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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보면 알아!

기사승인 2024.08.30  10: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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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경애 사모 칼럼 (293)

늙음이 주는 교훈, 늙음의 진리. 늙어봐야 아는 지식, 늙지 않으면 모른다.


장경애 사모

   
▲ 장경애 수필가


내가 요즘 가장 깊이 느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세상 모든 학문이나 지식은 스승을 통한 가르침과 도서관에 있는 서적을 통해 다 얻을 수 있지만 그것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늙음에 대한 지식이다. 물론 노인은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다 살아왔기에 젊은 사람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은 아직 노인의 삶을 살지 않았기에 노인에 대한 이해도가 적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많은 학문을 통해 배우고, 심리학, 철학 등을 통해 늙음이 무엇인지 피상적이고 상투적으로는 알았지만, 늙음의 실제는 자신이 늙어봐야 알게 된다는 것을 실감한다. 아무도 가르쳐 주는 사람 없는, 아니 가르칠 수 없는 늙음이라는 단계는 세월만이 가르쳐 주는 영원한 진리다. 다시 말해 늙음의 진리는 오직 늙어봐야만 아는 지식이다.
 

세월만이 가르쳐 주는 이 진리는 아무리 발버둥이를 쳐도, 안간힘을 써도 아랑곳없이 찾아드는 이것은 어머니의 태를 통해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겪어야만 하는 필수과정이다.
 

늙었다는 말은 젊지 않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한마디로 줄여 말한다면 ‘젊잖다’라는 말이 된다. 유교 사상이 만연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대체로 이 ‘젊잖다’라는 말은 주로 나이 지긋한 사람이 젊은 사람에게 하는 말로, 칭찬에 가까운 뜻이 담긴 말이고 그렇기에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지 않다. 결국 억지스럽지만, 젊잖다는 말은 늙었다는 말이기에 이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언짢아야 마땅하건만 싫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대체로 아이러니하게도 늙음을 싫어하면서 젊잖다는 말은 좋아하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것은 동서고금에 한결같은 원리다. 그리고 시간은 그 어떤 것에 방해도 받지 않고 너무도 도도하게 같은 속도로 가고 있다. 인간의 바램이나 원하는 것과 상관없이, 한 치의 타협이나 측은지심도 없이 유유자적하게 가는 것이 세월이다. 어떠한 핑계나 구실로도 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거나 빠르게 하거나 멈추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 없지만, 늙으면 누구나 냉정하고 쓸쓸한 현실을 실감하며 살아온 날에 대해 아쉬움을 가진다.
 

시간은 나이와 같은 속도로 간다고들 말한다. 30대는 30마일로 가고 40대는 40마일, 60대는 60마일이란다. 그런데 내가 느끼는 속도는 항상 빠른 과속이다. 요즘은 언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가는 느낌이다. 새해인가 했더니 오뉴월이고 어영부영하다 보니 가을이고, 연말이다.
 

   
@Pixabay.com

옛 어른들에게서 자주 듣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너희들도 늙어 봐라.”, “인생은 잠깐이야”라는 등의 말이 새삼스럽다. ‘늙으면 서럽다’는 말도 많이 들어왔다. 이 말에 어떤 사람은 남이 살다가 늙은 것이 아니고 자신이 살다가 늙은 것을 가지고 그렇게 말한다고 약간은 핀잔 투로 말하기도 했다. 나 역시도 늙으면 서럽다는 말이 조금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나도 늙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 말이 이해될 뿐만 아니라 약간은 서럽게 느껴진다. 세월이 흐를수록 세월만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왜 그렇게 말하는지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다.
 

왜 서운한 것이 많은지…

왜 자꾸 옛날이야기를 하는지…

왜 한 이야기 또 하고 또 하는지…
 

노인만이 갖는 정서나 마음, 그리고 삶에 관한 생각 등은 노인이 아니고는 알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그래도 열심히 살아서 자기 성취가 있는 사람과 허송세월로 살아서 자기 성취가 없는 사람과는 모든 것에 차이가 있을 것이다.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어찌 살았든지 늙는 것은 같고 후회가 되는 것 역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조금만 젊었으면…’하면서 젊음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에 “우물쭈물하다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지”라고 쓰여 있다는 말에 깊은 공감이 간다. 우물쭈물하다가 10년이 지나고 또 10년이 지나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70이 된 것을 보면 정말 실감 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우물쭈물’하며 그렇게 살아온 날들 속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희로애락이 점철되어 있다. 부모 밑에서 사랑받으며 철없이 살았던 어린 시절을 거쳐, 무엇이든 할 것만 같은 자신감 속에서 살았던 사춘기 시절을 지나 교만의 극치를 달리며 당당하던 청년 시절, 그리고 결혼과 함께 새롭게 시작된 인생살이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생각하면 이 모든 것이 은혜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이 주님의 섭리였고 은혜였음을 더 깨닫게 된다. 마음이 아파 죽을 것만 같았던 일도 있었고, 너무도 기뻐서 어찌할 줄 모르게 뛰던 일도 있었고, 몸이 아파 요단강 앞에까지 갔다가 돌아온 일도 있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의 쌓임이 오늘의 나를 존재하게 했고 또 지금의 내가 있다.
 

이제 얼마를 더 살지는 오직 주님만 아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산 날이 살날보다 많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나이는 일에서 빠져나와 쉬라는 나이이다. 남편의 은퇴와 함께 찾아온 노년. 이제는 덤으로 사는 인생이다. 그러니 인생에서 내가 할 일은 이제 없다.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이제는 포기해야만 한다. 아니 형식적인 포기가 아닌 완전히 내려놓아야만 한다. 그것이 아쉽다. 그것이 서럽다. 그래서 안타깝다.
 

안타깝든 서럽든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것 같다. 사는 날 동안에 하지 못해 안타까웠던 모든 것들은 다 내려놓고, 이제는 내가 가야 할 영원한 집을 열심히 준비해야만 한다. 가는 길에 필요한 것을 챙기는 일이 더 중요하다. 아버지 집에 다다를 때까지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야 한다. 나를 반갑게 맞이할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아버지가 원하시는 것을 준비해야만 한다. 오직 아버지께 기쁨을 드려야만 한다. 이 땅에서의 모든 것 아쉬움은 다 뒤로 하고 그것만을 위해 달려가리라.

   
@Pixabay.com

늙음을 서러워하지 말아야 함을 느낀다. 백발은 노인을 상징하는 말인데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고 성경에서 말하고 있다. 노인이 될수록 지혜와 명철함이 더 하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땅에서의 하루하루가 귀하기만 하다. 그렇기에 허송세월 보내면 안 된다. 우물쭈물해서도 안 된다. 나의 후손에게 신앙인으로서 본이 되는 모습을 남겨준다면 최고의 삶을 산 사람일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을 보낼 수 있다면 여한 없는 삶을 산 것일 테니까 이제부터라도 하늘나라에 갈 만반의 준비를 하자. 그것이 이 늙은 시절에 할 일이다.

그렇게 해야 함을 너무도 잘 알면서도 인간의 욕심과 죄업 때문에 그것이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더 노력하며, 더 성실히, 주님과 교제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주님 마음에 들 뿐만 아니라 노년의 삶을 제대로 사는 것이리라. 

 

장경애 사모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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