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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대학살의 현장을 가다(7)

기사승인 2022.11.24  11: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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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은수 교수의 역사 현장 탐방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 최은수 교수

아르메니아 대학살 107주년을 맞은 반 성채(Van Fortress)

동부 아나톨리아의 중심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반(Van)에 가면 튀르키예에서 가장 큰 반 호수(Lake Van)와 그 호숫가에 우뚝 솟은 반 성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하나는 바다와 같은 소금 호수라서 그렇고 다른 하나는 길게 늘어져 있는 바위산이기 때문이다. 노아의 방주가 도착한 아라랏산에서부터 고대 우라투 왕국의 기원을 찾게 되듯이 오랜 역사만큼이나 반 호수와 반 성채는 아직까지도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중이다. 반 성채를 두르고 있는 반 호수는 고생대 괴생물체의 존재 미스터리, 호수 속에서 발견된 또 다른 성채, 그리고 바돌로매 사도 기념 교회의 인근에 있는 바나도키아처럼 호수 속에도 천상의 굴뚝들(Fairy Chimneys)로 이루어진 기암괴석의 모습까지 품고 있으니 아직도 못다한 이야기가 많은 곳이다.

   
▲ 반 박물관 겸 우라투 왕국 박물관에 전시된 반 성채에 대한 설명이다. 투쉬파로 불리던 반 성채는 우라투 왕국의 찬란한 영광과 함께 1915년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아픔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반 성채를 포함한 주변은 고대 우라투 왕국의 수도였던 투쉬파(Tushpa)로 불리웠다. 우라투 왕국은 동부 아나톨리아 전역에 걸쳐서 성채를 건설하고 그 주변에 정착을 하는 구조로 발전하였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그런 곳에서 자손대대로 살아오고 있었던 아르메니아 사람들에게 1915년 대학살은 큰 충격이자 씻을 수 없는 민족의 한이 되었다. 세계 역사의 흐름속에서 동부 아나톨리아는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었고, 생존하는 자체가 항상 관건이었던 아르메니아인들은 자연스럽게 투쟁과 저항의 상징처럼 보여지기도 했다. 특히 오랫동안 오토만 제국 내에서 자치권을 가지고 아무 문제 없이 상생할 뿐만 아니라 오토만 제국의 경제를 이끌었던 아르메니아인들이 하루아침에 학살과 추방의 대상이 되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봉기하였다. 고대 우라투 왕국의 찬란한 영광을 보존하고 있던 반 성채가 그 저항과 항쟁의 중심에 있었다.
 

   
▲ 수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반 호수에서 바라본 반 성채의 모습이다


저항과 테러 사이

1915년 아르메니아 대학살 당시 아라랏 즉 우라투 왕국의 후예들은 생존을 위하여 저항하였다. 아르메니아인들을 몰아내고 동부 아나톨리아와 주변국들에 흩어져 살고 있는 쿠르드족들 또한 생존을 위한 저항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 아무도 그들을 추방하려고 강제하지 않기 때문에 저항이라기보다는 테러를 통하여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켜서 궁극적으로는 쿠르디스탄 국가의 창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쿠르드족의 테러 방식은 시대의 분위기에 역행하고 수많은 민간인들의 희생만 낳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도 이스탄불의 탁심 광장 근처에서 테러가 일어나 6명이 사망하고 81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튀르키예는 국경지역에 산재해 있는 쿠르드족 마을들에 대한 보복 공격을 단행하여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다.

   
▲ 자연적으로 형성된 바위산 꼭대기에 반 성채가 건설되어 유구한 역사를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다

필자가 시간과 여건이 되는대로 동부 아나톨리아를 방문할 때마다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테러였다. 한번은 필자의 방문 시기보다 약간 이른 시간에 국제구호단체 직원들이 쿠르드족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되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아라랏산 주변으로 그들이 숨어들어 활동하였기 때문에 그 주변을 완전히 봉쇄하고 군경합동으로 소탕작전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동부 아나톨리아의 어느 지역을 가든지 검문검색이 강화되어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필자는 생김새만 보더라도 쿠르드족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황이 위급하지 않을 때는 간단히 통과하였지만, 긴장감이 도는 급박한 상황에서는 서류부터 무장 여부까지 철저하게 조사를 받아야 했다.
 

   
▲ 고대 우라투왕국은 반 성채와 같은 구도로 바위산에 성을 축조하고 그 주변으로 도시가 형성되었다. 반 박물관에 전시된 이 모형은 그 한 예이다


죽으면 죽으리다의 에스더가 생각나는 반 성채(Van Fortress)

반 성채가 갖는 저항의 상징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1915년 대학살 당시의 아르메니아인들처럼 성경에도 대학살의 위기에 직면했던 민족이 있었으니 바로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동족인 유대인들이었다. 에스더의 시기에 우라투왕국은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 하에 있었다. 에스더의 남편이자 페르시아 제국의 왕이었던 아하수에로(Xerxes the Great)가 우라투 왕국의 수도를 점령하고 나서 자신의 치적을 반 성채의 바위에 새겨넣었다. 지금도 반 성채의 한 쪽 바위에 고대 근동의 쐐기문자로 된 아하수에로왕의 공적이 기록되어 있다.
 

   
▲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제왕이자 에스더의 남편인 아하수에로 왕의 비문이 고대 근동의 쐐기문자로 바위에 새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하수에로 왕의 기념비가 반 성채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우라투 왕국의 위상을 말해준다

이 비문을 통해 아하수에로왕은 선친인 다리오대왕(Darius the Great)을 높이면서 신의 섭리로 그런 위대함을 물려받은 자신이 왕들 중의 왕이며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통치자임을 선포하고 있다. 에스더서에도 언급되었듯이 아하수에로왕이 통치하던 제국은 실로 광대하여 고대 이집트로부터 인도의 접경까지 망라하였다. 그가 다스리던 대제국을 생각하면 자신의 치적을 기록할만한 장소들이 무수히 많았을 텐데도 반 성채에 이런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긴 것은 고대 우라투왕국과 그 수도인 반 성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적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 반 성채에서 바라 본 일몰의 모습이다. 바다와 같은 반 호수 위로 사라져가는 태양이 강렬하다


역사는 역사를 부르고, 생명은 생명을 부른다

이 문구는 필자가 즐겨 쓰는 표현이다. 역사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반 성채와 주변이 유유히 흐르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금의 위치에 그대로 서 있는 자체가 역사요 생명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숨을 쉬며 거침없이 표현하며 말한다. 돌들이 소리지르 듯이 역사도 소리를 지른다. 정말로 역사에 대하여 귀가 열린 사람은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가 말하는 역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과 연관된 유적지들을 누비면서 필자가 들은 역사의 소리를 전달하려고 노력해 오고 있다. 생명인 역사는 희노애락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때로는 슬픔에 젖어 눈물을 보이기도 하며 반대로 너무 감격하여 기쁨을 주체할 수 없기도 하다.

필자는 뜨거운 태양이 떠오르는 일출도 좋아하고 인생의 마지막 한 순간을 불태우듯이 강렬하게 타오르다 곧이어 지는 일몰도 무척이나 즐긴다. 강렬한 햇빛으로 어둠을 물리치며 반 성채를 비추는 태양도 볼 만 했지만, 반 호수 너머로 뜨겁게 사라져가는 것을 반 성채에서 바라보니 장관이었다. 자연의 이치처럼 생명인 역사도 일출과 일몰을 반복해 오고 있다. 그런 와중에서도 반 성채와 같은 역사의 흔적들은 자신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 세대를 거치며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다.

필자가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를 가다를 통해 다룬 아르메니아나 세계 최초의 여성 조명자 국가를 가다의 조지아를 다룰 때는 향후 방문 일정과 장소에 대하여 추천을 했었다. 하지만 동부 아나톨리아의 성지에 대해서는 섣불리 안전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신중한 것이 사실이다. 진심으로 바라기는 아르메니아인들을 몰아내고 그 땅에 자리잡고 살고 있는 쿠르드족이 테러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었으면 한다. 그래서 이 지역의 성지를 사모하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개인이나 단체로 안전하게 방문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고대해 마지 않는다.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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