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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흑백 인종차별

기사승인 2022.07.25  10:4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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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호 케냐 선교사의 편지

정광호 선교사/ 현 케냐 주재, GMS 원로선교사

   
▲ 정광호 선교사

  2020년 5월 코로나 바이러스가 미국에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전파하기 시작할 때 아프리카 아메라칸 흑인들이 많이 죽어갔다. 코로나에 덮쳐 흑인 시민들의 생존에 대한 위험의 의식이 고조될 때, 미국의 흑백 인종차별 항의시위가 폭발하여 미국대륙과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흑백 인종차별 항의시위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실직, 실망과 좌절의 시기에 한 흑인 청년, 죠지 프로이드(George Floyd, 1973-2020.5)의 동물적 죽음으로 시작되었다. 

죠지 프로이드는 한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위조지폐를 지불했다는 신고로 경찰이 충동하여 한 경찰관이 죠지의 목과 등을 밟고 약 9분간 숨을 쉴 수 없도록 압박하였다. 그는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나는 숨을 쉴 수 없어!” 라고 몸부림치면서 울부짖으며 죽어갔다.

경찰의 발밑에서 죠지 프로이드(George Floyd)가 "내가 숨을 쉴 수 없어!"라고 외친 그 말은 지난 450년간(16-19세기동안) 서구 식민지 기간 동안, 서부 아프리카에서 남미와 카리비안 해안과 유럽으로 긴긴 항해를 했던 노예선들의 노예들의 죽음의 울부짖음과 같은 것이었다.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은 노예선의 처참한 갑판 밑에서 쇠고랑에 발목이 묶여 구부린 채로, 항해 도중, 열병과 이질, 천연두, 굶주림, 반항과 처벌, 바다에 생매장을 당하는 가운데, 어떤 사람은 스스로 바다에 자신을 던져 자살까지 하였다. 2-3개월의 긴 항해 도중 5명 중 한 명은 죽어갔다.

   
 

영국의 죤뉴턴(John Newton, 1725-1807)은 노예선의 선장으로 서부 아프리카에서 영국의 리버풀로 처절한 노예들을 싣고 귀항할 때 대서양 가운데서 폭풍을 만나면서 배가 파산 직전에 이르렀다. 그때 뉴턴은 선장실에서 토마스 아켐피스(Thomas a'Kempis, 1380-1471)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란 책을 읽으며 '인생의 불확실한 연속'과 잠언 1:24-27을 묵상하고 회심을 경험했다. 선장직을 사직한 후 영국 성공회 목사로서 노예해방을 주창하고 과거 오만한 괴수로서 노예들을 취급했던 자신을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못 이겨,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찬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를 작사했다. 

그는 <아프리카 노예 무역의 고찰>('Thoughts upon the African Slave Trade,' 1787)이란 소책자를 저술하여  "노예들의 영혼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즉, 노예들의 영혼 속에 하나님이 주신 생기(창 2:7)가 있다. 그는 영국의 노예해방을 국회에서 가결케 하는 지대한 공을 세운 월리웜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 1759-1833) 국회의원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 후 노예무역 중지와 해방은 1863 링컨 대통령의 선언, 1883 년 대영제국에서, 1888년 브라질에서 선언되었다. 그러나 백인 우월주의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백인우월주의의 배경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구약 성경을 보면, 노아가 자신의 하체를 보았던 함을 저주하면서 야벳과 셈의 종이 될 것을 예언한 것에 기인한다(창 9:20-29). 함의 후손은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아프리카이다. 셈의 후손은 이라크, 이란, 이스라엘이며, 야벳의 후손은 유럽인들이다(창 10).

2. 기독교의 예정과 선택교리를 잘못 해석하는 것으로부터 기인한다. 특별히 남아공의 흑백 인종 차별주의의 배경에는 백인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선택의 예정과 유기교리를 잘못 해석하여 ‘백인은 창세 전에 선택된 선민이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3. 서구 식민지화와 식민지의 광활한 농장에서 일할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식민지 확장과 더불어 노예 수입이 본격화되면서 아프리카의 노예들이 대서양을 건너서 남미로, 카리비안의 해안 국가들로, 영국으로 상품처럼 팔려 나갔다.  백인 농장의 농장주들은 흑인 노예들을 인간 이하의 동물로 취급하였다.

4. 하나님의 형상(창 1:26)으로서 흑인들의 인격적 존재와 가치를 불인정하였다. 구전 문화 가운데서 아프리카의 흑인들은 자기의 이름조차 쓸 수  없었다.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가 무지한 아프리카 흑인들에게는 보이지 않은 것이었다. 식민지화와 함께 문자 교육을 받게 되고 모든 부족어에 문자를 사용하게 되었다.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1918-2013) 전 대통령의 비폭력 평화주의 운동은 1994년 인종차별(1948-1994년)의 폐지와 흑인 평등과 자유를 보장하는 새로운 민주정부를 설립하게 하였다. 1863 링컨 대통령의 노예무역 중지와 해방 선언 후 100년 후에 미국의 흑인 해방 운동은 1960년대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n., 1929-1968)이 이끌었던 비폭력 평화주의 운동으로 흑인의 인권의 평등과 자유를 회복시키는데 이정표를 놓았다. 마틴 루터 킹의 '워싱턴 행진'(1963년) 에서의 한 유명한 연설, "나에게 꿈이 있다"를 다시 기억나게 한다.

 “나는 오늘 우리나라의 역사에 자유를 위한 위대한 행진으로 기록될 날에 함께하는 것을 기뻐합니다. 백년 전 위대한 아메리카는 노예해방을 선언하였습니다. 이 놀라운 노예해방 선언은 불의의 불꽃에 테워 가는 수백만의 흑인들의 희망의 빛을 비추는 횃불이었습니다. 그들의 오랜 착고의 밤을 깨우는 기쁜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백년이 지난 이후 흑인들은 자유가 없습니다. 흑인들의 생명은 여전히 분리의 수갑과 차별의 쇠고랑에서 절뚝거리고 있습니다. …

우리나라 독립 운동가들이 독립선언서와 헌법을 초안할 때 모든 미국인들이 누구나 함께 동등한 상속자로서 기초하였습니다. 흑인이나 백인이나 빼앗을 수없는 생명의 권리와 자유 그리고 행복의 추구가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 이제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정의가 실현되도록 해야 합니다. …

흑인 시민들의 권리가 주어지지 않은 한 미국에서 안식과 평안이 없을 것입니다. 정의의 광명한 날들이 오기까지 반항의 회오리바람은 계속해서 우리나라의 기초들을 흔들어 놓을 것입니다. …

"언젠가 죠지아의 언덕에서 전에 노예였던 아들들과 노예 주인들의 아들들이 형제애의 식탁에서 함께 할 것을 꿈꿉니다. 불의의 채찍과 압제의 열기에 가득 찬 미시시피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로 변하게 될 것을 꿈꿉니다. 나의 4 자녀들이 그들의 피부 색깔에 의해 판단 받지 않고, 그들의 성격에 따라 판단 받는 나라에 살 것을 꿈꿉니다. …

우리가 자유의 종을 울릴 때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흑인과 백인,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신교도들과 천주교도들이든지 손에 손을 잡고 “마침내 자유, 마침내 자유, 전능하고 위대하신 하나님, 우리는 드디어 자유를 찾았습니다” 라고 노래할 것입니다.

미국의 배타적인 국가주의는 배타적 국수주의와 백인 우월주위와 함께  인종과 신분과 다수와 소수와 성, 이념과 종교에 관계없이 평등한 미국 사회를 달성할 수 없다. 미국 사회의 다양성(diversity) 속에서 연합성(unity)을 추구하는 민주적인 지도력이 필요한 때이며,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갈 3:28; 고전 12:13; 골 3:10-11) 다양성 속의 연합성을 추구해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정광호 선교사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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