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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 공사

기사승인 2024.09.04  11:2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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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리의 사색 (14)

전성옥 집사 / 부산 거성교회

 

드디어, 날이 왔다. 공사 하는 날이 왔다. 긴장된 마음으로 공구 소리 요란한 현장에 들어선다. 웅웅대는 드릴 소리, 아릿한 노린내, 그리고 두려움. 이윽고…, 문이 열린다. 강한 조도의 빛이 폭발하듯 새어 나온다. 문 안으로 발을 옮긴다. 발이 떨린다. 몸도 떨린다. 마음까지 떨린다.
 

이번 공사, 두렵긴 하지만 꼭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고 싶다하여 후다닥 해치울 그런 쉽고 간단한 공사가 아니다. 하여 사전준비에 최선을 다했다. 상황을 파악하고 정보를 수집했으며, 자금 내역을 확인하고 견적도 받아 보았다. 공사의 타당성 검토를 위해 다양한 변수와 갖가지 상수도 넣어 보았다. 답은 언제나 같았다. 즉 이 공사는,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열 번 낫다. 하지만 반드시 검증된 업체, 공신력 있는 기술자에게 시공을 맡겨야 한다.
 

검증된 업체에 공신력 있는 기술자라… 전국적으로 우후죽순 난립하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이 업종의 그 많은 업체 중에 대체 어디의 뉘를 찾아야 하나. 하지만 길은 있는 법. 때맞추어 유능한 자문이 등장했다. 나의 자문 그녀, 방송강의를 하는 그녀는 다양한 직간접의 경험들이 있는 데다 정보력 또한 막강했다. 게다가 나의 조카이기까지 하니 이만하면 신뢰할 만하지 않은가. 그런 그녀, 내가 신뢰해 마지않는 나의 자문은 어렵지 않게 한 업체를 낙점했다. 더불어 시공기술자의 신상정보도 떡하니 들이민다. 이어 쐐기를 박는 그녀의 한마디 ‘미뤄서 좋은 건 아무것도 없다!’
 

마음을 굳힌 나는 일주일 간격으로 업체를 방문했고, 그럴 때마다 모 유행가 가수의 노랫말처럼 ‘압구정동 역 4번 출구’를 통과했다. 서울 지하철 압구정동 역 4번 출구, 그곳은 개찰구부터 지상으로 나오는 입구까지 온통 예쁜 여자들로 가득 차 있다. 그녀들은 나와 눈을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리고 유혹한다. 머뭇대던 내가 눈길을 주자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나처럼 만들어 줄까, 너에게만 말하는 것이지만 사실 예전의 나는 사각 턱이었고 광대가 솟았으며 눈은 작았지. 게다가 얼굴은 징처럼 커서 서글프기 짝이 없었단다. 그뿐인 줄 아니, 빈대 코에 얄팍한 입술이었으니 섹시하다는 말과도 거리가 멀었지. 환골탈태했다는 그녀들의 말, 그 자신 있는 경험담에 사르라락 귀가 녹는다. 종이비누처럼 매끄럽게, 부드럽게, 재빠르게.
 

옆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때를 놓치지 않고 말을 보탠다. 후박나무꽃처럼 뽀얀 얼굴의 여자다. 그 사근사근한 음색, 말캉한 멜로디. 사이렌의 노래처럼 마음을 난파시킨다. 눈, 코, 입은 골조공사일 뿐이야. 중요한 건 마감이야, 무엇보다 마감을 잘해야지. 암, 피부가 고와야지. 나처럼 만들어 줄 테니 와 보렴, 와 보렴, 어서 와 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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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작렬하는 방. 그 한 가운데 좁다란 침대가 놓여있고, 천정에는 해바라기처럼 둥글둥글한 전등이 한 무더기 달려 있다. 한 발 더, 들어선다. 침대 위에 몸을… 뉜다.
 

이 방의 문을 여는 것, 결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나는 이 문을 여는 여자들을 성토하는 무리 중 하나였다. 그녀들의 행위를 두고 자연스러움을 수긍하지 못하는 얄팍한 여자들의 뻔한 허영이요. 조물주의 창조를 획일화시키는 어리석은 하극상에 불과하다 냉정하고 단호한 정의를 내렸었다. 그러나, 사람은 관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남의 말 할 것 못 된다. 입장 바꿔 보지 않으면 어떤 무엇도 완벽한 이해는 어렵다. 나도 결국 이 문을 들어서지 않았는가 말이다. 자가당착도 이런 자가당착이 없으니.

   
연도별 성형외과 피부과 개원 추이(자료 출처=건강보험통계 KOSIS)

수습을 위해 갖가지 이유를 찾는다. 여자의 끝자락에 와 있다는 절박함, 인생 한 번뿐인데 하는 배짱, 이 공사로 해를 입는 타인이 있는가 하는 윤리적 검토,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사회 분위기. 나는 이 모든 것을 한 그릇에 몰아 담는다. 이 중 앞의 둘은 욕심이요 뒤의 둘은 적당한 타당성이 있다. 타당성 둘에, 욕심 둘을 뭉쳐버린다. 차지게, 매끄럽게, 절묘하게.
 

사람들은 다양한 직업에 종사한다. 그리고 나이는 직업의 질과 수명을 결정한다. 교사나 공무원쯤 되면 나이는 잊어도 좋다. 의사나 학자들은 흰머리가 그들의 훈장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일은 다르다. 나는 지면 디자이너이다. 새롭고 참신한 것이 추앙받는 세계, 나이에 예민한 쪽이다. 일을 처음 시작할 즈음에는 고객 대부분이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거침없이 일했다. 한동안의 기간도 괜찮았다. 경력이 쌓이고 자신만만해지는 시간들이었으니까.
 

세월이 지나고 내가 고객들의 연배를 넘어서기 시작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나이 많은 작업자가 불편하지 않을까. 내 의뢰인은 내가 만들어 내는 결과물을 흡족해할까.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바짝바짝 조바심이 났고, 철렁철렁 위기감이 들었다. 그 탓으로 나는, 멀쩡한 디자인을 해 놓았음에도 곧잘 심리적 위축에 시달렸고, 고객의 반응을 감지하려 신경의 더듬이를 뻗을 수 있는 데까지 뻗곤 했다. 가슴에 썰렁 바람이 지나가고 쇠구들에 앉은 것처럼 마음이 시려 왔다.
 

돌아보면 잘 버텨오긴 했다. 통통한 볼살과 오밀조밀한 눈 코 입이 맹활약해 준 덕분이다. 젊을 때는 입체적이지 못한 내 얼굴이 적잖이 불만이었으나,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젊은 시절의 그 불만 거리는 나이가 들자 숨겨놓은 비상금 노릇을 톡톡히 한다. 여기다 후방지원군으로 나선 화장품의 공덕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볼이 통통한 얼굴과 화장품, 이 둘은 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정말이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속 나이는 어쨌거나 겉모양에는 적잖은 시간을 벌어 주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만고불변의 진리가 있다.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라는. 언제부터인가 거울 속에서 발견되는 나이, 에누리 없는 내 나이. 애써 외면한다. 피곤해서 그럴 거야. 요즘 날씨가 좀 건조해야지. 아마 며칠을 두통에 시달렸지, 한 이틀 푹 자면 탱탱해질 거야. 마스크팩을 흠씬 하면 촉촉해질 거야.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세월 이기는 장사는 없다. 세상 어디에도 없다. 어느 날인가 결국 마주치고 말았다. 원수의 거울이 내 얼굴에 ‘늙을 老’를 사정없이 박아놓은 것을. 조금의 자비도 없이 어찌나 선명하던지… 선명하다는 말은 젊음에나 어울리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세상에나, 그 선명이 늙음에도 이렇듯 적합할 수 있다니. 버틴다고 버텨왔으나 그 선명한 늙음을 확인하곤 결국 백기를 든다. 아프게 무너진다.
 

천하에 몹쓸 오랑캐 같으니라고! 하지만 흉악하기 짝이 없는 노군老軍은 내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기세등등하고 사기충천하여 급속도로 세를 불려 나간다. 눈가에 진을 치고, 머리카락에 수탈 군을 내려보낸다. 턱 아래에 군량 주머니를 밀어 넣고, 허리에는 복병을 숨기더니 기어코 손등까지 치고 내려온다.
 

적의 수중에 들어간 점령지, 그 피폐한 모습을 망연자실 바라본다. 아, 잔인하기도 해라! 하지만, 그렇지만… 나도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지 않은가. 전열을 정비하고, 최후의 보루를 지켜내기 위한 결사 항전에 임해야 하지 않겠는가. 필요하다면 ‘피의 전투’까지도 각오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 번쯤, 한 번쯤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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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 무엇무엇 하는 말이 있다. 생계형 노점, 생계형 맞벌이 심지어 생계형 절도라는 말까지도 들린다. 이 생계형이란 말이 붙는 순간 사람들의 아량은 풍선껌처럼 훅 늘어난다. 다른 무엇이 아닌, 욕심이나 사치가 아닌, 그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를 위해 어떤 행위를 한다는 것이니, 이성이 미처 의식하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자리를 내어 주고 만다.
 

그 관점에서 보면 연예인들의 행위, 숱하게 얼굴을 고치는 그들의 행위도 어느 정도까지는 ‘생계형 얼굴 공사’로 봐 주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업을 위한 얼굴 공사를 연예인이 아니어서 못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불법도 아니고 죄 될 것도 없는데 나라고 하지 못할 이유 따로 있으랴.
 

두근두근, 내 심장 소리가 들린다. 따끔따끔, 눈 주위로 마취 주사가 들어온다. 눈을 감은 나는 생계형 얼굴 공사란 위장막 뒤에 나의 조바심과 절박함과 배짱을 교묘하게 배치한다. 그 사이, 칼과 바늘을 든 얼굴 공장 기술자들이 쌍꺼풀 사이로 눈주름들을 절묘하게 숨기기 시작한다.

   
미용 성형 대국 순위(자료 출처=머니투데이)

이 공사로 과연 얼마만큼의 시간을 벌 수 있을까.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래도 나는 이 까마득한 적벽 앞에서 마지막 항전을 벌인다.
 

세월에 지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고 도리이다. 하지만 세월을 늘이려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만큼의 세월 속에서 시간 가늠자를 움직이는 것은 인간의 선택이고 결정일 것이다. 하여 지금 나는, 이 공사장 아니 이 격전지로 나오지 않았는가.
 

항전을 결정한 나의 용감함에 박수를 보낸다. 눈주름을 잡아내는 얼굴 공장 기술자, 나의 지원군인 그들에게도 갈채를 보낸다. 그리고 무엇보다, 되돌아올 얼마간의 시간에게 환영의 꽃다발 하나 푸르게 준비하려 한다.

 
 
 
전성옥 집사

 

2012년 <월간문학>에 소설로, 2013년 <에세이문학>에 수필로 등단한 후 <에세이부산 동인>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삶의향기 동서문학상 대상'(2012년), ‘부산수필문예 올해의 작품상’(2023년)을 수상했다. 

전성옥 집사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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