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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승우 씨의 비성경적인 ‘레마 사상’ (1)

기사승인 2023.09.06  12: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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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석/ 변 씨의 책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 <계시> 등

<교회와신앙> 장운철 기자】  변승우 씨(사랑하는교회, 구 큰믿음교회)의 ‘레마 사상’ 등이 비성경적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교회 주요 교단은 이런 변 씨의 ‘레마 사상’ 등에 문제가 있다며 ‘이단’으로 공식 규정했다.

   
변승우 씨 <사랑하는교회> 홈페이지 캡쳐

한국교회 예장통합(2016), 예성(2012), 예장합신(2022) 등 각 교단은 변승우 씨를 ‘이단’으로 공식 규정했다. 위 3개의 교단만이 아니다. 예장 백석(2009)은 ‘제명 출교, 집회참석 금지’라는 강도 높은 결정을 내렸다. 기성(2011, 2019)은 ‘교류금지’, 예장합동(2009)은 ‘집회참석 금지’, 예장고신(2008, 2009)은 ‘불건전 사상, 참여 금지’, 기감(2014)은 ‘예의주시’ 등으로 규정했다.

이에 변승우 씨는 위와 같은 한국교회 주요 교단으로부터 ‘이단’ 등 부정적 규정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는 <이단시비 종결되다>(변승우 편저, 거룩한 진주, 2017), <대질심문>(변승우, 큰믿음출판사, 2014) 등 자신의 책을 통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교계 언론을 상대로 반론권을 사용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도 보였다. 지난 4월 28일 본 <교회와신앙>은 [한기총, ‘이단 해결 명목’ 변승우에 거액 요구 ‘파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낸 바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가 변승우 씨에게 거액을 요구했다는 내용으로 변 씨 측과 한기총의 양쪽 주장을 모두 균형 있게 보도한 기사다(참고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510). 이 기사에 대해 변승우 측은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이단이 아니다’라는 의미의 반론문을 보내오기도 했다(참고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590). 변 씨 측은 이 반론문에서 한기총이 지난 2019년 변 씨에 대해 ‘이단으로 볼 수 없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라는 게 반론의 주된 이유라고 주장했다.

겉으로 볼 때 위 주요 교단들(통합, 예성, 합신 등)의 ‘이단’ 등 부정적인 결론과 한기총의 ‘이단으로 볼 수 없다’는 내용이 충돌하는 모양새다. 변 씨 측에서 ‘이단 규정 등은 예전의 일이고, 한기총의 결론은 최근 것이다’라고 주장할 수도 없다. 예장합신 측이 지난 해(2022년) 변승우 씨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연구결과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즉 변승우 씨의 ‘이단’ 문제는 최근까지 진행되고 있는 사항인 셈이다.

변승우 씨의 사상에는 문제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없는 것인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발생했다. 본 분석 기사는 지난 6월 12일 변 씨 측에서 <교회와신앙>에 보내온 반론문에 재반론의 성격을 갖고 있다.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은 변승우 씨에 대해 ‘이단’ 등의 결정을 내리면서 그 이유에 대해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변승우 씨가 ‘왜’ 이단인가에 대한 내용이다. 그 내용 중 하나가 바로 변승우 씨의 ‘레마 사상’이다.
 

변 씨의 주요 교단 연구 보고서는...

예장통합 연구보고서(2009)를 살펴보자. 변승우 씨의 ‘레마 사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3) 계시론과 성경론의 문제점

변승우 씨는 자신의 저서 여러 곳에서 성령이 직접 자신에게 책을 저술하라든지 또 어떠어떠한 내용으로 설교하라고 지시한다고 강조한다. “하나님께로부터 듣지 않으면 설교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 설교의 좌우명입니다”(『계시와 지혜의 영』, p. 9). 이러한 그의 주장은 세 가지 효과를 겨냥한 것이다.

첫째, 자신의 저서나 설교에 대해 초월적인 권위를 부여하는 효과이다. 즉 자신의 책을 마치 직접 계시를 받아 저술한 것처럼 오도하기 위함이다(가령, 그는 『명목상의 교인인가? 미성숙한 신자인가?』p. 11에서도 “저는 성령께서 저에게 설교하라고 레마로 주시는 말씀들을 설교합니다. 제가 설교의 주제나 내용을 자의로 선택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또한 외국의 사역자들의 추천사를 책 앞에 배치시키는데, 그 추천사에는 거의 예외 없이 변승우 씨가 받은 계시가 성령의 계시라고 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예장통합 변승우 연구보고서 중)

위 통합 측 연구보고서는 변승우 씨의 ‘계시론과 성경론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변승우 씨는 자신의 저서 여러 곳에서 성령이 직접 자신에게 책을 저술하라든지 또 어떠어떠한 내용을 설교하라고 지시한다고 강조한다”고 언급하며, 변승우 씨의 책 중 “레마로 주시는 말씀들을 설교합니다”(변승우, <명목상의 교인인가? 미성숙한 신자인가?> 거룩한 진주, p.11)라는 부분을 인용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변 씨가 주장한 ‘레마 사상’에 대해 계시론과 성경론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기성 연구보고서(2011)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보고서 결론 부분을 살펴보자.

[<연구 결론>

첫째, 성서관 및 계시론에 있어서 성령의 직접 계시(레마)를 객관적 계시인 말씀(로고스)보다 더 중시하거나, 성경을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 다림줄이 자신에게 있으며, 성경저자들이 받았던 성령의 영감을 자신이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태도이다. 또한 예언, 환상, 입신, 천국체험 등의 계시체험을 우선적으로 신뢰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만일, 변 목사가 성경을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 다림줄을 가졌다는 자기 확신에 몰입한다면 성경에 대해 자의적인 해석과 성령의 계시를 임의로 남용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기성 변승우 연구보고서 중)
 

위 연구보고서 역시 변승우 씨의 ‘레마 사상’에 대해 “성서관 및 계시론에 있어서 성령의 직접 계시(레마)를 객관적 계시인 말씀(로고스)보다 더 중시하거나”라며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변승우 씨의 ‘레마 사상’에 대해 한국교회 주요 교단은 ‘문제 있다’고 공식 연구보고서에 기록하고 있다.

 

변 씨의 ‘레마 사상’이란?

변승우 씨의 ‘레마 사상’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또 왜 문제가 있다는 것일까? 먼저 변 씨의 직접적인 주장을 살펴보자.

“이 설교는 이 시대의 교회들에게 굉장히 필요한 메시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 설교를 하지 않은 이유는 저는 어떤 설교를 의도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저는 성령께서 저에게 설교하라고 레마로 주시는 말씀들을 설교합니다. 제가 설교의 주제나 내용을 자의로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설교를 해야 할 필요성과 부담은 오래전부터 느꼈지만, 저에게 레마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설교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저희 교회에서 열렸던 [경험]의 주자 마크듀퐁 목사님의 집회 때 드디어 이 주제에 관한 레마가 저에게 임했습니다.”(변승우, <명목상의 교인인가? 미성숙한 신지인가?>, 2021, 거룩한 진주, p.11)

“그때 갑자기 레마가 제게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저는 이 주제에 대한 성경적이고 균형 잡힌 이해력과 분별력을 갖게 되었으며, 내 영 속에서 설교가 작성되기 시작됐고 ... 이제 그것을 책으로 만들어서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위의 책, pp.14-15)

“물론 계시라는 단어를 특별계시인 성경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이단사냥꾼들은 안식교의 엘렌G화잇이 받았던 것과 같은 이단적인 계시가 아니라 성령께로부터 오는 꿈과 환상과 예언, 입신 심지어는 흔한 레마(이 용어의 사용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제도 의문입니다만)까지 직통계시로 구분합니다. 그래서 이단으로 매도합니다.”(변승우, <계시> 큰믿음, 2013, pp.7-8)
 

   
변승우 씨의 책들

변 씨는 ‘성령께서 레마로 주시는 말씀을 설교한다’고 주장했다. 설교를 위한 ‘레마’가 주어지지 않을 때 부담을 느꼈고, 설교를 하지 않은 바 있다고도 언급했다. 그러다가 ‘레마’가 자신에게 임하면 자신의 영 속에서 설교가 작성되기 시작했다는 말도 했다. 변 씨는 ‘레마’를 자신에게 임하는 ‘특별한 무엇’으로 여기는 듯했다. 변 씨에게 있어 ‘레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상인 셈이다.

‘레마’는 헬라어 단어다. 한국어로 번역하는 흔히 ‘말씀’이라는 용어로 사용된다. 그런데 ‘말씀’으로 번역되는 헬라어 단어에 ‘로고서’라는 것도 있다. 변 씨는 로고서라는 단어보다는 레마라는 단어에 ‘특별한 무엇’이 있다고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로고서’와 ‘레마’로 구분하여 사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이 두 단어의 의미가 다르다고 한다. 로고스는 그냥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고, 레마는 깨달아진 말씀 또는 자신에게 적용된 하나님의 말씀 등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레마의 말씀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성경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로고스 – 그냥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 레마 – 깨달아진 말씀, 적용된 말씀

변 씨의 주장은 어떠한가? 위 사람들과 다를까? 그는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 - 수정증보판>(변승우, 거룩한 진주, 2017)에서 ‘로고스-레마’ 관계를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살펴보자.

참 믿음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1) 믿음은 말씀, 로고서가 아니고 계시적인 말씀인 레마를 들음으로써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레마)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레마는 계시적인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으려면 계시가 필요합니다.”(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 – 수정증보판>, 거룩한 진주, 2017, p.109)

변 씨는 ‘참 믿음’에 대해 설명한다면서 그것은 ‘로고스’라는 것으로는 안 되고, ‘레마’를 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마서 10:17절 성경 구절도 인용했다. 그 성경 구절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는 식이다. 더욱이 변 씨는 ‘레마’를 ‘계시적인 말씀’이라고까지 언급했다. 또한 ‘로고스 – 레마’의 구분을 ‘믿음’뿐 아니라 ‘구원’과도 연결시켰다. 경우에 따라서는 ‘로고스’만 가지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도록 설명했다.

정말 그런가? 로고스와 레마는 그 정도로 차이가 큰 것일까? 바로 위에서 ‘로고스-레마’를 구분하는 이들이 있음을 언급했다. 변 씨는 그들의 주장보다 한 발 더 나간 모양새다.

변 씨의 주장을 하나 더 들어보자. 변 씨의 ‘레마 사상’은 확고해 보인다.

[그런데 말씀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로고스와 레마가 그것입니다. 로고스는 듣는 자들에게 혼적인 믿음을 주고, 레마는 듣는 자들에게 영적인 믿음을 줍니다. 로고스는 사람의 머리에 이르고 영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혼적인 믿음을 줍니다. 그러나 레마는 성령의 조명과 기름부음이 융합된 설교로 그 말씀이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영에까지 들어가 마음으로 믿는 믿음을 창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에 생각과 뜻을 감할하나니 지은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4:12-13)

이처럼 레마는 찌르는 검이 되어 혼은 물론 심령 깊숙이 파고 들어갑니다. 그래서 영적인 믿음을 창출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10장 17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마음으로 믿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원어에 보면 레마)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런데 오늘날 너무 나도 많은 설교자들이 성령의 조명과 성령의 기름부음에 의존하여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지식과 화술 그리고 유머에 의지한 영적으로 메마른 설교를 합니다. 책에서 베끼고 머리에서 짜내서 하는 지적 설교가 너무 많고 그래서 교회 안에 마음으로 믿는 자가 적인 것입니다.](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 - 수정증보판>, 거룩한 진주, 2017, pp.242-243)
 

변 씨는 ’로고스-레마‘를 확실하게 구분했다. 그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로고스 – 혼적인 믿음을 준다. 사람의 머리에 이르고 영에 들어가지 못한다. 단지 지식, 화술, 유머에 의지하여 메마른 설교를 하게 된다.

* 레마 – 영적인 믿음을 준다. 성령의 조명과 기름부음의 융합된 살아 있는 설교를 하게 된다. 영에까지 들어가 마음으로 믿는 믿음을 창출한다.

이와 같은 변 씨의 주장에 의하면 ’로고스‘와 ’레마‘의 차이는 적지 않다. 참 믿음과 구원의 문제까지 연결시켰으니,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의미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을 정도다.

과연 그럴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로고스’와 ‘레마’를 위와 같은 정도의 다른 의미로 구분하고 있을까? 정말 그런 것일까?

 

   

로고스와 레마를 설명하는 변승우 씨 책,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의 한 페이지

어처구니없는 일이...

변 씨의 책에서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 나타났다. 변 씨는 자신의 ‘레마 사상’을 주장하면서 성경에 근거가 있다며 롬10:17와 히4:12-13의 두 성경구절을 제시했다. 이 두 구절을 헬라어 성경과 함께 확인해 보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ἄρα ἡ πίστις ἐξ ἀκοῆς, ἡ δὲ ἀκοὴ διὰ ήματος Χριστοῦ.”(롬10:17)

위 롬10:17절의 ‘말씀’에 해당되는 단어는 밑줄 친 부분인 레마토스(ῥήματος)다. 레마토스(ῥήματος)는 레마(ῥήμα)의 문법적 변화(소유격 중성 단수 명사)가 붙은 것이다. 즉, 롬10:17절에서 사용된 ‘말씀’은 헬라어 성경에서 레마(ῥήμα)로 사용된 게 맞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에 있다. 변 씨는 히4:12-13도 사용했다. 이것도 확인해 보자.

“하나님의 말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에 생각과 뜻을 감할하나니 지은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4:12-13)

위 성경 구절에 헬라어 성경은 아래와 같다.

“Ζῶν γὰρ ὁ λόγος τοῦ Θεοῦ καὶ ἐνεργὴς καὶ τομώτερος ὑπὲρ πᾶσαν μάχαιραν δίστομον καὶ διϊκνούμενος ἄχρι μερισμοῦ ψυχῆς καὶ πνεύματος, ἁρμῶν τε καὶ μυελῶν, καὶ κριτικὸς ἐνθυμήσεων καὶ ἐννοιῶν καρδίας·”(히4:12-13)

이게 어찌된 일인가?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히4:12-13절의 ‘말씀’에 해당되는 헬라어 단어는 레마(ῥήμα)가 아니라 로고스(λόγος)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위 성경 밑줄 친 부분). 너무도 어이없는 결과다. 위 구절 다른 곳에 레마가 나타나는지 살펴보았다. 그러나 발견할 수 없다. 혹시 변 씨가 사용하는 헬라어 성경에는 레마로 기록되어 있는 것일까? 헬라어 성경에도 몇 가지의 버전이 있다. 몇 가지 헬라어 성경도 함께 확인해 보았다.

<Nestle Greek New Testament>(1904), <Westcott and Hort>(1881), <Stephanus Textus Receptus>(1550) 등의 헬라어성경은 모두 히4:12-13절의 ‘말씀’을 로고스(λόγος)로 기록하고 있다. 레마(ῥήμα)로 기록된 헬라어 성경을 찾을 수가 없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변 씨는 자신의 ‘레마 사상’을 주장하면서 성경의 뒷받침 구절로 히4:12-13절을 사용했다. 그러면서 변 씨는 “이처럼 레마는 찌르는 검이 되어 혼은 물론 심령 깊숙이 파고 들어갑니다. 그래서 영적인 믿음을 창출합니다”라고 친절하게 히4:12-13절을 설명했다. 히4:12-13절 구절도 자신의 레마사상을 지지해준다고 자신있게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그 히4:12-13절의 ‘말씀’에 해당되는 헬라어 단어는 레마(ῥήμα)가 아니라 로고스(λόγος)다.

혹시, 변 씨는 성경 원어를 잘 모른다고 변명할 수도 있다. 그가 그렇게 할까? 그러나 다음의 변 씨의 주장을 들어보면 그것도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다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헬라어직역성경’의 번역을 좋아합니다”(변승우, <터>, 2018, p.139)

변 씨는 원어 성경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의 책 <터>에서 ‘헬라어직역성경’을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책에서 종종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언급하기도 했다. 살펴보자.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본문(롬1:16)의 원문은 ‘왜냐하면’(가르)이라는 단어로 시작한다. ... 이 구절 역시 원문이 ‘가르’라는 단어로 시작된다. 복음이 왜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지 그 이유를 보여주는 구절이다.”(변승우, <능력으로 관통되는 복음>, 2023, p.18)

“본문의 ‘죄를 사하시며’에서 ‘사하시며’에 해당되는 헬라어 ‘아페’는 ‘빚의 탕감’, ‘허물의 제거’, ‘책임의 해제’ 등 죄 용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깨끗케 하실’로 번역된 헬라어 ‘카다리세’는 죄로 오염된 상태를 정화시키는 것을 나타냅니다.”(변승우, <진짜 구원 받은 사람도 진짜 버림 받을 수 있다>, 2018 개정판, p. 276)

변 씨는 헬라어 단어를 언급하면서 성경 본문의 정확한 흐름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위의 주장들을 보면, 변 씨는 원어 성경에 관심이 많이 있을 뿐 아니라, 단어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의미를 찾는 것으로 보인다. 성경 원어 실력도 상당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그가 히4:12-13절의 ‘말씀’에 해당되는 단어가 ‘로고스’인데 ‘레마’로 알고 설명했으니 어떻게 된 것일까? 너무도 황당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혹시, 변 씨가 헬라어성경을 읽을 줄도 모르면서 아는 척한 것은 아닌지 의문스러운 대목이다. 물론 모든 사람은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변 씨의 실수라면, 그는 이 부분에서 실수했다고 인정하면 될 뿐이다. 그렇게 할까?

장운철 기자 kofking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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