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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여울

기사승인 2023.01.06  10: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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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좌 권사의 시

개 여 울 / 이원좌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
 

내 짝은 아파트에 동대표로 있다.
이 년 임기가 끝나고 그만두려는데
동대표회장이 한 번만 더 하라는
부탁이 있었다. 시간 때문에 망설이다가

나한테 하라는 거야 나 역시 망설이다가
그래 한 번 해보지 뭐 하고 있는데

같은 동대표하는 김 여사가 전화가 왔다네
노인정 회장이 일하는데 좀 도와주라고

   
 

내가 어이없어 하면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노인정을 어떻게 드나드냐고
지나치고 있는데
몇 번이나 전화가 와서 하는 수없이
회장 얼굴이나 보려고 갔더니
반색을 하면서 기뻐하는 거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어려운 일이 아니고 회계하는 거
정확히 말하면 예산 쓰는 거를
정리해 주는 거라네 자주 오지 않아도
시간 있을 때 와서 처리해주면
된다며 마치 한 식구 된 것처럼
좋아하는데 
뿌리칠 수가 없었다.

언제 올 거냐고 묻는데
다음 달에나 ....
말이 끝나기 전에
회장은 다음 주부터 와달라 한다.

첫날 12시 15분쯤 갔었나?
노인들 몇몇 분이 계셨는데
식탁에 한 상 차려놓고 나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방금 한 밥을 그릇에 담아주고
국까지 퍼서 환대하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민망하기까지 하다.

나를 무슨 연예인 보듯하며
말 한마디라도 하면 귀 기울이고 웃어주는데

나는 차를 마시며
시를 몇 편 낭송해드린다.
그러면 엄청 기뻐하는데 ᆢ
문제는 정작 그분들끼리는 어떻게 그렇게
사이가 안 좋은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마주 볼 때는 괜찮다
그 중에 누구 한 사람 없으면
그렇게 타킷이 되는 거야

그런데 더 문제는 그 분들이 회장을 싫어해서
쫓아내고 싶어하는 거
내 입장에는 그 할머니들 말도 맞고
회장 말도 옳다는 것이라서 난감하다.

어느 날 노인회원들이 약속한 듯 전부 안 나왔어

겉사정으로는 병원에 입원한 분이 있고
또 다른 분은 코로나 걸리고
이사 간 분들이 있고 ᆢ

속사정은 조금 다르다.
어떤 분들은 음식이 입에 안 맞는다고~
다른 분은 회장이 그냥 싫다고 한다.
그래도 싫은 이유가 뭐냐? 했더니
노인정에 와서 집에서 쓸 쪽파를 까고 있었는데

회장이 보고는 쪽파를 왜 여기서 까냐고 했다나
친해서 한 말을 가지고 삐져서
말도 안 되게 그들끼리 서로 말을 옮기며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한다

정말 별일 아닌 것들을 가지고
얼마 남지 않는 노년의 시간을
낭비하는 이분들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한 분 한 분 보면서 자신들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 줄 모르는 것 같아

* * *

몇 주 전이었다.
교회 식당에서 어느 집사님과 식사를 했다.
카페에서 같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 하고 싶다는
집사님에게 모임이 있으니 카페에서 기다리라고 떡을 가져다주기로 했다.

늦게 갔더니 모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프린터물을 건네받고 자리에 앉았는데
자기 소개하느라 이야기가 길어진다.
저런 한 시간도 더 지났다.
카페에서 혼자 기다릴 집사님을 생각하며
그냥 슬그머니 나왔는데 가만 떡을 안 받아왔네

다시 들어가서 관계자에게
떡을 달라 했더니
일어나서 떡상자를 들치는데
떡이 꽤 많이 남아있다.

갑자기 생각이 들었다.
하나 더 얻어서 둘 중에 하나는 카페서 집사님과 같이 먹고
하나는 집에 가져가라고 주고 싶었다.
그래서 실없는 말을 하고 말았지

나는 조그만 소리로 비밀스럽게 말했는데
그녀는 소리를 지른다 “안돼!”

순간 모든 시선이 내게 쏠렸다.
귀까지 빨개져서 자리를 떠나는데
나를 한 번 더 죽이는 소리가 들렸다.
떡 미리 준 거 같은데~

그러니까 떡을 먼저 받고 안 받은 척 또 받고
거기다가 다시 받으려다 실패한 몰골이 되었다.

그리고 카페를 갔는데 집사님이 없네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안 본다.
너무 당황스럽고 속상했다.

그렇다. 그 집사님은 환자다.
암이 깊이 들어있는
병원에서는 작년에 몇 개월 시한부라 했는데
기적적으로 살아있는 거다.
생활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좋을 리 없다.

즐거움이 되는 시간을 갖으려고
작은 노력을 하는 중이다.

그 다음 주에 만나서 그날 너무 늦어서
미안했다고 사과를 하고
큰며느리 사돈댁에서 농사지은 들깨기름을 전했다.

내 손끝의 온기를 느꼈는지
집사님은 마음을 열고 웃었다.

그 다음 주인가 보다.
그 모임의 전 회장님과 그 때 "안돼"
했던 사람과 셋이 앉게 되었다.

"안돼" 했던 사람의 이야기는
그 때 남긴 떡을 사무실에 갖다 주고 또 다른 데도
나눠 주고 나니
너무 행복하더라는 말을 하니까
전 회장님은 떡을 사무실까지 줄 필요는 없는 거라며
회원들끼리가 먼저라는 말을 하는데
많은 위로를 받았다.

인생이란 참으로 연약하다.
여기서 누가 얼마나 나쁘고
누가 좋다고만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분명 서로 사랑하는 것만은
틀림없다.

단지 배려가 빠져있는 거다.
사랑에 배려가 빠지면 이처럼 싱겁고
맛이 없는 식사가 되는 것 같아

노인정의 할머니들도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도
하나님 눈 밖에 있을 때 인생은 실수를 하게 된다.

창밖에 햇살이 환하다.
꽃처럼 피어 있자
주위에 있는 인연들도 꽃이다.
서로 사랑하면
우리는 꽃 정원에서 살 수 있는 거다.

 
▲ 이원좌 / 동숭교회 권사, 종로문학 신인상 수상, 시집 <시가 왜 거기서 나와> 등

 

 

이원좌 권사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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