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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기다림이다

기사승인 2023.12.04  07:3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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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경애 수필가

장경애 사모/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수필가

한 해를 맞은 아침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지막 달이 되었다. 아쉬움의 안타까움도 있지만, 얇아진 달력 뒤에는 두툼한 새 달력이 기다리고 있으니 기대감 또한 넘친다. 한 해의 끝자락인 12월이 오면 살아온 한 해를 돌아보며 반성하고, 새로 맞을 새해에 대해 설계하며 기대감에 젖곤 했다. 살아온 한해가 힘들었다면 새롭게 오는 한해가 더욱 기다려지고, 무엇인가를 기대하며 새해를 맞게 된다. 그렇게 보면 인생은 기다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평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가 겪는 기다림은 얼마나 될까? 한 생명이 태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주 하찮고 작은 기다림으로부터 큰 기다림까지 셀 수조차 없을 만큼 많다. 길게는 태어나기 위한 10달의 기다림으로부터 시작하여 유아기를 거쳐 청소년기를 지나 청년기 그리고 장년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을 기다리며 산다. 짧게는 밤에 잠자리에 들 때는 내일의 일을 생각하며 아침을 기다리고, 하루 종일 밖에서 힘들게 일하면서 퇴근 시간을 기다리고, 심지어 식사 시간도 기다린다. 그런가 하면 길을 갈 때도 신호등을 기다려야 하고, 목적지로 가는 자동차를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은 잠에서 깨어 눈을 뜨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어 잠이 들 때까지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아마도 우리의 삶 속에서 기다림이 없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심리학자 윌리엄 말스톤이 삼천 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많은 사람이 사는 목적에 94%가 결국 기다리는 데 있었다고 한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항상 무언가를 끊임없이 기다린다. 어쩌면 우리 삶은 ‘기다림의 성취’로 이루어진다. 기다림 속에서 삶은 진행되고, 기다림 속에서 성취되어 간다.
 

이 기다림의 종류는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가지다. 기다림에는 설레는 기다림도 있지만, 걱정스럽거나 기다리고 싶지 않은, 피하고 싶은 기다림도 있다. 그래서 기다림은 즐거움과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슬픔과 아픔을 주기도 한다. 기다림의 종결이 나쁜 것도 있기에 절망으로 남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기다림은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선물일 수도 있고,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일 수도 있다.
 

   
 

인생 속에 수많은 기다림이 있었지만, 지금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기다림이 있다. 어린 시절 예방주사를 맞기 위해 줄 서서 내 차례를 기다리는 기다림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차례가 올 때까지 얼마나 떨며 기다렸었는지 그 어린 시절에는 참으로 힘든 기다림이었다. 또한 중학교 입학시험부터 시작하여 고등학교 입학시험, 그리고 대학 입학시험을 치른 후 합격자 발표가 날 때까지 숨 막히는 기다림도 가져 보았다. 이러한 기다림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절박한 기다림이었다. 멀리 유학 떠난 남편이 돌아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던 날들의 기억도 있다. 이러한 기다림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그 애타는 마음을 모른다. 또한 누구나 겪어봤을 절박하고도 기막힌 기다림은 급한 상황 속에 화장실 문 앞에서 들어간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기다림이 아니었을까?

어린 시절 지루한 기다림으로 인해 환하게 웃었던 일도 있다. 스케이트를 갖고 싶어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아버지께서 사 주시겠다고 흔쾌히 약속하셨다. 들뜬 마음으로 희망을 품고 하루를 기다리고, 또 다음 하루를 기다렸다. 그런데 퇴근하시는 아버지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나의 실망은 말할 수 없이 컸지만,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며 잘 참아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성탄절을 맞았다. 그런데 성탄절 아침에 보니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이 바로 내가 그토록 원하던 스케이트였다. 비록 아버지를 대신(?)하여 산타할아버지께서 주셨지만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바라는 것을 가질 수 있다”라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처럼 스케이트를 갖게 되었다. 저녁마다 퇴근하시는 아버지 손을 살펴보며 기다렸던 날들이 그리 오랜 기간은 아니었지만, 어린 나로서는 하루가 그야말로 여삼추처럼 느껴졌었던 기억이 있다.

빅터 프랭클린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 앞에 ‘사람은 먹는 것으로 사는 것도 아니요 오직 희망으로 살고, 오직 기다림으로 산다’고 했다. 기다림이란 인내며 희망이다. 기다림 중에는 인식하지 않아도, 기다리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반드시 오고야 마는 일들이 너무도 많다. 그러나 필요한 것을 기다리는 기다림은 초조하다. 그런 기다림은 우리에게 인내를 배우게 한다. 그 인내는 또한 희망을 배우게 한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든 기다리지 않든 아침은 분명히 온다. 아침을 기다리면서 시간이 빨리 가지 않음을 불평하고 기다리면 지루하고 길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아침이 올 것을 기대하며 기다리면 그 기대는 희망이 된다.
 

기다릴 것이 없는 것이 절망이다. 세상에서 정말로 절망적이고 힘든 것은 기다림마저도 없는 생활이다. 살았으나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기다림이 기다림으로 끝나고 말지라도 기꺼이 기다릴 줄 아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기다리다 신기루를 만날지언정 기다림 속에서 인내를 배우고, 희망을 키워가야 한다. 기다림은 성장을 주고 성숙하게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삶 속에 기다림이 있는 이상 아직 희망이 있고 용기를 가지고 살아야 할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다림은 항상 자신을 참아내는 모진 인내심과 강한 의지가 요구된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기다리는 일을 잘못 한다. 기다림에 대한 점수를 매긴다면 낙제 점수일지도 모른다. 음식도 즉석 음식을 즐기고, 의복도 맞춤은 거의 사라졌다. 편지를 기다리던 시대도 사라졌다. 현대인의 생활 습관에 관한 통계를 보면 현대인은 교통 신호가 바뀌고 나서 0.5초 이내에 앞차가 출발하지 않으면 뒤차의 운전사가 짜증을 낸다고 한다. 또한 승강기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3분을 넘기면 걸어서 올라가고, 택시를 기다리는 시간이 5분 이상 되면 기다리던 사람 중 반 이상은 포기한다고 한다. 기다림은 언제든 필요하건만 기다리지 못한다. 이것이 현대인의 모습이다.
 

성경에는 수많은 신앙 선배의 기다림이 있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요셉도, 모세도, 한나도 주님의 약속을 기다렸던 위대한 사람들이다. 오늘날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신앙인은 여러 가지 형태의 기도를 하고는 기도의 응답을 기다린다. 정말 중요하고 큰 기다림은 주님의 약속 성취의 기다림이다. 어쩌면 기다림은 인내인지도 모른다.
 

감사절이 끝나기 무섭게 벌써 성탄을 기다린다. 항상 내 생일보다 더 기다렸던 성탄의 간절함이 지금도 남아있다. 한 편으로는 주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성탄절 이브에 행했던 새벽송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너무 아름답고 깊은 추억으로 아련하다. 또한 유초등부로부터 시작하여 청년기까지 성탄에 행했던 너무 많은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이제는 과거의 오신 예수님의 탄생일을 기다림보다는 다시 오시마 약속하신 주님을 기다려야 한다. 곧 오시마 약속하신 주님은 아직도 오시지 않았기에 우리의 간절한 기다림이 되었다.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고 말씀하신 하박국 선지자의 말을 명심하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기다림을 마음에 안고 한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고 싶다. 

      

        

장경애 kyung556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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