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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의료 선교사 ‘다말 드류’

기사승인 2023.06.09  10: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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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 최은수 교수


   미 남장로교 파송 최초의 의료 선교사는 알레산드로 다말 드류(Alessandro Damar Drew, 유대모)였다. 그는 부인 루시 드류 선교사와 함께 1894년에 내한하였다. 드류는 1895년 3월에 윌리엄 전킨(전위렴) 선교사와 함께 군산에서 호남 최초의 의료 사역을 시작하였다. 드류는 한국과 한국인들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선교사로서, 한국에서의 사역뿐만 아니라, 일시적인 건강의 회복을 위해 잠시 들리려 했던 미국에서 한국인들과 동고동락했던 인물이다. 드류 선교사 부부는 셋집(렌트)을 전전하면서도 한국인들을 섬기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가운데, 물질은 소진되어 유산이라곤 일전 한 푼 없었고 몸은 더욱 쇠약해져서 하늘의 부름을 받아 생을 마감하였다. 미 남장로교 파송으로 초창기에 내한했던 선교사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화장되어 묘의 흔적이나 묘비조차 없었고, 그렇게도 간절히 염원하던 한국 땅으로, 재(Ashes)의 먼지라도 바람과 함께 날려 보내고자 했던 삶이었다. 한국교회사와 한국 민족사적 측면에서, 그동안 잃어버린 소중한 역사를 찾아서 그 고귀한 희생과 헌신을 기억코자 한다. 

 

   
▲ 1861년 영국 잉글랜드의 센서스 기록 문서이다. 드류 선교사는 1859년 7월 16일에 영국 잉글랜드의 채널 아일랜드에 있는 건지섬(Guernsey)에서 목사인 토마스 드류와 모친 앤 드류 사이에서 첫 째로 태어났다. 최근까지도 드류 선교사가 버지니아 태생으로만 알려져 왔었다. 

 

   
▲ 주한 미국 영사관에 제출했던 긴급 여권 신청서. 이 문서를 통하여 그의 출생과 이민 등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드류 선교사는 가족과 함께 영국 잉글랜드에서 미국 남부의 버지니아 주 매클랜버러 카운티의 크리스찬빌로 이민와서 정착하였고, 이곳이 그에게 제2의 고향이 되었다

 

   
▲ 이스트 오클랜드(East Oakland)의 셋집(렌트) 가운데 한 곳. 드류 선교사 부부가 한국에서 8년 간의 사역을 감당하다가 건강이 상하였고 몸을 추스리기 위해 잠시 머물던 도시가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였다. 건강이 회복되는대로 군산으로 복귀하려고 노력했으나, 한번 망가진 건강이 쉽게 돌아오지 않아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복귀의 때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 이스트 오클랜드에 있는 드류 선교사의 옛 셋집이 깜끔하게 단장되어 있다. 그래도 너무 오래된 집이라 구석구석에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집은 세 개의 번지들을 가지고 있어서, 각 번지별로 총 세 가족이 여기에 살았다. 이 말은 생활 공간이 협소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드류 선교사의 집에는 항상 한국 사람들로 북적였기 때문에 복잡하였다. 한국 사람치고 드류 선교사의 집을 거쳐가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 1902년 12월 1일자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일간지에 게재된 한국 특집 기사다. 1902년 10월 14일에 도산 안창호와 이혜련 여사가 우여곡절 끝에 샌프란시스코 항에 도착하였는데, 이 신혼부부는 여비를 이미 탕진한 상태로  차이나 타운에서 낙심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있을 때, 기적적으로 드류 선교사를 만나서 그의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드류 선교사가 주선하여 자택에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도산 안창호는 주로 한국의 풍습과 문화에 대하여 말했고, 드류가 통역하면서 보충 설명을 했다. 드류 선교사가 통역을 했기 때문에 언듯보면 드류의 대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박식함이 잘 드러나 있다. 그가 기자에게 한국에 대하여 설명했던 내용도 많이 들어 있다. 여기서 드류는 자신이 일시적으로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머물고 있음을 분명히 밝히면서 지속적으로 군산 복귀의 기회만을 찾고 있었다. 

 

   
▲ ‘오클랜드 트리뷴’ 일간지의 4월 18일 자 머릿기사다. 1906년 4월 18일 새벽에 진도 8 전후의 강진이 샌프란시스코를 강타하여 3,000명 이상이 죽었고, 300,000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도시 전체의 80% 이상이 파괴되었다. 드류 선교사는 재해를 당해서 오갈데 없는 사람들을 자기 집에 거하도록 했다. 그렇지 않아도 협소한 집인데 아마 콩나물시루 같았을 것이다. 

 

   
▲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고통 받는 한인들을 위해서 고종 황제가 $1,900불을 보냈는데, 그 처리를 드류 선교사에게 맡겼다. 이 돈은 현재 가치로 약 90,000,000만원 가까이 되는 거금이었다. 드류는 ‘공민일보’에 구제비 관련 광고문을 실었는데 본인이 직접 작성한 것이였다. 근거리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집으로 직접 와서 수령하고, 먼 데 있는 사람들은 우편으로 신청하라는 내용이다. 

 

   
▲ 1932년 12월 19일자 ‘오클랜드 트리뷴’ 신문의 부고란이다. 부인 보다 6년 전에 소천했던 드류 선교사의 마지막에 대한 실마리를 루시 드류 선교사의 장례 일정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 1901년에 설립된 차임스 채플 The Chapel of The Chimes은 엄청난 규모의 종합 장례 기관으로써, 드류 선교사 부부의 장례 예배가 여기서 드려졌고, 재의 일부를 용기에 넣어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을 찾기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 했는지 모른다. 드류 선교사 부부의 흔적을 여기에서 발견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만큼 환희와 감격, 그리고 슬픔과 숙연함이 공존했음이다.

 

   
▲ 드류 선교사 부부 모두 ‘줄리아 모건 채플’에서 장례 예배를 드렸다.

 

   
▲ 줄리아 모건 채플의 내부 모습이다.

 

   
▲ 드류 선교사의 헌신과 열정적인 삶에 대한 연구가 이 추모관을 찾게 되면서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다. 드류 부부는 자녀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화장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당시에는 기독교인들에게 화장이 익숙하지 않을 때인데도 불구하고, 드류 선교사 부부는 일관된 삶의 모습 그대로 마지막까지 검소하며 소박하게 타인을 배려하는 삶으로 수를 놓았다. 그는 한국인들을 위해서 인생의 전부를 아낌없이 주었고, 먼지가 되어서라도 한국땅으로 가고자 했다.  

 

   
▲ 루시 드류 선교사의 이름이 선명하다. 그녀의 부고 기사가 없었다면, 드류 선교사 부부에 대한 마지막 퍼즐이 완성되지 못 할 뻔 했다. 루시 드류 선교사도 열정적으로 선교사역을 감당하다가 건강을 해쳐서, 회복 후에 군산으로 복귀코자 했으나 온전히 건강을 되돌리는 데는 실패 하였다. 그런 안타까움과 염원을 담아서 샌프란시스코 지역 한인들을 섬기는데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계속 찾아오는 한국인들을 접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녀도 남편과 같이 화장 되어 먼지가 되어서라도 한국땅으로 가고자 했다.  

 

   

▲ 드류 선교사에 대한 글을 쓰면서 마지막 퍼즐을 맞추기 위해 이곳까지 찾아서 오는 과정이 정말 기적과도 같았다. 드류 부부는 자신들의 몸을 불살라서 먼지가 되어서라도 훨훨 날아서 군산까지 갔으면 하는 바램이 너무나도 간절하였다. 당시에 부모가 화장해 달라고 유언을 하였어도, 자식들 입장에서 그 큰 상실감과 슬픔을 달래며 한국적인 효도를 다 하고자 재의 일부를 장례 용기에 담아 추모관에 모셨고, 다른 일부는 부모의 바램대로 어딘가에 흩뿌렸다. 먼지가 되어서라도 군산에 오고자 했던 드류 부부 선교사의 너무나도 간절한 마음이 생생하게 느껴져서 아직도 마음이 아리다. 드류 선교사 부부는 죽는 순간까지도 한국과 한국인들을 위해서 마지막 남은 작은 것 하나까지도 주고자 했던 인생이다. 드류 선교사 부부의 헌신과 희생을 기억하고 추모하고 싶은 분들은 망설이지 말고 방문하기를 강추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 그리고 은혜를 모르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으니 말이다. 역사는 역사를 낳고, 생명은 생명을 낳는다!

이름: Dr. Alessandro Damar Drew & Lucie E. L. Drew
실내위치: Benediction, S-6-11
주소: The Chapel of The Chimes Oakland
4499 Piedmont Avenue, Oakland, California 94611, USA
전화: 510 379 4025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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