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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와 가운

기사승인 2022.07.05  10:4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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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경애 사모 컬럼

장경애 사모/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수필

  시간은 인간의 희로애락이나 상황에 아랑곳없이 같은 속도로 흐른다. 37년이라는 길다면 긴 세월 동안 오직 목양에만 열중하며 달려가는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다 보니 어느새 종착역에 서 있었다. 그 후, 너무도 달라진 새로운 생활 속에서 시간의 도도함은 어느덧 한 해의 절반 시점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게 해 주었다.

남편 목사의 은퇴는 나에게도 생각지 못한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현직에 있을 때, 은퇴하는 목사님을 보면 정년이 되어 은퇴하는 것이라 당연하게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보아왔다. 그러나 정작 내가 겪고 보니 그전에 아무것도 아니었던 작은 것까지 신경 쓰이고 실제로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 미련함이 나를 깨닫게 한다.

목회자의 은퇴는 세상 사람들의 은퇴와는 사뭇 달랐다. 일반적인 은퇴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것뿐이다. 그러나 목회자는 직장 즉 목회를 그만두는 일 외에 여러 가지 변화가 있다. 살던 집을 떠나야 한다. 아니, 오랜 세월 정들었던 익숙한 터전을 두고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이것은 그동안 쌓아온 인간관계의 단절도 의미한다. 무엇보다 정들었던 교회도 떠나야만 한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며 받아들이지만, 마음 한구석엔 서운함과 함께 아쉬움이 고개를 든다. 무엇보다 금요일 저녁부터 주일 맞을 준비로 긴장했던 일들이 그립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40여 년이라는 짧지만 긴 기간의 정들었던 희로애락의 많은 일이 하나씩 떠오른다.

   
 

그중에 가장 내 맘에 맴돌고 있는 것은 남편의 목회 역사를 증명해 줄 수 있는 주일 아침 예배 때마다 입었던 가운이다. 남편 목사의 은퇴와 함께 이 가운도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은퇴했다.

내가 가운을 이야기하는 것은 가운에 대한 성경적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거나 가운에 무슨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가운은 남편의 목회 여정 가운데 주일마다 하나님 말씀을 대언할 때, 성찬식이나 세례식 같은 거룩한 성례를 집례할 때 언제나 입었던 옷이기에 낯설지 않고 친근하고 애틋함이 내 마음을 울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낡고 헐어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남편 목회를 한 마디로 보여주는 거룩한 옷(聖衣)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가운은 그 직업이 어떤 직종인지 알게 하고 또 그 역할을 빛나게 한다. 법관이 법정에서 법복을 입고 법을 집행하는 것을 보면 그 위엄이 넘친다. 약사가 가운을 입고 약을 짓는다거나, 가운을 입은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면 신뢰가 더 가게 여겨진다. 또한 가운을 입고 성가를 부르는 찬양대를 보면 그냥 서로 다른 옷을 입고 부를 때보다 더 은혜로웠다. 마찬가지로 목사님이 설교할 때 가운을 입고 설교를 하면 가운을 입은 목사님에게서는 엄숙함과 거룩함이 느껴져 말씀에 은혜가 더 쏟아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요즘은 ‘너무 권위적이다.’ 혹은 ‘이교도적이다’라는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예배 때 가운을 입지 않는 목회자가 많은 대세지만, 내 남편 목사는 37년 목회하는 동안 주일 설교 때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가운을 입었다. 남편의 가운은 너무도 단순하고 평범했다. 그러나 그 가운은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준 가운이었다. 긴 목회 여정에 동고동락했던 가운이 이제 자신의 할 일을 다 마치고 사라져야 하는 노병처럼 보여 뭔지 모를 마음에 전율이 느껴졌다. 사람이 한 가지 옷을 한두 해만 입어도 정이 드는 법인데 37년을 함께했으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깊은 정이 들었나 보다. 물론 계절에 따라 계절에 맞는 가운을 번갈아 가며 입었지만, 그 가운 속에는 목회 여정의 모든 것이 배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역시 그 가운을 보기만 해도 남편 목사의 설교하는 모습이 보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이 가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설교하는 남편 목사의 모습이 보인다. 목회자는 설교 때문에 울고 웃는다. 때로는 설교 때문에 수치도 당하지만, 기쁨과 보람이 있다.

남편의 가운은 남편의 목회 역사를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그 가운은 남편 목사의 오직 외길로 목회하는 동안 일평생 함께해 온 손때 묻은, 희로애락을 다 함께 겪은 귀한 옷이다. 그 가운은 남편 목사의 체온과 입김과 사상의 잔재가 묻어있는 소중한 옷이다. 그리고 그 가운은 하나님의 음성과 내음이 담긴 옷이다.

나는 내 남편이 가운 입은 모습을 좋아한다. 그 가운을 입고 있으면 저절로 거룩해지는 것만 같다. 그리고 순전히 내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목사 가운을 입은 남편의 모습은 마치 남편을 위해 생긴 옷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어울리고 멋있고, 나와는 그야말로 성정이 다른 사람으로 보이고, 다소 까다로운 남편이지만 아주 부드러운 느낌이 든다. 그래서 어떨 때는 장난스럽게 ‘집에서도 가운을 입고 있으면 좋겠다’라고 익살스러운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그런 가운을 입은 멋진 모습을 보기 힘들 것 같다. 그래서 좀 생뚱맞은 생각을 해 본다. 아니, 생뚱맞기보다는 멋진 생각을 해 본다.

그 멋진 생각이란 다름 아닌 그 유서 깊은 가운을 내 딸 목사에게 물려주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목회하며 평생 입었던 귀한 것이기에 딸 목사가 물려받는다면 그 가운은 더 뜻있고 더 의미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또 다른 생각은 이 가운을 남편이 이 세상에서 입는 마지막 옷으로 하면 좋겠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것이 죽음인데 이때 입는 옷이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입는 옷이기에 이 옷에 큰 의미를 두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도 내 남편 목사의 마지막 옷(壽衣)은 평생 생사고락을 같이한 가운이 최적의 옷이 아니겠는가.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입는 옷이 자신이 살아온 삶의 모든 것을 대변해 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때, 목사들에게 최고의 수의는 가운이다.

내 남편 목사뿐이 아닌 모든 목사님은 이 세상을 떠날 때 세상 사람들이 입는 일괄된 그런 옷이 아닌 목사가 사역에 필수적으로 동행한 그 옷, 가운으로 하도록 권하고 싶다. 이 얼마나 은혜롭고 영광스러운 모습일지 상상만 해도 숙연해진다. 

장경애 kyung556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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