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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흑사병, 교회와 선교

기사승인 2022.11.28  14: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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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호 케냐 선교사의 편지

정광호 선교사/ 현 케냐 주재, GMS 원로선교사

   
▲ 정광호 선교사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아프리카 교회들마다 문을 닫아야 했고, 예배와 모임들이 중단되었다. 케냐의 많은 목회자들이 가정을 지키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교회 밖의 일반 노동일에 참여하여 돈을 벌어야 했다. 교인들은 흩어지고 헌금은 감소되었다. 거의 똑같은 현상들이 중세의 흑사병 때에도 있었는데, 그것을 교회와 선교의 역사 속에서 재발견할 수 있다. 흑사병이 일어난 때에 기독교 선교가 유럽 밖에서 가장 왕성하게 전파될 때였다.

오늘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병한 초기에 (2020년)는 몇 달이나 몇 계절만 지나면 풍토병으로 전환하리라는 기대를 하였다. 그러나 코로나가 전염병으로서 만 3년(2020-2022)이 지나면서 마라톤 경기처럼 장기화되었고,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와 재난들이 일어났고, 그리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악영향은 물론 뒤따르는 치솟는 고물가로 인하여 인류는 지치고 새로운 삶의 돌파구를 찾으려고 아우성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코로나 전염병이 지방 풍토병으로 전환되기를 바라면서 흑사병이 중세 교회와 선교에 미친 영향과 오늘의 코로나로 인하여 교회와 선교에 미친 영향을 비교하고자 한다.
 

1. 흑사병이 유럽대륙에 무려 약 7년간(1347-1353) 창궐하였다가 그후 몇 세기 동안 지방 풍토병이 되었다.

   
 

1300년대 중국에서 발병되어 병원균을 옭기는 쥐벼룩들과 함께 중국에서 로마를 잇는 실크 로드를 통해 크리미아를 거쳐(1343년) 이탈리아 시실리섬의 항구에 전파되었고, 그로 인하여 많은 선원들이 감염되어 죽었다. 검은 흑반점이 피부에 생겨 피고름이 흘러나오고 목과 허파의 염증, 악취, 열과 오한, 설사와 구토와 통증을 유발했다. 약 세계에서 2억 명이나 사망했다고 추산한다(cf. Philip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 VI. Grand Rapids: Eerdmans, 1977, p. 99). 이탈리아의 플로렌스 출신의 소설가이며 시인인 지오바니 보카치오(1313-1375)는 당시의 비참한 전염 상황을 그의 소설, <데카메론>(1353) 의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묘사해 놓았다.

“환자에게 접근하거나 또는 말을 주고받기만 해도 … 환자가 한번 만졌거나 사용한 의복이나 그 밖의 물건에 손을 대기만 해도 전염 되었다. 이 병으로 죽은 구차한 사람의 누더기 옷을 거리에다 내 던져 버린 일이 있다. 그때 돼지 두 마리가 주둥이를 비벼 누더기를 입에 물자  조금 후에 그 돼지는 경련을 일으켜 쓰러져 죽어 버리고 말았다”(보카치오, 남용억 역, <데카메론>, 을지 문화사, 1963, pp.12-13). 

무역선이 이탈리아 항구에 정박하면, 무려 40일간 격리시켜 전염병이 전염되지 못하도록 차단하였다. 이런 격리가 오늘날 코로나 바이러스 사회적 거리의 시초가 된 것이다. 또한 의사들은 방역과 악취를 막기 위해서 마스크를 착용하였다.

오늘의 코로나 바이러스도 중국에서 발생한 싸스(2003년)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발생한 메르스(2012년)와 같은 풍토병으로 유행되어, 2019년 중국 우한지방을 강타하여 세계적인 전염병이 되었다. 아마 코로나 바이러스는 약 4년간 지속되다가 점점 풍토병이 되고 말 것이다. 코로나 오미크론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길어질 질 것을 예시했다. 우리는 코로나 기간을 첫째 확산기(2020-2022)와 쇠퇴기(2023-2024)로 나눌 수 있다.
 

2. 흑사병 기간 동안 교회들이 문을 닫고, 성직자들의 수가 감소되었다.

교회의 공중예배도 중지되었다. 전염병으로 성직자들의 숫자가 줄어들자 교회는 미성년자들에게 성직을 임명하였다.  많은 성직자들이 성직을 떠나고 세상의 일반 일들을 하게 되었다. 많은 수도원들은 비게 되고 수도승들은 세상의 일자리와 자유를 찾아 떠났다(Hubert Jedin and John Dolan, (ed. Eng. tr.), History of the Church, Vol. IV, London: Burns & Oates, 1980, pp. 398, 581).

오늘의 코로나 때문에 교회들은 예배를 중단하였고, 따라서 교회의 재정은 감소되었다. 교회는 새로운 사회적 단체로 변화될 것이며, 상당 기간 동안 건물 중심의 모임에서 화상 예배와 가정예배, 구역과 직장, 그룹과 소모임이 더욱 활발해지고, 경우에 따라서 야외 모임으로 전향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아프리카에서는 모임 장소로 실외의 공간, 나무 밑, 강가, 숲이 아주 유용하다.
 

3. 전염병 기간인 14세기 중반에 기독교 선교가 중동과 아시아에서 중단되었다.

페르샤에 갔던 프란시스칸 선교사들은 1348년 거의 모두 병사했다(Jedin, IV, p. 398). 또한 흑사병은 인도와 중국에서 기독교의 선교를 중지시켰으며, 회교도들에게 선교지를 빼앗기고 말았다. 몽고의 칸 우즈벡은 회교도로 개종하였고 몽고인들은 회교도가 되었다. 중국의 새로운 명나라(1368-1644년)는  기독교에 적대하였다. 그래서 몽고와 중국의 선교는 14세기 중반부터 그후 몇세기 동안 문을 닫게 된다(Dowley, Tim, ed., A Lion Handbook, The History of Christianity, Oxford: Lion Pub., 1977, p. 350).

중세교회의 선교가 전염병과 회교의 확산으로 해외 선교활동이 정지되었던 것처럼, 오늘의 교회의 선교도 전염병으로 선교사 활동이 위축되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전염병과 싸우면서 회교의 급속적인 확산과 테러의 위협을 받으며 선교해야하는 상항에 직면해 있다. 아프리카 문화와 회교의 문화의 유사성은 일부다처주의, 가부장적 사회, 강한 사회적 공동체, 자선, 기후환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또한 중동의 회교국들의 재정지원으로 아프리카의 마을마다 회교사원이 건설되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가난한 아프리카 청소년들을 금권력으로 유인하여 테러의 훈련과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현재 아프리카의 테러지역은 기독교 선교가 중단되고 기독교 박해가 더욱 심화되고 있는 곳이다.
 

4. 교회는 전염병이 저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믿었다.

교회는 토지를 헌납하여 하나님의 노를 누그러뜨리자고  독려했다(Bertrand Russell,  Religion and Science, Oxford: OUP, 1935, Chapter 4).  심지어 교회 밖의 세상 사람들조차  교황청의 부패, 양분된 두 교황청(로마와 아바뇽)의 교권 싸움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보았다. 흑사병이 가장 심한 때의 교황이었던 클레멘트 6세(1352-1362)는 사치와 과도한 소비, 친족주의와 종족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Jedin, VI, p. 323). 

교회가 전염병에 시달려 지칠 대로 지쳐 있을 때 저들은 전염병의 원인이 유대인들이라고 지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병의 전파자들로 간주하여 유대인 학살을 하였다. 1348년 독일에서는 유대인들이 동네의 우물과 강물에 독약을 섞는다는 소문을 퍼뜨려 학살하기도 했다(Jedin, VI, p. 607).

전염병의 공통적인 특징 중의 하나는 사람의 신분에 관계없이 무차별적으로 감염시킨다는 점이다. 사탄의 유혹과 죄도 모든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침투하는 것과 같다(롬 3:9-10;  5:12). 

한편 전염병은 모든 인간의 존재가  하나님의 형상(창 1:26)으로 창조되어 평등하고 동일한 존재임을 인식시킨다. 전염병의 신학적인 교훈은 전염병이 하나님의 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인류에게 인식시키는 수단이었다(출 2; 겔 28:20-26).
 

5. 흑사병은 중세의 장원제도의 몰락을 가져오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수많은 농민들의 죽음으로 노동력이 없어지고 생산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농민들이 낸 인두세, 소득세, 마을의 공동 방앗간, 포도즙 틀, 제과점, 철공소에 이르기까지 수입들이 없어지자 영주의 힘들 또한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신 농민들의 반발이 커졌다(Gordon Leff, Medieval Thought from Saint Augustine to Ockham, London: Penguin, 1958, p. 257).  

또한 흑사병은 중세의 신본주의에서 르네상스의 인본주의를 발생하게 하였다. 교회가 전염병 퇴치를 위해 하나님께 희생제물과 토지, 헌금을 바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을 때, 저들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하나님이 전염병에 간섭하지 않으셨다고 믿고 신앙을 저버리고 생존의 방법을 찾아 세속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이제 15-16세기의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의 여명이 시작되었다.

중세의 흑사병은 르네상스의 인본주의를 태동시키고 새로운 세계를 열게 하였으며, 스페인 감기(1918-1919)는 세계 2차 대전(1943-1948)의 알을 낳았다. 코로나 후기의 뉴노말은 전날의 생활양태로 회귀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구상하게 하였다. 예를 들면 국내외 여행에 디지털 전염병 예방접종 증명서를 소지하는 것이다.
 

6. 코로나 기간 디지털로 연결된 지구촌이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져서 각개 각층의 디지털 문화가 형성되었다.

오늘날의 청소년의 세계는 디지털 세계화가 되었으며, 학교의 대면수업과 사회적이고 인격적인 성장과 온라인 세계의 균형 잡힌 스케줄이 필요하게 되었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코로나로 인한 휴교 동안, 집안에서 인터넷 교육이 학생들의 인격 향상과 사회적 성장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도 경험했다.

도덕적으로는 디지털 세계는 세계종교의 교리와 윤리생활을 흔들리게 하는 퇴폐 문화도 형성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디지털 공간에서 도덕성, 사회성, 종교성의 새로운 가치관이 형성되도록 교회는 공동체적 정체성을 심어야 한다. 교회는 이러한 영상 정보통신(Infographics) 프로그램 개발에 인력과 시설에 투자해야 하고 창조적인 프로그램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을 터득했다.
 

7. 건축양식도 코로나 이전의 구조보다 더욱 개방적이고 친환경적인 구조가 요청되고 있다.

대부분 열약한 아프리카의 학교 교실들은 복도 없이 야외 공간과 교실이 유리창을 통하여 곧 바로 통하여 공기순환이 잘 이루어졌다. 열대 아프리카의 교회당도 냉 온방 시설은 없고 자연스럽게 통풍이 되는 구조이다. 아프리카의 실외의 넓은 공간 생활이 실내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코로나 시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
 

8. 코로나 바이러스는 자연환경보호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켰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야생동물이 갖고 있는 병원체이며 박쥐에서 인간에게 옮겨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간들이 감염원의 병원체들의 서식처를, 즉 “병원체 서식저수지”를 침범하여 자연환경의 질서와 조화를 파괴할 때 병원체들이 사람에게 전파된 것이다(Zablon Kerima, “Broaden scope of research to beat Covid-19,” Daily Nation, Sept. 6, 2021).  그러므로 인위적이든 자연적이든 자연 환경파괴는 동물과 곤충들의 병원체를 직접적으로 사람들이게 옮기게 한다. 예를 들면, 나무의 벌목과 광산 채굴 등은 동물들에게 혼란을 가져다주며 침입자 인간들을 공격하게 된다.
 

9. 교회가 얻은 것들은 무엇인가?

(1) 개인적인 영성을 향상시키게 하였다. 교회당의 대중 예배 대신 개인적인 기도와 금식, 성경읽기와 묵상을 통하여 보다 깊은 영성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지난 20세기 후반부터 대형교회의 출현으로 크리스천들은 특수 음향장치의 음악회처럼 교회 공연장의 관객이 되고, 한편 어떤 교회들은 신유와 기적의 센터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2) 친환경적인 예배와 교제가 중요함을 경험하였다. 예배의 처소를 건물 중심적인 교회당 안의 집회에서 야외의 자연 속에서, 강가, 숲속, 산속에서 하나님과 자연과 함께 찬양과 기도, 묵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3) 기독교 역사에서 이웃에 대한 자선과 봉사를 위하여 교회와 교회당은 재해전염병과 전쟁과 같은 위기의 때에 피난처가 되어왔고또한 식량과 물피난처를 제공해 주었다. 케냐의 나이로비의 한 국제 기독교센터의 교회는 의약품, 생필품, 심지어 집의 월세까지 보조해 주었다(the Daily Nation, 2020.9.8). 교회는 재정적 비만증에서 황금의 살을 빼고, 자선의 옷을 입고 빈곤한 몸으로 인류와 사회를 위해 중보하고 섬겨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 것이다.

정광호 선교사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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