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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대학살의 현장을 가다(3)

기사승인 2022.09.27  15:4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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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은수 교수의 역사 현장 탐방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 최은수 교수

 

 아르메니아 대학살 107주년에 묵상하는 인생의 피난처

 현재 터키(튀르키예)의 땅을 일컫는 명칭이 아나톨리아였다. 앞선 글들에서 밝혔듯이,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은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에 도착한 이후부터 고대 아르메니아 땅이었다. 그렇게 역사의 부침을 겪으면서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땅에서 인종, 문화, 종교 청소를 당하고 쫓겨났으니 그 한이 오죽이나 깊고 큰 상처로 남았겠는가! 필자는 대아르메니아(Greater Armenia) 영토였던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을 돌아보면서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는 아르메니아의 정기를 체득할 수 있었다.

동시에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와중에서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간절하게 피난처를 찾아 헤매였는지를 그 현장에 남아 있는 흔적들을 통해 마음으로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오토만 투르크 제국 내에서 합리적인 자치권을 가지고 살아오던 아르메니아인들이 쿠데타로 집권한 신진 세력들에 의해 순식간에 거국적으로 학살을 당하고 모든 재산을 빼앗겼으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시시각각으로 가족의 생명이 위협을 받고 있으니 몸을 피할 도피처를 찾는 것은 생존본능이었다.
 

천상의 굴뚝인 갑바도키아

   
▲ 바돌로매 사도가 살가죽이 벗겨져 순교한 모습을 상상하여 만들어 낸 다미엔 허스트의 작품이다. 현재 잉글랜드의 런던에 있는 세인트 바돌로매 대교회(Saint Bartholomew the Great Church)에서 전시중이다. 바돌로매 사도가 벗겨진 자신의 가죽을 들고 있는 모습이 마치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통해 아나톨리아 전체에서,특히 동부 아나톨리아서 껍질이 벗겨지 듯 살육 당하고 추방 등 온갖 핍박을 당했던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을 보는 듯하다.

터키(튀르키예)로 성지순례를 가거나 심지어 일반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꼭 방문하는 곳이 갑바도키아 지역이다. 이곳은 동화에나 나올법한 기암괴석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천상의 굴뚝들(fairy chimneys)로 불려지고 있다. 예로부터 이곳의 지형은 간단한 도구로 바위를 파서 주거지 등 원하는 용도로 비교적 쉽게 만들어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초대교회 당시 로마제국의 박해를 피해서 기독교인들이 모여들었던 지역이다.

당시 그들은 더욱 안전한 피신처를 확보하기 위해 지하 깊숙한 곳에 개미집처럼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서 거대 지하도시를 형성하였다. 이렇게 갑바도키아 지역으로 수 많은 기독교인들이 피신을 함으로 성지화 된 이곳을 통하여 귀한 인재들이 다수 배출되었다. 아르메니아 기독교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됨으로 좋은 영향들을 주고받았다.

   
▲ 바돌로매 순교 기념 교회에서 바라본 바나도키아의 모습이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계기로 동부 아나톨리아 전역에 걸쳐 쿠르드족이 목축을 하며 살고 있다. 전형적인 국경지대의 평화로운 모습이나 쿠르드족과 튀르키예 그리고 주변의 국가들과 항상 긴장이 감돈다.


또 다른 천상의 굴뚝들로 이루어진 피난처, 바나도키아(Vanadokya)

필자가 간단하게나마 갑바도키아를 언급한 이유는 바나도키아를 언급하기 전에 독자 제위의 이해를 돕기 위함이다. 국내외를 통틀어서 바나도키아를 방문한 사람들이 극히 드물며 아마 처음 들어보는 지명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거의 대부분이지 않을까 한다. 그만큼 이곳은 국내외 한국인들에게 극히 생소한 곳이지 않을까 한다. 바나도키아의 특이한 지형은 화산 활동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조성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지난번 글에서 수많은 십자가로 수놓아진 바돌로매 순교 기념 교회 및 기도원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필자와 독자 제위가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의 간절한 외침들을 들으며 그들의 고통을 폐부 깊숙이 느껴보았다. 실로 큰 울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 당시 바돌로매 기념 교회도 여타의 교회나 수도원들처럼 기독교인들의 도피처가 되었다.

   
▲ 오랜 세월 깍이고 다듬어져 기암괴석을 이루었다. 갑바도키아처럼 지하도시나 층층을 이루는 바위 속 건물들은 없지만 자연스럽게 형성된 큰 바위들은 대학살을 피하는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 입장에서는 잠시나마 숨을 수 있는 피난처였다

이 방치된 바돌로매 기념 교회의 뒷편에서 보면 확트인 농지와 푸른초장이 펼쳐져 있다. 그 중간중간에 나귀를 타고 소떼나 양들을 모는 쿠루드족 목동들이 한가롭게 유유자적하는 모습과 잘 자란 풀을 베어 가축들의 여물로 쓰려고 바쁘게 움직이는 쿠르드족 농부들의 면면도 보인다. 그런 광경들이 끝나는 산자락에 정말로 동화 같은 천상의 굴뚝들이(fairy chimneys)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 산의 뒤편이 이란이다.
 

바나도키아(Vanadokya)의 큰 바위에 숨기시고

   
▲ 오랜 세월 동안 풍화작용을 통해 잘게 부서진 바위 조각들이 생각보다 미끄럽다. 광활한 평지에서 바나도키아는 전능자의 그늘이었을 것이다.

바돌로매 기념 교회에서 바라본 바나도키아의 모습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있던 유적지에서 파묵깔레와 히에라폴리스를 멀찌감치서 볼 때와 너무나도 비슷하였다. 이 두 곳 모두 원거리에서 목도했을 때 하얀색의 풍광이 일품이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갑바도키아와 거의 무명에 가까운 바나도키아의 유사점은 동화 같은 천상의 굴뚝들이라는 점과 지리적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가장 큰 차이점은 바나도키아를 볼 때 인위적으로 만든 공간이나 지하 도시 같은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어찌 보면 기이하고 괴상하게 생긴 큰 바위들로 이루어진 천혜의 피신처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바나도키아의 산 정상까지 뻗어있는 큰 바위를 넘어 여차하면 이란 방향으로 도망치기에도 용이하였을 것이니 말이다.

   
▲ 큰 바위 밑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공간들이 대학살을 피하는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에게 안도와 위안이 되었을 법 하다.

바나도키아의 큰 바위로 이루어진 군락지 주변에는 쿠루드족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는데, 어떤 가옥들은 큰 바위들을 적절히 활용하여 건축하였고, 다른 집들은 바위들과 거리가 있는 곳에 위치한 연고로 돌조각들을 적절히 이용하여 담을 쌓기도 하였다. 방과 후 같으면 쿠르드족 아이들이 가이드를 자처하며 요란을 떨었겠지만 학교가 파하기 전이라 상대적으로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했다. 마을과 직통으로 연결된 지점에 큰 바위들이 있어서 필자는 그곳에서부터 산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경사가 가파른 데다가 바위 조각들이 잘게 부스러져 있어서 미끄러지기 일쑤였고 동물들의 배설물까지 피하려니 체력은 급속히 저하되고 몰골은 말이 아니게 되었다. 천신만고 끝에 정상에 올라서 큰 바위들을 바라보니 천혜의 피난처로는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지척에 보이는 이란을 쳐다보면서 아르메니아 대학살 당시 하나님이 제공하신 바나도키아의 큰 바위로 피했을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을 상상해 보았다. 큰 바위에 피난처를 마련했다는 안도감과 이곳도 언젠가 발각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교차했을 그들의 복잡한 심리상태를 말이다.

   
▲ 이곳은 바나도키아 산 정상의 모습이다. 전방에 보이는 지역이 이란이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바나도키아까지 안전하지 못하다고 여겼을 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메마른 황무지였다. 그래도 신앙을 지키고 가족을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이 길이 피눈물나는 길이었다고 생각하니 절로 숙연해진다.


바나도키아를 지나 더 깊은 곳으로

바돌로매 기념 교회와 바나도키아를 품고 있는 지역이 분지 형태로 되어있으며, 양쪽의 산들을 끼고 길게 늘어져 있다. 바나도키아를 지나 분지 형태의 드넓은 골짜기로 한참을 가면 깊숙하고 인적이 드문 곳에 쏘라디르(Tsoradir) 교회 및 수도원이 자리 잡고 있다. 바돌로매 기념 교회에서 보았을 때, 이 교회는 약간 동북쪽에 위치해 있는 셈이다. 쏘라디르 교회로 가는 길은 현재도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곤란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아르메니아 대학살이 진행되던 당시에는 보다 더 안전한 피난처를 찾아 헤매던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에게 고난의 여정일 수밖에 없었다.

   
▲ 이란과 맞닿아 있는 가장 깊숙한 곳에 쪼라디르 교회 및 수도원이 자리하여 대학살을 피하려는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에게는 최후의 도피처 역할을 하였다. 여기는 외부인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이다.

아르메니아 대학살 이전까지만 해도 좋은 이웃으로 평화롭게 지내던 쿠르드족들이 쿠데타로 집권한 오토만 제국의 신진 세력들에게 이용당하여 아르메니아인들을 학살하고 축출하는 데 앞장섰으니 얽히고설킨 민족 감정들이 쉽게 해결될 수 없었다. 터키(튀르키예)의 전신인 오토만 투루크 제국이 쿠르드족을 이용하여 아르메니아인들을 대청소시키고 쿠르드족을 동부 아나톨리아에 살도록 한 대가는 거국적으로 진행되어 오고 있는 테러, 납치, 군사적 무장봉기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중이다.

이런 불안요인은 쿠르드족의 독립국가인 쿠르디스탄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다. 쿠르드인들에게 ‘당신은 터키인입니까?’라고 물어보면 질색팔색을 하며 ‘나는 쿠르드인입니다’라고 분명히 말한다. 이는 외국 사람들이 동양인들의 외모로 어느 나라 출신인지 헷갈리어 한국사람에게 ‘당신은 일본인입니까?’라고 했을 때의 대답과 같은 것이다. 우리도 얼굴을 붉히며 ‘나는 한국인입니다’라고 하며 기분 나쁜 표정을 숨길 수 없을 것이니 말이다. 독립국가를 이루지 못한 쿠르드인들에게는 더욱더 분노에 찬 반응들이 나오는 것이 이상할 리 없다. 이 모든 문제들이 동부 아나톨리아의 진정한 주인인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을 몰살시키고 대청소를 진행했던 아르메니아 대학살로부터 기인한다.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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