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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탓이 아닙니다

기사승인 2024.08.21  10:4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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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리의 사색 (12)

   
@Pixabay.com

전성옥 / 부산 거성교회 집사 

 

나는 찬양대원이다. 이는 음악적 재주가 있어서도 아니고, 교회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설 만큼 헌신적이라 그런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자타가 인정할 만큼 신앙이 있는 것일까. 그건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반대쪽이 훨씬 가깝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이 된 것은 봉사나 모임과는 담을 쌓은 그 나태함의 역효과이고, 줏대 없는 팔랑귀가 또 한몫 단단히 한 까닭이다.
 

잘 숨어다니던 내가, 증원을 꾀하는 찬양대장의 레이더에 그만 포착되고 말았다. 오라, 못 간다. 와서 자리만 채워 달라, 바빠서 못하겠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다른 봉사도 안 하면서. 음악에 소질 없어 못 가겠다. 그러자 날아든 결정타! 미모가 되니 얼굴로 은혜를 끼쳐 달라. 이쯤 되면 안 가고 견딜 방법이 없다. 말하는 이나 듣는 이나 어이없는 소리인 줄 뻔히 알지만 주책없는 이놈의 팔랑귀는 그 말을 얼른 받아서 가슴에다 냅다 던져 넣는다. 사정없이!
 

하얀 가운을 휘휘 늘여 입은 거룩한 모양새로 척하니 앉았다. 하지만 내 형편은 내가 제일 잘 안다. 음악 실기 쪽으로는 도통 재주가 없다 보니 예상한 일들은 예상한 대로 일어난다. 악보라는 것은 펼칠 때마다 새롭고, 오선에 맺힌 콩나물의 높낮이는 구별되나 어느 정도의 음을 내어야 타깃 적중인지 당최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딱한 나를 의식했는지 지휘자가 친절하게 거든다. 피아노를 잘 듣고 그 속에서 본인 파트의 음을 따라가세요. 뭣이라, 4부를 같이 치는 피아노, 비빔밥처럼 한 덩어리로 들리는 거기서 한 줄을 가려내어 들으라니. 그게 신의 경지이지 사람의 능력으로 되는 일이냐고.
 

그뿐이랴. 오묘한 반음, 얼른 쉬고 들어가는 당김음, 거기다 악상기호까지 살리란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조표는 첫 소절 첫 마디에 한 번만 붙어 줘야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샵이니, 플렛이니, 제자리표니 하는 이 얄궂은 것들이 두더지처럼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온다. 심한 경우, 마디 중간이나 음표 하나 옆에도 떡하니 붙어 있다. 그러면 대체 이 곡은 무슨 장조냐, 아니면 단조인가. 학교에서 ‘시미라레솔도파’와 ‘사라가바나마’를 배웠건만, 도대체 이 이론을 어디에 어떻게 적용해야 음역대가 파악되고, 조표가 의도한 효과가 나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맹세코 학창시절 내 음악 교과의 필기 점수는 상당하였는데. 그러고 보면 대한민국 음악교육은 분명 문제가 있다. 있어도 보통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어쩌랴, 이제 와서.
 

하지만 정작 그것은 문제 축에 끼이지도 못한다. 나 자신도 몰랐던 사실을 새로이 발견하였으니. 세상에… 내가 박치였다. 그것도 상당한 소질을 지닌 대단한 박치.
 

찬양대원 가운데는 나처럼 ‘사기 청빙’ 된 음치들도 몇몇 있다. 시침 뚝 뗀 얼굴로 다들 열심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들의 애로를. 생경스런 소리가 튀어나갈까 노심초사를 하고, 올라가지 못할 음에서는 붕어 흉내도 감쪽같이 낸다. 하지만 박치에 비하면 음치들은 팔자가 좋은 편에 속한다. 합창에 섞여 버리면 별다른 표가 나지 않는다. 혹시 나더라도 저 파트가 저렇게 노래하나보다 하고 넘어간다. 물론 열 가지 음을 가려듣는 지휘자의 눈총을 가끔 받긴 하지만, 그 외에는 모든 게 무탈한 아주 괜찮은 팔자, 즉 상팔자다.
 

하지만 박치는 정말이지 애로가 많다. 온음표, 이분음표 기타 등등의 구분은 가능하나, 대체 얼마 정도로 음을 지속해야 정확한 길이인지 이걸 알 수가 없다. 또 같은 음표라도 사분의 사박자와 팔분의 육박자의 한 박 길이가 다르고, 같은 박자라도 메트로놈 수치에 따라 또 다르니 이놈의 박치는 어떻게 적응할 길이 없다.
 

여기서 끝나면 그나마 괜찮으련만, 난감한 옵션 하나가 붙는다. 원치 않는 이 옵션의 파괴력은 또 얼마나 대단한지, 의도한 바가 전혀 없음에도 고만 한방에 솔리스트로 만들어 준다. 몇 마디나 몇 박을 쉬었다 다시 들어가야 할 경우, 남들보다 먼저 시작하거나 반대로 동료들은 음을 마감했는데 이를 알아채지 못할 때 이 옵션은 여지없이 가동된다. 내 목소리 한 토막만 교인들의 머리 위에 낭낭하게 흩어진다. 주여!
 

극복해 보고자 나름 노력했다. 플룻 반주자인 딸에게 박자 공부를 부탁했다. 어미를 안타까이 여겨 피아노를 쳐가며 무릎을 쳐가며 박자를 세어주던 딸은 결국 가슴을 치며 포기했다. 시창 수업도 받아 보았다. 그러나 수업 시간에는 읽어지던 악보가 집에만 가면 눈 생기고 처음 보는 책이 된다. 멈출 내가 아니다. 음악회도 좇아 다녀보고, 책도 여러 권 사 보았다. 알만하다 싶은 사람에게 덮어놓고 물어도 보았다. 그러나 길은 어디에도 없었으니.
 

답을 알고 결론에 도달한 것은 우여곡절의 세월을 한참이나 보낸 뒤였다. 더욱이 이 결론은, 평생 나를 괴롭히던 다른 문제의 원인까지도 밝혀 주었다. 문제는 수학이었다. 학창시절, 수학의 세상에서 나는 ‘양’치는 아이였다. 세월이 흘러 ‘양 치던 그 아이’는 주부가 되었다. 하지만 셈이 안 되는 통에 가계부를 포기해야 했고, 경제권을 남편에게 반납했다. 숫자에 관한 모든 것에 허당 노릇을 하며, 갖가지 애로에 시달렸다.
 

알게 된 바에 의하면 화성과 박자, 조표를 비롯한 모든 음악적 질서는 수학에 기초하고 있단다. 악기들의 조음 원리도 수학적 계산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 음악과 수학은 일란성 쌍둥이란다. 그러니 수학머리 없는 내가 음악적 감각을 어찌 장착했을 것이며, 셈도 제대로 못하는 터에 박자 개념이라고 어찌 가지런했겠는가.
 

오늘도 열두 페이지 악보다. 우리 대원들은 참 놀랍기도 하다. 한 시간 연습으로 이 긴 곡을 불러낸다. 그것도 네 파트가 화음을 맞춰가며. 나 역시 큰 무리 없이 그럭저럭 넘어가기는 했다. 연차가 쌓여감에 따라 실수를 감추는 요령이 늘어나고, 궁리 끝에 나온 표정 연기가 제법 괜찮은 덕분이다. 하지만, 언제고 한번은 말을 해야 높은 곳에 계신 그분도 상황파악이란 걸 하실 것이니. 흠, 오늘이 딱 그날이다. 어깨를 들썩이며 힘을 준다.
 

“다소 속상하시더라도 끝까지 들어주셔야겠습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제가 저를 설계했다면 이렇게 안 하죠. 박자는 반주자처럼 정확하게, 악보는 지휘자처럼 술술 읽을 수 있게, 목소리도 꾀꼬리로 그렇게 했을 거라 말입니다. 겨울에 빨간 동백이 피고, 여름에 파란 수국 피는 것이 제 탓이 아니듯 제가 음악을 잘 못 하는 것도 제 탓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이고, 속이 다 시원합니다.”
 

세상에…, 이런 촉 바른 소리를 하다니.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 화살을 날아갔고 물은 쏟아졌다. 옆에서 부스럭대는 기척이… 느껴진다. 돌아볼 용기는 없다. 누가 제자리걸음을 하며 나지막이 한숨을 내쉰다. 잠시 멈칫하는가 싶더니 양팔을 겨드랑이에 끼고 쪼그려 앉는다. 나는 그와 마주치고 싶지 않다. 슬며시 몸을 돌린다. 그도 나를 보지 않고 땅만 내려다본다. 손가락으로 바닥을 긁적긁적하더니 혼잣말하듯 말을 한다.
 

“너무 나를 탓하지 말아라. 그래도 말이다… 너의 그 독특한 화음과 개성 있는 리듬이 싫지는 않더라고”

 
 
 
 
전성옥 집사

 

2012년 <월간문학>에 소설로, 2013년 <에세이문학>에 수필로 등단한 후 <에세이부산 동인>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삶의향기 동서문학상 대상'(2012년), ‘부산수필문예 올해의 작품상’(2023년)을 수상했다. 

 

 

전성옥 집사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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