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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함의 사명을 실천하는 이성만 장로와의 대담

기사승인 2023.11.28  14:5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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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은수 교수의 역사 현장 탐방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Ph.D), Berkeley GTU 연구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아르메니아 조지아 연구소(AGSI)와 남장로교 연구소(SPSI) 대표

최은수 교수

 사회: 최은수 교수

 대담: 이성만 장로/좋은나무교회 장로/㈜헬로오드리 대표
 

최은수 교수: 제1회 송상석 목사 기념 포럼이 개최되기까지 장로님의 물질적인 헌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기독교인의 역사 인식이 희미해져 가던 시류 속에서, 간과되고 무시되고 왜곡된 역사를 올바로 정립하고 사필귀정을 추구하는 일에 장로님이 솔선수범해 주시니 귀감이 되고도 남습니다. 먼저, 장로님의 신앙 배경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제1회 송상석 목사 기념 포럼에서 인사하는 이성만 장로

이성만 장로: 저의 외증조부가 박경조 장로입니다.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께서 문창교회에서 시무하실 때 장로로 안수받고 시무하셨습니다. 그 후 외가는 신앙 계승을 잘하여 저의 어머니(박은희)께서도 믿음을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자연스럽게 저는 모태 교인이 된 것이지요. 모태신앙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제가 믿음을 가지고 생각해보니 모태 교인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저의 죄를 회개하고 거듭남을 체험한 것은 철이 들어서였기 때문입니다. 디모데가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를 통해 말씀으로 교육을 받고 속에서 속으로 믿음이 전수된 것처럼 저도 그와 같은 은혜를 체험하며 주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감사가 넘칩니다.
 

최은수 교수: 제1회 송상석 목사 포럼에 관심을 가지고 후원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이성만 장로: 저는 어려서 송상석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던 제일 문창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중고등학생 시절을 지나 대학생 때까지 SFC 활동을 통해 신앙 성장도 체험했습니다. 그러면서 송 목사님은 고신교단 설립 시부터 지도자로 사용 받으심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1946년에 고려신학교가 설립되고 1952년에 고신교단이 출발할 때부터 성도 간의 불신법정 소송문제가 대두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이때 송 목사님께서 교회와 교단의 재산권을 지켜내시는 일에 힘을 더하셨고 교단의 총회장과 이사장 등을 역임하시면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셨음을 알았습니다. 제가 학생 시절에 우리 교회를 대표하여 여러 일을 감당하면서 송 목사님의 위치와 역할을 체험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고신교단의 역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런 송 목사님께 대단한 불명예를 안긴 것을 알고 슬펐습니다. 이를 알면 알수록 고신교단의 역사가 균형을 잃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교단의 설립 정신에서 크게 비켜서게 되었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대학을 졸업하고 사업을 시작하여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었고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런 중 제일문창교회에 장학회를 설립하도록 장학금을 후원하는 등 여러 일을 감당하던 중에 송상석 목사님의 기념강좌를 제일문창교회를 담임하시는 허성동 목사님을 통해 전해 듣고 그 비용을 전액 제가 후원하겠다고 청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제일문창교회 담임이자 제1회 송상석 목사 기념 포럼의 준비위원장인 허성동 목사

최은수 교수: 한국 교회사의 흐름 속에서, 장로님이 만난 송상석 목사님은 개인적으로 어떤 분이었나요?

이성만 장로: 제가 대학을 다닐 때까지 송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자랐습니다. 설교의 평은 감히 제가 할 수가 없고요. 지금 생각하면 목사로서 지녀야 할 덕목을 다 지닌 분으로 기억됩니다. 출석하던 교회가 소송으로 혼란했어도 심지어 상대편에 속한 교인들에게 멱살을 잡혀도 신앙적으로만 처신하시는 모습을 종종 보았습니다. 이때마다 다른 목사들이 보이지 못하는 신앙 인격의 탁월함을 느끼면서 귀한 분이라 여겼습니다.


어렸을 적에 교회의 뜰에서 자주 놀았는데 자주 나무 그늘 밑에 서서 저희의 이름을 불러주시고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축복하셨던 자상한 음성을 기억합니다. 버들잎을 따서 풀피리도 불어주시는 전형적인 할아버지 목사님이셨어요. 당시 저의 집이 가난하였기에 교회에서 주는 성미를 종종 받았습니다. 이 일은 목사님과 사모님의 뜻이 반영되었음을 후에 알았습니다. 그만큼 목사님은 성도들의 가정을 살피시면서 목회하셨지요.


혹자는 송 목사님이 교단 일에만 몰두하면서 목회에는 소홀했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제가 느끼기에 당시 목사님들의 설교에 영성은 실렸지만, 지성은 좀 부족한 부분이 있었는데 송 목사님은 영성은 물론 지성까지도 갖추신 분이셨습니다. 후에 송 목사님이 현재의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다니셨던 것을 알고 역시 학문적 바탕이 든든한 목사님이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송 목사님은 교단에서는 지도자셨을지라도 저희에게는 전형적인 목회자셨습니다.
 

최은수 교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장로님이 목도 했던 일들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성만 장로: 이미 말씀을 드린 대로 고신교단은 생성 시부터 소송문제에 노출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예배당 명도소송을 건 기존 총회 측과 새로 출발한 고신교단이 다른 교단이었기에 당회나 노회 그리고 총회를 통해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송 목사님은 소송을 건 총회 측에 적극적으로 대응했고 결과적으로 교회와 교단의 재산권을 지켜냄에 크게 역할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에는 고신교단 내부에서 소송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때 송 목사님은 교단 인사의 부당한 처사로 인해서 면직 등 있어서는 안 될 사안이 생겼습니다. 송 목사님이 1950년대 소송 대응으로 소송을 긍정한 분으로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는 교단이 달라 도리가 없었지만 70년대는 교단이 같으니 내부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피력하셨지요. 그러니 70년대는 한상동 목사님 측이 소송 정당론자가 된 셈입니다.


저는 어렸지만 송 목사님께서 담임하시는 반 고소 측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로 많은 서러움을 당했습니다. 교단 정치 상황을 다 알 수 없었지만, 교단이 분리되면서 시찰의 친구들과 헤어지게 되고 분리되는 교회에서 당일 순회 예배도 참석하지 못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는 깊이 몰랐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잘 알게 되었고 따라서 한상동 목사님의 기념강좌 이상으로 송상석 목사님의 강좌가 필요하다고 여겼습니다. 이는 송 목사님의 명예를 찾는 것을 넘어 교단의 역사가 바르게 정립되고 이를 통해서 우리 교단이 교계를 선도하는 자리를 회복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상규 교수와 500여 참석자들

최은수 교수: 이번 제1회 포럼을 보시면서 느낀 감회는 무엇이며, 발표자들에게서 받은 보람된 소회는 무엇이었나요?

이성만 장로: 부산 세계로 교회에서 2023년 10월 31일에 제1회 송상석 기념강좌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저도 참석했습니다. 제일문창교회가 아닌 세계로 교회에서 모이는 이유도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실 호텔에서 하라고 청을 드렸고 재원도 부담하겠다고 했었거든요.


첫 강사였던 신재철 박사님의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를 들으면서 신 박사님이 우리 송 목사님을 제대로 연구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간에 여러 학자와 목사들이 송 목사님을 정치꾼으로 묘사했지만 송 목사님은 진정한 목회자요 주님이 말씀만을 전하고자 힘쓴 설교자셨습니다. 이를 신 박사님이 제대로 연구하여 발표해주셔서 개인적으로 크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강사셨던 나삼진 박사님은 ‘송상석 목사와 고신교단’에 대해서 전하셨는데 그의 강의를 들으면서 송 목사님의 교단 사랑이 이제 바르게 조명이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간에 나 박사님은 교단 역사를 많이 쓰시고 전하셨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송 목사님의 연구에 더한 열정을 보태주시면 바랬습니다.


마지막 강사였던 이상규 교수님은 ‘송상석 목사님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를 해 주셨습니다. 들으면서 우리 교단에 송상석 목사님이 계셨던 것이 위로되었던 것처럼 우리 교단에 이런 교수님이 계심에 행복했습니다. 사회를 맡은 목사님이 우리 교단이 배출한 세계적인 역사신학자라고 소개했는데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 교수님께서 한상동 목사님에 대한 글을 많이 쓰셨는데 이제라도 송 목사님을 연구하시고 ‘송상석과 그의 ’시대‘에 이어 이런 기념강좌까지 열게 함에 학문적 역할을 잘 감당해주시니 저로서는 크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 외 여러 논찬을 맡은 분들이 송 목사님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표현해 주심에 감사했습니다. 참석한 분들이 등록한 분만 5백 명이 넘었는데 모두 굉장히 집중해서 듣기에 놀랐습니다. 특히 젊은 목회자들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많이 인사받았기에 보람을 크게 느꼈습니다. 저는 사업하는 사람이기 전에 교회의 장로로서 제대로 투자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최은수 교수: 기독교인들의 역사 인식에 대하여 생각나시는 대로 소견을 피력해 주시겠습니까?
 

이성만 장로: 저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는 말씀을 기억하며 삽니다.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마지막 한 영혼을 찾으시면 이 세상의 역사를 닫으신다는 곧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는 말씀으로 받는 것이지요.


이럴 때 기독 신자는 신앙과 행위가 일치됨이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그래야만 한 영혼을 찾는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을 테니까요. 사실 송 목사님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송 목사님의 절제 운동은 기독 신자의 윤리적 삶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점이 요즈음 시대는 부족하여 교회가 세상을 선도해야 하는데 오히려 세상의 판단을 받고 있다고 봅니다. 교단 설립 당시 교회 내에서도 일제 청산 등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기에 일반 사회의 부도덕한 면에 관대했다고 봅니다. 우리 교단의 설립 당시의 신앙을 찾는 점은 이론적 구호가 아니라 바른 역사를 알고 잘한 것은 계승하고 잘못된 것은 과감하게 버리는 일이 필요할 것입니다.


저는 사업을 하는 장로입니다. 따라서 저의 역할에 맞게 주님의 나라 확장에 사용을 받을 것입니다. 교단 특히 우리 고신교단의 목사님들은 교단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그런 신앙 정신에 바른 역사의식까지 더함으로 교회가 세속화되는 어두운 시대에 고신교단은 신앙과 바른 역사의식까지 소유한 교단임을 밝히 알렸으면 합니다. 저는 이 일을 특히 송상석 목사님에 관한 연구가 제대로 되어 바른 역사가 정립될 때까지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소임을 다할 생각입니다.

   

오른쪽부터 신재철 교수, 이성만 장로

이번에 수고하신 제일문창교회와 허성동 목사님 등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허 목사님께서 경남지역 8개 노회가 이번에 공동 주관하도록 하신 일은 송 목사님의 지도력을 연상하게 하기에 족했습니다.


일전에 신재철 목사님을 저희 사업장에서 뵈었는데 송 목사님을 연구하신 일로 어려움을 겪었음을 듣고 마음 아팠습니다. 이상규 교수님도 그런 아픈 경험이 있으셨더군요. 그래서 신 박사님이 고신대학원이 아닌 저와 대담하시는 최은수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최 교수님께서 신 목사님의 박사학위 지도교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감사를 드립니다. 최 교수님과 같은 학자분들로 역사는 바로 정립된다고 봅니다.


제가 당연히 할 일을 한 것뿐인데 이렇게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격려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주님의 나라 확장을 위한 도구로 살라는 뜻으로 받겠습니다.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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