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맹인이 유일한 목격자인 사건

기사승인 2022.12.19  15:33:03

공유
default_news_ad1

- 영화 <올빼미>, 소현세자 죽음을 둘러싼 사극 스릴러

<교회와신앙> 이신성 기자】   영화는 맹인 침술사 천경수(류준열 역)의 살인사건 목격과 활약이 주된 내용이다. 사람들에게 맹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경수는 주맹증(day blindness) 환자다. ‘주맹증’은 빛이 강한 낮에는 잘 보지 못하는 질병이다. 반대말은 밤에 잘 보지 못하는 것을 일컫는 ‘야맹증’이다.

   
 

맹인이 자신에게 부족한 시각적 정보력을 채우기 위해서 청각과 촉각을 발달시키는 것처럼, 경수 역시 청각과 촉각을 통해서 진단과 침술을 발전시킨다. 그런 그가 어의 이형익(최무성 역)에 의해서 발탁되어 궁에서 일하게 된다.

궁에 들어간 경수는 “들어도 듣지 못한 것처럼, 보아도 보지 못한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듣는다. 사실 이 말은 경수가 궁에서 살아남기 위한 원칙이다. 그리고 이 원칙은 힘없는 사람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켜야만 하는 처세법이기도 하다. 가부장 사회에서 며느리로 시집오면 ‘벙어리’와 ‘귀머거리’로 3년을 살아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반대로 이 원칙은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비리를 감추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맹인 침술사인 경수를 어의가 선발한 것도 바로 이 점을 염두한 것이다. 자신들이 저지르는 일을 볼 수 없고 증언할 수도 없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계획에 제일 적합한 인물로 맹인 침술사를 점 찍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경수가 자신들의 곁에 있는 것에 대해서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맹인이라고 무시한다. 빈번하게 창고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남녀도 경수가 자신들 앞에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일을 계속한다. 보지 못하는 맹인이니 자신들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경수가 청나라에서 돌아온 소현세자의 치료를 맡게 된다. 소현세자는 경수가 동생에게 쓴 편지를 발견하고 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경수에게 “계속 모르는 척, 안 보이는 척 할 셈이냐?”고 추궁한다. 그런 세자에게 경수는 “때론 눈 감고 사는 것이 몸에 더 좋을 때가 있습니다”라고 답한다. 오히려 세자는 “안 보고 사는 게 몸에 좋다고 해서 눈을 감고 살면 되겠는가? 그럴수록 눈을 더 크게 뜨고 살아야지”라고 말하며 경수에게 확대경을 건네 준다.
 

소현세자 죽음의 진실

어느 날 세자가 쓰러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된다. 어의 이형익은 경수를 호출하여 함께 소현세자를 치료하러 간다. 어의는 세자의 열기를 식힌다면서 물에 적신 천으로 몸을 닦는다. 그 천을 받아 세숫대야에서 빨아 짜던 경수는 피 비릿내를 맡는다. 뭔가 잘못됐다!

마침 그때 바람이 불어 방 안의 촛불이 꺼진다. 그제서야 경수가 자기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환하게 보게 된다. 침을 맞은 세자의 눈과 코와 입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의는 그 피를 천으로 닦아 경수에게 주면서 빨도록 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어의 앞에 있던 독병이 경수의 눈에 들어와 크게 보인다. 어의가 세자에게 독침을 놓은 것이다. 세자가 피를 흘린 이유는 바로 독 때문이었다.

   
 

내의원으로 돌아온 경수는 세자를 해독하기 위한 치료제를 가지고 세자 처소로 몰래 들어간다. 하지만 세자는 이미 죽어 있었다. 세자의 몸을 살피던 경수는 어의가 사용한 독침 하나가 세자 몸에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한다. 독살의 증거물이다.

같은 시간 어의 이형익 역시 자신의 침이 하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침을 찾으러 세자 처소로 향한다. 경수는 독침을 가지고 급히 빠져나오다가 장에 경첩에 부딪혀 부상을 당한다. 어의가 세자 처소에서 도망친 사람을 봤다고 증언하고, 왕이 몸에 상처 난 사람을 찾으라고 명한다. 사람들은 세자 처소에 침입한 자가 세자를 독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추격한다. 살인사건 목격자가 한순간에 살인자로 뒤바뀐다.

이런 와중에 경수는 세자빈에게 어의 이형익이 독살했다는 투서와 증거물로 어의 이형익의 침을 전달한다. 하지만 세자빈 역시 경수를 세자의 살인자로 의심한다. 그런 세자빈에게 경수는 세자가 자신이 본다는 사실을 알고 준 확대경을 증거물로 제시한다.

세자빈은 맹인이라서 볼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경수가 세자 독살의 유일한 목격자라는 점을 깨닫는다. 세자빈은 경수의 투서와 증거물인 독침을 가지고 시아버지인 인조(유해진 역)의 처소로 향한다.

세자빈이 인조의 처소에 당도했을 때 인조는 경수의 침을 맞고 있었다. 인조 앞에는 어의 이형익과 후궁인 소용 조씨가 자리하고 있었다. 경수는 세자빈의 고발을 듣는 순간 인조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몸에 박힌 침들의 움직임을 통해 감지한다. 인조가 세자 독살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그래서 인조가 세자빈에게 목격자가 누구냐고 계속 추궁할 때 경수는 세자빈에게 자신이 목격자임을 말해서는 안 된다고 온몸으로 알린다. 그때 세자빈도 뭔가 이상함을 깨닫는다.

이때 인조가 세자빈에게 고발을 당한 어의에게 하는 말이 섬뜻하다. “침을 흘려? 칠칠치 못하게...” 인조의 이 말은 소현세자를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준다. 사실 인조는 왼손으로 서찰을 써서 어의에게 소현세자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왼손으로 글을 쓴 이유는 왕이 세자를 죽이라고 사주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것이다.

나중에 어의가 왕에게서 받은 서찰들이 발견된다. 하지만 그 서찰을 왕이 썼다는 증거는 없다. 세자의 아들, 원손만이 할아버지 인조가 왼손으로 쓴 글씨와 똑같다고 말할 뿐이다. 그래서 그것이 왕이 쓴 서찰이라는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그때 경수가 꾀를 낸다. 경수는 왕에게 침을 놓아 오른손을 쓸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왼손으로 글을 쓰게 하고 옥쇄를 찍어 증거물을 확보한다. 그 증거물을 최대감(조성하 역)에게 전달한다. 이제 왕이 소현세자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리고 처벌받게 하면 된다.

하지만 최대감이 일을 망친다. 그는 인조가 세자를 죽이라고 어의에게 지시를 내린 왼손 글씨체 증거물을 경수에게서 받고서도 자신이 원하는 세자를 세우기 위해서 사실을 감춘다.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는 사람이 오히려 사건을 덮고 실리를 취한다.
 

인조가 소현세자를 죽인 이유?

인조는 왜 자신의 아들인 소현세자를 죽였을까? 영화는 인조가 아들 소현세자를 없애야만 하는 이유까지는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합리적 설명은 가능하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항복한 후 소현세자는 청나라로 사로잡혀 간다. 그때 조선이 그렇게 떠받들던 명이 망한 것을 그는 북경에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세자는 귀환 후 아버지 인조에게 조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야 하고, 이제 새롭게 왕조를 수립한 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적극 주장했다.

하지만 인조는 남한산성에서의 굴욕과 모욕을 기억하고 있었다. 청나라를 이야기하거나, 청나라 사신을 대할 때마다 그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고, 눈 주위가 파르르 떨리는 것은 청에 대해서 그가 얼마나 심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이와 함께 임진왜란 당시 도운 명나라를 버리고 오랑캐인 청나라를 섬기면 안 된다는 명분도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왕이 세자의 독살을 지시했다. 살인 교사죄를 저질렀다. 그뿐만 아니라 인조는 세자빈의 집에서 보낸 전복에 독을 넣고 오히려 왕을 독살하려 했다는 누명을 씌워 세자빈까지 죽여버린다. 문제는 이런 왕을 누가 벌할 수 있냐는 것이다. 더군다나 어의가 독살했다고 고발한 세자빈이 죽으면서 증거물까지 빼앗겼다. 그리고 유일한 목격자인 경수도 세자의 독살범으로 몰려 처형당하게 될 처지다.

결국 경수는 사로잡힌다. 그렇지만 경수는 자신이 목격자라고 알린다. “제가 분명히 보았습니다. 제가 보았습니다!” 그런 경수를 왕의 군사들은 칼로 죽이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도 보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한다.
 

‘본다’는 의미

안태진 감독은 <올빼미>에서 ‘본다’라는 의미를 묻는다. 일반인에게는 맹인이 본다는 사실은 믿기 어렵다. 말 그대로 모순이다. 왜냐하면 맹인은 보지 못하는 사람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맹인이 목격자라는 점은 더욱 받아들일 수 없다.

영화는 바로 이 점을 두고 시청자와 기싸움을 한다. 사실 잘 본다고 하는 사람들은 궁중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서 못 본 척하고 모르는 척하는 사람들이다. 이와 달리 못 본다는 맹인인 경수만이 살인사건을 본 유일한 목격자다. 다만 맹인인 그가 “제가 보았습니다”라는 말을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는지가 문제다.

보통 사람들은 빛이 있어야 본다. 그런데 경수는 오히려 반대다. 빛이 있으면 보지 못하고 빛이 없어야 비로소 볼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올빼미>의 진가가 나온다.

다른 사람들이 다 보는 곳, 잘 보는 낮에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아무도 못 보는 밤 시간, 어두운 장소에서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아무도 못 보고 모르는 그 사건을 오직 맹인인 경수만이 볼 수 있고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밤에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경수가 바로 영화 제목처럼 ‘올빼미’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화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칠흑같이 어두운 가운데 벌어진 사건이라도 한 사람의 목격자가 있다면 진실이 알려질 수 있다고 전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는 경수처럼 목숨을 걸고 진실을 알리는 목격자보다는 진실을 덮고 자신의 안위와 실리를 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영화에서는 최대감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화 <올빼미>는 잘 본다는 사람들이 오히려 맹인보다 못 보고 진실을 감추는 데 앞장서고 있는 현실을 꾸짖는 것처럼 여겨진다.

세상 사람들은 앞을 못 보는 맹인에게서는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보호하거나 도와주려 한다. 하지만 보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맹인이 본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특별히 그 맹인이 나의 치부를 알고 있거나 내가 저지른 살인사건의 목격자라면 더욱 그렇다. 그때 맹인은 죽여야 할 존재가 된다.

그런데 영화에서 제거할 대상은 원래 맹인 경수가 아니라 소현세자였다. 인조에게는 청나라에서 8년 동안 생활하면서 서양 문물을 접하고 조선이 살고 발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앞날을 내다보는 세자가 죽어야 할 사람이다.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은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을 죽이려 한다. 아니 결국 자신의 힘으로 죽여버린다.

영화 <올빼미>는 이렇게 보아도 못 본 체해야 되는 궁 안에서 대범하게 소현세자를 독살한 인조와 어의의 범죄 행위를 맹인을 앞세워 고발한다.

‘들어도 듣지 못한 것처럼, 보아도 보지 못한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원칙이 강한 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경수는 계속 ‘모르는 척, 안 보이는 척’ 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 그가 소현세자가 한 말, “안 보고 사는 게 몸에 좋다고 해서 눈을 감고 살면 되겠는가? 그럴수록 눈을 더 크게 뜨고 살아야지”라는 말에 각성한다. 그리고 “제가 보았습니다”라고 외치며 자신이 본 소현세자의 독살 현장을 증언한다.
 

그리스도인의 증인된 삶

성경을 보면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증인들로 묘사된다. 오늘 우리는 초대교회 사람들처럼 증인의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 사람들처럼 ‘들어도 듣지 못한 것처럼, 보아도 보지 못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고 있는가?

경수에게 빛이 사라지는 밤이 필요하고, 글씨를 더 잘 보게 만드는 확대경이 필요하듯 우리가 무엇인가 또렷하게 보고, 어떤 사건을 꿰뚫어 볼 수 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곳,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경수가 자신에게 확대경을 선물한 소현세자의 살인 사건을 알리기 위해서 증언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신 주님을 증언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속에서 맴도는 질문들이었다.

사람은 보는 것을 믿는다. 그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보는 것에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고 일깨우신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 

이신성 기자 shinsunglee73@gmail.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교회와신앙> 후원 회원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국민은행 607301-01-412365 (예금주 교회와신앙)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