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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각을 넘어선 구원

기사승인 2023.03.09  14:3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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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적 관점에서 보는 마태복음(6)

방동섭 교수/ 미국 리폼드 신학대학원 선교학 박사, 백석대학교 선교학 교수 역임, 글로벌 비전교회 담임

   
▲ 방동섭 교수

 마태복음 1:18-19

  마태는 예수님께서 구원의 메시야로 이 세상에 오신 매우 독특한 과정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그는 1장에서 예수님의 족보에 이어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에 대해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다”라는(18) 역사에 전무후무한 엄청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1) 이 구절에 나타나는 ‘나심’이라고 하는 단어는 1:1에 나타나고 있는 ‘출생’이라는 뜻의 ‘게네시스’(γένεσις)와 같은 단어가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마태가 여기서 예수님의 출생과 관련하여 18절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예수님께서 갑자기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출생’의 과정을 거쳐 오신 것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카슨(D. Carson)은 “어떻게 신적인 존재가 일반적인 출생 과정을 통해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선재설’과 ‘처녀 잉태론’이 서로 배제하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논리적이고 신학적인 이유는 없다”라고 주장하고 있다.2)
 

성령으로 잉태되심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표현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
사람의 뜻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의 뜻을 따라
주도적인 역할을 하신
결과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마태가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다”라는 표현을 한 것에 대해(18b) 리더보스(H. Ridderbos)는 예수님의 탄생에 관하여 “16절에서 모호하게 암시하고 있는 것을 명확하게 진술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3) 16절에서는 단지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고 언급했으나 18절에서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 구절에서 ‘나타나다’라는 동사는 ‘휴리스코’(εὑρίσκω)인데 문자적으로는 ‘찾다’ 혹은 ‘발견하다’는 뜻이다.4) 이 동사가 여기서 수동태로(εὑρέθη) 사용되는 것에 대해 건드리(R. Gundry)는 “성령의 역할에 강조점을 두는 것이다”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5) 따라서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다”라는 표현은(18) 정확하게는 “성령에 의해서 잉태된 것이 발견되었다”라고 번역해야 해야 정확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다”라는 표현에 대해 리더보스(H. Ridderbos)는 “마리아가 처음부터 그녀의 잉태가 성령의 사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6)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님의 출생과 관련하여 성령께서 어떤 역할을 하셨는지에 대해 그녀의 남편 요셉도 알게 되었다는 것도 함의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태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다”라는 표현을 통해 예수님께서 죄에 빠진 인간들을 회복하시기 위해 구원의 메시야로 이 세상에 오시게 된 것은 인간적인 뜻이나 방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전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주권적인 섭리 가운데 성령의 주도적인 역할을 통해 나타난 결과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령으로 잉태된 것’과 관련하여 프란스(R. France)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은 특히 창조와 생명을 부여하는 하나님의 사역의 대리자로 나타나고 있다”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7) 이러한 성령께서 예수님이 출생하는 과정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힐(D. Hill)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라는 표현에 대해 “하나님의 영이 세상 창조의 때에 일하셨기에 회복의 과정에서도 일하시고 있다”라고 하면서 “이런 생각을 기초로 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회복과 긴밀하게 연관이 있는 사건으로서의 메시야가 역사의 무대에 들어오신 것은 성령의 사역에 의한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8) 따라서 마리아에게 ‘잉태된 것이 나타난 것’에 대해 해그너(D. Hagner)는 “하나님께서 그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마리아 안에서 창조의 능력으로 일하신 것이라”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9)


인간의 생각을 넘어선 구원

예수님의 탄생이
성령으로 되었다는 것은
구속사적인 차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마태는 이 표현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어
그의 주권적인 방법으로
성취될 것임을 보여준다.

‘동정녀’(παρθένος)의 몸을 통해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은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상을 초월하는 경이로운 사건이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전혀 불가능한 사건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이 인간의 개입이 없이 오직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실 것이라”라는 천사의 메시지를 기록하였다.10) 이 메시지는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눅 1:31)고 하는 말을 듣고 의심하는 마리아를 향하여 천사를 통해 주신 말씀으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메시야의 동정녀 탄생’이 가능케 하실 것을 마리아에게 확실히 보여주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처음에 전혀 몰랐던 요셉은 마리아의 잉태 소식을 듣고 당황해하며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바로 그때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나타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내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였다(20).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전했던 메시지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게 된 원인이 인간의 어떤 성적인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전적으로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의 결과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태복음에는 ‘성령’(Πνεύματός ἅγιος)에 대한 언급이 다른 복음서에 비해 자주 나타나지 않고 있다.11) 그러나 이곳에서 마태가 특별하게 ‘성령’에 대해 언급한 것은 예수님의 탄생이 인간의 방법이 아니라 성령의 주권적인 개입으로 이루어진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구원의 메시야가 ‘성령의 사역을 통해 역사의 무대로 들어오시는 것’에 대해 힐(D. Hill)은 “다가오는 세상을 회복하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사건으로 생각할 수 있다”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구원자 메시야의 잉태를 통해 하나님의 창조 능력과 활동이 새 창조를 가져오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라고 하였다.12)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다”라는 표현은 구속사적인 차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태는 이 표현을 통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이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주권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만물의 창조가 삼위 하나님의 사역인 것처럼 메시야 탄생을 통하여 이 세상에 구원을 가져오는 새 창조의 역사도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위험한 과정

당시 약혼한 여자가
남편과 관계없이 아기를 가진 것은
율법의 관점에서 본다면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사건이었다.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이 이처럼
매우 위험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을 보여주고 있다.

18절에 나타나는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라는 표현에서 ‘약혼하다’는 동사는 ‘므네스튜오’(μνηστεύω)인데 문자적으로는 ‘옹호하다’는 뜻이 있다. 그러나 신약에서 이 단어는 ‘약혼하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13) 유대 사회에서 ‘약혼’이라는 개념은 일반적으로 이 시대에 예비 신랑과 예비 신부가 서로 결혼하기로 약속하는 형식적인 ‘약혼’의 개념과 다르다. 그 당시 유대 사회에서 ‘약혼’의 개념은 두 사람 사이에 ‘법적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뜻하였다.14) 이러한 ‘약혼’의 개념에 대해 힐(D. Hill)은 “당사자들에게 결혼의 지위를 부여하는 구속력이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 후 “신랑이 신부를 그의 집으로 데리고 와서 결합이 이루어지면 정상적인 결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15)

이러한 관점에서 헨드릭슨(W. Henderiksen)은 유대 사회의 ‘약혼’ 개념은 “제한된 의미이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결혼과 같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16) 따라서 ‘약혼’을 뜻하는 ‘므네스튜오’(μνηστεύω)의 개념에 관하여 해그너(D. Hagner)는 “증인 앞에서 공식적으로 사전 혼례 관계에 들어간 것을 의미하며 남자에게 여자에 대한 법적인 권한을 주는 것이며, 그 관계는 공식적인 이혼 절차를 통해 파기할 수 있었다”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17) 이와 유사한 관점에서 건드리(R. Gundry)도 “약혼이 이루어지면 구속력이 너무 강해 그 관계를 무효화시키기 위해서는 이혼 증서가 요구되었으며 만일 한 당사자가 죽게 되면 다른 당사자는 미망인이 되거나 홀아비가 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18) 이러한 ‘약혼’의 개념에 대해 프란스(R. France)도 “구속력을 가지고 있는 계약이며 죽음이나 이혼에 의해서만 끝날 수 있었다”라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19)

결론적으로 당시 유대 사회의 ‘약혼’의 개념은 두 사람 사이에 단순한 결혼의 약속을 넘어 결혼의 법적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약혼’은 법적으로 구속적인 관계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마태는 요셉에 대해 정관사를 붙여 ‘그의 남편’(ὁ ἀνήρ αὐτῆς)이라고 표현한 것이다(19a). 그러나 ‘약혼’이 비록 법적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라고 해도 정식적인 ‘결혼’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마리아가 요셉과 동거하기 전에 아기를 잉태한 것은 당시 유대인의 일반적인 관점으로 볼 때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약혼한 여자’가 남편과 관계없이 아이를 가지게 된 것은 유대 사회에서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사건이었다는 것이다.20)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이 이처럼 매우 위험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긴장감 있게 보여주면서 그 모든 사건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와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의로움과 긍휼의 마음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으며
마리아를 욕되게 하지 않으려는
긍휼의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이러한 의로움과 긍휼의 마음은
마태복음에서 제자도의 특징으로
강조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역사의 현장에서 진행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일과 관련하여 사람들의 헌신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이런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쓰임을 받았던 사람들이 존재하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탄생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리아의 헌신과 또한 그녀와 약혼했던 요셉의 결단이 있었다. 마태는 이 두 사람 가운데 특히 요셉의 헌신이 있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모리스(L. Morris)는 “마태는 예수 탄생의 기사를 마리아가 아니라 요셉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다”라고 하면서 “누가는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난 것을 기록하였으나 마태는 마리아에 대해서는 단지 성령의 역사로 아이를 잉태하였음을 언급하였고 요셉에 대해서는 무엇을 했는지 그의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다”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21)

특히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의 탄생 과정에 있어서 다윗의 후손 요셉의 결단과 헌신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요셉은 그의 아내 마리아가 자신과 아무런 관련 없이 아기를 잉태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큰 고민을 하게 되었다. 마태는 이러한 요셉에 대해 ‘의로운’(δίκαιος) 사람이었다고 묘사하고 있다(19a).22) 이 구절에 나타나는 ‘의로운’이라는 표현에 대해 모리스(L. Morris)는 “그가 율법을 순종하는 데 있어 세심한 사람이다”라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23) 이에 대해 해그너(D. Hagner)는 “자신이 원하는 것과는 대치되는 율법에 대한 순종의 의미이다”라고 하였다.24) 모세의 율법에는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와 그를 성읍 중에 만나 동침하면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 성읍 사람들이 그들을 돌로 쳐죽일 것이니”라고 명하고 있다.25) 이런 상황에서 ‘의로운’ 요셉은 그 문제에 대해 “가만히 끊고자 했다”라고 하였다(19b).

요셉이 “가만히 끊고자 했다”라는 것은 조용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여 자신과 약혼하였던 마리아가 그 일로 어려운 일을 당하지 않기를 원했던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26) 이러한 태도에 대해 해그너(D. Hagner)는 “그의 의로움과 그의 자비로운 친절함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27) 이러한 관점에서 건드리(R. Gundry)는 요셉에 대해 “의로운 사람일 뿐 아니라 마리아를 욕되게 하지 않으려는 긍휼의 사람이다”라고 하면서 여기서 “마태는 그의 의로움과 긍휼의 마음을 제시하여 요셉이 제자들의 전형이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라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28) 이것은 요셉의 태도를 제자도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의로움’과 ‘긍휼의 마음’이 요구되고 있음을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29)

 

주(註)

1) ‘동거하다’라는 동사는 ‘순에르코마이’(συνέρχομαι)인데 ‘함께’라는 뜻의 접두어 ‘순’(σύν)과 ‘가다’라는 뜻의 동사 ‘에르코마이’(ἔρχομαι)의 합성어로 문자적으로는 ‘함께 가다’는 뜻이지만 리더보스(H. Ridderbos)는 ‘동거하기 전에’(πρὶν ἢ συνελθεῖν)라는 표현에 대해 ‘성적인 결합’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H, N. Ridderbos, op. cit., 26).

2) D. A. Carson, op. cit., 1984, 73.

3) H. N. Ridderbos, op. cit., 26. 

4) ‘휴리스코’(εὑρίσκω)라는 동사는 마태복음에서 ‘발견하다’는 뜻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2:8, 7:7, 8, 14, 8:10, 10:39, 11:29, 12:43, 44, 13:44, 46, 16:25, 17:27, 18:13, 28, 20:6, 21:2, 19, 22:9, 10, 24:46, 26:40, 43).

5) Robert H. Gundry, op. cit., 21.

6) H. N. Ridderbos, op. cit., 26. cf. 누가복음 병행 구절에서는 천사가 이 사실을 마리아에게 직접 알려주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눅 1:35).

7) R. T. France, op. cit., 77. cf. 창 1:2, 겔 37:1-14.

8) David Hill, op. cit. 78.

9) Donald A. Hagner, op. cit., 17. 

10) 눅 1:36.

11) 마태복음에서 ‘성령’(Πνεύματός ἅγιος)에 대한 언급은 이곳에서 ‘마리아의 잉태’(18, 20)와 관련하여 나타나고 있으며, 그 외에는 ‘예수님의 사역’과 관련하여(3:11, 12:28),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3:16),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실 때(4:1), 선교 현장에서 제자들이 ‘박해를 당할 때’(10:20), 예수님에 대한 ‘구약의 예언’과 관련하여(12:18, 22:43), 예수님게서 ‘성령에 대한 훼방죄’를 지적할 때(12:31, 32),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선교의 사명을 위임’할 때 언급되고 있다(28:19). 

12) David Hill, op. cit., 78.

13) ‘므네스튜오’(μνηστεύω)는 신약에서는 이곳과 누가복음에 2회(1:27, 2:5) 나타나는 단어이다. ‘옹호하다’(espouse) 혹은 ‘약혼하다’(betrith)의 뜻이다. 

14) cf. 창 29:41, 신 22:23-24.

15) David Hill, op. cit., 77. 

16) William Hendriksen, op. cit., 130.

17) Donald Hagner, op cit., 9.

18) Robert H. Gundry, op. cit., 21.

19) R. T. France, op. cit., 77. 

20) cf. 신 22:13-21.

21) Leon Morris, op. cit., 26,

22) cf. 눅 1:6, 75.

23) Leon Morris, op. cit., 26,

24) Donald A. Hagner, op. cit., 18.

25) Donald A. Hagner, op. cit., 18.

26) 신 24:1.

27) Donald A. Hagner, op. cit., 18.

28) Robert H. Gundry, op. cit., 21. 

29) 5:6, 7, 6:14, 15, 18:21-35, 25:31-40.

방동섭 교수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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