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자가의 제자도 (2)
황요한 목사(황창연) / 선교사, 박사
1995년부터 20여 년간 중국에서 복음 전도자가 들어가기 어려운 서부 변경지역을 중심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순회하며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집회를 300회 이상 인도하고 사회적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임마누엘 공동체’를 섬겼다. 2020년부터는 타이완으로 사역지를 옮겨 미자립 교회 협력 목회 및 신학교를 대상으로 문서사역을 통해 중국에서 실천했던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장로회신학대학원에서 선교신학을 전공하고 중국 화동 사범대학과 섬서 사범대학 역사학과에서 각각 ‘중국 기독교의 본토화’와 ‘고대 기독교 경교에 관한 연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십자가의 제자도》 이 책은 중국선교의 이론과 실제를 다룬 《광야에 세우는 십자가》의 후속편으로 선교현장에서 사색하고 실천한 ‘십자가 영성으로 사는 제자도’를 정리한 것이다. 30년을 안온한 환경을 떠나 광야생활을 해 온 선교사가 외치는 십자가 영성으로의 회복 메시지를 통해 오늘날 십자가에서 벗어난 교회의 모습에 실망하거나 믿음의 푯대를 잃어버린 고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전과 돌이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십자가의 제자도》 표지에서 십자가 영성으로 사는 제자도를 정리한 《십자가의 제자도》를 연재한다. - 편집자 주 |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었습니다.
제1부에서는 서론적으로 십자가 영성의 이해를 돕고자 십자가로의 부르심, 십자가의 도, 십자가 영성(바울의 십자가 이해를 근간으로)에 관한 성경적 고찰을 다루었습니다. 제2부에서는 십자가 영성의 제자도 덕목 및 특성으로 이 책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내용을 다루었고, 제3부에서는 십자가 영성이 공동체적으로 확산되고 발휘되어야 함을 제시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분망하게 돌아가는 교회를 향해 ‘스톱’을 외치고 리셋을 선포해야 합니다. 봉사 이전에 신앙의 성숙에 초점을 두도록, 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많은 비본질적인 활동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목사나 전도사, 장로, 집사 등은 교회 사역을 위한 직분일 뿐, 우리는 모두 주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제자훈련 역시 근본적인 점검이 필요합니다. 성경 지식은 어느 때보다 풍부한데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 배출되지 않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문제입니다. 십자가 영성은 아는 것과 실천을 하나로 통합하는 영성입니다. 십자가는 죽어 있는 교리와 달리 회개를 통한 자기 부인의 삶으로 우리를 끊임없이 몰아갑니다. 이에 저는 위기에 처한 현대 교회를 살리는 길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십자가 영성으로 살아가는 것이라 확신합니다.
첫째 장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부르심에 관한 점검입니다. 주의 종의 길을 갈 때 매우 중요한 것은 부르심에 대한 확신입니다. 이것은 옷을 입을 때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에 해당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일꾼을 세우는 일에 너무 서두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회에 할 일은 많은데 사람이 부족하다 보니 복음의 진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까지 교회 봉사를 맡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봉사의 수고가 영적 공급을 능가하게 되면 번아웃 증후군이 오거나 교회 일을 세상적인 방법으로 처리하게 됩니다. 제자훈련의 첫 시간이 부르심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1장 / 십자가로 부르심
부르심(calling)
다른 사람에게 자기를 소개하거나 혹은 어떤 사람을 소개할 때 우리는 이름이나 나이, 직업 등 가장 특징적인 면을 들어 말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여러 가지 역할 중 어떤 것으로 자신을 소개하겠습니까?
부르심(calling)은 제자의 조건일 뿐 아니라 제자의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바울은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늘 자신을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골 1:1)
-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갈 1:1)
-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고전 1:1)
-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롬 1:1)
바울에게 사도(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역할은 곧 그의 정체성을 의미했습니다. 그는 비록 예수님의 열두 사도에 들지는 못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 이방인의 사도로 직접 부르심을 받았다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세례 요한을 자신들이 기다리던 그리스도로 기대했으나, 그는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의 길을 예비하는 자라고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친히 세례 요한은 말라기 3장 1절에 예언된 바 ‘그리스도의 앞길을 예비하는 자’이며, 말라기 4장 5-6절에 예언된 ‘엘리야’라고 천명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세례 요한에게도 한때 큰 흔들림이 있었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옥에 갇힌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게서 유대인의 해방자 모습이 보이지 않자,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맞는지 조심스럽게 제자를 보내 묻습니다(마 11:2-19).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가장 연약한 상태에 있을 때, 그를 선지자보다 나은 자이며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칭찬하고 높여 주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왕성하게 사역하며 많은 사람에게 인기 있을 때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따르며 살아가다 회의와 의심, 낙심에 빠질 때 우리를 높여 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제가 선교지에 처음 나간 지 2~3년쯤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파송 받을 때는 교회에서 많은 기도와 기대를 받으며 주님을 모르는 수많은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겠다는 거창한 꿈을 품고 나갔는데, 정작 현장에서 자신을 돌아보니 너무 보잘것없어 보였습니다. 언어 장벽과 선교사에 대한 감시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았고, 이제 막 태어난 자녀들을 돌보며 가정을 안정시키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선교지에 와서 주님의 사명을 감당한 것이 무엇인가 하고 돌아보니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시간만 간 것 같아, 기도하는데 마음은 답답하고 주님께는 너무 죄송하여 탄식의 눈물만 나왔습니다. 그때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나는 네가 나의 말에 순종하여 여기까지 와 준 것만으로도 너무 기쁘다!”
주님의 부드러운 음성이 내 영혼을 감쌌습니다. 생각지 못한 칭찬과 따뜻한 위로에 참았던 눈물의 기도가 터져 나왔습니다. 내가 가장 낮은 자리에 있을 때 나를 책망하지 않고 기뻐하신다고 하셨던 주님의 말씀은 나의 심비에 새겨져 그 후 선교의 길을 걷다가 스스로에게 실망할 때마다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는 분들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주님의 부르심의 과정을 회고해 볼 것을 부탁하고 싶습니다. 주의 종의 길을 걷는 자들이 주님의 부르심에 뿌리를 깊게 내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희망과 열정으로 시작하지만 예상 밖의 고난과 환난이 오면 부르심을 의심하고 세상 유혹과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며 중도에 탈락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며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닥칠 때,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를 비웃고 인정하지 않을 때도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일관성 있게 끝까지 이 길을 완주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부르심에 대한 확신입니다.
십자가로 부르심 - 개인적인 간증
선교지에 온 지 2년 정도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우선 언어와 문화를 익혀야 했기에 사역으로 늘 바빴던 한국 생활에 비해 시간적으로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의 활동이 금지된 곳이었기에 마치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것 같았고 언어의 장벽도 너무나 높았습니다. 고독함과 곤고함, 답답함, 초조함에 눌려 기도하며 말씀을 읽던 어느 날, 마음에 다음과 같은 성령의 세미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전할 복음이 무엇이냐?”
“네가 십자가를 아느냐?”
“네가 십자가를 정말 사랑하느냐?”
이 말은 제가 예상하거나 듣고 싶었던 주님의 응답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떤 사역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고 싶었고, 그에 대한 주님의 도우심과 예비하심에 대해 듣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십자가에 대해 진실로 제대로 알고 있느냐고 제게 물으셨습니다.
당시에 저는 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한 뒤 대만에서 1년간 견습 선교사로 경험을 쌓았고, 귀국해서는 줄곧 선교 담당 교역자로 수년간 시무하며 나름대로 선교 현장 경험도 구비한 상태였습니다. 고국에서 안정된 목사로 사역하는 길을 내려놓고 오직 선교사의 길을 걷고자, 한국인으로서는 선교하기 가장 어렵고 위험한 곳으로 분류되는 공산권 선교지까지 왔습니다. 사역을 위한 성경공부교재와 프로그램도 열심히 준비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십자가를 아느냐고 물으시다니…. 너무나 기초적인 물음 앞에 당혹스럽기도 하고, 그동안 헌신해 온 제 마음을 몰라주시는 것 같아 서운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기간에 아내도 저와 똑같은 내적음성을 듣고 마음이 매우 무거웠다고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 우리 부부는 십자가에 관한 성경말씀을 면밀히 읽고 그에 관한 책을 읽으며 새롭게 십자가를 탐구했고, 충격과 흥분이 교차되는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동안 정말 많이 암송했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라는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우리 마음은 온통 십자가로 가득 찼고, 하루도 십자가를 잊고 살 수 없을 정도로 십자가는 우리 삶의 중심을 차지하였습니다. 그전까지 십자가는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신 구원의 십자가였을 뿐 오늘 나의 삶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도를 알아 가면서 나의 언행, 대인관계에서 생기는 갈등과 오해, 오랫동안 고쳐지지 않는 잘못된 습관, 선택해야 하는 많은 일 등 크고 작은 모든 삶의 영역을 십자가와 직결하는 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경우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잊고 내 마음대로 하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고, 그때마다 십자가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면 나는 죽고 주님이 내 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잊지 않으려고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에서 십자가 모양을 찾다 보니, 차차 숨어 있는 십자가를 볼 수 있는 눈이 생겼습니다. 집에 있는 창문 틀에서, 도로에 줄지어 있는 전봇대에서, 집회 인도를 위해 장거리 기차 여행을 할 때 동서 혹은 남북으로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십자로에서, 또 마침내 저를 기다리고 있는 형제자매들을 만났을 때 그들의 이마와 코에서도 십자가 모양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주님은 우리에게 교회가 없는 황무지 같은 곳에서 십자가를 갈망하게 하셨고, 십자가를 통해 생명수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도’에 대해 정리한 강의안이 완성되자 하나님께서는 저를 드넓은 중국 대륙 전역으로 인도하시며 십자가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20여 년간 중국의 20여 개 성의 도시와 시골을 다니며 300회 이상 ‘십자가의 도’ 집회를 인도하였습니다. 그 길은 때로 수백, 수천 킬로미터가 넘거나 3~4천 미터의 고원지대를 거쳐 이어졌기에 집회 장소에 오가는 데만 여러 날이 걸렸고, 더구나 감시하는 눈을 피해 비밀리에 집회를 열어야 했기에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럴수록 저는 더욱 간절히 기도하며 준비하였고 듣는 자들도 말씀을 사모했기에, 현장에서 십자가 복음의 능력이 크게 드러나 전하는 자와 듣는 자들이 함께 살아나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저는 주님께서 왜 저를 십자가로 부르시고 십자가를 전하라고 하셨는지 점점 더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고, 십자가는 복음의 핵심일 뿐 아니라 목회와 선교에서도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성경의 진리를 확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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