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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기적을 믿는가?

기사승인 2022.09.13  10: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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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좌 권사의 시

아직도 기적을 믿는가? / 이원좌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건망증이 심하다 그냥 다 잊고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날이 겹치는 때는
같은 날 겪었던 일들을 기억해 낸다

삼년 전 추석 때였다
교구 목사였던 나 목사님께 추석이라 선물을 하고 싶었다

목사님께 항상 선물을 했는지
궁금할 것이다 아니다
특별한 환경에 계시기 때문이다

추석 선물은 냉장고에 들어가는 것은
피하고 싶다 냉장고 사정이 어떤지 모르니

햄과 참치가 알차게 들어 있는
그야말로 선물세트와
"퍼실"이라는 세탁기 물세제
그리고 "미스봉"이라는 치즈 스틱
그리고 또 또 뭐 있는 거 같은데
삼년이 지나니 기억이 안 난다

 

   
 

그리고 나중에 들은 이야기다
목사님과 사모님 두 분이서 마트에
간다니까 아들과 딸이 부탁을 했다고
아들은 삼년 전까지 유행하던
강아지 그려져 있는 초코케익을
제목이 부로와니라든가?

딸은 미스봉을 사달라고 했다고

그런데 빈손으로 오는 부모님을 향해
아이들이 내 꺼는? 내 꺼는?
했겠지 그러니까 두 분은 물건만 만지작거리다
그냥 오셨다 한다
다음에 사줄께 ~ 하며

그런데 다음 날 내가 전한 선물 속에
딸아이가 바라던 "미스봉"이 있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오후에
사모님 남동생이 찾아와서
목사님께 식사 대접을 하셨다 한다
손에는 그 브렌드의 케익을 들고

목사님이 부로와니(?)케익을
들고 집에 들어서니
사모님이 보시고 많이 우셨다 한다
하나님이 간섭해주시는구나 하며

여기까지 본 분들은 뭘 그딴 것 가지고 ~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부터다

*  *  *

삼 년 전 유월이었다
나 목사님은 임기가 되어서
다른 교회 아마도 도봉동에 있는 교회라 했다

가셔서 설교도 하시고 그 교회로 가시는 게
기정사실이 되어 모두 축하하고
기쁜 분위기였다
유월 말까지 계시고 바로 가신다 했는데
이상한 이야기가 돌았다

목사님이 가시기로 한 교회에서
다른 분을 맞기로 했다는 거

얼마나 아찔한 이야기인가
우리 동숭교회에서는 떠나기로 확정되었는데

그곳만 믿고 아무 것도 다른 계획이 없었는데
사모님과 초등학교 중학생 남매가 있었다

다행히 숙소는 12월까지 있어도 된다고 한다
그야말로 이사할 아무 준비도 없었으니까

왜냐면 도봉동교회로 가시면
그곳에서 숙소와 필요한 편의가 제공되니까

지금 생각해도 그 교회장로들
어처구니가 없다
완전히 모실 것처럼 해놓고 다른 목사님과 나 목사님을 몰래 간을 보다가
배려없는 처사를 한 것이다

보통 이런 경우는 없다
한 번 정해지면
청빙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이 이렇게 되니 서로가 어찌나 민망한지
교회에서는 여론이 분분했지만
무슨 방법이 없었다

12월까지 다른 교회에 이력서 넣고
면접 보면서 다시 기나긴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거

목사님들의 숙소는 교회 옆이다
집에 가려면 마주 서 있는 중앙대학교와 교회 사이에
골목을 지나 가야 하는데

그때마다 다른 곳으로 발령되어
가신 줄 아는 목사님과 성도가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불편했을까

목사님 본인은 물론이고
사모님과 아이들이 얼마나
황망할까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그래서 편한 길을 택했다

코스트코에 가서 맛있어 보이는 걸 샀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간식거리와
사모님이 기뻐할 만한 체리와 불루베리 애풀망고
치즈라든지 햄과 오리훈재
누구라도 좋아한 달지 않는 과자류 ...
박스로 두 개쯤 되었던 것 같아

처음에 한 번 연락하고 드리니
목사님이 감사하다고 한다

두 번째 드리니 부담스러우신지
그만하는 게 편하겠다고 하신다

그래서 이야기했다
큰 산을 넘는데
나는 이미 갔다 왔고
목사님은
이제 오르는데 물이 없어요

내게 있는 물 한 병 드리는 거
그게 뭐가 문제인가요
나는 집에 가면 물이 있는데
그냥 교통하는 겁니다 했다

한 달에 두 번을 그렇게 코스트코에서
장을 봐 드렸다

그렇다 나도 아끼며 산다
물건값이 오르면 내릴 때까지
기다리기도 하고
조금 사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이 생기면
필요해 보이는 게 눈에 띈다
펑소에 내가 비싸다 생각하는 것도

돈의 액수가 중요치 않다
돈은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 줄
휴지가 되기도 하고
배고품을 달래줄 밥이 되는 거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거다
한 달에 두 번씩 여덟 번쯤 했나?
생각보다 빠르게 목사님 가실 곳이 정해졌다

장경철 목사님 계시는 서울여대
부목사님으로 가신다 한다
담임목사님 자리가 아니라 서운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알고 가셨다

그리고
삼 년이 다 되어가는 지난 사월 초
나 목사님으로부터 핸드폰이 울린다
무슨 일이신가 하고 받으니

기쁜 목소리가 정겹다
오월 중순에 영등포에 있는 좋은 교회에
담임목사님으로 가신다고 ~

제일 먼저 권사님께 알린다 하시며

지난 날 너무 감사하다고
아이들이 많이 좋아했고
위로를 받았다며
엘리야에게 까마귀가 음식을
물어다 준 경험이었다며
말끝을 흐리셨다

이런 일들은 분명히 남는 장사다
무엇으로 그때의 그 추억들을
대신할 것인가

누가 보면 사소한 것 같지만
미스봉과 브로와니 케익의
기적적인 일도 경험하고

떠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식사를 대접하고 그간의 일을 듣는 것은

내 손으로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표현할 때 감사의 그림이다

   
▲ 이원좌 / 동숭교회 권사, 종로문학 신인상 수상, 시집 <시가 왜 거기서 나와> 등

 

이원좌 권사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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