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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퐁치낭주의 ‘썸머라홍’의 청소년들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기사승인 2024.05.13  12: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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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박 20일 여정, 교회 방문과 한국 문화, 관공서 방문

   
경복궁 나들이

“아이들이 왜 우는 거죠?”

창덕궁을 안내하던 강서제일교회 청년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평생에 한 번 그것도 한국 TV 드라마에서 보고, 꼭 입어보고 싶었던 한복을 입고, 너무 좋아서 웃는 겁니다”

썸머라홍 청소년들은 금방 언제 울었냐는 듯 깔깔대며 서로 웃었다.

 

   

1. ‘우물 밖 세계를 보기까지’

캄보디아 캄퐁치낭주의 작은 동네 ‘썸머라홍’ 청소년들이 ‘희망찾기’를 위해 한국을 방문 18박 20일의 일정을 마쳤다.

3년 전 처음 추진되었다가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한국방문 나들이가 오랜 기다림 끝에 지난 3월 31일부터 4월 19일까지 부산정관 온누리교회(담임:박준복 목사)의 초청으로 성사되었다.

3년 전 중학생이었던 아이들은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의 청소년들로 자랐다.

교회에서 맨발로 뛰놀던 게구장이 아이들이 이만큼 성장한 것만으로도 자랑스럽다.

오두막처럼 보잘 것 없이 나무 판자로 만들어 진 집, 살림 도구라야 애들 손꼽장난처럼 한 두 개, 그 곳에서 온 가족이 비비고 맞대고 살아가고 있는 곳, 바로 썸머라홍 마을이다.

이 곳에서 태어나고 이 곳에서 자라난 아이들에게 처음 한국 방문을 꿈꾸게 한 것은 바로 박준목 목사(정관 온누리교회)다.

내가 있는 썸머라홍교회를 여러 차게 다녀간 박목사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과 썸머라홍 마을사람들의 삶을 보고, 어느 날 느닷없이 “아이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우물 밖의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였다.

많은 비용과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기에 나는 그런 생각도 못하고 있을 때었다.

 

   

아이들의 여권을 만들고, 비자를 받기 위해 한국대사관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준비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으로 돌아왔다.

가족관계증명서에 이름도 올라가 있지 않은 아이, 이름은 올라가 있지만 태어난 날짜가 없는 아이, 주민등록증이 없는 아이, 아빠 성과 아이 성이 다른 아이 등 모든 것들을 바로 잡고ㅡ 고치고, 서류에 올려야 했다.

캄보디아는 아직도 행정적 서류가 전산화되어있지 않아 모든 것을 발품으로 팔아 쫓아다니고 요구하고 싸워야 했다.

하물며 아이들의 학교재학증명서를 발급받는 것 조차 1주일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덕분에 아이들은 한국방문 준비기간 동안 개인과 관련된 모든 서류들을 완벽하게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게 받기 힘들다는 한국행 비자도 모두 나왔다.

비행기표도 초청자가 보내왔다.

그제서야 아이들은 한국에 가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한국방문 한 달 전부터 청소년들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매일 저녁 7시 30분에 모여 기도회를 갖고, 한국 정보를 배우고, 청소년들이 준비해야 할 것들을 준비케 했다.

부모님과의 모임도 3차례 가지고, 아이들이 한국에 가는 것에 대한 의미와 목적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다.

아이들은 한국이 그들을 어떠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냥 ‘한국방문’ ‘한국에 놀러가는 것’ 정도로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2. “소름이 돋았어요“

   
공항이 신기해요

3월 31일, 드디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항이라는 곳을 가 보았고, 처음으로 비행기 티켓을 들어보았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탄 아이들에게 캄보디아 공항직원들이 연신 질문을 던진다.

나이 어린 청소년들이 한국에 가니 그 이유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리곤 아주 친절하게 하나하나 도움을 주어 아이들이 으쓱해졌다.

5시간 30분 만에 도착한 한국 날씨는 아이들에게 쌀쌀하고 추웠던지, 연신 춥다고 했다.

지하철을 처음 타 본 아이들, 서울역에서의 KTX까지..

초청자 교회는 버스를 가지고 경주역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청자 교회로 가는 길 옆에는 4월 한국의 봄 날을 뽐내듯이 벚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벗꽃 만발한 곳에서 아이들은 한국의 봄 날을 마음껏 즐겼다.

초청자 교회에서 맺어진 ‘홈 스테이 부모님들’은 청소년들을 자신의 자식인양 뜨겁게 안아주었다. 청소년들은 드디어 낮선 한국에서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썸머라홍 청소년들에게 한국의 첫 만남은 낯선 추위, 지하철, 서울역, 신나게 달리는 KTX, 활짝핀 벗꽃, 아쿠아리움과 롯데월드, 해운대 바닷가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사랑과 뜨거운 포옹을 해오는 모든 사람들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썸머라홍 마을을 여러차례 다녀가서 아이들과 익숙한 관계에 있는 해운대감리교회 한석문 목사와 신성감리교회 전정길 목사와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낸 후, 한국에서 첫 번째 주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정관 온누리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한 아이들이 예배 중 넋을 놓은 채 입을 벌리고 멍하니 찬양대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

예배 후에 왜 그런 표정이었냐고 물었더니, “너무나 아름다운 소리에 소름이 돋았어요”는 대답이 나왔다.

평생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화음을 넣은 찬양대의 소리에 그만 넋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음악과 미술 과목 자체가 없는 캄보디아 교육과정에 찬양대의 찬양은 그저 놀랍고 신기하고 아름답고, 소름이 돋을 정도의 감동을 그들에게 주었다.

나는 예배 내내 성령님이 그들을 감싸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이 그것을 느끼고 체험하기까지는 며칠이 더 필요했다.

 

3. “이 아이가 내 자식이구만”

   

삼남연회와 남부연회에서 청소년들은 오랫동안 연습해왔던 캄보디아 전통 무용과 찬양을 선보였다.

썸머라홍의 첫사랑 학하교회(임요한 목사)와 변동장로교회의 손양원 목사, 그리고 파송교회인 빈들교회와 벧엘의 집에 이르기까지 가는 곳마다 창소년들을 반기는 성도님들로 넘쳤다.

아산의 작은 시골 마을에 있는 음봉교회(담임: 최만석 목사) 성도님들이 케익을 준비하여 청소년들을 맞이하여 주었다. 환영 케익에 환영 야외 파티에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모든 성도님들이 참석하여 아이들을 뜨겁게 맞이하여 주었다.

작년부터 썸머라홍 청소년과 아이들 그리고 쁘렉스피언 섬마을 아이와 결연을 맺어, 아이들의 교육과정을 도와 온 부모들이 자신과 맺어진 아이들이 이 만큼 성장한 것을 보고 감사의 말이 가득했다.

“이 아이가 내 자식이다”라며 안아주니, 청소년들도 비로소 자신과 맺어졌던 결연 부모를 직접 만나며 “엄마, 아빠”라며 얼싸안았다.

음봉교회 성도님들과 최만석 목사님은 그 어떤 도시의 대교회보다도 더 큰 사랑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청소년들도 시골마을에 시골사람들의 따뜻함에 마치 고향 썸머라홍과 같았다고 편안함을 이야기했다.

 

4. ‘눈물이 터지다’

   
 

‘딸기’, 캄보디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한국에서 가장 먹고 싶어하는 것이다.

논산중앙감리교회 양진수 목사는 교인이 운영하는 딸기 밭으로 청소년들을 데려갔다,

비닐하우스 안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딸기들을 보며 이들은 환성을 지르는 것과 동시에 입에 넣기 시작했다. 나도 한 놈을 떼어 먹었다. 딸기 맛이 시중에 사 먹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맛났다.

   

딸기 밭에서 모두 거덜낼 듯 따먹고 나서야 주인 얼굴이 들어왔는지 쑥쓰러워한다. 그 모습에 딸기 밭을 개방해 준 주인 권사님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딸기 밭을 뒤로 하고 군산으로 넘어가는 길에 부모님이 계신 웅천 시골 집에 잠시 들렀다.

벌써 못 q지 2년이 훨씬 넘었고, 어머니는 내가 한국에 들어 간다는 소식을 전한 후, 매일 언제 오는지 전화로 물어오곤 하셨다.

내년이면 아흔이신 아버지와 얼마 전에 수술하신 어머니에 큰 절을 했다. 그리고 두 분의 손을 꼭 잡았다. 눈물이 흘렀다.

이 모습을 본 아이들 모두가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후에 “왜 그때 너희들이 울었니?” 라고 물어보니 “선생님이 오랫동안 썸머라홍 마을에 있으면서도 부모님을 뵙는데 아주 잠깐밖에 시간을 못내는 것을 보고, 우리들을 이렇게 사랑했구나 생각되어 울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들의 눈물은 웅천 시골 집에서 시작되어, 군산 우리교회에서의 찬양 때, 내가 한국어로 설교할 때, 그리고 안양주일교회에서 자신들의 꿈과 희망에 대해 발표할 때, 한복을 입고 좋아할 때, 그리고 마지막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밤까지 이어졌다.

성령님이 아이들 하나 하나를 어루만지고, 하나가 되게 하셨다.

 

5. “난 한국에 일하러 오고 싶지 않다. 그런데 와야 할찌도 모른다”

안양주일교회(담임: 김동수 목사)에서 아이들은 미래의 꿈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동수 목사는 아이들의 머리에 손을 언고 축복 기도를 해 주었다.

반에서 1등 2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 하는 레아는 경찰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하였다.

그 꿈을 이야기 하면서 운다.

“난 경찰 시험에 합격할 자신이 있는데, 시험에 합격해도 줘야 할 ‘돈’이 없어,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아마 한국에 노동자로 와야 할찌도 모른다. 난 정말 그렇게는 오고 싶지 않다”

캄보디아는 뇌물이 관례처럼 행해지는 곳이다. 특히 공무원이 되려면 더욱 ‘뒷 돈’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다들 생각하지만 고치려하지 않는다,

뒷 돈을 줘서 공무원이 되면, 자신이 준 뒷 돈 보다 더 많은 뒷 돈을 또 챙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행이 계속 이어진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뒷 돈’은 공평한 싸움이 이루어 질 수 없게 한다.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그 운동장에서 쫓겨나야 하는 미래의 자신의 모습에 레아는 눈물을 터뜨렀다.

조용히 레아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모든 아이들이 서로 부둥켜 안고 엉엉 울었다.

 

6. ‘한국 전통 문화를 배우다’

   

경기도 광주교회(담임: 최종호 감독)에서 주일 오후 예배를 마치고 광주 시내를 걸었다.

캄보디아에서 노동자로 온 분들을 공원에서 만나고, 한국의 봄 날 공원풍경을 만끽했다.

청소년들이 한국 탐방을 위해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희들은 모두 정말 행운이다”“라는 말에 아이들의 어깨가 으쓱해졌다.

광주교회는 지난 1월에 썸머라홍 마을을 다녀가서 그런지 모두 엊그제 만난 것 마냥 낯설지 않고 반갑기만 했다. 최종호 감독은 저녁 늦게 직접 아이들이 묵는 숙소로 찾아와 불편한 것들이 없는지 일일이 챙겨주었다.

다음 날 아침

봄 비가 주룩 주룩 내려 다른 야외 활동을 못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계신 ‘우리동네 주간보호시설’ (박민영 원장)을 찾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유치원과 같은 주간보호시설에서 청소년들은 캄보디아 춤과 노래로 재롱을 부리고 그분들 옆에 앉아서 손을 잡아 주었다. 그리곤 캄보디아에 계신 자신의 엄마, 아빠가 생각났는지 이곳에서도 연신 눈물을 훔쳤다.

수원에서의 오후는 한국 공방체험이었다.

오랫동안 썸머라홍마을을 오고 간 수원의 정신과 의사팀과 세계의 심장에서 마련해 준 자리였다,

조개껍질을 이용하여 만드는 자개 노리게, 보자기 이쁘게 접기 등 한국에서 처음으로 배우는 한국전통공예에 훔뻑 빠진 아이들은 각자 자신이 만든 공예품이 이쁘다며 자랑하였다.

그러면서도 비가 내리는 밖을 보고 또 보고 했다.

“목사님, 내일은 비가 안 와야 하는데, 날씨가 어때요?”

“내일 날씨가 왜?”

“내일 한복 입는 날이잖아요”

마음은 온 통 꿈에 그리던 한복을 입는 날에 가 있었다.

 

7. “아이들이 왜 한복을 입고 우는거죠?”

   
 

드디어 아이들이 말로만 듣고 유튜브로만 보던 서울에 입성하였다.

서대문에 위치한 (재)좋은친구들과 남북나눔운동본부가 있는 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좋은친구들과 남북나눔운동본부는 아주 큰 단체인데 캄보디아의 아주 작은 마을까지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특히 썸머라홍 마을 사람들의 취업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마련한 재봉기술학교와 MOU를 맺고 있으며, 대표로 계신 김영주 목사는 썸머라홍을 다녀갈 정도로 애정이 있으신 분이다.

역사와 정치, 경제 그리고 세계의 흐름과 민주주의 등 어려운 내용들을 다루는 곳이지만 그 근본에 가난한 사람과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있기에 썸머라홍 청소년들에게는 좋은 경험이었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모르지만 나중에 이러한 경험이 아침이슬처럼 조금씩 스며들며 저들의 인생 옷자락를 적실 것이며, 선과 악의 선택에서 분명 선을 선택하는 어른으로 자라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오전까지 내리던 비가 오후에 들어서서는 뚝 그치고 맑고 쾌청한 하늘을 보였다,

강서제일교회(담임: 현재국 목사) 청년팀이 썸머라홍 청소년들을 맞이하였다. 모두가 언니 누나 뻘인 청년팀은 너무나 친철하고 다정하게 우리 아이들을 맞이하여, 한복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한복 대여 장소에서 환복을 하고 머리를 가꾸고 나온 아이들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막 17~21살. 최고로 이쁠 때, 한복까지 입었으니 얼마나 이쁘겠는가?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눈길을 주고, 사진도 같이 찍자고 한다.

   
 

한복을 모두 차려 입은 아이들이 창덕궁을 들어서더니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한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이 드디어 실감이 났던 것일까?

옆에서 아이들을 안내하던 청년팀원들이 놀라 묻는다.

“아이들이 왜 우는거죠?”

자신들이 혹시 무슨 실수라도 해서 아이들을 맘 상하게 했나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울던 아이들이 금방 활짝 웃으면서 좋아라 팔짝팔짝 뛴다.

“너무 좋아서, 너무 좋아서 그런겁니다”

유튜브를 통해서 많이 봤는데, 너무나 입고 싶었는데, 자기도 꼭 한복을 입고 궁을 걷는 것을 해보고 싶었는데 그 꿈이 지금 이루어져서 너무 기뻐서, 너무 좋아서 아이들은 울었다 웃었다 했다.

 

8. “자라면서 뱃 힘으로 남을 꺼니까~”

   

“형~내일 아이들 돌아가는데, 그래도 얼굴을 보고 잘 가라고 하고 싶네~”

“거기가 어딘데? 야, 부산에서 여기까지 우째 오고 가누? 그냥 우리가 알아서 캄보디아 가면 된다. 귀찮게 오지 마라”

통화를 끝내고 나서, 아이들에게 “초청자 교회인 정관 온누리교회 박준복 목사가 너희들과 마지막 밤을 보내고 공항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비행기 타고 온다”고 말하자 환호성에 서로 “내 예감이 맞았지. 내가 그랬지. 올 꺼라고” 라며 좋아라 난리다.

박 목사는 기어코 아이들의 가는 길에 동행자가 되었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초청자인 박준복 목사와 우리 청소년들이 조용익 부천시장을 만나는 일정으로 시작되었다.

캄보디아의 작은 마을 썸머라홍 아이들이 대도시 부천시장과 만남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허원배 목사(부천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장)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허원배 목사는 나의 주례 선생님이기도 할 뿐아니라 목회 인생에 큰 형님으로 존경 받는 분이시다,

부천시장과의 만남, 부천시청사 관람, 자원재생센터 견학, 부천한옥마을 체험 등 부천에서의 마지막 날은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

저녁 산책 길에 허원배 목사가 툭 말을 던졌다.

“아이들이 부천시장과 만나는 경험은 아이들이 커 가면서 뱃 힘으로 남을꺼다”

한국에서 마지막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을 모두 불러놓고 ‘희망찾기’ 일정 속에 함께 해 준 수 많은 한국 분들의 사랑과 친철에 감사하며, 이제부터 정말 너희 스스로 너희가 있는 자리에서 ‘미래의 희망을 찾아’ 나아가기를 기도했다.

불쑥 청소년 한 놈이

“목사님, 한국에 오기 전에 캄보디아에서 너무 속썩혀 드린 것 정말 미안해요”라며 두 손을 모으고 눈물을 흘린다.

“아이들이 정말 많이 컸네~형” 옆에서 이 모습을 보던 박 목사가 흐믓한 표정으로 말했다,

“빨리 자, 이놈들아~마지막 날이라고 날 새지 말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아이들이 볼까 난 밖으로 후딱 나왔다.

 

<에필로그>

프놈펜 공항에 내린 아이들의 첫 마디

“캄보디아 너무 더워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요~~”

 

김형민 선교사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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