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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하시는 하나님

기사승인 2022.09.16  10:5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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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언의 영성 25

방동섭 교수/ 미국 리폼드 신학대학원 선교학 박사, 백석대학교 선교학 교수 역임, 글로벌 비전교회 담임

   
▲ 방동섭 교수

  잠언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훈련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기에 잠언은 성경의 어느 책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훈련에 대해 많은 언급을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훈련하시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훈련하실 때 우리가 어떤 태도로 그 훈련을 수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잠언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다”고 하였다(잠 12:1). 여기 ‘징계’라는 것은 하나님의 ‘훈련’(discipline) 방식의 하나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훈련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무시하면 인간이 짐승과 같은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잠언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고 간곡하게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잠 3:11).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훈련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차원에서 언급하고 있다. 히브리 기자는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고 하였다(히 12:6). 이 말씀은 하나님이 주시는 그의 백성들을 향해 주시는 모든 징계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훈련과 징계는 모두 우리를 향한 그의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이러한 훈련의 의미를 잘 알고 있기에 하나님이 훈련하실 때 달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잠언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신다”고 하였다(잠 3:12).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징계를 주시는 것은 우리를 그의 자녀로 인정하신다는 뜻이 함의되어 있는 것이다(히 12:7).
 

뼈가 썩을 정도의 고통

   
 

하나님이 주시는 훈련은 어떤 유익이 있는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훈련을 통해 우리가 얻게 되는 가장 큰 유익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히 12:10). 우리가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는 것과 같은 놀라운 영광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훈련을 잘 받을 때 우리의 삶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훈련을 통해 우리는 악하고 더러운 생활에서 점점 떠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선하고 의로운 삶의 모습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훈련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할 때 우리는 점점 악한 길로 나가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 주변의 가족이나 이웃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욕을 끼치게 될 것이다.

잠언은 가정을 지키고 자녀들을 보살피는 아내에게도 하나님의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고 있다. “어진 여인은 지아비에게 면류관이지만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로 뼈가 썩을 정도의 고통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잠 12:4). ‘어진’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카일’(חַיִל)이라고 하는데 ‘능력이 있는’ ‘효율적인’의 뜻이다. 아내가 가정을 잘 보살피려면 힘도 필요하고 지혜도 필요하다. 그러한 힘과 지혜는 하나님의 훈련을 잘 받아들일 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가정의 남편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훈련을 잘 받아들이면 능력이 있고 지혜가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훈련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 그는 세상에 나가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는 일에 참여하게 될 것이며(잠 12:5-6) 가정에서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뼈가 썩을 정도’의 고통을 끼치게 될 것이다.
 

교회 밖에서 성공하라

가끔 크리스천 가운데 교회 안에서 봉사도 많이 하고 믿음이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일터에서는 의외로 다른 사람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이 일터나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결과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가리게 될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는 일터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될 것인지 훈련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잠언은 “의인은 그 육축의 생명을 돌아본다”고 하였다(잠 12:10). “육축의 생명을 돌아본다”는 것은 누가 보든지 말든지 최선을 다해 그 양떼를 돌아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잠언이 보는 ‘의인’의 참 모습은 일터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것에 땀 흘리며 최선을 다하는 자의 모습이다. 생활 영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일터에서 동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평가받고 있을까?”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수시로 던져야 한다. 혹시 나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내가 하나님을 믿는 자라는 것’을 알까 봐 숨기고 있지 않은가? 내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 자라는 것을 직장 동료들이 알지만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오히려 지탄의 대상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일터에서 동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인정받기를 원한다면 기본적으로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의 기준은 무엇인가? ‘눈가림하지 않고 주께 하듯이 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골 3:22-23). 하나님께서 주시는 훈련을 잘 받는 사람들은 일터에서 이처럼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된다.
 

불의한 이익을 탐하지 말라

훈련을 잘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에서 방탕한 인생을 살지 않는다. 그들은 맡겨진 토지를 열심히 경작하여 살아간다(잠 12:11). 그 결과 풍성하고 넉넉한 소출을 거두며 여유 있는 인생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잠 12:11).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하라”고 명하셨다(출 20:9).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하는 이유는 교회에 나가서 봉사하지 않고 충성을 다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엿새 동안 자신의 일터에서 게을렀기 때문이다. 엿새 동안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사람은 거룩한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봉사하는 것에도 최선을 다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또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정당하지 않은 재물에 관심을 갖게 되거나 불의한 이익을 탐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잠 12:12). 그러나 훈련이 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때 복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시 128:1). 그들은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익을 취하고 재산을 많이 모았다 할지라도 그것이 결코 축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의 훈련을 잘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인정받는 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스스로 높은 체하면서 제대로 일하지 않아 가난하게 된 사람보다’(잠 12:9), 비록 비천한 자리에서 일한다 할지라도 최선을 다해 일하는 귀하게 본다.
 

훈련된 하나님의 백성들의 언어

훈련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무엇보다 언어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입에서 나온 악한 언어가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넘어뜨리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잠언은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인하여 그물에 걸린다”고 경고하고 있다(잠 12:13). 사람들은 결국 자신이 쏟아냈던 말 때문에 올무에 걸려 넘어지게 된다. 사람들이 환란과 고통을 당하는 이유는 그가 쓰는 언어로 인해 올무에 잡혀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환란과 고통은 과거에 잘 못 썼던 언어가 부메랑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선한 언어, 덕을 세우는 언어,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 사랑의 언어를 쓰는 자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상상을 초월하는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잠언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게 된다”고 하였다(잠 12:14).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언어는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말할 때 분노와 저주의 감정을 담은 언어를 잘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잠언은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낸다”고 하였다(잠 12:16). 사람들이 마음에 일어난 분노를 급하게 표현하다 보면 악한 말을 쏟아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마음에 분노가 일어나도 인내하며 분노를 조절하게 된다. 또한 하나님의 훈련을 받는 자들은 ‘칼로 찌르는 것과 같은 날카로운 언어’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잠 12:18). 날카로운 언어를 듣는 사람들은 마치 칼에 찔린 것처럼 마음에 깊은 상처가 남게 될 것이다. 상대방을 때리지 않고 폭행한 것 보다 더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이 언어의 폭력이다. 어렸을 때 받았던 언어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받고 성인이 된 후에도 치료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잠언은 “지혜로운 사람들의 언어는 양약과 같다”고 하였다(잠 12:18). 때로 언어가 사람에게 무엇보다 좋은 치료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듣고 사람들이 마음에 받은 상처를 받은 자들이 치료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우리가 이러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시는 엄한 훈련을 잘 수용해야 할 것이다. 

방동섭 교수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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