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나그넷길의 과제

기사승인 2022.11.04  13:51:04

공유
default_news_ad1

- 장경애 사모 컬럼

장경애 사모/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수필

   나 어릴 적에 ‘인생은 나그넷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느냐’로 시작되는 <하숙생>이라는 가요가 있었다. 전반적으로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의미 짙은 구절이 많아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았던 가요 중의 하나다. 그래서 이 노래를 찬송가 부록에 넣어야 하지 않겠냐고 농담할 정도로 기독교인에게도 호응이 좋았다. 가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까지도 기억하는 것을 보면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노랫말 전반을 보면 인생을 나그넷길과 같다고 하지 않고 나그넷길이라고 단정하여 말하고는 출발지와 목적지에 대해 막연함을 나그네에게 묻는 말로 되어있다.

그렇다. 우리는 나그네고, 인생은 나그넷길이다. 인생이 나그넷길이라는 말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있을까?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인생을 나그네로 보기도 하고, 좀 즐겁게 보는 사람은 소풍으로 보기도 한다. 소풍이든 나그네든 이 말에는 출발지가 있고, 돌아갈 곳이 있다는 뜻이 숨어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 중에 고향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록 갈 수 없는 곳에 있을지라도 마음속에 간직된 고향은 반드시 있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커진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도 그러하다. 코끼리는 자신이 태어난 곳을 본능적으로 안다고 하고, 또한 연어는 자신의 고향으로 찾아가 생을 다한다고 한다. 제비도 죽을 때는 제자리로 돌아오고 여우도 죽을 때는 고향을 향해 운다고 한다. 더욱이 놀라운 점은 많은 짐승이 죽을 때 사실인지는 몰라도 자기가 태어난 곳을 향해 머리를 두고 죽는다고 한다. 이처럼 살아있는 모든 것은 고향을 생각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동물도 그러하거늘 우리 인간은 어떻겠는가.

그처럼 많은 사람이 가지는 영원한 질문 중의 하나는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것이다.

   
 

인생길은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싫든 좋든 누구나 가야 하는 필연의 길이다. 다시 말해 한 번 나그넷길에 들어선 사람은 싫든 좋든 가야만 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것은 살아가야 하는 권리와 의무가 동시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길이 너무도 다양한 천태만상이라는 점에 매력이 있다. 목적지를 알고 가든 모르고 가든, 목적지에 대한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가든, 아무 생각이 없이 가든, 과정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과정이 어떤 사람에겐 쉽고, 자유롭고, 행복한 데 반해 어떤 사람에겐 힘들고 고통스럽게 주어진다. 잘 선택하고 그 선택한 것을 부지런히 열심히 노력한 사람은 즐거운 인생이 될 것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 길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목적지를 알고 간다면 인생의 과정을 선택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다 해도 목적지가 분명한 사람은 다른 길로 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불평이나 불만이 없이 자신의 길만 묵묵히 간다. 반면에 목적지를 모르고 가는 사람은 모르기 때문에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방황하고, 되는대로 아무 길로 가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는가'하는 질문을 해 보아야 한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중에 있는 이야기다. 많은 땅을 갖고 싶어 하는 주인공에게 어느 날 조물주가 나타나서 “네가 오늘 실컷 걸어 다녀라. 네가 밟은 곳은 다 너에게 주마. 다만 네가 기억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는데, 해가 지기 전에 돌아와야 한다. 해지기 전에 돌아오지 않으면 오늘 너의 고생은 무효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땅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 찬 그는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히 쉬지 않고 걸었다. 종일토록 걷다가 시간을 보니 너무 멀리 온 것을 발견했다. 해가 지기 전에 돌아가려고 뛰기 시작했다. 숨을 몰아쉬며 죽을힘을 다해 겨우 도착했지만, 심장이 터져 죽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그가 차지한 땅은 그의 육신이 묻힐 고작 반 평 땅밖에 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나그넷길의 종착역은 죽음이다. 반드시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는다. 우리 앞에 살던 그 모든 사람이 다 죽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빈부귀천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늙어 죽었든, 병들어 죽었든, 사고로 죽었든 다 죽었다. 지금, 이 순간도 지구상에 1초에 2명씩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머지않아서 그 죽음을 나도 맞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알지만, 아직 먼 훗날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혹은 나는 예외일 거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살아간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오늘 하루하루 사는 일이 너무 바쁘고 고단해서 죽음을 생각할 틈이 없어 미루고 있고, 죽음이 너무 두려운 나머지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찌했든 사람들 마음속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자기가 쌓아온 모든 것을 죽음으로 다 잃어버리게 되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사물과 단절됨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그보다 더 큰 두려움은 죽음 이후에 대한 두려움이다. 죽고 나면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인지, 아니면 어디로 가는 것인지, 간다면 도대체 그곳은 어디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다.

20세기의 최고 지성인으로 알려진 사르트르는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병원에 있는 동안 소리 지르고 발악을 하고 미치광이처럼 고함을 질러 댔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소리 지르고 발악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어떤 사람은 말했다. 그가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도 죽음 앞에 비참했다고 말이다. 세상에는 이처럼 불쌍한 사람들이 참 많다. 그중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돌아갈 집을 모르는 사람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태어난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죽은 후에 어디로 갈 것인가. 분명히 말하지만 죽음으로 나그넷길은 끝나고 준비된 곳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 나그넷길의 여정으로 그 영원한 곳이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다.

키르케고르는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고향 잃은 사람들이다'라고 했지만, 성도는 죽은 후에 돌아갈 집이 있음을 아는 사람이다. 또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나그넷길임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이 나그네임을 알고 또 목적지가 있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성도는 목적지를 제대로 알고 그곳을 향하여 가는 사람이다. 성도에게는 인생 여정을 안내해 준 예수님이 나의 목적지를 예비해 놓으셨다. 그곳은 아버지 집으로 상상이 아닌 확실한 곳이다. 그곳은 천국이다. 목적지를 알면서 다른 곳으로 가는 멍청한 사람은 없듯이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열심히, 성실히 달려가야 한다.

깊어가는 가을. 밖에는 나무마다 울긋불긋 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어쩌면 살아온 날에 대한 보고서인지도 모른다. 인생 가을에 있는 나로서는 예사로이 보이질 않는다. ‘저 나무들의 잎보다 더 열심히 살았어야 했는데’ 하는 반성이 앞선다. 저 본향이 점점 더 가까이 눈앞에 더 선명하게 보여오는데 나그넷길이 복된 길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할 것을 마음 깊이 다짐한다.

장경애 kyung5566@hanmail.net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