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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대학살의 현장을 가다(6)

기사승인 2022.11.15  15: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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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은수 교수의 역사 현장 탐방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 최은수 교수

 아르메니아 대학살 107주년에 찾은 동부 아나톨리아의 박물관들

 필자가 시간 되는 대로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을 돌아보면서 상당히 궁금했던 점이 ‘과연 이 지역의 박물관에는 무엇이 소장되어 전시되고 있을까'였다. 왜냐하면 앞선 글들에서 언급하였듯이 오토만 투르크 제국과 쿠르드족이 자손대대로 터를 잡고 살아오고 있었던 아르메니아인들을 학살하고 축출하면서 그들의 문화까지도 철저하게 파괴하였고 오랫동안 방치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옛 아르메니아인들의 정취가 배어 있는 이 광활한 지역에 몇 개의 박물관들이 운영되고 있지만 카스(Kars)와 반(Van) 박물관들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각 도시 자체가 주변의 지역을 아우르고 있기도 하고 고대로부터 전통적인 흔적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기에 그렇다.

실크로드의 거룩한 도성인 애니(Ani)로 가는 관문 도시인 카스는 유적들이 몰려 있는 카스 성채 주변에서 동떨어진 지점에 카스 박물관이 자리하여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반면에 반 박물관은 반 성채(Van Fortress) 바로 옆에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고대 아르메니아 왕국인 우라투 박물관과 함께 있어서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아울러 튀르키예에서 가장 큰 호수인 반 호수가 지근 거리에 있어서 경치도 탁월하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반 박물관은 입장료를 받고 카스 박물관은 무료 관람이다.
 

’어여쁜 신부‘라는 이름의 카스(Kars)

   
▲ 카스 박물관에 소장중인 카스 대교회(The Holy Apostles Church)에서 사용되었던 대문이다

아르메니아어에서 나온 이 말은 카스가 지닌 매력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것 같다. 사실 카스는 실외 박물관 격인 구도심권과 실내 박물관으로 나눌 수 있다. 구도심에 위치한 카스 성채 주변으로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계기로 이 주변도 철저히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다. 특히 카스 성채와 근접한 곳에 ’거룩한 사도들의 교회‘ 또는 ’카스 대교회‘가 자리 잡고 있는데 현재는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어 형체만 유지하고 있다. 카스 인근에 있는 쿰벳 교회 등은 파괴되고 방치되어 한때 교회로 사용되었었다는 어렴풋한 추측만 가능할 정도다.

필자가 구도심의 중심부로부터 성채를 향하여 올라가는 중간에 보았던 카스 대교회는 사원으로 개조되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물론 이 건물의 사방으로 새겨져 있었던 기독교의 상징들을 철저하게 지우려고 했던 흔적들은 여전하지만 무슬림들이 아무리 없애려 해도 없앨 수 없는 모습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그들이 무슬림 사원을 깨끗하게 정비하여 보존한 것이 아니라 카스 대교회를 복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여기저기 남아 있는 아르메니아 십자가, 즉 카치카스들이 더욱 멋지고 아름답게 보였다.

   
▲ 카스 박물관에 모아진 십자가 장식들과 기타 문양들

사실 카스 박물관은 선입견이 있어서 그런지 괜시리 망설이며 여차하면 그냥 지나치려고 했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영향을 많이 받은 지역이라서 설마 아르메니아 교회 관련 내용들이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필자가 우여곡절 끝에 발을 디딘 카스 박물관은 초입부터 그런 선입견을 완전히 깨뜨려 버리기에 충분하였다. 카스 대교회(The Holy Apostles Church)를 비롯한 주변의 파괴된 교회들에 있었던 물품들이 카스 박물관을 안과 밖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슬람 국가나 다름없는 나라의 박물관이 기독교 유적들로 넘쳐나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박물관 실내에 전시된 기독교 소장품들은 모두 교회들의 내부에 있었던 것들이다.

   
▲ 카스 대교회는 현재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외관상 아르메니아 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지하고 있으며 외곽 곳곳에 아르메니아 문양과 십자가들(카치카스)이 적지않게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카스 대교회의 목조 대문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교회들의 곳곳에 놓여져 있었던 다양한 십자가 장식들도 투명한 유리로 된 상자에 담겨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 정교함에 탄성을 자아내게 하였다. 이렇듯 귀중한 교회의 내장품들이 보존될 수 있었던 데는 아르메니아의 격조 높은 문화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이들이 소수나마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특히 카스 지역은 아르메니아 대학살과 곧이어 진행되었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기 때문에 교회의 유산들이 전소되거나 파괴되지 않고 생존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기적과도 같았다.

카스 박물관의 외부 전시물들은 아르메니아 카치카스(십자가)들로 선명하게 수놓아진 각종 비석들과 돌판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필자는 박물관 뜰을 가득 메운 돌들 가운데 아르메니아 것이 아닌 유물들이 있는가 해서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기독교의 유물들뿐이었다. 하나님께서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아름다운 돌을 주시고 그 돌들을 활용할 수 있는 예술적 재능까지 겸하여 주셨음이 확실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돌을 다루는 방면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탁월함을 겸비하였다. 이런 기독교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는 카스 박물관의 직원들이 전시품들을 보여주며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약간 어색하긴 했다. 직원들이 튀르키예인이거나 쿠르드족 사람들이었으니 말이다. 이들은 아르메니아 사람이나 그들의 문화유산과 그 어떤 접촉점도 없는데도 단지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서 수집된 유산이라 자부심이 있었던 건지 아니면 직업적인 태도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여튼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 아라랏과 동의어인 우라투 왕국은 자체의 문자를 가지고 문명을 발전시켰다

우라투(Urartu) 문명 중심의 반(Van) 박물관

고대 우라투 왕국은 아르메니아어로 아라랏 왕국이라는 말이다.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에 도착한 이후 신인류가 반 호수를 중심으로 정착하여 문명의 꽃을 피우며 번창하였다. 노아의 후손임을 암시하는 우라투부터 노아의 방주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간직하고 있는 반 고양이(Van Cat)에 이르기까지 우라투 왕국과 아르메니아는 불가불리의 관계를 형성하여 왔으며 결과적으로 주후 301년에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되는 결실을 맺었다. 우라투 왕국의 찬란한 문명이 빛을 본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의 역사가들은 ’잊혀진 왕국‘ ’잊혀진 문명‘으로 부르고 있다.

   
▲ 아르메니아의 선조들인 우라투 왕국도 돌을 다루는 기술이 탁월하였다

카스 박물관과는 다르게 반 박물관이 관람료를 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고대 우라투 왕국이 반 지역을 중심으로 동부 아나톨리아와 그 넘어까지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에 현재까지 남겨진 유물만으로도 과거의 휘황찬란한 흔적과 탁월한 문명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카스 박물관이 아르메니아 기독교 유적들로 가득찼다면, 반 박물관은 우라투 문명의 전시관이라 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필자도 솔직히 우라투 문명의 탁월성을 생생하게 보기는 처음이라 놀라움을 금할 길 없었고 경이롭기까지 하였다.

필자가 반 박물관의 우라투 전시관을 찬찬히 살피다가 특이한 내용을 하나 발견하였다. 적지 않은 우라투 유물들이 국외로 반출되어 여러 나라에서 전시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런 사실을 공개적으로 노출시킴으로 해서 국제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는 각 나라에서 자발적으로 반환케 하려는 의도이리라. 우라투 왕국의 유물들이 가장 많이 전시되고 있는 나라가 독일이라고 적시되어 있었다. 아마도 세계 제1차 대전부터 독일과 튀르키예의 특별한 동맹관계가 영향을 주지 않았나 생각된다.

   
▲ 반 박물관에서 우라투 문명을 전시한 중간중간에 아르메니아 교회 관련 전시물들을 놓음으로 우라투 왕국과 아르메니아가 동일선상에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위의 모형은 반 호수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다마르 섬에 위치한 교회다

기타 국가로는 스위스, 영국, 러시아, 미국 등이 있다. 이런 국보급 문화재들을 소장하고 있는 국가들의 변명은 유물들을 본국으로 송환했을 때 과연 해당 국가에서 원형 그대로 보존할 능력이 있고 안전을 확실히 담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도둑놈 심보이기도 하다.

반 박물관에서 우라투 문명과 함께 아르메니아 기독교 관련 유물들도 나란히 전시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튀르키예나 쿠르드족이 동부 아나톨리아가 원래 아르메니아의 땅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모양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 이후 107년이나 세월이 흘렀으니 언제까지 과거의 원한에 사로잡혀 현재와 미래를 희생시킬 수 없다는 공감대가 폭넓게 확산되고 있는 추세임이 확실해 보인다.

지근 거리에 국경을 맞대고 있으나 상호 굳게 걸어 잠그고 왕래하지 않은 지도 오래 되었으니 여러 분야에서 화해의 손짓을 계속해서 보여주어 진심이 통한다면 아라랏산의 만년설도 녹이지 않을까?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이자 동부 아나톨리아를 통째로 뺏긴 아르메니아, 그리고 이슬람권인 아제르바이잔, 튀르키예, 이란, 쿠르드족 등이 흉금을 터놓고 대화하며 왕래하는 그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기대해 본다. 특별히 무너지고 파괴될지언정 굴하지 않는 돌들의 소리들을 모두가 듣기를 갈망해 마지 않는다.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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