세 가지 면을 설명하기 위해서 두 마리 말(백마(白馬)와 흑마(黑馬))이 끄는 마차를 모는 마부 이야기를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즉 마부는 이성의 영혼을, 백마는 기개의 영혼, 흑마는 정욕의 영혼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이 말들은 날개가 달려있어서 날아다닐 수 있다. 특히 기개의 영혼이 날아오를 때 하늘 위의 구멍을 통해서 이데아계의 이데아를 파악하게 된다. 무엇보다 육체 안에 갇힌 영혼이 이 세상에서 이데아를 파악할 수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영혼이 이데아계에 있었을 때의 기억을 상기(想起, mimesis)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날개를 가진 말, 기개의 영혼을 잘 다룬다면 영혼은 자신의 본향인 이데아계로 돌아갈 수 있다. 육체로부터의 영혼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이성을 개발하고 정욕을 통제하며 기개를 잘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만약 이성과 기개보다 정욕의 영혼에 이끌린다면 몸의 욕망에 따라 타락하게 된다.
  

◎ idealism과 ideology, 크리스천은?

20세기 과정철학자 화이트헤드(A. N. Whitehead)는 “유럽 철학 전통에 대한 가장 안전한 일반적 묘사는 그것이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각주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화이트헤드, 오영환 역, <과정과 실재>(민음사, 1991), 110쪽). 서양철학의 개념이 플라톤으로부터 유래했으며 대부분의 철학적 주제를 플라톤이 다루었다는 뜻이다.

플라톤의 <이데아>(idea)로부터 나온 철학적 용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idealism으로 <관념론> 혹은 <이상주의>로 번역된다. 이것은 플라톤의 <이데아>가 관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을 초월한 이상적인 성격 때문에 붙여진 용어이다. 다른 하나는 ideology인데, 보통 <이념>으로 번역되며 개인이나 집단의 사상과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주장이나 세계를 설명하고 변화시키는 것을 뒷받침하는 관념적 체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플라톤 철학과 용어는 크리스천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플라톤은 일상에서 발생하는 상대주의적 문제를 절대적이며 영원하고 불변한 이데아를 보편적 정의(定義)로 내세워 해결하려 했다. 이런 점에서 상대주의가 강조되고 절대적 진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현대에서 플라톤 철학은 되집어 볼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은 그리 낯설지 않다. 사람은 자신의 감각을 넘어서는 영원하고 불변적인 관념을 항상 떠올리기 때문이다.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더라도 사람들은 교회라고 하는 관념을 머리 속으로 떠올리게 되어 있다.

물론 보통 사람들은 교회 건물이나 교회 이름 혹은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을 생각하기 쉽지만 말이다. 플라톤은 모든 교회가 본받고 참여해야 하는 보편타당한 근거로 ‘교회의 이데아’를 제시했다. 크리스천은 보편타당한 교회의 이데아를 바탕으로 교회를 세우거나 새롭게 할 수 있다. 다만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이상주의(idealism)와 이념(ideology)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상주의가 현실에 안주하기 보다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상주의는 현실주의의 반댓말로 현실을 무시하는 사고방식을 지칭되곤 한다는 점을 염두해야 한다. 또한 교회에서 너무 이념(ideology)을 강조하다 보면 신앙 공동체라기보다는 정치적 모임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이신성 기자 shinsunglee73@gmail.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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