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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 지금 바로 실행해 보자

기사승인 2022.06.23  11:2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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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의 블루스>(tvN 드라마) 1-20회 최고시청률 14.5%

<교회와신앙> 이신성 기자】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과 싸웠을 때 어떻게 화해할 수 있을까? 상처를 주고받는 사람이 가족과 친구라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인생이 암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가족과 친구와 화해할 때 다시 한 번 삶의 의미와 힘을 얻을 수 있다.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극본 노희경, 연출 김규태)가 20회로 끝났다. 노희경 작가는 제주도 푸릉리 주민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풀어내며 ‘화해’ 메시지를 전했다. 1회 시청률이 7.3%였는데, 20회 최종회에서는 14.5%로 집계됐다. 종편 드라마의 특성을 염두하면 놀라운 시청률이다.
 

‘미안’이란 말로...

   
▲ 왼쪽부터 현, 영주, 호식, 인권

<우리들의 블루스> 5화의 제목은 ‘영주와 현’이고 7화와 8화는 ‘인권과 호식’이다. 영주는 호식의 외동딸이고, 현은 인권의 외동아들이다. 인권은 깡패였으나 어머니의 죽음 이후 순대국집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 호식은 수산시장에서 얼음 배달을 한다. 호식과 인권 모두 아내가 떠났다는 상처가 있다. 호식과 인권은 둘도 없는 형 동생 사이였는데, 언제부턴가 원수처럼 지낸다.

그런 호식과 인권의 아들과 딸이 서로 좋아하다 결국 임신한다. 원수 집안이라 여겨 임신 중절을 강요한다. 모든 것이 꼬여 있고,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의 해법은 오히려 쉽게 제시된다. 먼저 영주와 현이 각자의 아빠에게 손을 내민다. 영주는 “현이도, 아기도 있는데 아빠가 없어서 너무 외롭다”면서 “미안해”라는 짧은 말로 아빠 호식에게 화해를 청한다. 현이는 ‘아빠가 평생 쪽팔렸다’는 자신의 말에 상처받은 아빠 인권에게 “잘못했어요, 아빠”라고 용서를 구한다. 자녀와 화해가 이루어진 이후 딸 바보 호식이 인권 앞에 무릎을 먼저 꿇었다. 시장에서 딸이 몸을 잘못 굴렸다고 소리쳤던 인권 역시 호식이 앞에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며 용서를 구한다. 이러한 모습에서 화해는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며, 실질적인 회개와 용서는 ‘미안’ 혹은 ‘잘못’이라는 대화와 함께 당사자 앞에 무릎 꿇는 ‘제스추어’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다만 우리 주변에서 이렇게 극적으로 화해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의외로 사람들은 상처 주는 것에 거리낌이 없으며 싸운 후 말도 안 하고 화해하지 않고 평생 원수로 사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실에서 화해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드라마에 사람들의 ‘이상적인 바람’을 투영하는 것은 아닐까?
 

몸짓으로...

   
▲ 은희와 미란

인권과 호식의 화해 장면에서 무릎 꿇는 모습이 나왔다. 이런 점에서 화해에 있어서 용서를 구하는 말이 필요하지만, 그와 함께 화해의 몸짓, 용서를 구하는 ‘제스추어’도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12화와 13화는 ‘미란과 은희’가 주인공이다. 미란은 제주도에서 부잣집 딸이었고, 서울에 가서도 마사지샵을 운영하며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다. 3번 이혼했으며, 그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 은희가 있다. 특별히 은희는 미란과 팔로 크로스를 만들며 ‘의리’를 외칠 정도로 의리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은희가 미란과의 의리를 중요하게 여기게 된 계기는 두 가지다. 하나는 너무 가난해 학교에 도시락을 싸가지 못했던 은희를 위해 미란이 도시락을 한 개 더 가져와서 같이 먹은 일이다. 다른 하나는 고등학교 진학을 하고 싶지만 가정 형편상 못하는 은희를 위해서 미란이 자살이란 꾀를 내 결국 은희가 고등학교에 진학한 일이다. 이 일 때문에 은희는 평생 미란이와의 의리를 지키며 살기로 다짐하고 정말 미란을 위한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선다. 미란이가 결혼할 때 들러리는 기본이고, 산후조리까지 챙겨주고, 미란이가 이혼했을 때도 모든 수발을 들었다. 그런 은희를 보고 친구들은 미란 공주의 ‘무수리’라고 놀린다.

하지만 미란과의 의리를 중요시하는 은희에게도 미란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있다. 고등학생 때 어린 맘으로 소시지가 없다고 말했는데, 그때 미란이는 “얻어먹는 주제에 반찬 투정을 한다”며 은희가 먹던 도시락을 뺏어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것만이 아니다. 이혼 후 어느날 갑자기 미란이가 죽고 싶다는 메시지만 남기고 며칠을 연락을 받지 않았다. 걱정이 된 은희는 제주의 모든 일을 뒤로하고 미란의 서울 집에 들어가 미란을 찾는다. 그때 미란은 방에서 친구들과 나와 “얘는 내가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가는 애야”고 웃으면서 말한다. 미란의 그 말은 은희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래서 은희는 그런 상처 입은 마음을 아무도 모르게 고스란히 일기장에 기록한다. 하지만 어느 날 미란이가 그 일기장을 읽게 되고 두 사람은 그동안 쌓인 감정을 표출하며 절교를 선언한다. 절교한 미란과 은희는 어떻게 화해할까?

서울 마사지샵에서 다시 일을 하고 있는 미란에게 손님이 온다. 마시지를 위해 수건을 걷었을 때 드러난 몸은 은희였다. 은희의 몸, 딱딱하게 굳은 어깨와 목, 팔과 다리를 미란은 묵묵히 마사지로 풀어준다. 이러한 마사지 장면은 오해는 말로 풀어야 한다는 상식을 뒤집는다. 은희의 몸을 주무르는 미란의 마사지 손길을 통해서 은희와 맺힌 것이 조금씩 풀어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때로는 인생의 문제를 말로 풀기보다는 몸으로 풀어야 함을 일깨운다.

극중 미란의 역할이 마사지사라서 그렇지 일반인들이 그렇게 몸을 만지며 풀어주기란 쉽지 않다. 특별히 감정이 상한 관계에서 자신의 몸에 상대가 손을 대는 것을 허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점에서 드라마는 극적으로 표현하기는 했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다만 은희가 자신의 몸을 미란에게 맡긴 것은 어느 정도 화해의 몸짓을 먼저 보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화해는 화해의 신호와 그 신호에 대한 적절한 반응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마음으로...

   
▲ 동석과 영주

‘미안하다’, ‘잘못했다’는 말과 몸짓이 꼭 필요할까? 한 번이라도 화해하려 해 본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화해의 몸짓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알 것이다. 말과 몸짓이 없는데도 화해가 가능할까?

18화부터 20화까지 마지막 에피소드는 ‘옥동과 동석’이다. 극중 가장 사이가 안 좋은 인물들인데, 사실 모자 관계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을 준다. 둘은 서로 말도 안 한다. 엄마인 옥동은 아들 동석을 ‘소 닭 보듯’ 무심하게 바라보며 산다. 동석은 엄마만 보면 분노한다. 동석이 분노하는 이유는 엄마인 옥동이 남편이 죽고 나서 남편 친구의 둘째 아내로 살았기 때문이다.

어느날 은희가 동석에게 엄마 옥동이 말기 암이라는 사실을 알린다. 그래서 동석은 옥동이 원하는 대로 목포로 가서 새 아버지 제사를 지내려 한다. 목포로 가는 길에 어린 옥동이 일하던 식당과 어릴 적 살던 마을에 들린다. 과거의 공간을 살펴보며 옥동의 인생을 돌아본다. 교육받을 기회가 없어 한글을 모르는 옥동이 남편과 딸을 잃고 남은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부잣집에 첩으로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동석이가 자신에게 미안하지 않냐고 묻자, 평생 입을 꾹 담고 있던 옥동은 속에 담고 있던 말을 내뱉는다. 미친 사람이 어떻게 미안한 걸 아냐고 말한다. 그제야 동석은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미친 듯이 살았던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다.

오해가 어느 정도 풀어진 후 동석은 옥동이 제주도에 시집와 평생 살면서 한 번도 한라산에 올라가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한라산에 같이 올라간다. 한라산에 다녀온 다음 날 동석이 제일 좋아한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옥동은 잠들었다. 된장찌개 맛을 보다 기척이 안 느껴지자 동석은 엄마를 껴안고 눈물을 쏟았다. 이때 동석의 독백 대사가 전해진다.

죽은 어머니를 안고 울며 난 그제서야 알았다. 난 평생 어머니 이 사람을 미워했던 게 아니라 이렇게 안고 화해하고 싶었다는 걸.”

동석의 말처럼 사람은 누구나 화해하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상처를 주고받은 사람이 다름 아니라 자신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 사랑하는 가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해가 쉽지만은 않다. 동석처럼 화해하고 싶어도 매번 분노하며 화해의 신호를 잘못 보이기도 하고 말을 하려고 해도 타이밍이 맞지 않아 놓치다가 때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화해를 원하는 사람에게 말을 전하거나 몸짓을 보이는 것보다 마음을 전하는 것이 더 먼저임을 알려준다. 다만 그 마음을 알아볼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화해가 시작된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 <용서, 그 불편함에 관하여>

크리스천에게 성경은 어떤 화해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을까? 화해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성경 본문은 에서와 야곱(창 33장), 요셉과 형들(창45, 50장) 이야기이다. 성경적 화해는 당사자 사이의 문제에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화해를 이루어주신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비신앙인과 크리스천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바로 하나님을 두고 화해를 진행한다는 점이다.

다만 크리스천은 당사자와 상관없이 하나님과만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당사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말과 화해 몸짓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가해자가 오히려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해 용서받았다’면서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하고 종용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이창동의 영화 <밀양> 참고). 하지만 그 사람이 내세운 ‘이미 용서하신 하나님’은 자기 스스로 평안한 마음을 얻기 위해 만들어낸 우상일 뿐이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라고 가르치셨다. 성경 역시 당사자와 직접 대화를 나누고 화해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화해하는 것이 어렵다는 게 문제다. 이런 어려움을 우리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용서나 화해를 할 때에 물론 인간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크리스천에게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더욱 중요하다. 방정열은 <용서 그 불편함에 관하여>(세움북스, 2020)에서 용서에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인간의 마음이 곤고하고 완고하여 화해의 대화를 나누기 힘들고 화해의 몸짓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 힘과 의지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이와 반대로 크리스천은 우리 스스로 화해할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크리스천에게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화해는 인간이 하는 일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이신성 기자 shinsunglee7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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