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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또 다른 최전선

기사승인 2022.05.12  11: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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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은수 교수의 우크라 피난지 방문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 최은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전면적인 침략을 받은 지도 어느덧 두 달을 훌쩍 넘어 근 70여 일을 지나고 있다. 세간의 평가대로 단 며칠 만에 종료될 것으로 예견되었던 전쟁은 더욱 치열해지며 격화되고 있는 중이다. 우크라이나의 기독교인들이 결연하게 다짐했던 대로 그들은 ‘고난의 잔’을 피하지 않고 모든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기꺼이 감당하고 있다.

사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우크라이나의 기독교 신앙에 근거한 민족적 자긍심은 러시아를 압도하면 했지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이우를 중심으로 중세 초기에는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고 지금의 러시아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었다. 사실 키이우는 러시아의 뿌리 그 자체이다. 그렇게 자리 잡은 기독교적 민족성은 몽골 제국, 독일 나찌, 그리고 구 소련 등의 침략과 민족 정체성 말살 정책에도 불구하고 시련의 용광로를 거치면서 정금같이 나아올 수 있었다.

이런 역사는 우크라이나의 결연한 저항이 일시적이거나 갑자기 보여지는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여실히 증거하고 있다. 키이우를 중심으로 하는 우크라이나를 도말하거나 굴복시키려고 하는 것은 러시아의 근본을 흔드는 일이기 때문에 이 전쟁은 시작부터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연재하였던,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를 가다’의 아르메니아나 ‘세계 최초의 여성 조명자 국가를 가다’의 조지아를 보아도 2천년이 훨씬 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국뿐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 흩어진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통하여 기독교 신앙에 근거한 민족적 정체성을 견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코카서스의 두 나라들보다 기독교 역사가 수백년 정도 후대이기는 하지만 그 패턴은 비슷하면서도 독특하게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현재도 우크라이나는 치열한 전쟁의 한가운데 있다. 전쟁을 통한 인간의 악마적인 모습이 이미 만천하에 공개되었기 때문에 왠만한 자극적인 현상이 아니고는 언론의 주목도 받지 못하고 세간의 관심에서도 멀어지게 된다. 우크라이나에서 진행되고 있는 최전방의 전쟁은 잠시 접어두고, 필자는 또 다른 전쟁의 최전선인 피난민들의 처절한 사투를 관련 사진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필자가 가장 많은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몰려들고 있는 폴란드로 가고자 했을 때, 먼저 떠오른 생각은 과연 하늘길 즉 영공이 안전할까였다. 필자의 경험상 거의 모든 유럽 노선은 러시아 영공을 통과해 왔었다. 필자가 아주 최근에 유럽에서 아시아로 올 당시만 해도 러시아의 영공을 통과했었는데, 전에는 당연시되었던 하늘길이 전쟁의 와중에서는 긴장감을 주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고 중동을 거쳐서 유럽에 갔을 때는 러시아 영공 대신에 전쟁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던 동유럽을 통과함으로 심정적인 안도감을 느꼈었던 기억도 있다. 전쟁의 와중에 필자는 러시아 영공을 정면으로 한번 통과했고, 전쟁을 피해 동유럽을 통과했으니 원래 항로와 대체 항로 모두 통과했던 셈이다.

하지만 이번의 여정은 탑승하고 나서 줄곧 항로에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였다. 원래는 중국과 러시아 영공을 차례로 통과하여 가는 항로가 시간과 비용면에서 경제적이지만, 전쟁의 상황에서 기존 항로는 이미 금지되었고 대체 항로로 가는 하늘길도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비행기는 자주 항로를 직각으로 바꾸어 안전한 영공으로 비행하는 모습이 모니터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특히 러시아 영공을 피해서 코카서스 국가들을 통과하여 치열한 교전이 진행 중인 흑해에 접어들었을 때, 또다시 항로를 급격히 바꾸어 동유럽 국가들을 차례로 경유한 후 최종 목적지에 착륙하였다. 유럽을 자주 왕래하였던 필자에게는 굉장히 이례적이고 위험을 느끼게 했던 순간들이었다. 지금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근처 영공에서 민항기인 말레이시아 항공이 미사일 요격을 받아 수백 명이 죽었던 사건이 아직 기억 속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이 가장 많이 몰리고 있는 폴란드에서 주요 도시에서는 난민 수용 능력이 한계에 다달았기 때문에 지방의 중소도시로 가라고 지도까지 제시하며 안내를 하고 있다. 현재 폴란드에는 3백만 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피신해 있으며, 숫자는 많이 줄었지만 지속적으로 피난민이 유입되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난민들이 일단 폴란드까지 와서 유럽의 곳곳으로 흩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난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나라는 독일이다. 유럽 국가들 가운데서 독일이 제공하는 패키지가 가장 좋기 때문이다. 독일은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무료로 의식주를 제공하고 무상 교육과 건강보험, 그리고 적지 않은 용돈까지 가족 수대로 지급하고 있다. 그런 연유로 독일에 입국한 우크라이나 난민의 수가 40만 명을 훌쩍 넘었고, 지금도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에서 독일로 향하는 난민의 숫자가 줄지 않고 있다.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 중앙역에 안내 데스크를 여러 개 설치하여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체계적으로 돕고 있다. 현재도 지속적으로 난민들이 유입되고 있으며, 자원봉사자들의 안내에 따라 폴란드의 중소도시로 가이드한다. 아울러 폴란드에서 출발하여 유럽 여러 곳으로 가려는 난민들도 돕고 있다.

   
 

바르샤바 중앙역은 우크라인나 난민들에게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하여 그동안 느슨했던 서방의 결속력이 더욱 체계화되고 탄탄해진 것 같다. 하지만 시리아와 아프리카 난민 사태를 현장에서 경험해 본 필자로서는 씁쓸한 점도 없지 않다. 당시 폴란드는 가장 적극적으로 반난민 정책을 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일원으로 간주하여 자국민을 대하듯 지극정성으로 환영하고 있다. 그나마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는 크나큰 위안이 아닐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18세에서 60세까지의 남성들을 출국 금지시키고 징집령을 내렸는데, 자녀가 셋 이상인 가장은 예외로 하였다. 대개 난민 가운데 보이는 가장들은 자녀가 셋 이상임을 알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징집에 응할 수 없는 사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아울러 징집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피난 행렬에 끼여서 국경을 넘은 이들도 적지 않은데, 그들 중 많은 남자들이 가족을 뒤로하고 국가를 지키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필자가 만난 빅토르 씨는 현재 러시아가 미사일 공격을 가하고 있는 오데사 근방에서 왔는데, 그는 병역을 수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다양한 방법으로 자금을 모아서 우크라이나 군대를 돕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쟁의 참상에 놀래고 오랜 피난 여정에 지친 노인의 모습이 참으로 가슴 아프다. 난민들의 대부분이 노인과 자녀를 동반한 여성들임을 감안할 때, 전후방을 막론하고 전쟁은 양쪽의 전선 모두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중이다.

   
 

아빠 없이 피난길에 오른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다음 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바르샤바 중앙역에는 여행 가방을 들고 진짜 휴가를 가는 가족과 가장 없이 피난을 떠난 가족이 뒤엉켜 있다.

   
 

난민들을 돕는 손길이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에 각국에서 자원한 봉사자들이 등록을 하고 있다. 등록을 마친 자원봉사자들은 조끼를 지급 받아 입고 중앙역 한 켠에 마련된 임시시설에서 난민들을 돕는다.

   
 

군경의 신분확인 절차를 거쳐 난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임시 막사를 출입한다. 여기서 난민을 위한 음식 등 필요한 물품들을 공급한다.

   
 

난민들을 위한 임시 막사가 제법 크다. 폴란드의 하늘은 맑고 청량한데 난민들의 발걸음은 무겁고 어둡다.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은 각국의 편의 제공으로 본국으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바르샤바 중앙역에서 만난 바자 씨도 조지아 출신으로 우크라이나보다 먼저 러시아의 침공을 받았던 고국의 아픔을 잘 알고 있다. 조지아는 단 며칠 만에 러시아에 항복했지만, 우크라이나가 선전하고 있는 모습이 경이로울 따름이다.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이렇듯 전후방을 가리지 않고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지금은 유럽 각국이 난민들을 환영하고 있지만, 유럽도 경제난으로 어렵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그들의 태도가 바뀔지 모르니 이마저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시리아 등에서 왔던 난민들이 우크라이나 난민 때문에 거주하던 집에서 강제로 퇴거당하듯이 우크라이나 난민들도 미래가 불투명하기는 매한가지다. 각국에서 일자리를 난민들에게 제공한다고 말은 하지만 제대로 된 기회는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특히 우크라이나에서 전문직에 종사하던 사람들의 박탈감은 더욱 크다. 각국에서 의식주를 제공하고 용돈을 지급하지만, 유럽의 인플레가 심해서 타국에서 살기가 녹록하지 않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기도 소리가 더욱 간절해 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쟁에 참전 중인 가족과 피난 중인 가족을 위한 처절한 기도 말이다.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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