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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가 그립다

기사승인 2023.06.05  11: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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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경애 사모 컬럼

장경애 사모/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수필가

 
  몇 년 전, 지인으로부터 탐스러운 레몬 나무 한 그루를 선물로 받았다. 그런데 얼마 지난 후, 이 나무에 몇 개의 꽃이 피더니 그 꽃이 지고 난 자리에 아주 작은 열매가 하나둘 맺히기 시작했다. 혹이라도 그 열매가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며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하루는 콩알만 하게 맺혀있던 열매 하나가 떨어져 바닥에 놓여 있었다. 상한 마음으로 그 열매를 집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코끝에 가져다 대 보았다. 그런데 그 맺다 만 작은 열매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짙은 레몬 향이 나는 것이었다. 콩알만 한 레몬 열매에서 이렇게 짙은 향기가 나다니…

화초를 유난스레 좋아하는 나는 다른 나무보다 이 귤과에 속한 나무를 좋아해서 여러 그루를 기르고 있다. 위의 레몬처럼 귤과에 속한 나무의 꽃은 첫 여름에 피는 꽃으로 지금 우리 집 베란다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 꽃은 흰색의 작은 꽃이지만 우아하고 앙증맞게 피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눈요기만 멋진 것이 아니다. 하얗게 핀 꽃이 풍기는 향기는 그 열매인 귤의 향기와는 사뭇 다른 향이지만, 얼마나 짙고 좋은지 말할 수 없을 만큼 강하고 짙어 집안을 온통 자신의 향기로 물들여 놓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꽃들이 떨어지면 그곳엔 좁쌀보다 더 작은 열매, 귤이 맺히기 시작한다. 시간이 흐르면 그 좁쌀 같은 열매는 점점 커지며 노란색으로 변해간다. 이렇게 귤나무는 사시사철 잎의 푸름과 함께 하얀색의 꽃과 향기. 그리고 열매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분주히 즐겁게 해준다.

   
 

이 땅의 모든 생물은 자기 나름의 고유한 내음을 가지고 있다. 내 딸이 아주 어릴 때의 일이다. 외출할 일이 있어 밖에 나갔다가 오면 내가 집에 없는 동안 내가 벗어 놓고 간 옷을 꼭 제 손에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묻자, 엄마 냄새가 나서 좋아서 그런다고 했다는 것이다. 딸아이는 엄마가 제 눈에서 안 보일 때는 그나마 냄새라도 같이 있고 싶었나 보다.

딸아이가 느끼는 자기 엄마의 냄새가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그 사람 나름의 고유한 내음이 있다. 서양 사람에게서는 버터와 치즈 냄새가 난다고 하고, 우리나라 사람에게서는 마늘 냄새가 난다고 한다. 의사는 환자의 냄새로 병을 찾아내기도 하고, 집 잃은 개가 냄새로 집을 찾아오기도 한다.

이처럼 모든 사물에는 그것에 맞는 냄새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사람 냄새가 있다. 그 냄새는 공통적인 것도 있지만, 개개인이 저마다 갖는 고유한 냄새가 있다. 그래서 때때로 인간 내음의 향수에 젖기도 한다. 자신이 성장하면서 습득된 내음이 있는가 하면, 내가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선물인 개성과 재능과 성격의 내음이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 향이 넉넉하여 다른 사람에게까지 그 향을 옮겨주는 원숙한 삶의 향을 가진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또 만나고 싶어지고 만나면 그 내음에 젖어 그 인격의 한 부분이라도 닮고 싶어진다. 그런가 하면 아무 향도 안 나는 무취의 사람도 있고 때로는 인격의 악취를 풍겨 그 사람 옆에 가기를 꺼리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이 땅의 모든 것은 공통적인 내음 외에 자신만이 지니는 고유한 내음이 있다. 심지어는 무더운 여름의 쏟아지는 소나기 속에서 나는 흙내음도 있고, 바람이 불 때 공기 속에서 느끼는 내음도 있다.

아카시아 향기와 라일락 향기의 계절을 지나 어느새 6월이다. 아파트 담장에는 장미꽃이 탐스럽게 피어있다. 집 밖에만 나가면 붉은 장미꽃이 나를 반긴다. 그런데 어쩐지 눈은 즐거운데 코는 즐겁지 않다. 그 이유는 꽃은 너무도 탐스럽고 풍요롭게 피어있는데 꽃에서 향기가 별로 나질 않기 때문이다.

과학의 발달은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다. 그것은 모든 계절에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유익만 주는 것은 아니다. 계절과 상관없이 되면서부터 각기 가진 고유한 향이 사라졌고, 우리의 후각을 마비시켜 버렸다. 과일도, 꽃도, 심지어 사람도 나름의 자기 냄새가 없어졌다. 예전에는 귤의 향기가 짙어 방안에 귤 한 개만 있어도 온 방이 귤 향으로 가득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 개는커녕 한 바구니의 귤이 있어도 향이 별로 나질 않는다. 어디 귤뿐이랴. 모든 과일이 그 독특한 향이 별로 나질 않는다. 바나나가 한 다발 있어도, 딸기가 한 소쿠리 있어도 코를 가까이 대고 맡아야 겨우 그 미세한 향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채소도 마찬가지다. 채소도 저마다의 향이 있어 도라지의 쌉싸름한 향, 시원하고 아삭한 오이 향의 상큼함도 좋았다. 심지어는 에서도 향을 느끼기 힘들다. 장미꽃에서 풍기는 향이 너무 좋기에 장미 향수를 만들지 않았는가? 가을의 국화 향은 짙고 깊어 우리의 후각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고, 심지어 하잖아 보이는 아주 작은 들꽃 한 송이에서도 나름의 향이 있었다.

개성이 사라진 것은 식물만이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개인이 가진 개성이 사라졌다. 개성은 뒤로하고라도 신분과 위치에 맞는 반드시 있어야 할 향마저 없어졌다. 가정에도 가정이라는 아름다운 향이 없어졌다. 학교에서도 선생님의 향과 학생의 향기도 뒤죽박죽되어 야기되는 일들이 종종 신문 지상에 오르내린다. 아니, 악취만 풍기지 않아도 다행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향이 없어진 데에는 과학의 발달로 인한 공해도 한 몫을 했다. 꽃의 향기는 과거에는 약 2Km까지 갔지만, 대기 오염 등이 꽃향기의 진로를 방해하여 지금은 안타깝게도 500~600m 정도 밖에 못 간다고 한다.

동시 작가 박경용 선생님의 시 중에 <귤 하나>라는 동시가 있다. 그 시에 보면 ‘귤 하나가 방보다 크다’라고 구절이 있는데 귤의 향이 방안 전체에 가득하다는 뜻일 것이다. 아무리 대기 오염이 짙어 향기의 진로를 방해하여도 자신의 향기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자신만의 향기는 유지해야 한다. 백합이 쓰레기통 안에 있으면 온갖 여러 가지 냄새와 어우러져 그 향이 감소하든지 혹은 더 이상한 내음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어디에 있든 백합이 풍기는 향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주위 환경이 나쁘더라도 백합 자신의 향은 그대로일 뿐이다.

아무리 세상이 자신의 향기를 잃어버리고 자신의 향을 내기에 힘든 사회라 하더라도 이 세상을 정화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은 거기에 편승하여 아름다운 향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온갖 지저분한 내음이 천지를 뒤덮어도 우리는 우리의 향을 내어야 한다.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고후2:15)”라고 말했다. 좋은 냄새는 향기라고 하지만 나쁜 냄새는 향기라고 하지 않고 그냥 냄새라고 한다. 먼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냄새가 되지 말고 향기가 되어야 한다. 비록 이 세대가 악취가 나고 더러워 우리 향기의 진로를 방해한다 해도 비록 온전히 자라지 못하고 떨어져 발에 밟힐 아주 미세하게 작고 쓸모없는 열매지만 자신의 본분대로 레몬 향을 풍긴 것처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향기를 풍긴다면 이 사회는 향기 가득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장경애 kyung556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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