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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습니다

기사승인 2024.05.17  11:4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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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져 내리는 도덕성에 위기를 느끼며...

   
@pixabay

박상기 목사/ 시인. 수필가. 전 광나루문인회 회장. 전 한국목양문학 회장. 빛내리교회 담임목사

   
▲ 박상기 목사

최근 인공지능의 발달이 점차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오히려 인류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도덕성의 중요성이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비영리 단체인 ‘생명의 미래연구소’는 지난해 4월 인공지능 개발의 일시적 동결을 선언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공동 성명에는 오픈AI 공동설립자인 ‘일론 머스크’도 참여했고,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을 포함해 1,300명의 기업경영자와 연구자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특히 일론 머스크는 “AI가 핵무기보다 더 위험하다”고 했단다.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 첨단 AI를 만들면서도 이처럼 위험성을 경고하는 이유는 바로 ‘도덕성’ 때문이다. 즉 도덕적인 판단이 배제된 기계가 인간의 자리를 차지하여 정보를 남발할 때 얼마나 위협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우려하는 것이다.
 

능력을 배제하더라도 인간과 기계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도덕성’이다. 도덕성이란 말을 굳이 사전적인 의미를 들추지 않더라도 웬만한 사람은 ‘이기성’과 반대되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 즉 자기 외의 다른 사람들을 도구와 수단으로 여기는 심리 상태를 ‘이기성’이라고 한다면 ‘도덕성’은 자기 외에 다른 사람, 또는 생명체들을 귀히 여기는 삶의 태도라는 점에서 앞에서 언급했던 AI나 짐승들과는 구별되는 고유한 가치임이 틀림없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에게 도덕성이 결여 되어 있다면 기계나 짐승과 다를 바 없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다양한 신분과 계층이 얽혀있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사람은 누구일까? 소위 오너의 갑질 때문에 기업 이미지가 실추되어 존폐의 기로에까지 몰리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면서, 사람들의 평가가 기업의 성과나 경제적 지표를 통해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잘 나가던 유명인이나 연예인들이 도덕성에 상처를 입고 한 방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예도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사람들은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의 도덕성의 기준을 그 위치만큼이나 높이 설정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할지라도 도덕성에 문제를 보이면 거리두기가 되고, 심지어 가족 간에도 도덕적인 문제로 갈등을 겪는 걸 보면 도덕성은 인간의 삶에 빼놓을 수 없는 포괄적인 가치임이 틀림없다.
 

특히 종교인에게 ‘도덕성’은 가히 ‘생명’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란 정신세계의 차원을 초월한 영적인 세계를 지향하고, 자신이 신봉하는 초월적 대상을 추종하는 것을 넘어, 그와 같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도덕이나 윤리가 인간이 만든 규범이라면 종교적 규범은 그것을 초월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종교인은 가장 높은 도덕성을 요구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종교인의 자기관리가 중요한 이유다. 특히 성직자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종교 지도자의 도덕적 흠결은 뉴스거리가 되고, 사회적 도덕률의 지표가 될 만큼 중요하게 부각 되는 것이다.
 

기독교는 변치 않는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목적으로 추구한다.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지만, 그것을 목적으로 삼는 종교는 아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삶의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기독교 신앙관이기 때문에, 타종교와의 신관이 구별되며 가장 높은 도덕성을 요구 받는다. 따라서 불신자들조차도 “예수 믿는 사람이 왜 이래!”, “교회가 왜 이래!”, “목사가 왜 이래!”라며 기독교 신앙을 도덕적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그만큼 세상이 요구하는 기독교에 대한 도덕적 가치 기준이 높다는 증거다. 물론 세상으로부터 비판받는다고 해서 기독교 신앙이 추구하는 진리나 신분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며, 액면 그대로 받아 흔들릴 필요도 없지만, 점점 수위가 도를 넘고 있다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생활에 부조화가 심각해졌다는 방증으로 받아들여 각성해야 한다.
 

목사란 성직을 수행하도록 구별된 사람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며 성례전을 집도하는 일을 위해 부름 받아 일생의 사명으로 여기며 사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뿐 아니라 세상에서도 목사의 신분은 구별되어야 하며, 특히 도덕성은 성직 수행에서 생명과 같다. 왜냐하면 대중과 사회에 정신적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올바른 가치를 선도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덕성에 결정적인 흠결이 생기면 목회자로서의 생명이 끝났다고 봐도 무방할 만큼 목사에게 도덕성은 중요하다. 그러므로 특히 도덕성에 치명적인 유혹이 되는 돈, 명예, 이성 문제에 대한 고도의 자기관리는 정말 중요하다.
 

작금 우리 교단(예장통합)에 대한 도덕적인 문제가 교단 내에서뿐 아니라 타 교단에서까지 지속적이고 빈번하게 제기되는 것을 깊이 우려한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언론에서는 사실을 확증할 수 있는 증거들을 운운하면서 “만약 허위라면 고발하라!”고 까지 겁박 수준으로 도전하고 있는데, 유독 교단 내에서만 적극적인 해명도 없이 쉬쉬하는 분위기다. 근거 없는 음해라면 공적으로 문제를 삼고 법적 시시비비를 가려서라도 속 시원하게 해소하는 것이 정도일 텐데 잠잠한 것이 이상할 정도다. 만약 의혹 제기 수준이 아니라 사실로 드러나게 된다면, 이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을 수 없게 될 만큼 파장이 클 것이 분명하다. 이미 식물총회라는 말이 널리 퍼져있는 상황에서 언제 터질지 모를 위기 상황을 얼마나 인식하고 대비하고 있는지 안타깝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10년 동안 목회자 세습 문제로 홍역을 앓으면서 교단의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고 이미지가 추락해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부각된 도덕성 리스크로 교단이 흔들리고 있어 교단에 몸 담고 있는 목사로서 여간 불쾌한 것이 아니다.
 

거기에 더하여 이미 출사표를 던진 교단의 부총회장 후보 중에 벌써 도덕적 흠결에 대한 심각한 문제들이 제기되고, 암암리에 번져가면서 ‘자격’이 아니라 ‘자질’ 문제로 비화 되고 있다. 필시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하여 신상 털기가 시작되면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충격적인 뉴스가 쏟아져 나올 조짐이다. 사실이든 소문이든 그 중심에 있는 분이 당선이 되든 안 되든, 감당하기 힘든 망신살과 치명상을 입게 될 게 뻔할 텐데, 왜 공적 자리에 욕심을 내는 것일까? 명예로 자신의 흠결을 가려 보려는 속셈은 아닐까? 그를 추대한 노회는 이미 후보자의 도덕적 흠결을 공공연하게 알면서도 전혀 문제 삼지 않고, 만장일치로 추대한 이유가 무엇일까? 혹 그 과정에 부정적인 거래는 없었는지도 따져봐야 할 일이다. 결국 하나님의 공의가 묵인하지 않을 것이며, 이에 침묵, 또는 뒷거래로 동조하고 방조한 이들의 부정까지 대낮처럼 밝혀내실 것을 믿는다. 만에 하나 그 중심에 있는 후보가 덜컥 당선이라도 되는 날에는 교단의 도덕성이 회복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마음이 지나친 비관이기를 바라며 지켜볼 일이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헐리웃 스타보다 더 인기를 누리고 명성을 떨쳤던 ‘짐 베커’(Jim Bakker), ‘지미 스와갓’(Jimmy Swaggart) 목사 등의 불륜과 매춘 스캔들은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로인데 80년대 미국 교회 목회자의 도덕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을 무렵 읽었던 책이 있다. 팀 라헤이 목사의 <목회자가 타락하면>이라는 책이다. 지금도 줄이 그어진 채 빛바랜 모습으로 서재에 꽂혀 있다. 이 책에는 성적인 죄를 범하고 괴로워하는 당사자들의 모습이 리얼하게 소개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교회가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목회자의 성적 타락은 개인에게 국한되고 마는 게 아니라, 그의 사역, 그의 아내, 그의 가족, 그리고 같이 범죄한 상대방과 그의 가족, 주님의 교회와 나아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 되는 중대 범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성경은 열 왕들의 죄를 언급할 때 개인의 죄만을 지적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그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왕상 16:19)는 말씀을 망하는 왕들의 역사에 후렴처럼 기록하여, 왕들 즉 리더십의 죄를 ‘백성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드는 죄’까지 가중 처벌 죄목으로 취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목사의 범죄가 그렇다. 그런데 대조적으로 같은 범죄를 저질렀던 다윗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의 아들을 세워 뒤를 잇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왕상 15:4-5)라고 하신다. 우리는 다윗의 공과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했다”고 평가되고 있는 것은 ‘경외심’으로 자신의 죄악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회개했기 때문이다. 요즘 아쉬운 대목이다.
 

흠결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공로 밖에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음을 언제나 기억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자기 죄를 자신이 먼저 알고, 양심에 가책이 될 텐데도 공적 명예로 죄과를 포장하려는 시도를 하나님은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공적 영역에 나서는 일을 삼가는 것이 최소한의 신앙적 양심일 텐데 안타깝다. 안개와 같은 현 총회의 도덕성 의혹이 차기 부회장 선거에서 먹구름이 되지는 않을까 심히 염려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이치를 거스를 수 없음을 알기에 ‘자질’과 ‘도덕성’을 갖췄는지 눈을 크게 뜨고 살펴야 할 일이다.  

 

 

 

박상기 목사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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