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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서스의 예루살렘, 애니(ANI)를 가다(3)

기사승인 2022.06.30  10:3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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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은수 교수의 역사 현장 탐방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 최은수 교수

  ‘애니를 빨리 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때문에 나는 밤새 한잠도 자지 못했다’(윌리엄 해밀턴, William Hamilton)

  ‘1001개의 교회로 명성을 떨쳤던 애니를 떠나는데 아라랏 산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과 구름 사이로 천둥번개가 하늘과 땅을 연결하며 번득였다. 오랜 세월동안 애니는 그 자체로 자신의 휘황찬란한 영광과 위대함을 과시하는듯 하였다. 어느 누구도 감히 한마디의 말도 하지 못한 채 애니의 장엄함에 압도되고 있었다.’(존 마리너, John Marriner)
 

코카서스의 예루살렘, 애니(ANI)를 가다(1)
코카서스의 예루살렘, 애니(ANI)를 가다(2)
 

시공간을 초월하는 애니의 생명력

   
▲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애니의 지도. 애니의 성곽을 통과하기 전에 방문자들의 잉해를 돕기 위해 대략적인 지형만을 표기해 놓았다 

필자가 애니에 대한 글을 시작한 지 벌써 반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일에 집중하느라 세월이 이렇게 흘러갔다. 애니에 대하여 잊은 듯 지냈던 몇 개월 동안에도 마음 한 켠에는 항상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역사는 죽은 것이 아니라 역사가의 손을 빌어 강한 생명력을 이어가기 때문이리라.

애니에 대하여 약간의 지식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윌리엄 해밀턴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고도 남는다. 애니를 경험한 이들은 존 마리너의 표현이 과하지 않다는 사실에 동의하며 가슴이 먹먹해지기까지 한다. 그만큼 애니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 강인한 생명력을 발산해 오고 있다는 말이다. 애니의 신비한 생명력은 2022년 최근 두 달여만 보더라도 방문자의 숫자가 4만 명 이상을 상회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코로나의 규제가 서서히 완화되어 갔던 2021년 전체를 통틀어 6만 명 정도가 애니를 찾았던 사실에 비하면 최근의 통계는 가히 폭발적이라고 하겠다. 사실 애니가 터키의 동쪽 끝, 즉 동부 아나톨리아의 구석 한 켠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기하급수적인 방문객의 증가는 애니의 생명력에 끌리는 것이라고밖에 달리 설명이 쉽지 않다.

그래서 역사는 역사를 부르고, 생명은 생명을 부른다라고 필자가 한결같이 주장하는 것이다. 이 말은 역사가 살아있는 생명이기 때문에 역사가 있는 곳에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 끌림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 사자의 문을 통해 들어가는 입구에서 볼 수 있는 사자 조각. 역사의 질곡을 통과하면서도 식별가능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만큼 파괴하려는 시도들이 계획적으로 있어 왔다 


하나님 나라의 건설자들

애니로 끌리는 탁월한 매력의 요인은 하나님이 특별히 지명하여 부른 사람들, 즉 아르메니아의 바그라티드 왕가의 헌신과 사명 때문이다. 이미 살펴보았던 대로, 애니를 실크로드의 예루살렘이자 코카서스의 성지로 자리매김을 하도록 기초를 놓은 인물이 바로 아숏 3세였다.

그는 아르메니아의 수도를 애니로 옮기며 성곽을 비롯하여 각종 건축물들을 세워서 국제도시로써의 면모를 갖추도록 최선을 다했다. 아숏 3세가 자애로운 왕으로서 명성이 자자하여 애니로 들어오는 그 어떤 사람도 집이 없어 설움을 겪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였다. 그는 동서양을 오가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절대성을 각인시킴과 동시에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천상의 나라가 애니에 그대로 실현되고 있음을 생생하게 증명해 보였다.

   
▲ 1001개의 교회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이었던 애니 카세드럴의 모습이다. 심밧 2세가 건축을 시작하여 그의 동생인 가직 1세 때 완공하였다. 1000년이 넘는 세월을 견디며 애니의 중심에 우뚝 서 있다. 하지만 지진과 파괴 등의 시도들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여기저기 찢어진 상흔을 안고 있다. 

중세시대 아르메니아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아숏 3세는 자신을 이어 왕이 되었던 심밧 2세(Smbat II)와 후사가 없던 형을 이어 왕관을 썼던 가직 1세(Gagik I) 등의 제왕들을 만들어냈던 훌륭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아숏 3세의 자애로운 성품은 자식들이 권력을 두고 피 튀기는 투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위계질서 속에서 기독교적인 형제애를 구현하도록 만들었다. 그의 신앙에 근거한 행동 하나하나가 애니를 실크로드에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 즉 거룩한 도성이 되도록 튼튼한 기초들을 놓았던 것이다.

아숏 3세가 주후 977년에 죽자 그의 아들인 심밧 2세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아르메니아 역사가들은 이 새로운 왕에게 ‘정복자’ ‘우주의 마스터’ 등의 별칭을 부여하였다. 부친인 아숏 3세가 기독교 국가요 로마제국의 후예인 비잔틴 제국과 손을 잡고 이슬람 세력들을 제압하는 등 군사행동을 더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가들이 부왕에게 ‘자애로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준 것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사실 심밧 2세의 통치기는 전쟁이 없이 평화의 시대였다.

   
▲ 애니 카세드럴의 일부는 고난과 역경을 견디며 비교적 온전한 모습을 보존하고 있어서 경탄과 감사가 절로 나온다 

어찌보면 심밧 2세의 탁월한 정치력이 빛을 발하여 이슬람권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였고, 권력투쟁의 가능성이 가장 많았던 동생 구루겐(Gurgen)과 협치를 펼침으로 내외적인 위험요소들을 미연에 방지하였다. 심밧 2세가 여타의 정복자들과 같이 무력을 동원한 강압으로 다른 나라들을 굴복시킨 것이 아니라, 완력을 배제한 채 정치수완을 발휘하여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외세의 침략을 막았고 형제들 간에 벌어질 수 있었던 내란의 불씨를 제거하였기 때문에 아르메니아 역사가들이 이러한 별칭들을 부여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 애니 카세드럴의 내부 모습이다. 천재 건축가 티르닷의 돌을 다루는 독창적인 기법 때문에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몰지각한 방문자들이 이 기둥 뒤에서 흡연을 하거나 심지어 방뇨와 쓰레기 투기를 하는 모습은 기독교와 문화유산에 대한 모독이다. 


교회 없이 애니없다(No Church, No Ani)

실크로드의 거룩한 도성, 애니의 기초를 놓았던 아숏 3세도 교회를 중심으로 도시를 건설해 갔으며 모든 건물마다 크고 작은 교회들이 적절히 들어가도록 설계하였다. 1001개의 교회들로 장관을 연출했던 애니는 교회 중의 교회가 애니의 심장부에 있었는데, 그 교회가 바로 애니 카세드럴(Cathedral of Ani, 대교회)이었다. 나라의 수도가 애니로 옮겨짐에 따라 홍수 이후 노아가 정착했다고 전해지는 바가르샤팟, 즉 에치미야진에 있던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본부도 애니로 이전하였다. 이 애니 카세드럴이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영적인 중심이 되었다.

   
▲ 애니 카세드럴의 주변에는 이러한 건축 조각들이 수도없이 널부러져 있다. 기독교를 증오하는 세력들이 아르메니아식 십자가를 지우고 짓밟고 해도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애니 전체를 뒤덮고 있는 파괴된 돌덩이들이 깨지고 바르러질지언정 여전히 애니의 기독교 역사를 증거한다. 

애니가 황금기를 구가할 때인 주후 1000년 어간에 약 600명 전후의 성직자들이 상주하며 조력자들과 함께 1001개의 교회들을 돌보고 있었다. 교회가 중심이었던 애니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폭발적인 인구증가를 경험하게 되었는데 적게는 10만 명 정도이고 많게는 20만 명 정도로 급팽창하였다. 여기에 국제적으로 오가는 유동인구까지 포함하면 애니의 규모가 어머어마 했었다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기독교가 국교였기 때문에 1001개의 교회들은 애니의 거주민들뿐만 아니라 유동인구 중에 기독교인이거나 기독교에 관심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수용함으로 차고 넘쳤을 것이다.

애니를 애니되게 만들었던 교회들 중에서도 중심 교회였던 애니 카세드럴은 989년에 삼밧 2세에 의해 건축이 시작되었다. 부친 아숏 3세의 뒤를 이어 약 12년의 재임 기간 동안 애니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두 번째 왕인 삼밧 2세가 회심 차게 시작했던 애니 카세드럴은 공교롭게도 그의 죽음과 함께 건축이 중지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당대뿐만 아니라 후대에도 칭송을 받았던 심밧 2세의 죽음은 부친 아숏 3세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했던 애니의 황금기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부친의 자애로움과 심밧 2세의 포용성이 결실을 맺으면서 동생인 가직 1세가 평화롭게 대통을 이어받게 됨으로 이 삼부자를 통하여 애니는 세월이 지나도 꺼지지 않는 생명력을 역사의 흐름 속에 띄워 보냈던 것이다. 면면히 흐르는 역사를 거치면서 애니를 경험했던 모든이들이 한결같이 진술하는 공통어가 바로 ‘생명력’인 이유가 여기에 근거한다.

   
▲ 애니가 황금기를 누리고 있을 때는 악후리안 강에 놓여진 저 다리 위로 수 많은 물자와 사람들이 오고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터키와 아르메니아의 최전방 국경으로 나위어 사실상 건널 수 없는 곳이다. 아르메니아가 이슬람권인 터기와 아제르바이잔과는 아직도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육로든 항공이든 직접적인 통과를 불허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

조물주가 아르메니아에게 아름다운 돌을 선물로 주었다고 전해진다. 그런 연유 때문에 역사적으로 아르메니아는 돌을 다루는 기술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필자가 이미 여러 번 언급했던 대로, 애니는 예나 지금이나 돌 천지다. 애니의 황금기였던 주후 1000년을 전후해서는 잘 다듬어진 돌들로 교회를 비롯한 건물들이 지어졌다. 포용성이 탁월했던 심밧 2세가 시작했던 애니 카세드럴도 마찬가지였다.

심밧 2세는 당대 최고의 건축가였던 티르닷(Trdat)에게 이 기념비적인 건축의 책임을 맡겼다. 건축가 티르닷은 천상의 선물인 돌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당대 최고의 인물들 중 하나였다. 그는 아숏 3세가 애니로 수도를 옮기고 대대적인 건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부터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였다.

건축가 티르닷이 이룬 업적 가운데서 단연 돗보이는 건축물이 바로 애니 카세드럴이었다. 애니 카세드럴의 대역사가 시작되어 활기차게 진행되던 와중에 심밧 2세가 죽음을 맞이하여 공사가 중지되는 위기를 맞았다. 이때 마침 989년 같은 해에 비잔틴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에서 지진이 발생하여 아름다운 소피아 카세드럴이 피해를 입게 되면서 티르닷이 그 보수공사에 대표적인 건축가로 참가하게 되면서 또 다른 이력을 역사에 남겼다.

애니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아르메니아 바그라티드 왕가의 삼부자 제왕들(아숏 3세, 심밧 2세, 가직 1세)과 함께 건축가 티르닷의 천재성은 당시 유행하던 바실리카 양식을 뛰어넘어 영산인 아라랏산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구조를 연출해 냄으로써 도드라졌다. 아르메니아가 노아의 홍수 이후 아라랏산을 기점으로 시작된 신인류의 직계라는 자부심이 대단하였기 때문에 모든 교회의 건축물에 영산이 올려진 구조가 특징이다. 아울러 중세 후기에나 등장하는 고딕 양식이 몇 백년 전인 중세 1000년 어간에 애니 카세드럴 등 아르메니아의 교회 건축물에서 이미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중심에 천재 건축가 티르닷이 있었다.

   
▲ 애니 카세드럴에서 바라본 아르메니아 국경지역이다. 이슬람권인 터키와 아제르바이잔의 무식한 민족주의자들이 아르메니아를 자극이라도 하듯이 애니 카세드럴에서 문화적, 종교적 대학살과 같은 모욕적인 행동들을 서슴지않음으로 자국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  


무식한 민족주의

1001개의 교회로 번성했던 애니에서 교회 중의 교회였던 애니 카세드럴은 온갖 역사의 풍랑 속에서도 비교적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건축된 지 천년이 넘는 세월을 버텨온 데에는 천재 건축가 티르닷의 공헌이 가장 컸다고 할 수 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애니는 자연재해인 지진을 비롯하여 실크로드를 강타했던 유목민족들의 침략과 약탈, 그리고 파괴까지 꿋꿋하게 견디어 왔다.

더군다나 기독교와 앙숙인 이슬람권의 증오에 찬 만행들은 애니가 이미 역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도 이상하지 않은 만큼 가혹하였다. 지금도 애니 카세드럴을 둘러보면 기독교적인 표식들을 지우려고 애쓴 흔적들을 어려움 없이 볼 수 있다.

이슬람 신봉자들에게는 징글징글한 기억이겠지만, 애니에 깊게 스며든 기독교를 지우려고 아무리 애를 써봐도 결국에는 지우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애니에 차고 넘치는 돌들 하나하나에 깊게 새겨진 기독교 문양들을 모두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이슬람권이 한 일은 건물을 무너뜨리고 파괴하고 그 돌들을 사적으로 마구 사용하고 길에 깔아서 짓밟고 다니는 것이었다. 사실 이런 행위들도 용납하기 힘들지만 백 번 양보하여 한심한 웃음을 지으며 넘긴다고 치자.

하지만 최근 들어서 2020년과 2021년에 코카서스의 이슬람권인 아제르바이잔까지 참석하여 터키의 민족주의 정당이 애니 카세드럴에서 이슬람 기도회를 열거나 자신들의 종교를 과시하는 콘서트를 실시간 생중계로 방영했던 모습은 무식한 민족주의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터키 내에서도 지지기반을 잃어가던 그들의 행위는 자국에서 더 큰 비난을 받았다.

애니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전 세계가 애니의 기독교적 정체성에 주목하고 있는 와중에서, 그것도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영적 유산으로 알려진 애니 카세드럴에서 자행한 무식한 민족주의자들의 행위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연상시킬 정도의 문화적 종교적 대학살과 다를 바 없었다.

이런 무식한 행동에 대하여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수장이 강력한 항의 성명을 발표한 것만 보아도 그 심각성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다. 이런 무식한 민족주의의 일그러진 모습들이 터키에서 그리고 한참 침략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에서 공공연하게 노출되고 있는 현상이 참으로 한심할 따름이다.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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