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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들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라

기사승인 2022.09.27  10:2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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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식 목사 단상

김민식 목사/ 광주노회 공로목사, 광주동광교회 원로목사

   
▲ 김민식 목사

   필자는 은퇴한 목사다. 우리는 베드로의 그 유명한 신앙고백을 잘 안다.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다. 그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는 유명한 고백이었다(마16:16). 이 고백 위에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다(마16:18).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질문과 고백이 어디에서 이루어졌는가? 하는 점이다. 바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이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은 로마 황제가 건설한 도시였다. 로마 황제의 칭호나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는 일정 규모 이상이어야 하고, 또 도시 한 가운데나 주요 지점에 반드시 황제의 신전이 세워져 있어야만 했다.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도시는 황제의 논리가 판을 치는 황제의 도시였다. 황제는 인간 욕망의 대명사로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자기 욕망에 눈이 어두워져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는 남의 생명을 가차 없이 죽이는 ‘권력의지’로 사는 사람이다. 양심도 하나님도 없이 사는 사람을 말한다.

황제의 인생 목적과 최대의 관심사는 자신의 왕권과 권력, 다시 말해서 자신의 욕망에 있다. 진리라든가 정의라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 황제의 도시 가이사랴에서 헤롯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죄 없는 사람의 목을 치고(행12:2), 양식을 끊고, 굶겨 죽이는 등, 짐승 같은 짓을 서슴없이 행하였다. 이렇게 자기 욕망을 채우는 일을 하고도 양심의 가책 없이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시켰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우리 교단 총회에서도, 지교회에서도 어김없이 일어나고 있다. 사랑의지보다 권력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 같은 일이 일어난다. 이번 제107회 총회에서도 재판국의 판결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똑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필자가 시무목사일 때 ‘권력의지’로 살아가는 목사와 장로에 의해 얼마나 큰 고통을 당했는지 모른다. 돈과 불법이 법과 상식을 뛰어넘어 재판이 이루어지고 종교권력이 배후에서 작동하는 것을 경험했다. 그 주위에 쓰레기 같은 인터넷 신문이 동조하는 것도 경험했다.

우리 교단(예장통합) 헌법 권징 제81조 제2항에 당연히 증거 있는 서류로 ‘국가 법원의 확정판결서 사본’이 들어있다. 필자가 검찰의 수십 건 무혐의 결정과 대법원의 무죄 판결서 사본을 재판국에 제출하였어도 우리 교단 총회 재판국은 필자에게 시무정지 판결을 내렸다. 7년간 재판이 이루어지는 동안 총회 재판국원이 총회 본회에서 전원 해임되는 일이 수차례 일어났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필자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총회판결효력집행정지 가처분을 받고 다시 살아 돌아왔다. 이것이 우리 총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이것이 ‘성총회’라는 이름으로 목사와 장로들이 모여 행하는 모습이다. 총회 부서의 실행위원을 선출할 때 삿대질과 고성이 오가는 것을 보라. 이것이 우리 총회를 현주소이다. 권모술수가 난무하고 돈과 종교권력이 기민하게 작동한다. ‘사랑의지’ 대신 ‘권력의지’를 가지고 총회를 농단하고 교회를 파괴하는 괴물들이 판을 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그 ‘권력의지’가 없는 척하며 ‘사랑의지’로 포장하고 있다.

축복교회 박 아무개 장로를 보라. 그는 세례교인 60명 정도 교회 장로라고 들었다. 합동 측 출신으로 군납업과 연관 있는 자라고 들었다. 외국인과 얽힌 사연도 있다 들었지만 언급하지 않겠다. 그런 장로가 역사 130년이 넘는 한국의 어머니 교회 앞에 가서 복음주의 목회자인 ‘서울노회’ 이00 목사의 논문을 문제 삼으며 비난했다. 더구나 법치를 요구하는 ‘서울동남노회’ 김00 목사를 자신이 속한 노회에서 분리시켜야 한다고 선동했다. 교계의 원로이신 ‘서울동북노회’ 최00 목사를 이성을 잃어버렸다며 맹비난하더니, 이런 사실을 지적하고 권면하는 ‘광주노회’ 소속 필자를 향하여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협박했다. 또한 ‘서울서남노회’ 오00 목사를 소형교회 시무하는 세습경력 목사라고 얕보며 비난하더니, ‘순천노회’ 홍00 목사와 ‘서울서북노회’ 김00 목사를 기자회견 했다는 이유로 비난했다. 서울노회 송00 목사, 평북노회 강00 목사를 싸잡아 비난하더니, 최근에는 ‘서울서남노회’ 박00 목사의 총회발언을 문제 삼아 무임목사라며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있다.

나아가 106인의 신학자들을 성명서를 발표했다는 이유로 비난했다. 심지어는 제107회 총회 본회 공식 석상에서 제106회 임원 중 한 분 목사를 향해 고발하겠다고까지 협박했다. 더 나아가 새문안교회 이00 목사 사모(여성)의 논문까지 시비 걸며 비방하고 나섰다. 어디 그뿐인가? 2년 6개월 전에 고인(故人)이 되신 오00 목사의 부친 목사를 거론하며 사자의 명예훼손까지 저지르고 있다. 전국 노회를 휘저으며, 신학자, 목회자, 원로, 총회 임원, 나아가 여성뿐 아니라, 이미 고인 되신 분까지 전 방위적으로 거론하며 비난하고 있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행하여서는 안 되는 그런 일을 서슴없이 행하며 사람을 죽이는 일을 자행하고 있다. 이제 박00 장로에게 진심으로 권면한다. 하나님을 의식하기 바란다. 목사는 다 주께서 귀히 쓰시는 주의 종들이다. 다윗이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은 죄가 된다며 사울 왕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셨다고 말하지 않았던가?(삼상24:6,26:9). 예수께서도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던가?(마5:22). 이제 박00 장로는 더 이상 죄와 짝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고 목사들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라(6:17).

최근 박00 장로가 비난하는 박00 목사와 오00 목사는 너무나도 정직하고 신실한 목사이다. 필자가 30년 전부터 잘 아는 분들이라서 그들의 성향을 너무나 잘 안다. 박00 목사는 교회를 개척하고 한 교회에서 25년째 목회하는 신실한 목사이다. 오00 목사는 부친이 살아 계실 때 승용차 자가용까지 사드리며 효를 실천한 목사이다. 효심에 대하여는 필자가 존경하는 목사다. 그런데도 노회가 인정하는 2분의 목사를 마치 시무처가 없는 목사처럼 매도하며, 서울서남노회가 무임 목사를 총회에 파송한 비리 노회라도 되는 양, 분별없이 설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사악한 세상을 만들려고 저렇게까지 하는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인간이 거듭나지 않고 성령에 붙들리지 않고 말씀에 붙들리지 않고 욕망에 붙들리면 그처럼 종교인들도 괴물이 된다. 독일의 히틀러를 보라. 그리고 러시아의 푸틴을 보라.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전쟁과 죽음에 내 던지고 있는가? 누구든지 ‘권력의지’(욕망)에 붙들리면 이렇게 괴물이 되고 만다. 재차 박00 장로에게 진심으로 권면한다. 목사들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라(6:17).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가 누구이든지 욕망에 붙들리면 괴물이 된다. 여기서 욕망은 돈과 권력을 말한다. 필자는 목회를 하면서 그것을 경험한 사람이다. 장로가 욕망에 붙들리자 가스총을 가지고 회의 시간에 뛰쳐나오는 것을 목도했다. 교회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런 악을 저지르는 것이 ‘권력의지’에 사로잡힌 사람의 모습이다. 장로란 사람이 욕망에 붙들리지 않고서야 어떻게 남의 교회에 가서 확성기를 들고 목사를 비난하고, 전국 노회 목사들을 잡아 죽이려고 하겠는가? 아예 인터넷 신문을 만들어 놓고 전국 목사들을 죄인들로 만들어 도배하고 있으니 욕망에 붙들리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믿음이란 매일매일 자기를 욕망으로부터 죽이고 끌어당기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다. 그 싸움에서 이기지 않고서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하나님보다 더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들이 한평생 신앙생활을 한들 그런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재삼 박00 장로에게 진심으로 권면한다. 목사들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라(6:1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셨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은 자기를 버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이기라는 것이다. 자기를 버리고 자기를 이기는 사람만이 주님의 온전한 역사를 이룰 수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 라고 외친 것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자신의 능력보다 온전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다(고후12:9). 그리하여 하나님의 대적이었던 바울이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만드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선한 싸움을 일평생 싸워야 한다. 그 싸움의 대상은 나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내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언제나 나 자신이다. 그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동력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다. 나를 이길 때에 만이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권력을 믿고 돈을 믿으며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가 없다. 00 장로 본인이 말한 것처럼 사마귀의 도구만 될 뿐이다.

00 장로가 하는 일련의 일들을 보면 자기 자신을 신봉하는 이념의 노예처럼 보인다. 자기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서 무차별적으로 남을 죽이려 하는 헤롯의 모습이 보인다. 마하나임뉴스의 기사에서 목사들을 저격하는 모습을 보면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된다. 박00 장로 모습에서는 신앙에서 주어지는 겸손함과 성숙함을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자기 욕망을 성취하려고 얄팍한 법 지식을 가지고 종횡무진 전국을 누비는 모습만 보인다. 신앙생활에서 보여 주어야 하는 겸손과 온유와 절제 그리고 섬김의 제자도는 찾아볼 수 없고 총회 지근에서 권력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대단한 인물처럼 행세하는 모습만 보인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이루어진 곳이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이다. 헤롯은 거기서 자기 욕망을 위해서 죄 없는 사람을 감옥에 가두고 목을 치며 자기 욕망을 위해서 살았다. 욕망에 눈이 어두워 눈이 멀었고 선과 악, 의와 불의를 구분하지 못하고 욕망만을 위해 살아간 어리석은 인간이다. 그는 권력으로 못할 것이 없었던 인간이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행12:21~23)

욕망의 도시 가이사랴에서 욕망에 눈먼 헤롯은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자신을 신급(神級)으로 높이더니 결국에는 비참하게 벌레에 먹혀 죽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 그가 죽은 것은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7-8)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과 권력을 쫓아 살아가는지 모른다. 그 모습이 헤롯과 별반 차이가 없다. 수차례 총회 재판국원들이 교체되는 것이 그 단적인 증거다. 그래서 개독교란 말을 듣고 있는 것이 아닌가? 총회 지근에서 그것도 권력이라는 돈과 욕망을 탐하며 남을 희생시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랑의지’가 아닌 ‘권력의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크게 부흥하고 예산이 많이 늘어나면 그것을 목회성공이라고 판단하고 그 돈과 종교권력 지근에서 살살거리며 살아가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택해야 한다. 총회 지근에서, 이 거대한 욕망의 도시 가이사랴에서, 욕망을 좇아 정치란 이름으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벌레의 밥이 될 것인가? 아니면 사도 베드로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며 살 것인가? 이 욕망의 도시에서 예수의 사람으로 자기 욕망을 부인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 것인가? 헤롯처럼 해충의 먹이가 될 것인가? 교단 목사들을 계속하여 괴롭히며 살 것인가?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 것인가? 성경은 우리에게 바른 해답을 주고 있지 않는가? 예수께서 죄악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처럼 사람의 ‘죽임살이’를 중단하고, ‘살임살이’에 동참하기를 진정으로 권면한다(롬8:1-2).

김민식 목사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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