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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만 니, 강간 사건과 경제 사범으로 교회에서 추방

기사승인 2024.02.05  12:3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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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6년 2월, ‘워치만 니 성적 부도덕 전시회’에서 조치

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원로

 

   
유동근 목사

1942년 워치만 니는 초기 여성 동역자(장퀴난 자매) 강간 사건부터(그러므로 워치만 니는 상해교회에서 사역을 6년 동안 중단당함, 당시 본인은 회개하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교회명부에서 제해달라고 요청하다), 1956년 2월 ‘워치만 니 성적 부도덕 전시회’(당시 상해지방교회 포함 5천명 가까이 관람, 포르노 서적 및 2개의 음란 영상물, 워치만 니의 두 명의 여성 동역자 강간만이 아니라 많은 여자에 대한 음행에 대한 자필 자백서 등) 결과로 상해교회는 워치만 니를 성경 말씀(고전 5장 등)을 근거로 추방 조치하였다.
 

상해고등법원 재판일자(워치만 니는 정치 경제 등의 범죄로 징역 15년 형, 추가로 주거지 제한 5년을 언도받음(도합 20년), 음행에 관한 것은 공산혁명 이전 일이므로 양형에 포함시키지 않음, 1956년 6.21). 교회의 추방 광고(근거성경, 고전 5:11-13, 1956년 6.23).
 

   

워치만 니의 문제를 다룬 LILY HSU 박사가 저술한 <My Unforgettable Memories> 

“우리는 워치만 니를 교회에서 추방하기로 결정했다. 더욱이 6월 23일 전국(중국)의 형제 자매들에게 광고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가장 죄많은 워치만 니를 교회로부터 추방하였다.”(LILY HSU 박사 My Unforgettable Memories 137, 138pp)

오늘날 온 땅의 신자들은 당시 워치만 니가 상해교회에서 추방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강간을 당하고 그 사실을 교회에 알리지 않은 두 여성 동역자는 회개하였으므로 추방시키지 않고 다만 사역자의 지위를 폐지하고(abrogated), 주의 상에 참여함을 금하였다.
 

따라서 그는 20년 형기를 마칠 즈음에 아홉 통의 편지를 친지들에게 쓴 것이 있는데, 읽어보면 교회의 동역자나 성도들에 대한 사랑 안부는 일체 없었다(대신에 볼셰비키 혁명 관련 책자, 엥겔스의 앤티듀링 등 공산당 책자 3권을 부탁한 것이 있다, 죽기 9일 전, 5월 22일이다, 1972년 5월 31일 새벽 2시 워치만 니는 사망했다). 성도들에게 해만 끼친 사람이 무슨 말을 쓸 수 있었으랴? 그는 이미 교회와는 관계가 절단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출옥해서도 뭔가를 해볼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이처럼 중국에서 이미 엄청난 음행의 공개로 다 끝난 교리 집단을 이상수(Witness Lee)는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대만으로 미국으로 퍼트린 이단(최소한 그는 1942년 사실을 알았을 것임)이다. 그리고 1956년의 중국 공산당 워치만 니 범죄 전시회 사건도 몰랐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그렇게 세계적으로 퍼질 수 있었던 것은 워치만 니의 탁월한 형제회 교사들의 지식의 표절능력에다 중국이 공산주의다보니 정보가 단절되어서 그의 죄상이 온 세계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았던 것 같다. 또한 중국 사람들의 내밀한 성품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그들은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워치만 니에 대한 문제는 국내에서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으며, 그의 저서 역시 그가 직접 저술했지는 것을 의심할만한 자료들이 공개되고 있다.

워치만 니의 20년간 지속된 그의 음란 행각은 동역자들만이 아니라 수많은 여인과의 성적 스캔들(릴리 박사 책에 몇 차례 반복해서 기록, 그의 음행 사실에 대하여는 재판정에서 판사 앞에 일일이 자인하는 모습까지 기록되었다(이것은 한국의 이재록이나 JMS 못지 않다). 이에 더하여 이상수의 경제적 범죄(타이완에서 7천여평 교회부지 팔아서 아들 사업 빚 갚음, 그 외에 동역자들 위한 아파트 8채도 팔았다, 그 이유로 여론이 나빠져 미국으로 도피하였다(복음을 위해 미국 간 것이 아님). 미국에 가서도 돈을 벌려는 의욕으로 사업하다가 실패(대만과 미국에서 2-3회), 빚더미에 앉아 성도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 또한 첫째 둘째 아들의 성적 범죄도 가공할 만했는데 위트니스 리는 아들들의 문제를 매우 애매모호하게 처리하였다(이 모든 내용은 존 잉걸스와 스티브 이짓트, 타이페이 장로 출신인 치리핑 교수의 책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런 이단종교가 한국에까지 이렇게 퍼진 것은 중국인들의 욕심과 음흉함이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한국인의 사대주의 근성도 한몫했다. 내가 가본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의 나라들에는 지방교회가 그렇게 크게 발을 붙이지 못하였다.
 

하긴 영국 형제회도 1800년대 런던서 끝났는데 스코필드가 미국서 관주성경 내는 바람에 불씨가 살아남(다비는 조금만 자기와 맞지 않으면 분리해내는 일을 했다, 그로브스, 크로닌, 뉴톤, 죠지 뮬러나 처음부터 함께 했던 동역자 형제들 거의 다 쫓아냈다(세대주의란 무엇인가? 클라런스 배스 著 참조)— 이면은 지방교회와 매우 흡사하다). 그런데 더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들이 지식을 좋아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런 영적 질병은 언젠가 한 번은 교회사에서 처절하게 겪어야 할 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쓰디 쓴 맛을 완전 다 맛보고 비로소 그 원인을 찾아내고 영원히 벗어나게 될 것 같다.
 

세대주의 다비와 워치만 니 위트니스 리의 지방교회는 곧 초대의 영지주의가 보다 더 성경인 것처럼 양의 탈, 정통의 탈을 쓰고 변형되어 되살아난 것으로 판단한다.
 

19세기 영국의 다비의 세대주의로부터 중국의 워치만 니 위트니스 리 교리는 오늘 날 하나님의 교회에 현대판 영지주의로서 가장 큰 대적(적그리스도, 요일 2장)으로 나타났다. 정체를 완전히 드러내어 뿌리를 뽑지 않으면 안 된다.

         

유동근 목사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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