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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식 목사, 무엇을 잘못하여 안수집사에게 1억 4천만 원을 변상했어야 했는가?

기사승인 2022.06.07  10: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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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에게 잘못하면 저주 받는다’는 설교를 하기 위하여 거짓말로 ‘목사에게 잘못하여 저주 받아 암에 걸렸다’고 설교하고 그 피해 당사자에게 대가로 4천만 원을 준 김의식 목사

최삼경 목사 / <빛과소금교회> 원로 목사, 본지 편집인
 

   
▲ 최삼경 목사

 서론: 오랜만에 다시 펜을 들면서

 필자는 작년에 37년간 하던 목회를 은퇴하였는데, 1년 남짓 글 쓸 여유와 시간과 마음을 가지지 못하였다. 은퇴 후에는 무엇보다 무조건 쉬고 싶었다. 은퇴 전에 하루에 3-4시간밖에 자지 못한 잠을 보충하고 싶었고, 더욱이 머리 아픈 교계 일들에 대하여는 억지로 외면하고 싶었다.

그러나 소용돌이치는 한국교회의 문제들을 보면서 글을 써야 한다는 자극을 받고 마음을 굳혔다. 아니 굳혀졌다. 특히 통합 측의 세습법 무효화를 시도하려는 명성교회의 전면적인 운동과, 이단대책위원회의 이단 해지 운동 등의 심각한 문제들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글을 쓰게 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 첫 번째 대상이 김의식 목사(화곡동 소재 <치유하는 교회> 담임)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 중에 시간적 우선순위가 그렇게 되었다. 끈끈한 동향의식을 가진 분들과 또 그를 총회장 되게 하려는 적지 않은 분들로부터 불평 내지 항의를 받고 있고, 더 많은 비난과 항의를 받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러나 그래서 역설적으로 필자는 김의식의 문제를 더 취급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김의식 목사가 어떤 분인가’(real self)를 가능한 자세히 알려, 필자가 남을 모함이나 하는 사람이거나 누구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님을 알리고 싶고, 그리고 김의식 목사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하여, 김의식 목사는 물론 그를 총회장 만들려는 분들까지 천하지 않고 존귀한 분들이 되게 하고 싶은 마음이다.
 

본 <교회와신앙지>의 김의식 목사에 대한 첫 번째 기사는 “김의식 목사, 국가법 벌금 750만원, 선거 시행규칙 위반”이란 글이었다.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8855)

   
▲ 치유하는 교회 홈페이지  

윗글은 필자의 글이 아니다. 본지 기자가 쓴 글로 김의식 목사에 대한 첫 번째 기사는 김 목사가 국가 기관으로부터 법정 벌금형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필자는 이 글을 보고 나서 세상에 속한 사람이라도 그렇게 화려한 범죄경력을 가지기 쉽지 않은데, 김의식 목사는 목사 직함을 가지고 무려 4번씩이나 세상 법정에서 총 750만 원이란 큰 벌금을 물어야 했는지 그 사건 하나하나를 분석할 필요를 느낀다. 그중에는 이해와 동정의 여지가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목사로서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국회의원에 당선된 자라도 선거법 위반으로 100만원 이상의 벌금을 선고받으면 당선무효가 된다는 점을 본다면 김의식 목사의 750만원 벌금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목사의 윤리는 국회의원보다 더 높아야 할 것이며, 그중에도 총회장은 그보다 10배를 더 요구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는 다음 기회에 분석하도록 하겠다.

통합 총회 부총회장에 단독 출마한 김의식 목사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성경에서 하나님이 함께한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존귀하였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아브라함과 이삭은 이방 땅에서조차 존귀한 사람으로 살았다.

그런데 총회장이 되었는데, 신사참배를 결의한 분이나 친일파로 활동한 분이나, 금품 문제나 이성 문제를 가진 분들을 보면 차라리 총회장이 되지 않았더라면 자신과 한국교회에 유익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한국교회 초기에 총회장을 지낸 분들을 보면 비교적 존귀했고, 후대에까지 존귀한 분들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교단을 초월하여 총회장이 되어 존귀하기는커녕 반대로 천해진 분들도 많다. 금품선거를 하여 세상 언론에 고발되어 세상 사람들에게조차 조롱의 대상이 된 분도 있고, 또는 시무하던 교회로부터 출입금지령을 받은 분도 있고, 또 총회장이 되었기에 억지로 조기 은퇴를 해야 하는 부끄러운 분도 있고, 총회장 된 것이 원인이 되어 원로 목사가 되지 못하기도 하고 대우를 받지 못하기도 한 분들이 바로 그들이다. 필자는 김의식 목사를 총회장 병(?)에 든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고 확신하는데, 존귀한 총회장이 되지 못할까 염려스럽다. 가능하면 이 점도 후에 다시 분석하고 싶다.

정작 장본인들은 총회장이 된 것 자체를 존귀한 것으로 여기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이는 큰 착각 중에 착각이다. 전직 총회장 중에 자신의 총회장 때 사진을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올려놓은 분은 보면, 마치 ‘나 총회장까지 지낸 존귀한 사람이야. 나를 무시하지 마라’고 외치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김의식 목사는 부총회장 후보로 단독 출마를 하였으니 총회장이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겠지만, 과연 존귀한 사람이 될지 아니면 천한 사람이 될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김의식 목사를 사랑하는 사람 중에 그를 총회장으로 만드는 것이 사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고 활동하는 분들이 있어 보인다. 당사자인 김 목사는 물론 그들도 필자의 글을 잘 읽을 필요가 있다. 대신 필자는 김의식 목사는 물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 누구에게라도(김의식 목사가 위임만 한다면) 반론권을 보장하는 바이다.
 

본론: 목사를 괴롭히다가 암에 걸렸다는 거짓 설교를 하고, 안수집사에게 용서해 달라고 합의금 7천만 원을 약속한 후에, 결국 거금 4천만 원을 주고 해결한 김의식 목사.

김의식 목사는 그 교회 교인인 강창식 안수집사에게 한 번은 1억을 주었고(다른 문제로), 한 번은 자신이 거짓말로 지어 저주설교를 하고 입힌 피해에 대하여 7천만 원을 약속하고 4천만 원으로 끝을 맺었다. 본 글에서는 우선 후자인 4천만 원 건만 취급하고 후에 1억 원 건도 취급하겠다.
 

‘목사에게 잘못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설교를 주로 하고 다니는 김의식 목사

김의식 목사는 여기저기 다니며 목사의 권위를 높여주기 위함인지, 자신의 한풀이를 하려는 것인지 ‘목사에게 대들고 목사를 괴롭히면 저주를 받는다’는 설교를 사명으로 느끼는 것인지 이와 유사한 설교를 많이 하고 다닌다. 이것을 소위 ‘저주설교’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저주설교 때문에 목사들에게 인기(?)를 얻어 많은 집회 요청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선 ‘저주설교’ 몇 가지를 소개하고 그 직선상에서 씻을 수 없는 큰 실수를 하고 자신의 잘못을 거금 4천만 원으로 보상하여 당사자에게 용서 받은 한 사건을 소개하려고 한다. 과연 목사에게 대들고 목회자를 괴롭히면 저주를 받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옳은 것인가도 살펴보려고 한다.
 

김의식 목사는 주로 자기 교회 장로들이 자신을 괴롭히다가 저주받은 이야기를 곳곳마다 다니며 설교하는 것이 습관적인데 그 대상은 5명이다.

김 목사의 ‘저주설교’는 담임하고 있는 <치유하는교회>에서 벌어진 일들을 중심으로, 대부분 자기를 괴롭힌 장로들과 그 가족들이 받은 저주에 대한 것들이다. 집사나 권사도 목사를 괴롭힐 수도 있지만, 장로교회 구조상 목사를 가장 괴롭힐 대상은 장로란 점에서 그 저주의 대상이 장로가 될 확률이 가장 높다. 김 목사가 사용하는 저주의 대상은 강창식 집사를 제하고 거의 다 장로들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예는 미국에 소재한 한 한국교회에서 목사가 장로를 총으로 쏴 죽인 사건을 예화로 사용하여 ‘목사에게 잘못하면 총에 맞아 죽는다’는 기가 찬 설교다.

김 목사는 여러 곳에서 유사한 설교들을 자주 하고 다녀 그것을 다 추적하기는 어려울 정도다. 그중에 대표적으로 2013년도 <부산광진교회>에서 한 저주설교와 또 그 다음 해인 2014년 9월 10일에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연합집회에서 한 저주설교가 대표적이다. 캘거리에서는 설교 처음부터 미국의 총기 사건을 예화로 사용하여 저주설교를 하였고, 자기 교회에서 5가지 사건을 예화로 들어 저주설교를 하였다.

필자는 김 목사가 한 저주설교 중에, 부산광진교회에서 들었던 사례가 4가지요, 캘거리에서 사용한 사례가 한 가지가 더 많은 5가지란 점에서 후자를 소개하는 편이 좋다고 본다. 캘거리의 저주설교 하나만 보아도 김 목사의 저주설교의 핵심을 다 파악하고도 남을 것이다. 당시 설교 장면은 유튜브에 그대로 떠 있다. https://m.youtube.com/watch?v=voteylJ7CH8

첫째, 자신을 이단으로 공격하고 그것을 책으로 내도록 돈까지 대 주던 장로의 경우, 그 아들이 인쇄소에 가서 일하다가 몇 톤짜리 종이 말이 기계가 내리쳐서 현장에서 뇌진탕으로 즉사했다.

둘째, 목사에 대하여 온갖 비방을 하고, 고소하도록 고소장을 써 주고, 고소비용까지 내주던 장로의 경우, 그 아들 하나가 기획사를 운영하다가 부도가 나 미국으로 도망가서 지금까지 못 돌아오고 있다.

셋째, 목사에게 당회 때마다 반말하고 막욕을 퍼붓던 그 장로의 경우, 그 부인 권사가 갑자기 급성 당뇨가 와서 식물인간이 되어 결국 세상을 떠났다.

넷째, 목사에 대하여 사사건건 허물을 들춰내서 자세히 컴퓨터에 입력하였다가 당회할 때마다 몇 년 몇 월 며칠, 무슨 말을 잘못했고, 무슨 행동을 잘못했다고 읊어대던 장로님의 경우, 그 딸이 버스 정류장에서 서 있는데 차가 돌진해서 다리가 뭉개져 장애인이 되어 버렸다.

다섯째, 또 목사가 하는 목회에 대하여 사사건건 반대만 하던 장로의 경우, 그의 큰아들 며느리가 첫아기를 출산했는데, 아기가 죽어서 나왔다.

김의식 목사는 이런 저주설교가 옳은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 확신하고 있어야 옳다. 그렇게 보면 김 목사는 앞으로도 저주설교를 해야 하고 할 것이다. 이제 미국의 총기 사건을 예화로 사용한 저주설교를 살펴보자.

김 목사는 2022년 1월 4일, 강서구의 <D 제일교회>에서 설교를 하면서, 1990년에 미국 버지니아 주의 한 한국교회에서 목사가 자신을 괴롭히는 장로를 총으로 쏘아죽인 사건을 들어 ‘목사를 대적하면 총에 맞아 죽는다’는 것이다.

올해 1월에 강서구의 D 교회에서 제직헌신예배 설교를 인도하면서, 본문을 에베소서 4:31-32로 하고 ‘상한 마음의 치유’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며, 1990년 미국 총기 사건을 예로 들어 저주설교를 하였다.

김의식 목사가 앞서 2014년 9월 10일에도 캐나다의 캘거리에서 “캘거리 교민을 위한 치유성회”라는 주제로 연합집회를 인도할 때(장소 캘거리 한인 침례교회)도, 똑 같은 예화로 설교를 시작한 것을 보면 이것들은 김 목사의 18번 설교 내용이며 핵심주제라고 볼 수 있다.

이 강서구 한 교회에서 한 저주설교에 대하여 2022년 1월 4일 자 <뉴스앤조이>이라는 매체에서 기사화하였는데 필자는 그 글을 근거하여 비판하겠다.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3882

김 목사는 1990년 미국 버지니아주 소재 <페닌슐라제일교회>에서 발생한 총기 살해 사건을 들어 "우리가 하나님같이 높아져서 주의 종을 함부로 대하다가는 권총 맞고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 보겠다.

“프린스턴 남쪽 버지니아주의 한인교회 목사님이 대낮에 권총을 구해 장로님 가게를 침입했어요. 장로님을 마주치자마자 권총을 발사했고, 장로님이 총탄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머리에 권총을 갖다 대고 확인 사살까지 한 뒤 목사님도 그 자리에서 자살했어요. 나중에 언론을 통해 전해진 바로는, 목사님이 어디 가실 데가 없는데 자꾸 교회에서 나가라고 상처를 준 것이었어요. 권총 맞고 죽지 않으려면 절대 담임목사한테 나가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의 종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는 거예요.”

위 설교에 대하여 평가하겠다. 이 사건이 과연 교인이 목사를 쫓아내려고 하면 저주를 받는 근거가 되고, 목사에게 대들면 죽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실례로 사용할 수 있는 예화인가 하는 점이다. 아니다. 결코 아니다. 목사를 괴롭히던 그 장로가 혹 다른 사람의 총에 맞아 죽거나, 길을 가다가 벼락에 맞아 죽었다면 그래도 그런 설교를 할 수 있는 좁은 공간이 형성될 수 있지만, 이 사건은 다르다. 그 목사가 직접 그 장로를 총으로 쏘아 죽인 살인사건이다.

이것을 가지고 목사를 괴롭히면 총에 맞는다고 하는 것은 그 살인은 정당한 것이었다는 전제가 된다. 형식적으로는 물론 윤리적으로도 그리고 성경적으로도 도저히 사용할 수 있는 예화가 아니다. 차라리 목사가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 장로는 죽을죄를 지었다. 네가 가서 직접 그 장로를 총으로 쏘아 죽여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노라’고 했다면 주관적으로 정직한 논리가 될 여지라도 있다.

그 장로가 무엇을 목사에게 얼마나 잘못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목사가 그를 총으로 직접 응징할 수 없다. 이는 인내심과 훈련이 부족한 한 목사의 큰 실수로 인하여 생긴 살인 사건이다. 뭐라고 해도 전적으로 그 목사의 잘못이다.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권총 맞고 죽지 않으려면 절대 담임목사한테 나가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라고 하는 말이나 ‘말세가 되니 사탄이 목사와 장로 사이를 다 갈라놓는다며, 장로·권사·집사가 목회자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은 상식이 있고,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천부당만부당한 설교다. 오히려 그 목사를 비난해야 옳은 일인데 그런 사건을 두고 목회자를 괴롭히지 말아야 할 예화로 삼는 것은 김의식 목사만 가능한 논리는 아닐까 생각된다.

이것이 김의식 목사의 목사관이요 윤리관이요 그리고 저주관이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샤마니즘적이고, 기복적이고, 비논리적이고, 비윤리적이고, 비성경적이다. 필자는 이와 직선상에서 4천만 원 건이 생겼다고 확신한다. 우연히 한 실수가 결코 아니다. 잘못된 사상으로부터 나온 필연적 실수다.

김의식 목사는 자신을 괴롭히는 강창식 집사가 저주를 받아 그 아내가 암에 걸려 죽게 되었는데 회개하였다는 조작 설교를 하였다.

문제의 설교는 2019년 3월 3일에 경기 <광명교회> 주일 저녁 찬양 예배 설교 때 이루어졌다. 이때도 여느 때처럼 김의식 목사는 목사에게 잘못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소위 18번 설교를 또 하였다. 먼저 그 내용을 필자가 독자들로 쉽게 알도록 간략하게 정리하고, 이어서 김 목사의 설교 전문을 그대로 소개하겠다.

먼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필자가 간결하게 요약을 하자면 이런 이야기다. 김의식 목사의 주장으로 하면 강창식 안수 집사가 자신을 괴롭혔다는 것이다. 시간적 순서는 어느 것이 먼저인지 모르나, 강 집사는 교회 앞에서는 물론, 청와대 앞에서,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 등에서까지 ‘김의식은 물러가라’는 등의 외침을 하며 일인시위를 하였고, 필자도 그 동영상들을 다 보았다. 김의식 목사 편에서 보면 참으로 힘든 일이고 또 기가 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제주선교 100주년을 기념하던 2008년에 제주도에서 대부분의 장로교 교단들이 총회를 열었고 통합측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늘 자신을 괴롭히던 강창식 집사가 제주공항 앞에서 “김의식 목사님 사랑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하였던 것이다. 당연히 “이단 목사 김의식은 물러가라”고 해야 하는데, “김의식 목사님 사랑합니다”라고 써서 데모를 하는 것을 보고, 김 목사는 가까이 가서 집사님, 어떻게 여기까지 왔습니까? 제주공항 앞까지. 그런데 피켓 내용이 달라졌네요?”라고 하였고, 후에 들은 얘기로는 부인이 암에 걸려서 죽게 되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아버지, 한 번만 좀 살려주세요라고 기도하였는데, 성령님의 음성이 들렸다는 것입니다. “네가 왜 내 종을 죽일려고 그렇게 괴롭혔느냐라고 하였고,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 제가 몰라뵙고 죽을 죄를 저질렀습니다라고 고백하고 나서 김의식 목사님 사랑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다 거짓말이다. 그의 아내가 암에 걸린 일이 없고, 그러니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기도한 일도 없고, 따라서 그런 성령의 음성을 들은 일도 없다. 그래서 강 집사가 제주도에서 “김의식 목사님 사랑합니다”라고 현수막을 걸고 일인시위를 한 것도 아니라고 본인이 직접 필자에게 진술하였다. 우선 김의식 목사가 한 설교 중에 이와 관련된 부분만큼은 설교 전문을 직접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보면은요, 교회마다 안 싸우는 교회가 없는 거에요. 뭘로 싸우느냐. 목사 허물 들추면서 싸우고, 장로 허물 들추면서 싸우고, 권사 허물 들추면서 싸우고, 집사 허물 들추면서 싸우고. 세상에 허물없는 사람이 누가 있냐 이 말이요. 그런데 그렇게 싸워버려요. 우리 교회도 그렇게 싸워버렸으니까요. 갔더니, 하~ 우리 교회는 고소의 달인들이 있어 가지고 고소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가는 곳곳마다 쫓아다니면서 “이단 목사 김의식은 물러가라”고 데모를 하고 스토커처럼 쫓아다녀요. 여기 광명교회에서 노회할 때요. 여기 앞에서도 플랭카드 걸고 데모했어요. 아마 우리 김유식 장로님이랑 옛날 다 기억하실 거에요. 여기 앞에서 데모 다 했어요. 그러니요, 제가 미쳐버릴 것 같아요. 가는 곳곳마다 i아 다니고. 제가 광명교회 오늘 헌신예배 온다면 아마 옛날 같으면 여기 쫓아와서 여기 앞에서 데모하고 있었을 거요. 그렇게 스토커처럼 쫓아다녀서 내가 미쳐버릴 거 같았어요. 그 어떻게 해요.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 저들이 자기의 하는 죄를 몰라서 저러니 저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기를 1년 2년 3년 4년 5년 6년 7년 8년 기도하고, 그러니 지금으로부터 꼭 11년 전이요. 그때 제주선교 100주년을 맞아 가지고 제주도에서 우리 장로교 총회가 일제히 같은 주간에 장소만 달리해 가지고 장로교 교단총회가 다 같이 열렸어요. 제주공항에 딱 도착했습니다. 그 인간이요, 제주공항 앞에서 데모를 하고 있는 거에요. ‘와~ 저놈이 육지에서만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섬에까지 쫓아와버렸네.’ 그런데 못 본 척 하고 옆으로 가는데 그때 같이 갔던 우리 영등포 돌아가신 김성규 목사님이, “아우 저것 좀 봐. 저것 좀 봐. 그런데 피켓 내용이 달라졌어.” 그래요. 깜짝 놀래서 봤더니 영등포노회, 화곡동교회 전에는 이단 목사 김의식은 물러가라 그렇게 써야, 그 내용이 뭐라고 써 있냐면 “김의식 목사님 사랑합니다~” 이렇게 써 있어. 내가 깜짝 놀래 가지고 내가 이 앞으로 갔어요. 집사님, 어떻게 여기까지 왔습니까? 제주공항 앞까지. 그런데 피켓 내용이 달라졌네요?” 그랬어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부인이 암에 걸려서 죽게 생겨버렸어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강구했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한 번만 좀 살려달라고기도 하는데 하 이런 인간들도 성령님의 음성이 들립디다. “니가 왜 내 종을 죽일려고 그렇게 괴롭혔느냐그러더래요.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 제가 몰라 뵙고 죽을 죄를 저질렀습니다그랬대요. 그리고 나서 이 분이 ... 돌아온 거예요.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면 우리 목사님한테 사죄할 수 있을까. 그러고 찾다가 한번은 기독교 연합신문을 보니까 제주도에서 총회가 일제히 열린다는 그 기사를 보고 첫 비행기를 타고 이렇게 제주공항 앞에서 사죄하는 심정으로 서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때 성암교회에서 총회가 열렸는데. 그때는 닷새간 했어요. 닷새간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플랭카드 내걸고 피켓 앞으로 매달고 이렇게 사죄하는 심정으로 서 있었어요. 그때 함께 갔던 우리 노회 장로님이 찍어서 코팅해 가지고 선물로 준 사진이에요, 이게. 그래 가지고 회개하고 이 사람이 돌아왔어요. 그래서 우리 교회 새성전을 건축할 때 2년 반 동안 이 분이요, 야간 경비를 맡아줬어요. 그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1부 예배 제일 일찍 와 가지고 예배 마치고 갈 때마다 저한테 꼭 물어요. “목사님, 요즘에 목사님 괴롭히는 놈 있습니까?” 하고 물어봐요. 내가 “요즘에는 없습니다” 하지만은 마음속으로 ‘당신만 조용하면 다 조용해.’ 그런데요. 나는 이 집사님 뵐 때마다 눈물이 나, 눈물이. 어떻게 이렇게 변하냐 이 말이여. 사람이 12번 변한다지만 어떻게 이렇게 변하냐. 내가 해 준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그저 매일 새벽마다 기도한 것뿐이 없어요. “하나님 아버지, 내 감정으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부어 주셔서 저 원수 같은 집사 용서하고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다 보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강팍하고 완악한 심정을 녹여 주시고 회개하고 돌아와 가지고 지금은 얼마나 든든한 일꾼이 됐는지 몰라요.

먼저 김 목사가 이 거짓말 저주설교를 하고 후에 한 변명을 들으면 더 가관이다.

본지 기자가 김 목사에게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이미 고인이 된 당시 사무장(윤00) 집사를 통하여 강창식 집사 부인이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한 설교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변명이 더 문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김 목사가 진짜로 윤 집사에게 듣고 한 것인지 처음부터 조작하여 설교를 하고 죽은 자를 핑계 대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나온 정황을 분석해보면 진실을 가늠할 수 있다.

김 목사가 윤 집사로부터 강 집사 부인이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는 것은 거짓을 또 다른 거짓으로 덮으려는 더 큰 거짓이 아닐 수 없다.

첫째, 김 목사의 주장이 진실이라면 김 목사가 강 집사에게 4천만 원이란 돈을 줄 수 없고, 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법에서도 객관적으로 그것이 비록 거짓이라도 당사자가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는 정황이 확실하면 무죄가 된다. 김 목사는 윤 집사의 말을 그대로 믿고 한 설교였다면 ‘나는 윤 집사가 말해서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라면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면 족할 일이다. 그런데 김 목사는 항의하는 강 집사 앞에서 ‘윤 집사님이 그렇게 말해서 나는 믿었다’라는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강 집사가 고백하였다. 강 집사는 윤 집사에게 들었다는 김 목사의 말도 김 목사가 해서 들은 것이 아니라 후에 다른 사람을 통하여 들었다는 것이다. 강창식 집사는 이 모두 김의식 목사가 임기응변적으로 지어낸 말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둘째, 아무리 김 목사가 잘못을 하였어도, 자기변명을 할 최소한의 여지만 있어도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수는 없다.

여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아무리 김 목사가 잘못을 했다고 해도 목사가 7천만 원이란 거금을 흥정하여 사건을 무마하려고 하고 결국 4천만 원이나 주는 행위는 목회자로서 문제를 해결하는 옳은 방법도 아니거니와 진실은 더욱 아니다. 더욱이 앞서 그 강 집사에게 1억이란 돈을 준 일이 있었던 점을 보면 이로써 김의식 목사의 의식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금품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을 보면, 본인 스스로 그 거짓 저주설교가 큰 잘못이라고 인지하였고, 그것이 세상에 알려지면 벌어진 태풍급 파장을 스스로 계산하여 한 배상이란 점이다.

이 문제를 가지고 김 목사가 배상한 그 돈이 혹 교회 돈은 아닌가 의심하여 고소 고발이 된 상태라고 들었다. 그곳에서 김의식 목사는 그 4천만 원이란 돈을 ‘가족들이 만들어주었다’고 하였다. 김 목사는 경찰 앞에서 3천만 원에 대한 3장의 수표 사본을 제시하였는데 한 장, 1천만 원에 대한 사본은 찾을 수 없다고 하여 제시하지 못하였다고 들었다. 혹 김 목사가 강 집사에게 준 4천만 원의 전부나 일부가 교회 돈임이 밝혀진다면 이 또한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어떻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셋째, ‘강 집사의 아내가 암에 걸렸다’는 말을 윤 집사에게 듣고 그것을 사실로 믿었다고 하여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점은 김의식 목사가 뒤에 부언한 말들이다. 뒤에 부언한 말들을 들어보면 ‘강창식 집사의 부인 집사가 암에 걸렸다’ 말만 들고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설교가 이어졌다. 지능적으로 각색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설교가 아닐 수 없다.

즉 “나중에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부인이 암에 걸려서 죽게 생겨버렸어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강구했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한 번만 좀 살려달라고기도 하는데, ! 이런 인간들도 성령님의 음성이 들립디다. “니가 왜 내 종을 죽일려고 그렇게 괴롭혔느냐그러더래요.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 제가 몰라 뵙고 죽을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랬대요.”라고 하였다.

진짜로 아내가 암에 걸렸고, 그래서 기도하다가 성령의 음성을 들었고, 그래서 강 집사가 직접 김 목사를 찾아와 무릎을 꿇고 눈물로 그 고백을 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다. 강 집사의 부인 집사가 암에 걸렸다는 말을 죽은 윤 집사에게 들은 것이 사실이라면 그 뒤에 이어지는 말들은 누구에게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강 집사에게 들었는가, 아니면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들었는가? 그 말들은 당사자인 강 집사가 직접 찾아와서 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말이란 점이다.

다른 사람에게 들었던, 강 집사에게 들었던, 아니면 윤 집사에게 들은 말이라면 돈까지 주고 해결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래서 나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라면 미안하다”라고 했어야 하고 그것으로 족하다. 김 목사는 항의하러온 강 집사님에게 윤 집사 얘기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결국 거금으로 배상하며 해결하려고 한 점을 보면 누구 봐도 이것이 거짓이란 게 드러나고, 그 잘못을 김 목사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누가 보아도 니가 왜 내 종을 죽일려고 그렇게 괴롭혔느냐라고 하였다는 성령의 음성이란 것 자체가 김 목사가 지어낸 말이 분명하다. ‘한 번의 거짓말을 참 말로 만들려면 20번 이상의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이제 결론을 맺어 보자.

 

결론: 왜 김의식 목사는 이런 저주설교를 주로 하고, 그러다가 이런 천추의 한이 될 수치스러운 과오를 만들고 말았는가 하는 점이다.

첫째, ‘목사에게 잘못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잘못된 사상 위에서 생긴 비극이요 실수요 죄다.

신약에서 목회자의 성경적 위치는 어떤 점에서 선명하지 않다. 목사는 구약의 제사장이나 선지자도 아니고 왕은 더욱 아니다. 그렇다고 신약의 사도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모세를 괴롭혔던 백성들처럼, 오늘날 한국교회가 목회자를 괴롭히는 일들이 너무 많다. 너무 많아서 다 말할 수도 없다. 그래서 목사란 평생 성도들의 무가치한 비판에 시달리며 목회를 해야 한다는 점이 바로 십자가 중에 십자가라고 필자는 믿는다.

그런데 이렇게 저주설교로 순종을 강조하는 것은 성경적인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협박이다. 목회자는 목회자로서의 권위가 있듯, 성도도 성도로서 권위가 있다. 아무리 그가 나쁜 성도라고 해도 거짓말 간증을 만들어서 설교를 하고 다닐 권리까지 하나님께서 목회자에게 주시지 않았다. 그래서 김 목사는 거금을 주고라도 자신의 잘못을 해결하려고 했음이 분명하지만, 결국 더 큰 문제를 낳고 말았다. 성도 중에도 목회자를 참아주는 훌륭한 성도들이 많은 것처럼, 목사도 아무리 잘못한 성도라도 저주하지 말고 오래 참아주어야 한다. 아니 더 참아야 할 의무가 목회자에게 있다. 그리고 회개하면 용서해야 한다. 목사를 괴롭혀 저주를 받아 아내가 암에 걸렸다고 말을 만들어 설교를 한 목사가 받을 저주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둘째, 이 사건은 김의식 목사의 무의식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어쩌다 한 번 나온 실수가 때로 우리의 속 진실을 여지없이 드러낼 때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놀라고 또 비통한 회개를 하게 된다. 인간적으로 보면 한두 번의 실수란 누구에게나 있다. 그렇지만 어떤 잘못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면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그의 본질이다. ‘목사에게 잘못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설교를 이곳저곳에서 18번으로 하는 것은 김의식 목사가 그것을 사명처럼 느꼈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다.

잘못된 사상 위에서 같은 설교를 계속하고 다니고, 결국 저주를 강조하려다 보니 ‘더 쎄게’ ‘더 쎄게’ 해야 할 필요가 생겼고 그러다 보니 거룩한 강단에서 소위 거짓말 쇼를 부린 것이다.

재미있는 실화가 있다. 필자는 이 말을 전해준 목사를 잘 안다. 자기 친구 목사가 산 기도를 몇 번 다니고, 그는 그것을 중심으로 간증설교를 김의식처럼 18번 설교로 하고 다니며 재미(?)를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한 번은 어느 교회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설교 도중에, 그가 산속에서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에 환한 불을 켜고 호랑이 한 마리가 자신에게 다가오더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목사는 호랑이가 하나도 두렵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만히 호랑이를 바라보고 있었더니 호랑이가 그 목사 옆에 와서 앉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나 그 눈에서 나오는 불이 밝은지 그 빛으로 성경을 읽었다는 것이었다. 현장의 교인들은 아멘이 터지고 난리가 났던 것이다. 그러자 그 설교를 들은 친구 목사가 예배 후에 “야! 임마 무슨 호랑이 눈에서 나오는 불빛으로 성경을 읽어?”라고 항의하고 꾸중을 하자 “아니 나도 모르게 설교를 하다 보니 그렇게 말이 나와버렸어”라고 하였다고 한다. 김의식 목사의 저주 설교가 이런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기 바란다.

목사를 대항하는 교인이 저주를 받는다면, 반대로 교인을 이용하는 목사도 저주를 받고 받아야 한다. 저주는 교인만 받는 것은 아니라 목사도 똑같이 받고 받는다.

하나님의 종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하였을 때 이를 비난한 미리암이 저주를 받은 사건은 주의 종을 괴롭히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가를 알게 한다. 역시 술을 먹고 벌거벗고 잠이 든 것은 아버지 노아의 잘못인데, 저주는 아버지 노아가 받지 않고 그런 아버지를 비난하고 흉을 본 함이 받은 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러나 반대로 모세가 므리바 물가에서 항상 불순종하는 백성을 보고 화가 나서 ‘이 패역한 백성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라고 하고 반석을 두 번 쳤는데, 하나님은 이 사건을 두고 모세가 므리바에서 입으로 범죄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다고 증거하고 있다는 점이다.(시 106:33) 비록 백성들이 패역했지만 그들을 패역했다고 한 모세의 그 자세와 말이 하나님께 가증하게 여겨졌다는 말이다. 그래서 모세는 비스가 산꼭대기에서 죽고 말았다.

실제로 목회자를 대항하다가 저주받은 사건들은 수도 없이 많다. 필자에게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김 목사처럼 설교하기는 두렵다. 반대도 보아야 한다. 오늘날 저주받은 교인보다 저주받은 목사들은 얼마나 많은가 하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교인들보다 목사가 잘못했을 때 받을 저주는 성도가 받을 저주보다 더 크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왜냐하면 목사는 스승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거짓말 간증을 하고, 법적 문제가 생기자 그것을 돈으로 무마한 잘못에 대한 하나님의 대가는 무엇일지 김의식 목사가 대답해주기 바란다.

후론: 본 글에 대하여도 김의식 목사가 그렇게 칭찬하고 존경하여 여러 가지로 돕고 있는 황규학 씨와, 한 때 필자와 함께 본지에서 일하였던 기자 엄무환 목사(가스펠투데이)가 필자의 본 글에 대하여 또 뭐하고 옹호하는지 지켜보고, 이제부터 그들의 글이 나오면 즉시즉시 대응하도록 하겠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마음은 참으로 아프고 아팠다.

이어서 취급할 문제들을 미리 예시하겠다.
1. 강창식 집사에게 1억을 배상한 또 다른 사건.
2. 김의식 목사가 세상 법정에서 4차에 걸쳐 750만 원의 벌금을 물게 된 내역분석.
3. 이 모 목사의 위조학력을 막아주려고, 김 목사와 이 모 목사가 각각 100만원씩 내어 황규학 씨와 그의 아내를 필리핀 선교사로 파송하여준 건과 이제 황규학 씨의 아내를 호남신학교 교수로 만들어주는데 일조를 하고 있는 김의식 목사.
4. 노회로부터 직무 정지 6개월을 받을 시(총회에서는 9개월 시무정지), 고소장에 반영된 김의식 목사의 시카고에서 스캔들과, 한국에서 상담을 빌미로 처녀와 단 둘이 호텔방에 들어간 사건.
5. 김 목사가 항상 ‘치유 치유’ 외치는 치유의 문제점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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